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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테렌스 데 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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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이 다가 올 수록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져왔다. 사실 그리 대단치 않은 분량의 책임에도 읽는 동안 감정적으로 버겁고, 때로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인류의 어두운 역사에대한 방대한 양의 증언과 자료들 그것을 꿰뚫는 작가의 통찰과 문학적 비유, 철학적 분석으로 책의 여기저기 많은 곳에 밑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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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하여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이 다가 올 수록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느껴져왔다. 사실 그리 대단치 않은 분량의 책임에도 읽는 동안 감정적으로 버겁고, 때로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인류의 어두운 역사에대한 방대한 양의 증언과 자료들 그것을 꿰뚫는 작가의 통찰과 문학적 비유, 철학적 분석으로 책의 여기저기 많은 곳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했다. 작가의 말에서 나와있듯이 작가는 '종교적인 사실을 기록하듯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를 채택'하여 기술해나가지만, 그 담담함을 뚫고 나오는 충격과 파생되는 생각들로 책장을 덮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강제수용소의 일은 이미 많은 영화와, 문학으로 만들어져 이제는 '제법, 잘' 아는 이야기일 것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작가와 번역가의 서문, 첫 장을 읽으며 내내 육성으로 "미쳤다. 미쳤어. 이 책은 미친거다."(나의 짧은 어휘로 이 것이상의 감상을 전하기가 어려웠다.) 를 반복했다. 읽느라, 읽은 내용을 복기하고 상상해버린 탓에 밤잠을 설치는 날도 있었다. 특히 오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 3장에서 나는 모든 생각들이 정지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중 뉴욕의 한 강연에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발언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죽이기가 쉽고, 개보다는 쥐나 개구리를 주기는 것이 쉬우며, 벌레 같은 것을 죽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를 읽고서는 생존자들의 것처럼 나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도 함께 깨졌다. 그 신뢰에 가해진 금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님에도불구하고 나에게 이렇게 비참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책의 중반을 넘어갈 무렵, 나는 이 '생존자'라는 존재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처럼 느껴졌다. 과거 강제수용소는 '빵의 법률'에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재소자들은 빵을 훔친 자들을 자체적으로 엄격한 법률에 의해 처벌했다. 빵이란 재소자들에게 결국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 였고,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현 시대의 '자본'은 강제수용소에서의 빵과 결이 같다. 그렇다면 한정되거나, 적은 자본을 가진 채 사회적, 경제적 빈곤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선과 삶을 잃지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 시대의 '생존자'가 아닐까. 이 생존자들 역시 강제수용소의 재소자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와 희망에대한 낙관적인 관점을 가지기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경제 범죄로 타인의 삶을 망가트리는 뉴스를 목도할 때면 한 생존자 처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도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현 세대들은 생존자로 살아남기 위해 인습적인 문화과 관례에 맞서고 보다 합리적인 계산을 통해 생의 기본값을 낮추어 설계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비혼, 딩크, 욜로 등 기성세대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 세대의 문화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느낀다. 이렇듯 허울뿐인 '자유'를 뒤집어 쓴 자본과 또 하나의 전체주의로서의 전통에 맞서기위해 현 세대는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과 같은 '생물학적 지혜'를 찾는듯 하다. 학자금 대출에 시달릴지라도 소문난 맛집과 문화공연은 즐기고, 자식을 키울만한 여력은 되지 않지만 반려 동물과 함께 여행을 하는, 이 모든 것이 작가가 말하는 생물학적 지혜의 한 축이 아닐까. 사실 앞서 말한 현 세대의 생물학적 지혜를 나는 잘 이해하지 못 한다.  전체주의를 지양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속에서(표면적으로는), 저 마다의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생물학적 지혜또한 가지각색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을 읽고 모두 다른 생각과 지혜를 가진 이들과의 공존에서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 하나만큼은 확신에 가깝게 들었다. 그 태도에서 비롯된 연대야말로 자본이 괴물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며, 나 또한 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 세상의 생존자로 살아남고 싶기 때문이다.


