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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기억이란 건 참으로 무섭다. 어릴 때의 기억이라기보다 어릴때부터 쌓아왔던 세뇌의 힘은 그토록 무섭다. 이제는 세계문학전집에서 당당히 하나의 이름을 차지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당당한 책일 뿐인데 그저 '공산당'이라는 이름 하나로 마치 이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잡혀갈 것만 같다. 지금 2010년을 살고 있는 내가 그러할진대 20년전,30년전 대학교에서 몰래 몰래 이 책을 접하던 선배들은 과연 어떠한 심정으로 이 책을 대했을지 내 머리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물론 내가 소심하기도 하다)
이승만과 그 뒤를 잇는 군부독재세력들이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반공을 국시로 건지 어언 반백년. 이제는 좀 그 희미해지는 그림자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정치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유지하기 위해 좌빨이니 빨갱이니,좌파니 하는 용어를 갖다붙이고 국민들은 그에 대해 열렬히 호응해준다. 물론,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모님을,형제를,친지를 잃은 어르신들에게 북한이나 김일성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용서해서는 안될 이름이다. 문제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자신들의 정권세습을 위해 위의 이름들을 어르신들에게 팔아먹고 있는 정치인들이 문제이겠지만서도 일견 겉으로 보기에는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도 분명 그랬다. 뉴스와 신문이,정치권이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라 믿었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빨갱이가 아니었고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건 불과 몇년전부터였다. 그저 상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리는 사회였다는 것을 안지 불과 몇년되지 않았다.
대학과 학생들의 싸움. 가장 흔한 등록금 투쟁. 재단전입금을 2000억을 쌓아두고 건물을 짓는다는 명목아래 등록금을 또 올리려는 학교와 그것을 막으려는 학생들 사이의 싸움을 겪으면서, 한의계와 정부의 싸움. 약대6년제 반대투쟁 노무현 정부시절, 약대6년제를 추진하려던 정부및 약사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한의대생들의 싸움을 겪으면서, 한의계와 한의대생의 싸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한의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들과의 싸움을 겪으면서,
사회는 생각보다 그렇게 희망으로 가득차있지않다는 머리 속 진실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사회에는 올바른 것을 위해 싸우고 깨지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공산당선언의 본문 맨 처음에 마르크스는 정확히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이토록 지금까지의 유구한 역사를, 지금을 설명할 수 있는 한 줄이란..
그랬다. 나는 모르는, 뉴스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신문에서는 한 줄 다루지 않는 계급투쟁의 역사들이, 이렇게 어렵게 표현할 필요도 없는, 그저 상식의 요구와 몰상식의 탄압이 내 옆에서 생기고 또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그 사람들이 결코 어려운 것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1970년의 전태일은 결코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의 10분지 1이라도 알아달라 하였을 뿐이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제대로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몇년뒤 평생을 앓아야 할 산업재해를 겪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조금 알아주고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을 뿐이다. 그는 결코 사회를 전복하려는 빨갱이가 아니었다.
1980년 광주 도청을 점거한 광주의 시민들도 빨갱이가 아니었다. 박정희의 죽음 이후 되찾은 민주주의를 다시 강탈해 간 전두환에 대한 정당한 시위가 전두환의 권력욕과 물려들어가 그들은 빨갱이가 되었고 그들의 목숨으로 전두환은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광주민주화항쟁을 빨갱이들이 벌인 짓이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후 시간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수구세력에 의해 빨갱이라 불리던 두 사람이 국가원수로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 망령을 떨쳐버리기는 커녕 수구언론을 앞세워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며 두 국가원수를 빨갱이라 믿고 있다.
불과 2년전의 광우병파동에 나섰던 수많은 시민들도. 수구언론의 노련한 낚시질과 교묘한 입막음으로. 정권의 압박과 침묵과 불통으로. 절차상의 정의와 정권의 소통을 주장한 시민들은 어느새 빨갱이세력에 낚인 불쌍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되었다.
