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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om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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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과 밀레니엄 전환을 동시에 겪는 건 어떤 의미에서 그 당대인으로서는 특권이다. 길게 살아야 백 년인 필멸의 존재라, 운 나쁘면 세기말도 못 보기 십상인데, 천 년에 한 번 오는 그 획기까지를 체험하는 건 알고 보면 핼리 혜성의 관전보다 분명 확률적으로 13배 이상 드문 일 아닌가? 세기말과 바뀌는 천년기를 동시에 "Happy New.... new,,, Wow!"를 외치며 겪는 건 좋다만,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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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과 밀레니엄 전환을 동시에 겪는 건 어떤 의미에서 그 당대인으로서는 특권이다. 길게 살아야 백 년인 필멸의 존재라, 운 나쁘면 세기말도 못 보기 십상인데, 천 년에 한 번 오는 그 획기까지를 체험하는 건 알고 보면 핼리 혜성의 관전보다 분명 확률적으로 13배 이상 드문 일 아닌가? 세기말과 바뀌는 천년기를 동시에 "Happy New.... new,,, Wow!"를 외치며 겪는 건 좋다만, 겪는 김에 콱 세상의 종말까지 같이 겪으면 어쩌지? 어차피 다 같이 겪는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고 했구, 빌빌거리다 주위에 민폐 끼치고 가느니 불꽃처럼 일순에 '훅!'하고 후디니처럼 사라지는 것도 나름 낭만이거늘,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전 사회와 동시에 맞이하는 파멸에 뭔 회한이 남겠는가? 살아남는 자가 행여 있다면 그게 바로 저주 아니겠음? 요런 소릴 늘어놓는 입은, 저기 오더메이드 클럽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 중학생 버전의 앤(철든 이후로는 이런 소리 안 함)이거나, 아님 나이 먹을 대로 먹고 세상 구경을 못 해 본 채 퀘퀘한 냄새 나는 제 나름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시트를 아무 데나 휘두르면 작가의 아우라가 풍겨 주겠거니 착각하는 오타쿠일 가능성이 많다. 내일 죽는 판에, 쌈지에 챙길 낭만과 윤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코를 줄줄 흘리며 채 걸음마도 못 떼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롤 플레잉을 가장 즐기고 놀듯, 이런저런 불안 요소가 있으나 바빌론 이래 처음 누리는 번영과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있던) 현대인은,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대파국과 심판의 날에 대한 일말의 무의식적(단지) 불안을 이런 식으로 멀리 떨치려 유희적 분투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얼척 없는 것은, 지구반대편의 동양인이야 세월을 헤아리는 셈법 자체가 다른데, 주술과 종교의 수비학(數秘學)적 카운팅이 대체 그들의 운명에 무슨 작은 영향이나마 미칠 수 있었겠는가. 엉터리 바이오리듬 이론의 상술이 결국 경기 부흥에의 일조 말고 아무런 공리적 기여가 없었음이나 마찬가지로, 이런 류의 종말놀이 역시 놀 때 잠깐 실성의 모드로 돌입하는 인간 특유의 고질 발현1)에 다름 아니다.


다만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고르면서도 틀림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 있으니, 바로, 천문학과, 지오이드 스피어를 지배하는 물리학의 그것들이다. 어느 분의 생일을 기점으로 몇 백, 혹은 몇 천 년만에 돌아오는 숫자놀음이야, 무효한 영역에선 그저 오불관언일 뿐이지만, 혜성이나 소행성이 특정의 궤적을 그리며 다가오는 층돌의 순간이란 게 있다면, 그 믿음과 신분적 내력, 문화적 배경과 인종적 구성성분에 상관 없이, 아낌없는 평등주의에 기반한 카타클리즘을 선사해 주고 갈 수밖에 없다.


소행성충돌의 '신화'를, 갓 발달해 가던 대중매체를 통해 유년 시절 충분한 지적(?) 세례를 받고 자라난 세대가 소비의 주축을 이뤄가던 현황을 반영했음이었는지, 이 착상은 그 환기하는 불길함에도 아랑곳없이 대단한 인기를 누려, 그 아이디어에 기반한 무려 두 편의 영화 블록버스터가 제작되었을 정도였는데, 나머지 한 편은 그때 갓 설립된 드림웍스의 야심찬 기획 '딥 임팩트'였다. 마돈나보다 신디 로퍼를 좋아하던 이들이 흔히 그랬듯, 개인적으로는 덜 화려해도 더 뚜렷한 개성과 스토리를 보이던 드림웍스판 묵시록을 더 좋아했던 편이었는데, 어쨌건 충무로 서울극장 앞에서 그 추운 겨울날에 손 불어가며 초회 상영을 기다리던 아스라한 추억과 더불어 떠들썩한 밀레니엄을 몇 년 앞두고 premature한 설렘에 들뜨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좋다. 이제 데이케어센터를 찾아도 별반 어색하지 않은 완연한 노화에 매몰된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을 보면 더더욱 생각나는, 아직은 한창 때이던 그의 '분투'를 보는 흐뭇함이 있어 좋고, 그 흐뭇함이란 '사회의 가장 평범하고 빛 못 보는 구석에서 오늘도 평범한 가장으로서 구슬땀을 흘리지만, 결국 결정적 순간에 세상을 구하는 건 그들'이라는 아주 구태의연한 우민화 이데올로기의 한 자락까지 연상하는 그 클리셰의 위험 감지조차 일순 매몰, 망각할 만큼이다.


s****o 2012.10.27.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