혼자 남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왜 행동해야 하는가? 왜 포기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 그는 삶을 지탱할 수가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한 생존자의 증언 中


  이 책을 읽는 동안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책상에 놓인 책을 애써 외면한 날도 있었고, 책을 읽다가  숨이 막히는 듯한 감정을 느낄 때면 식물도감을 펼쳐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을 읽고 난 날은 가볍고 반짝이는 이야기들을 찾고 싶었다. 훌륭하게 쓰고 잘 번역되어 술술 읽히는 문장에도 불구하고 완독에 여러 어려움이 따르는 책이었으나, 느끼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짧은 감상만을 남겼지만 답을 찾지 못한 수 많은 질문들이 내 안을 떠돌고 있다. 삶이 힘들고 나의 실존이 흔들리는 날이 찾아오면 이 책을 기억하여 찾아 읽고 싶다. 올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밑줄 그은 곳이 많아서 정리하는데만 이틀이 넘게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기를, 자신감과 열등감을 자부심과 수치심을 동일 선상에 두지 않기를, 이런 삶의 지독함 속에서도 이 책을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YES마니아 : 골드 e*****1 2024.05.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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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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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책들_빨간 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에서 이동진, 김중혁님이 입을 모아 극찬한 책이라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주제의 무게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았으나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고 매우 의미있는 책이었다. 죽음 후 재탄생까지의 49일 동안 죽은 이의 영혼 여행(사후세계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기억하고 있는)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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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책들_빨간 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에서 이동진, 김중혁님이 입을 모아 극찬한 책이라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주제의 무게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았으나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고 매우 의미있는 책이었다.

죽음 후 재탄생까지의 49일 동안 죽은 이의 영혼 여행(사후세계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기억하고 있는)에 관한 책인 '티벳사자의 서'를 읽으면서,

깨달음을 통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서 열반에 이르면, 그 이후는???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무르익어 가는 인생 마지막에 또 다른 파란만장한 다음 생에 대한 가슴뛰는 기대로 죽음이 두렵지 않을 그런 나를 상상해봤었다.

그러면서 '소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지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생명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생존자를 읽으면서 그 기억이 떠올랐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다만 그래도 살고 싶다. 대신 괴로워하지 말고, 다투지 말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즐겁게, 행복하게... 그 기준을 물질적 풍요함에 두지 말고 마음의 평화, 관계의 소중함에 두고~


생명의 생존본능!!!을 확인해 보자...


책속에서

총 7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 '소설 속에 나타난 생존자'에서

인간의 생활이 안온한 가운데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 우리는 죽음으로써 최후를 장식하는 영웅적 행동에 대해 가장 높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기 마련이다. 서구의 종교나 문학에서 나타난 영웅들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비롯되며, 그들의 성스러움과 영생의 힘은 죽음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반면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은 그 가치가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패스트와 같은 전염병,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 재난, 재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대량학살의 세계에서 죽음의 영광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이제 세계를 일거에 휩쓰는 파멸이나 재해에 알맞은 새로운 영웅주의가 필요하다.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도 기적이 되는 때에 죽음이란 결코 승리일 수 없다.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생명 그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경이적인 지구력을 발휘함으로써 단지 살아남는 것,

생존자란 인간으로서의 행동방식을 영위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은 채 공포와 절망을 견뎌낸 사람, 즉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살아남은 사람을 말한다.

 

2장 '증인이 되기 위하여'에서

내가 겪은 것이 아닌, 우리가 겪은 그것!!

생존자들에게 있어 증언한다는 것은 투쟁의 목적이다. 생존자의 목적은 '세상에 폭로하는 것'이다. 생존자들의 죽은 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 생존자 그 자신 속에 죽은자를 담고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도 아니고 문학적 비유도 아니다. 생존자들은 자기의 죄의식이든 타인들의 죄의식이든, 그것을 정죄하기 위해 증언하려는 것이 아니고, 악에 대한 객관적인 응징을 위해 증언대에 선다.