전태일도, 광주의 시민들도, 이름 모르게 희미해져간 정말로 수 많은 사람들도 빨갱이도 아니었고 국가전복세력에 낚인 어리석인 백성들이 아니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상식의 정치를 자신들의 머리와 손으로 요구한 사람들이었다. 북한을 옹호하지도 않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지도 않았다.(물론 찬양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지만 그런 사람은 본인도 싫어하니 넘어가자. 물론 그 사람들의 주장 자체는 인정한다. 다만 반대할 뿐. 그것이 민주주의니깐) 그랬던 사람들이 수구세력에 의해 자신들의 안위와 대대손손의 영화를 위해 모두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싸늘히 산화해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그랬던 사실을.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최저시급이 얼마라는 이야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일 뿐이라는 사실을. 동네 구멍가게조차 ssm의 횡포앞에 망해간다는 이야기를. 그들이 한번 자칫 그 수렁에 빠지면 본인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올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아니, 얘기해도 점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희망만을 이야기한다. 희망의 과포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비정규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몇개의 통장을 만들고 어떤 재테크를 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오로지 성공신화에만 주목한다. 대기업에 취업하고, 의사와 변호사가 되고, 재테크에 성공한 단 10%의. 90%의 실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나도 노력하면 그 10%에 들어갈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그리고 막상 자신들의 대부분이 그 90%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 90%에 들어버린 사람들도 나만은 이 지긋지긋한 동굴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오직 나만은.나만은 다를거라는 희망으로 질식해버릴 것만 사회속에서. 이미 나만 살아나가기에는 틀려버린 사회에서.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손을 잡고 상식의 요구를 하지 않도록 만든다.
우리는 점점 내가 생각하는 상식을 주장하는 빨갱이가 되어갈 기회조차 잃어가고 있다. 사회는 어느덧 빨갱이를 공격하고 탄압하는 시대에서 빨갱이 자체를 만들지 못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성추행을 한 교사는 멀쩡히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정권이 좌파라고, 빨갱이라고 부르는 정당에 회비를 낸 교사는 해임된다. 뉴스에 한줄 나오는,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귀족노조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정규직 약속을 받고 취업했고 그것을 이행하라는 여승무원들은 무임승차를 노리는 집단이기주의로 내몰린다. 정치인의 비리보다 연예인의 구설수가 먼저 입에 오르내리고 주목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회는 너무나 평화롭다. 몇억불의 흑자를 보고, 국가 경제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였으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하는 나라로 국격이 올라갔다. 그 와중에 어딘가에서는 등록금때문에 대학생이 자살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한가족이 동반자살을 하기도 하며 더이상 대형마트와 ssm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어엿한 가게를 처분하고 마트의 비정규직 물건팔이가 된다. 그 사람들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될줄은. 우리도 지금 모르고 있다. 우리가 언제 그런 처지가 될줄은.
상식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빨갱이가 되는 나라에서. 우린 빨갱이가 되기도 전에 다시 전태일의 세상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다. 이미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때가 되면. 이미 늦어버리겠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 우린 이미 동굴에 다 같이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동굴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천천히 천천히 한사람씩 동굴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아직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두 손을 잡고, 허리춤에 모두의 끈을 묶고 서로 의지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 다 같이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미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 사회는 모두 패망의 길을 걷고 있다. 소련은 이미 옛 이름이 되었으며, 중국은 이제 발빠르게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북한 역시 그 몰락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공산주의 사회는 오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지금의 세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마르크스가 없었다면 절대 없었을 일이다. 부자들은 마르크스가 뿌린 항원을 막기위해 어쩔수없이 조금 양보하고 케인즈라는 이름의 항체로 방어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느덧 세상은 마르크스는 온데간데 없고 부자들의 수호신이었던 케인즈마저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이 다시금 도래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당 선언은 이 시대에서는 대부분 틀렸다.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그를 따랐던 많은 나라들이 이제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어쩌면 백년 뒤에는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공산당 선언이라는 이름이 박제되어 화석으로만 발견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마지막 한 줄만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공산당선언의 첫 줄이 지워지지 않을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그 중간의 내용은 이제 쓸모없어졌을지라도, 마지막 한줄은 다시 영원해야 한다. 그것은 계급투쟁의 역사가, 상식과 몰상식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상식의 요구가 빨갱이로 치부되는 곳에서는 불멸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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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선언》 자체는 꽤 짧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케임브리지 대학 역사학부 정치학 교수이자 《빈곤의 종말》 등을 쓴 정치사상 연구가인 개레스 스테드먼 존스의 서설이다. 《공산당 선언문》의 의미와 저작의 전후 맥락을 심도있게 짚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공산당 선언문》은 플라톤 《국가》, 마키아벨리 《군주론》, 홉스 《리바이어던》, 루소 《사회계약론》 같은 주목받는 정치적 저작일까? 그의 평가는 ‘그렇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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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라는 구절로 시작해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문장을 거쳐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이 책. 한때 세계의 절반의 사고방식을 지배했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도 할 정도로 유명한 그 책. 바로 공산당 선언입니다.
