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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내리는 비에서 느껴지는 건 봄 향기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한 번 즈음 터뜨려 본 것도 같은 폭죽에서 맡을 수 있었던 화약 냄새가 물기마다 묻어났다. 무심하게도 물을 뿌려대는 하늘을 잠시 올려다본다. 원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물기 어린 마음의 무게가 조금 무거워졌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치열하게 살았을 시절에 나는 태어났다. 뒤늦게 배운 역사에서 끔찍한 진실을 발견하기 전까지 나의 80년대는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며 가족의 울타리를 느꼈던, 아주 포근한 시절이었다.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이었기에 딱히 기억이 나는 것도 없다. 조금의 스트레스가 있었다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유난히도 못 사귀었다는 것 정도다. 내가 순조롭고도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시절, 사회는 역동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첫 7년 동안 줄곧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왔던 이가 청와대를 떠나는 날, 난 그게 독재인지도 모르고 마음 한 켠 이유 모를 허전함을 느꼈다. 저 사람 아닌 다른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세뇌가 텔레비전 시청 등을 하며 내 안에서 굳건해졌었던 모양이다. 대학 1학년 때 고등학교 1년 선배가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화염병 시위를 벌이다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일 없이 그저 이름만 알고 있던 터였음에도 그 충격이 상당했으니, 무엇에 왜 그토록 격렬히 저항해야만 했었는가의 화두는 이후 계속 나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일어났던 그와 같은 일은 20년 전 즈음엔 더욱 비일비재했으리라. 그리고 그 강도는 20대 동안 내가 경험했던 미약한 움직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막연한 나의 짐작은 한 장 한 장의 숨 막히는 사진을 통해 증명되기 시작했다. 일명 보도사진. 진실만을 담는다는 사실 속에는 시대가 강요한 침묵으로 인해 미처 토해낼 수 없었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이었으면 사실 너도나도 사진을 찍어대다 보니 카메라도 사진도 참으로 흔한 게 되어버렸다. 컬러의 화려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어느 정도의 편집 기술도 어쩌면 사진을 재미없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지 모른다. 못 찍는 다수의 사람 틈에 잘 찍는 하나가 있을 땐 튈 수 있지만 모두가 잘 찍고 편집마저 일관되게 잘하는 상황에서는 하나같이 뛰어난 사진들로 인해 오히려 질릴 수도 있기에...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은 사진을 잘 찍는다 말할 수 있는 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도 모든 카메라가 필름을 사용했고 수동으로 찍어대야만 하는 시절이었기에, 1분 1초가 아까운 보도사진조차도 재빠른 촬영을 요구 받고는 했다. 시위대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위험했다. 어쩌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는 이유로 인해 기자들은 더더욱, 전투경찰과 시위대 모두에게 공격당할 소지가 컸다. 날아오는 최루탄에 똑같이 괴로워하면서도 그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내달렸다. 오로지 운동화를 신은 발을 좇기 바빴다던 그 시절의 고백으로부터 난 시대가 공유하는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했던가. 본인들은 아니라 말 하겠지만 그리고 민주화 이후의 고민이 다소 부족하다는 한계로 인해 완벽한 신질서의 창출에는 실패한 그들이지만, 80년대는 난세였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진 속 담긴 인물들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작은 영웅이었다. 그런 영웅들을 담고자 사진을 찍어가며 안간힘을 썼던 기자들 역시 혼란의 시대가 낳은 영웅이었다. 참 치열했다. 아니, 치열하다는 말은 결코 과거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이들을 향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름의 치열함을 유지코자 우린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갈 수 없고 그 거리에 설 수 없을지라도, 반복된다는 역사에서 패배 아닌 승리를 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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