 

3장 '배설물의 공격'에서

몸을 씻지 않는 사람부터 죽었다. 저들의 인간성 말살에 대해 자기의 외모를 보살피는 것이 바로 저항의 몸짓이 되고 생존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스스로의 존엄성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생명 자체가 달려 있었다. 외견상 인간답게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에 생사 여부가 달려 있었다.

 

폴 리쾨르는 저서인 '악의 상징'에서 '불결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란 고통이나 죽음보다도 더한, 인간 존재를 훼손하고 정신적 핵을 파괴하기 위한 위협 아래서 생겨나는 특수한 공포감이다'라고 정의했다.

정신적 파괴는 대량학살의 요구와는 종류가 다른 것인데도,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이 된다. 즉 영혼을 죽이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력을 말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공포나 극도의 궁핍보다도 우선 생존자의 순수성과 가치 의식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이 선행되었으며, 이것이 배설물에 의한 고문으로 나타났다.

수용소 안의 죄수들은 오로지 동료들의 더러운 모습과 참을 수 없는 냄새 속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발견하도록 , 자신이 인간 이하라는 자각을 하도록 강요받은 것이다.

왜 그토록 비참하게 수용자들을 학대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SS 대원들의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희생자들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천하고 더러운 몰골을 하고 있을수록, 학살자들은 인간을 대량 살육한다는 공포감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나아렌트는 1974년 뉴욕의 강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 보다 개를 죽이기가 쉽고, 개보다는 쥐나 개구리를 죽이는 것이 쉬우며, 벌레 같은 것을 죽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즉 문제는 시선, 눈동자이다"라고 말했다.

 

4장 '악몽과 현실'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을까?

인간의 생의 본능, 삶의 의지는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생존자들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삶의 욕구는 상당한 시간동안 내면적인 갱생의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되살아나는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바로 그 '시간'이 없어서 죽어간 것이다. 단지 시간을 얻지 못해서, 회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죽어가고 만 것이다. 티푸스, 굶주림, SS의 총탄 등 '그 어떤 것'이 그들이 삶의 의지를 회복하기 전에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한 생존자는 말한다.

'외부 세계의 안주할 곳을 박탈당하고, 생사가 엇갈리는 와중에 던져진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내적인 무게 중심이 발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생명력을 마비시켰던 크나큰 공포, 바로 그 공포가 오히려 생존자들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불러 일으키는 수도 적지 않았다. 악행에 대항하는 방법은 죽음이 아니라 반격이라고 이를 갈며 마음을 다지게 된 것이다.

 

생명 자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기 위한 연구에 생물학이 눈을 돌린 것은 100년도 채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 근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생존자들의 경험을 통해 최소한의 신비는 이미 파악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힘이라고 느껴지든, 아니면 생체의 조직적 활동이라고 정의되든 간에 생명이란 자신을 보수하고, 보호하고, 치유시키면서 지탱해 나가는 어떤 존재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제5장 '죽음 속의 삶'에서

서로 도와야 한다.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이것 뿐이다.

1차 적응과 2차 적응의 구별은 집단 강제 수용소의 경험에서 볼 때 가장 중심적인 의미를 띤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규칙에 복종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항하고 속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할 때에도 역시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재소자들은 수용소 측에 협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도덕적인 건전함이 굳건히 유지되었고, 너무 심한 궁핍에 대힌 반응의 하나로 철저한 저항이 죽음의 강제수용소 안에서 재소자들의 '이면생활'을 조직화하며 생존을 도왔다. 오직 불복종으로, 그것도 집단적인 저항을 통해서 생존자들은 사회적 존재를 지켜나갔고, 그들의 본질적인 인간성을 온전히 유지한 채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어느 하나도 조직활동을 통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다. 존재의 사회적 기반이 그 나름의 공통의식을 갖게 하고, 외부 환경에 대처해 나가기 위해 나름의 규율을 가지려면 필연적으로 정치적으로 되지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혼자 떨어져 있는 '외로운 늑대'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위험 앞에 더 잘 노출되었다"