공산당 선언은 우리가 흔히 자본주의 시장경제 공장제 산업사회라고 부르는, 우리의 물질 생활을 규정하는 기본 규칙이 만들어진 역사적 과정을 계급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끈질기게 이어지는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거나 반박하고, 이 정치-경제-사회 체제가 계속되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언하고, 이에 대비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할지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위기에 닥칠 때마다 정령처럼 소환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자기파괴적인지, 스스로 성취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삶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나와있는지, 이런 끔찍한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벌어졌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말해주는 책으로서 말이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당연히 전제해왔던 사회적 집단적 삶이라는 근본적인 토대가 흔들리는 2021년 지금도, 우리가 다시 공산당 선언을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키워드는 마르크스주의입니다.
냉전 시대 이른바 자유 진영에 속해있던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오해와 편견에 싸인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걸 공부한다고 하면 감옥에 끌려가던 시절도 있었고, 그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뭐 이런 데 관심을 갖냐는 둥 소련 망했으니 마르크스주의도 끝난 거 아니냐는 둥 이런저런 소리를 듣곤 하죠.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를 북한과 연관짓는 의견도 꽤 자주 볼 수 있고요. 심지어 이런 모든 오해와 편견이 일정 부분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면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우리 시대에 여전히 의미가 있고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불려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산업사회에 살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이 사회를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정교하게 분석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 노동자로서 우리의 처지,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 그런 방법이 유효한 역사적 철학적 이유에 이르기까지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꽤 그럴듯하기에 들어볼 만한 분석이 마르크스주의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정치, 사회, 경제, 철학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마르크스주의는 스며들어있습니다.
이런 분석을 본격적으로 보려면, 자본론이라느니 하는 두께만 봐도 질리는 이상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 공산당 선언은 우리에게 이런 부담을 덜어주고 마르크스주의의 핵심만 딱 뽑아서 보여주는 아주 간결하고 멋진 글입니다. 원문이 생각보다 짧아서 아쉽다면, 원문의 거의 서너배 두께로 붙어있는 개레스 스테드먼 존스의 해설을 함께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수십 가지 번역본을 제쳐두고 제가 이 판본을 고른 이유이기도 한데요. 스테드먼 존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사상사학자이며 현재 가장 권위있는 마르크스 평전을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해설이 공산당 선언의 역사적, 사회적, 지성사적 의미를 아주 세세하게 소개하며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눈을 길러줄 것입니다.
더 재미있게 읽을 당신에게 보내는 콘텐츠, 2제 아이랑 투게더입니다.
제가 추천드리는 콘텐츠는 안물어봐도 알려주는 남얘기, 줄여서 안알남이라고 부르는 팟캐스트의 전지적 마르크스 시점 시리즈입니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해 거의 2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는 연재 에피소드인데요. 몇년전 논란을 일으켰던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과 그걸 적용한 여러 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그 사례엔 우리나라의 역사, 특히 19세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고요. 여러 종류의 편견과 오해에 둘러싸인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친절하고 풍부하게 들려주는 최근 콘텐츠라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공유해보고자 권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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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강력한 반공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고, 공산주의에 대한 역사적 승리를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 불온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드물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진정한 세계 자본주의 독재시대에서 역사적으로 실패가 자명하게 증명 된 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위험'하다고 느끼기 좀처럼 힘들기 때문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바보스러운 행동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책은 충실한 반공 자본주의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며, 자본주의가 절대왕좌에 있으면서도 그 스스로에 의해서 휘청거리는 이 시대에 더욱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와 이 책이 나와서 조명받던 시대 역시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파괴시켜가는 때로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의 양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책을 읽을 때 실패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왜 자본주의가 그런 환상을 품게 만들었는지 생각하며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읽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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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공산당선언』을 읽고 있자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은 “왜 지금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읽어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가장 간단한 대답은 “고전이니까”일텐데, 고전의 정의가 “(아무 이유 없지만 일단은) 읽어야 하는 책”이라면 사실 이 대답은 의미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게다가 “공산당(과 공산주의)”은 실패한 정치실험이라는, 80%는 맞지만 20%는 틀렸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선입견도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 책이 타겟으로 잡고 있는 자본주의의 동시대성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자본주의 세계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라는 단순화로 포착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이 말이 맞다면 마르크스의 현재 분석도 틀린 것이고, 그 분석에 기반한 미래 예측과 행동강령 또한 제대로 들어맞을 리가 없다. 