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암이 권하는 최고의 공부법
"연암이 권하는 최고의 공부법" 내용보기
정민 교수의『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태학사, 2010)은 연암 박지원을 위시한 옛 선현들의 문장론과 독서론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 책은 연암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을 정리한 전작『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주로 연암의 독서 관련 글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책의 제3부에 속하는 '보론'에서는 항해 홍길주의 독서론과 문장론을 함께 덧붙이고 있다. 홍길
"연암이 권하는 최고의 공부법" 내용보기

정민 교수의『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태학사, 2010)은 연암 박지원을 위시한 옛 선현들의 문장론과 독서론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 책은 연암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을 정리한 전작『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주로 연암의 독서 관련 글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책의 제3부에 속하는 '보론'에서는 항해 홍길주의 독서론과 문장론을 함께 덧붙이고 있다. 홍길주는 연암의 문학 정신을 추종했던 인물이기에, 연암의 문학 정신이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옛 선현들의 독서법으로 다섯 가지 방식을 언급한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인성구기(因聲求氣)의 반복적 독서. 정보를 계열화하는 독서, 의문을 품는 격물치지의 독서, 오성을 열어주는 이의역지(以意逆志)의 독서, 텍스트를 넘어서는 살아있는 독서다. 


먼저 반복적 독서는 꼭 필요한 책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읽는 정독인데 소리내어 읽는 낭송을 첫째로 꼽는다. 선현들은 다독이나 남독을 결코 권하지 않았다. 필수적인 몇 가지 텍스트를 집중해서 되풀이해 읽는다는 점에서 오늘날 말하는 정독과 그 의미가 다르지 않다.


"사실 선인들이 읽은 책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사서삼경과 『소학』·『통감』·『사략』정도를 읽었고, 그나마 『통감』은 원본의 3분의 1 정도로 간추린『통감절요』를 앞 부분만 읽었다. 시는 이백과 두보의 시 가운데 간추린 것, 문장은 『당송팔가문』·『문선』, 역사서로 좀더 욕심을 내서 『한서』나 『사기』중 명편만 발췌해 읽었다."(22쪽)

 

격물치지의 독서나 이의역지의 독서는 많은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선택하고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는 독서법에 해당한다. 가령 박세채(1631-1695)는 격물치지의 방법으로 궁격(窮格)과 완미(玩味)를 꼽았다. 요컨대 "궁격은 의문을 물고 늘어져 끝장을 보는 집중과 몰두의 공부이고, 완미는 천천히 되새기고 음미하여 조금씩 차근차근 젖어 들어가는 공부다." 성호 이익은 혼자 공부하며 의문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질서(疾書)'를 꼽았고, 강론과 토론을 통해 학문을 진취하는 방식으로 '이택(麗澤)'을 제시했다. 질서란 책을 읽다가 그때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을 서둘러 메모해 두는 비망록 방식의 독서를 말하고, 이택이란 사제 간 문생 간의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의문을 해결하고 깨달음을 투철하게 하는 방법이다. 메모와 편지, 면대의 방식이 있다.


선현들의 독서법을 살펴보면서 나는 서구의 유명한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말한 이상적인 독자가 되는 법을 떠올렸다. 첫째. 머릿속에서 은어를 제거하라. 둘째. 독서를 통해 자신의 이웃이나 주위 사람을 개선하려고 시도하지 말라. 셋째. 내면의 빛에 비추어 읽어라. 넷째. 잘 읽기 위해서는 발명가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아이러니를 회복하라. 헤럴드 블룸이 추천하는 5가지 이상적인 독서법의 내용인데, 화법은 이 책과 다소 다르지만 고전독서법으로 통하는 구석이 제법 많다. 



z***a 2014.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
"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 내용보기
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글쓰기와 책읽기의 관계에 주목해 온 시간이 제법 된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고 그저 생각나면 끄적거리는 정도다. 하지만 좋은 글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그렇게 읽을 좋은 글은 주로 고전에서 찾는다. 그것도 우리 선조들의 글 속에서 말이다.   그런 연유로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를
"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 내용보기

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

글쓰기와 책읽기의 관계에 주목해 온 시간이 제법 된다.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고 그저 생각나면 끄적거리는 정도다. 하지만 좋은 글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그렇게 읽을 좋은 글은 주로 고전에서 찾는다. 그것도 우리 선조들의 글 속에서 말이다.

 

그런 연유로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박지원과 이덕무의 글들이다. 이들이 남긴 옛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감정과 의지를 알아보고자 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넘지못 할 벽이 있다. 그것은 한자라는 벽을 넘지 못하기에 번역자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설흔이라는 작가와 정민 교수다. 설흔의 책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통해 설흔이라는 또 한사람의 독특한 글을 쓰는 이를 만났다. 설흔은 옛글 속의 행간을 읽으며 글쓴이들의 심사를 헤아려보는 작업을 주로하는 사람으로 매력적인 글을 남기고 있다. 소설가인 설흔에 비해 한문학을 전공한 정민 교수는 옛글에 보다 직접적이다. 그의 저작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에서 다시 정민교수의 시각을 통한 박지원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연암 박지원이다. 정민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조선의 대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다양한 글을 만나는 기대감이 있다.

