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삶의 명백한 근거가 필요하다.
"나는 삶의 명백한 근거가 필요하다." 내용보기
1792년 프랑스혁명 초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대프랑스동맹을 결성하여 4월 프랑스를 공격하여 혁명전쟁이 발발한다. 결국 9월 발미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의 원한만 산채로 물러난다. 신성로마제국은 결국 1806년 나폴레옹의 침략과 더불어 사라지고 만다. 이 중간기간 결국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서로 우위쟁탈전을 벌이던 시절, 1800년 프로이센의 베를린에서 이 책은 출간되었다
"나는 삶의 명백한 근거가 필요하다." 내용보기
1792년 프랑스혁명 초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대프랑스동맹을 결성하여 4월 프랑스를 공격하여 혁명전쟁이 발발한다. 결국 9월 발미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의 원한만 산채로 물러난다. 신성로마제국은 결국 1806년 나폴레옹의 침략과 더불어 사라지고 만다. 이 중간기간 결국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서로 우위쟁탈전을 벌이던 시절, 1800년 프로이센의 베를린에서 이 책은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혁명의 기운이 넘나들고 칸트의 새로운 철학의 영향이 독일전체에 미치고 있었다. 괴테에 의탁하고 있던 헤르더의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 또한 당시의 독일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던 많은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는 1793년 예나대학 교수시절 분명 칸트 [실천이성비판1788년]의 영향 아래 있었고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1799년 베를린으로 옮길 무렵 그의 생각은 종교적 신념이 도덕적 이성을 능가한다는 견해로 옮겨간다. 이 저작의 1,2,3장은 이런 그의 견해의 발전을 잘 보여준다. ------------------------------- 1장은 먼저, 자연결정론 혹은 경험주의적 사고에 대한 불평으로 시작한다. 분명 자연결정론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나, 자기 결정 능력이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만다는 것이다. 피히테는 이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이 슬프다. 2장은 마치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에서 등장하는 철학의 여신과의 대화처럼 지식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그 지리한 논의의 끝은 나의 감각에 의한 사물의 상태와, 직관하는 공간을 엮는 사유의 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은 우리자신의 안에서 벌어지는 표상능력의 결과일뿐 사물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말씀. 동굴에 갇혀 밖을 내다보는 사람과 같아서 자기의 한계내에서만 인식하게 될 뿐이라는 것이다. 오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결국 지식에 의해 지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은 오직 지식일뿐, 그 이상은 지식이 접근할 수 없다. 3장은 그 대안을 제시한다.결국 행위만이 이 순환의 고리와 한계를 끊고 나온다. 그 행위의 기준은 양심에 복종하는 것이다. 인간의 유일한 사명,현존의 전체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이것은 칸트의 정언적 명령을 듣는 기분이다. 곧 그는 이런 행위의 지상적 목적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더 나은 세계이다. 혁명과 인터내셔널까지를 비친다! 이런 지상적 목적의 실현은 초지상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는 그것 또한 철저히 칸트에게서 가져온다.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양심에 대한 복종. 선한 의지의 비물질적 이성세계가 감성계의 물질적 세계를 규정한다. 비로소 삶의 확고한 출발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피히테는 절대일자로의 자기견해를 비친다. 의지의 결과가 보장되려면 법칙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는 이 법칙을 무한의지, 일자, 영원한 절대자에게서 찾는다. 칸트철학의 종교적 비약과 연결이다. 그는 역사의 결말 또한 무한의지의 아래 있으므로 우리 행위와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 --------------------------------------- 이런 삶의 이유와 방향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었던 시대의 피히테는 행복하다. 우리의 시대는 다시 자연결정론의 시대이다. 꿈이 없는 경험주의적 삶의 고단함이 21세기 기술사회의 정체이다. 결정론의 총화인 기술문명의 필연성은 어떻게 극복되어질 수 있나, 불가능해 보이는 시대이다. 이성의 의지? 이성의 의지에 현혹된 인간의 좌초를 독일민족의 20세기에서 본다.(본회퍼) 20세기의 잘못된 꿈(모더니즘) 역시 이런 꿈없음보다 나을 것은 없어보이긴 마찬가지다. 21세기 혹은 그 후에 있어도 인간학의 근본주제는 그래서 지성이 단순히 자연-표현에 불과한 것인지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뇌의 화학물질이, 유전적 성향이 결정짓는 인간이라면 이성의 의지란 없다. 그리고 그 판단 수단 역시 자연과학의 손에 들려져 있다. 이런 자연과학의 믿음은 의지에 비우호적이다. 적이 잘 봐주기를 바라는 패잔병과 같다고 할까? 인체의 작동원리라는 것, 정신의 흐름에 있어서 뇌 신경전달 물질의 전달과 시냅스들의 연결이라는 것, 그리고 질병의 발생양상과 그 경과라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 내 인식안에서 다른 인간의 인식의 틀을 빌려 설명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연과학자는 정신병리의 일종으로 취급하는 시대이다.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을 꿰어맞추는 것은 비단 사이비의학이나 의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 자체에서도 과학의 인식틀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인정하긴 어렵다. 의학의 객관성도 의심받지 않는다면, 과학의 객관성이란 신성불가침이 아닌가? 자연결정론의 시대에 인문학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와 신의 형상으로의 인간 창조와 신의 형상의 회복으로서의 의지의 결정의 자유를 전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피히테의 의견은 오늘 어떤 의미를 갖는것일까? 앞으로 더 생각해 보아야 주제이다. P.S: 왜 독일 개신교에 뿌리를 둔 관념론에는 하나님만 계시고 그리스도는 사라지시는가?