핸드메이드 소공업인들은 유통 플랫폼의 갑질에 종속되었고, 동네 슈퍼 아저씨들은 대형마트에게 시장을 빼앗겨 가게 문을 닫고 그 마트의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인간이 신경써야 하는 영역을 점유해가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자본만 있으면 모든 인간들이 각자 가진 어마어마하게 서로 다른 수요를 작은 기관에서 모두 충족시키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 서로 다른 수요를 대면접촉으로 충족시켰던 모든 “소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가 되어가고 있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이 정말 틀린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도 조금은 다르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산주의 운동이란, 어떤 세계가 아주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로 나눠졌을 때만 이뤄질 수 있다. 이 과정은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이뤄진다. (이 말에는 수많은 쟁점이 담겨있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핵심 교의이기도 한데) 이 경제적 운동은 다른 영역의 어떠한 변화나 노력으로도 막을 수 없다. 또 마르크스가 이 글의 끝에 밝히는 것처럼,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공산주의를 향한 최후의 일전에 돌입하기 전 벌어지는 모든 국지적 전투에도 우호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공산주의자들의 활동범위는 우리가 소극적이고 국지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넓어야 하고), 실제로 (내 관점에서) 꽤 괜찮은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개혁의 길에 들어섰거나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도 바보가 아닌 한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는 내 자만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이런 종류의 단어를 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내가 이해한 『공산당선언』의 핵심은, 경제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지향하는 열망 같은 것이다. 마르크스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공산당 선언』 자체가 수사적으로 매우 풍부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기에 나도 내 멋대로 해석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래를 기획하며 돈을 모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뜻의 “월급이 스쳐간다”는 표현이 150년 전 쓰인 이 팸플릿에 이미 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생각에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당신의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는 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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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란 얼마나 표박한가.. 칼 맑스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불온한 감정은, 아마 우리가 어릴 적부터 쌓아온 레드콤플렉스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욕하느 ㄴ사람 중에서 공산당 선언 한 권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또한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이 책에서 맑스는 선동적이지는 않되 강렬한 어조로 현실을 진단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표명하고, 끝끝내 혁명을 부르짖는다. 이 혁명이란 것이 실제로는 실패한 열정과, 어긋난 독재로 이어졌지만 당시에 무언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노력만큼은 인정할 만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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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한번은 대강 훑어본 다음에 두번째는 정독을 하였다. 내용은 우리가 사회시간이나 윤리시간에 배운 간략하게 추릴수 있는 내용이었고, 두번째 읽어보니깐 안읽혔던 단어들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어려운책은 두번, 세번 읽으면 된다는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처음에 공산당 선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면서 공산당선언을 내 놓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는데 번역본이 좀 더 쉽게 의역해서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많았다. 펭귄클래식 책이 어려운지 다른출판사의 책도 어려운지 비교를 할수 없어서 아쉽다. 다른출판사의 책도 사서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이 책으로 두번 세번 읽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이 책은 다른책을 쉽게 읽으려는 나에게는 그러한 의도가 있었으므로.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고전이니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정리해본 바로는 낡은 사회질서를 바꾸는 정책으로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바꾸려는 내용인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바뀌는 계급에서도 역시 지배계급은 존재한다는 모순이 있는것 같다. 어디에서나 작은 단체가 있으면 계급은 존재하듯이 첫번째 토지재산의 폐지를 들었는데 누진세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있는사람들은 불만이겠지만. 무거운 누진소득세는 좀더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복지와 다양한 혜택을 보기 위해선 지금 현재 민영화를 많이 추진하는데에서 조금 반대다. 국가기관의 간섭이 약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격차를 줄여지는 건 바르다고 본다. 고등교육까지의 의무교육은 좋다.
암튼 반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강 읽어보았다는데 의의를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