 

생존자들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증여의 모랄이나 정신적 상호교류의 의지는 인간다움의 근본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제6장 '우리와 그들'에서

'전쟁 중, 또는 집단 강제수용소의 공포에서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보다 오히려 죽음에 관한 생각을 덜하게 된다'

'....... 그리고 또 행복하여라. 그대들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냐, 병원의 침대나 저택에서 정상적인 생을 누린 끝에, 정상적인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여!"

집단 강제수용소에서 흘러나온 위와 같은 말들은 모든 지식 가운데서도 가장 소박한 진리(가장 가치있는 것은 삶이며, 그것도 내재적 숙명 속에서 평화를 찾은 끝에 언젠가는 찬란하게 전개될 삶이라는 사실)를 깨닫게 한다. 이것은 광야에서 헤매는 리어왕의 지혜,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고통만이 남았지만,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완성을 보게 되는 그런 지혜와 같다.... 생존의 핵심적인 의미는 '죽음을 통과하여 살아남는 것'에 있다.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생명 그 자체의 원형 보존력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제7장 '우리 시대의 예언자'에서

'철저한 빼앗김', '출발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존자들이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시련이었다.

추억과 희망을 버려라.

'과거 속에서 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현재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점점 모든 일에 소홀해지고 지구력이 약해져가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 따라서 마음을 강하게 먹기 위해서 생존자들은 일종의 전략적 망각과 같은 것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삭제해버렸다고 해도 앞으로 닥쳐 올 삶은 또 어찌할 것인가? 우리에게 어떤 미지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지휘를 보장해주는 어떤 일을 완수하려는 삶의 의지, 그리고 고난의 시기엔 새로운 추진력을 더해주는 미래의 삶은 또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하지만 집단 강제수용소에서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에 집중하는 것은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항상 지속되는 과제 중 하나이다. 당장의 5분, 당장의 조그만 욕구, 만족에 전념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인 것이다.

생명의 선천적 잠재 능력

생존자들은 마치 극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가 최소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장기간의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자들이 문자 그대로 생명 그 자체에 의지해서 생명을 부지해 나갔다는 사실이다. 그 생명은 생물학자들의 견해처럼 하나의 '상태'나 '조건'이 아니다. 오랫동안 위기를 겪을 때 마다 성공적으로 잘 이겨 내면서 형성된 일관성 있는 활동들로서 '지탱해 나가는 것' 자체를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 생명은 지속되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팽창한다.

존속의 능력이야 말로 생명의 가장 중심적인 특성이다. 생명은 그 자체 외 다른 목적이 없다. 생명은 바로 그 자체가 기초이자 목적이며, 그 광대한 활동의 전체적 목적은 안정된 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생명 형태든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거쳐 온 과거 전체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자크 모노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 역시 하나의 화석이다'라고 말한다.

 

생존자들의 향동을 추적하면,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의 뿌리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박탈당한 가운데 재소자들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자아의 내면적 공간을 약간 확보함으로써 도덕적 일체성을 유지했다.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은 자신의 신체를 유지하고 돌보는 일이었다. 체면, 존엄성의 욕구, 저항의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생물학적 지헤란 엄연히 존재하며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자체의 욕구 속에 정신이 깃들게 된다는 것을 알린다. 옛날처럼 고귀하거나 신이 부여해준 것 도 아니고, 특별히 드라마틱하거나 숭고한 것도 아니며, 다만 노동과 타인과 교류하며 평범한 행복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 그리고 육신을 가진 동물의 운명이기도 한 작은 육체적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생물학적 지혜이다.

 

 

생명은 지속되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팽창한다.  존속의 능력이야 말로 생명의 가장 중심적인 특성이다. 생명은 그 자체 외 다른 목적이 없다.

k****6 2018.10.0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