s***y 2005.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근대적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근대적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내용보기
과학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우선 지난 1세기 동안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온 성과, 즉 생활수준의 향상, 통신 및 교통시설의 발전, 사람들이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된 점 등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있어 과학기술 발전에 의한 경제성장은 인류가 계속 추구해 나가야 할 지향점이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전, 즉 경제성장만이 자원의 부족, 환경문제 등 인류가 직면
"'근대적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내용보기
과학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우선 지난 1세기 동안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온 성과, 즉 생활수준의 향상, 통신 및 교통시설의 발전, 사람들이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된 점 등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있어 과학기술 발전에 의한 경제성장은 인류가 계속 추구해 나가야 할 지향점이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전, 즉 경제성장만이 자원의 부족, 환경문제 등 인류가 직면해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성장 또는 과학기술 만능주의적인 생각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진보를 굳게 믿었던 베이컨과 콩도르세, 그리고 로크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낙관론자들은 현재 환경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환경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함에도 동의한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재의 환경문제를 낳았다 하더라도, 이는 과학의 포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더욱 더 폭넓게 사용함으로써 근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방사성폐기물 등 산업폐기물은 우주산업의 발전에 의해 지구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해결할 수 있고, 유전공학에 의해 모든 오염물질을 먹어치우는 초능력 미생물을 개발함으로써 화학적 오염물의 처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이 그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이들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행위를 정당화한다. 그 결과 이들은 환경문제란 공기, 물 등의 환경재를 오염물질 배출 용도에 과도하게 이용한 결과 그 환경재의 다른 용도에 지장을 초래함으로써 야기된 경제적 문제라고 파악한다. 예를 들어 강물에 지나치게 많은 폐수를 배출하면 그 강물을 식수, 공업용수, 어업 등에 이용할 때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질오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경제적인 법칙과 상응하는 자연과학의 법칙'을 동원한 객관적 분석에 의해 환경문제를 풀어 나가고자 하는 '환경관리주의'의 능력과 효율성을 신봉한다. 환경관리주의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중의 참여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과학 경제 전문가의 권위 있는 의견만을 존중한다.

[인상깊은구절]
지구의 형성은 인간의 이성적 계획에 따라 마침내 완료되어야 하며, 우리에게 규정된 주거도 완성되어야 한다. 자연은 점차 그 규칙적인 발걸음을 확실하게 계산해 내어 숫자로 표시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러야 하며 자신의 힘이 자연의 힘을 지배하도록 규정돼 있는 능력--즉 인간의 능력--과 일정한 관계 속에 견지되도록 해야 한다. 어느 정도 그러한 관계에 와 있는지, 그리고 합목적적인 자연의 형성이 이미 확고한 지반을 획득했는지 등은 인간의 작품 자체가 그 작품의 단적인 존립과 그것의 제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그 작품의 영향력을 통해 다시 자연을 장악하여 자연 속에 생동하는 새로운 원칙을 정립해 놓는 데에 달려 있다. 영원한 숲, 황야, 늪 등과 같은 땅을 개간해야 하고 대기권을 살려야 하며 생기롭게 해줘야 한다. 정돈된 다양한 경작지는 생명력과 결실력을 온 세상에 확산시켜 주고 태양은 자신의 가장 생동력 있는 광선을 건강하고 근면하고 예술감이 풍부한 민족이 숨쉬고 있는 그 대기 안에 가득 채워 넣어 준다.
z******8 2001.04.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