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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독서를 원한다면 이 책을 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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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학파 폴 드 만(Paul de Man)은 삼류 문예비평가다. 푸코는 1류, 데리다는 2류, 드 만은 3류. 물론 상대평가다. 내가 주저없이 폴 드 만을 삼류로 꼽는 이유는 드 만의 이론은 데리다의 이론에 포섭되는 측면이 많고 그의 이론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해서 독서의 깊이가 생기거나 특정한 텍스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독서나 번역에 대한 방법론적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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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학파 폴 드 만(Paul de Man)은 삼류 문예비평가다. 푸코는 1류, 데리다는 2류, 드 만은 3류. 물론 상대평가다. 내가 주저없이 폴 드 만을 삼류로 꼽는 이유는 드 만의 이론은 데리다의 이론에 포섭되는 측면이 많고 그의 이론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해서 독서의 깊이가 생기거나 특정한 텍스트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독서나 번역에 대한 방법론적 조언을 얻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론적 체계를 부정하는 해체주의자로서 드 만은 독서의 불가능성과 번역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일견 자신의 깊이 없는 통찰력을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 변명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아무튼 해체주의가 구조주의의 아들인 것은 분명하다. 잠시 주제넘은 조언을 해본다면 이런저런 해체이론으로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텍스트 읽기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혹은 보다 유쾌한 독서를 원한다면, 드 만이 아니라 데리다를 읽어야 하고, 데리다보다는 라캉을 읽는 것이 낫다.

 

드 만의 대표작 《독서의 알레고리》를 완독했다. 릴케, 프루스트, 니체, 프로이트 그리고 루소의 텍스트 해석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는 내용이 고작 요런 수준이라니 해체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실망스런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독서행위는 이해의 과정이다. 그런데 독서행위에 있어서 해석학을 해체하겠다는 드 만의 시도는 가상하지만 결국 백일몽에 지나지 않은 뻘쭘한 짓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힐리스 밀러(Hillis Miller)가 폴 드 만보다 더 영양가가 있다. '예일학파'라는 다소 황홀한 이름도 드 만의 과거 나치 부역의 전적 때문에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낙인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드 만은 인과성, 주체, 동일성, 지시적 진리 등 형이상학의 핵심범주들에 대한 비판을 '비유의 수사학'을 통해 시도한다. 비유의 수사학을 빌어 말한다면 해체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거대담론은 제유에 대한 은유(metaphor)의 미학적 우위로 정의된다. 비유의 수사학은 방법론적으로 '문법의 수사화'와 '수사의 문법화'로 나눠볼 수도 있다.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든 간에 말이다. 드 만이 매우 자주 사용하지만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지 않는 이분법적 용어들이 있다. 이런 이원론적 사고 자체가 무척 아이러니하다. 드 만은 구조주의자도 아닌데 해체주의자로서 너무나 빈번하게 이원적 사고를 원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방과 발생, 개념과 상징, 실체와 수사, 구조와 의미 등이 그러하다. 예컨대 드 만은 발생론적 유형을 실체적인 것과 수사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실체적 발생론이 '의미'로 간주되는 주제적 진술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면, 수사적 발생론은 '구조'로 간주되는 주제적 진술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자주 말하는 '발생론적 유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불명확하다. 그림이 그려지는가?

 

"낭만주의 자체는 일반적으로 예술과 문학이 모방적 개념에서 발생론적 개념으로 이행된 것, 세계의 플라톤적 모델에서 헤겔적 모델로 이행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117쪽)

 

이에 비하면 은유와 제유에 대한 드 만의 고견은 상식적이면서 도발적이다. 텍스트의 은유적 본질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상식적이고, 은유의 본질적인 허구성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도발적이다. 바로 이런 상이한 특성은 드 만으로 하여금 텍스트를 읽는 독서의 행위가 알레고리적 상황을 내포한다는 주장을 펼치게 하는 기본 맥락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드 만이 독서의 알레고리를 강조하고 있음은 바로 텍스트 해체의 허무주의와 궁극적 실패를 예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동일하게 강력한 미학적인 감응적 독서와 수사적인 의식적 독서 사이의 분열은 그 텍스트가 구성한 내부와 외부, 시간과 공간, 매체와 내용, 부분과 전체, 움직임과 정지, 자아와 이해, 저자와 독자, 메타포와 메토니미 사이의 유사 종합을 무화한다. 그것은 일종의 모순어법과 같이 기능한다. 하지만 이것이 재현적인 호환 불가능성보다는 논리적인 호환 불가능성을 나타내는 한, 사실상 일종의 아포리아다.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상호배타적인 독서가 불가결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그리고 주체의 층위뿐만 아니라 형상화의 층위에서도 참된 이해의 불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106쪽)

z***a 2011.11.2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