 

고전문장론에서는 옛사람들의 글 읽기와 그에 의거한 글쓰기에서 주목하는 점을 담았다. ‘소리내서 읽기, 정보를 계열화하여 읽기, 의문을 품고 확산적으로 읽기,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간을 읽기, 텍스트를 넘어서 읽기’ 등의 다섯 갈래의 독서방법론에 이어 고전문장론에서 법(法)의 문제와 문장 이론사의 세 유파에 관한 논의를 정리했다. 이를 ‘온달전’를 통해 편장자구 분석으로 옛글의 단단한 짜임새와 행간 읽기의 실제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박지원의 편에서는 그의 문장론과 독서론을 살펴보고, 잡록이나 서신 자료 중 독서 관련 글을 검토하고 있다. 글쓰기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는 ‘황금대기’, ‘홍덕보묘지명’의 명사, ‘주공탑명’, 연암 척독 소품 등의 분석을 통해 연암 글의 행간을 읽어내고, 연암 박지원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과 그 글에 담긴 예술미를 살펴본다. 또한 뒤늦게 발굴된 편지글 모음인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연암선생서간첩’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동안 박지원의 생애와 인적교류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검증을 해 본다.

 

정민 교수가 본 연암의 편지글의 일부인 척독은‘시치미 떼기다, 말꼬리 흐리기, 통렬하게 찌르기, 장황하게 늘어놓기 베껴서 짜깁기’등으로 연암의 글쓰기의 특징을 밝힌다. 연암의 글 속에서 해학을 찾는 이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여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연암 박지원, 조선후기 북학파의 한사람으로 청나라와의 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열하일기의 저자로 알려졌다. 이러한 단편적 이해를 넘어 연암이 남긴 글 속에 담긴 감정과 의지를 밝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정민 교수의 이 책을 통해 대문장가로 일컬어지는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란 무엇이고 글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심사숙고하는 기회를 만났다.

m*****8 2015.10.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상들의 독서와 글쓰기 방법
"조상들의 독서와 글쓰기 방법" 내용보기
조선시대의 독서법과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다. 학교에서 항상 서양의 독서 방법만을 배워왔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우리만의 독서방법은 없을까 궁금했다. 궁금증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독서 방법이나 글쓰기 방법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고, 실제로 효과가 있는 지 의문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 효과라는 것은 예를 들어 아이들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며 자신과
"조상들의 독서와 글쓰기 방법" 내용보기

조선시대의 독서법과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이다. 학교에서 항상 서양의 독서 방법만을 배워왔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우리만의 독서방법은 없을까 궁금했다. 궁금증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독서 방법이나 글쓰기 방법을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고, 실제로 효과가 있는 지 의문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 효과라는 것은 예를 들어 아이들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며 자신과 세계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 뭐 그런 것이다.

 

놀란 것은 의외로 우리 조상들도 독서법과 글쓰기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이것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당시에 지식인들이 매일 하는 일이 책읽기와 글쓰기였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당시는 오늘날 보다 글쓰기와 책읽기가 더 중요시 되었던 사회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현재의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다.

 

단, 조상들이 많은 독서법과 글쓰기 방법을 제시했지만, 그 방법들은 오늘날과는 다르다. 오늘날 시중에 나와있는 독서법과 글씨기 법들은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이 많은 데,(물론, 그것들이 몇가지 원리를 가지고 살짝 살짝 말장난해서 분량을 늘리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조상들은 왜 독서를 하고 책읽기를 해야 하는 지 읽기와 쓰기의 기본적 철학에 대해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은 철저하게 그들이 강조하는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정형화된 글쓰기 방법보다 상황에 맞게 변형시키는 '활법'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기본 정신은 지키면서 문장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읽기와 쓰기를 행하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날의 쓰기와 읽기는 기능적인 면이 강조되다 보니, 왜 읽고 써야 하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을 공유하기가 어려운데, 당시의 읽기와 쓰기는  철저하게 시대의 산물이었다. 어떻게 읽고 쓰느냐가 조금 과장하게 말해서 삶의 방식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읽기와 쓰기를 이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기능의 하나로 하락한 오늘날의 글쓰기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난다. 기능 위주의 글쓰기는 아무리 세련되고 좋은 방법이 생겨 나더라도 그것은 그냥 하나의 다른 무엇을 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그칠 수 밖에 없으며, 그때의 읽기과 쓰기는 영원히 우리 삶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한 읽기와 쓰기의 기본정신에서 멀어져 입시가 끝나면 취직이 끝나면 없어져 버리고 마는 그 무엇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좋은 독서법과 쓰기 방법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더 우리의 전통적인 글쓰기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다양한 조선 지식인들의 독서법을 그들의 책에서 원문 그대로 옮겨 적고 번역한 글들이 너무 분명하게 읽혀, 다시 한 번 정민 선생님의 글쓰기 능력에 감탄한다. 어렵고 먼 얘기를 어쩌면 이리도 쉽고 명하게 쓸 수 있을까.

 

g********m 2013.03.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