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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주년인 올 해, 많은 역사책이 새로 발간되었다. 내가 조금 읽은 이 시기를 다룬 책들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책은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이름만 알았던 일본침략사에서 침략의 선봉에 서거나 배후에 조종했던 자들, 또 대표적 업적에 가려 현재 우리가 그 공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침략 합리화이론 제공 사상가들의 삶을 열전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번째 인물은 메이지천황 무쓰히토이다. 저자는 메이지 시기 차곡차곡 쌓은 국력으로 이들 일본인들이 어떻게 동아시아 침략에 나섰는지 그 배경 지식을 그의 시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요시다 쇼인과 사이고 다카모리를 통해 정한론의 싹이 어떻게 텄는지도 밝혀주고 있다.
또한 서구에 일본 정신으로 '무사도'를 알린 니토베 이나조를 통해, 외국어에 능통한 이 시기 지식인들이 얼마나 서구인들이 원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선점하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 여론을 이끌었는지도 알 수 있다. 또, 후쿠자와 유키치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우리는 그의 대표적 저서만을 통해 그를 위대한 근대 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촉구하는 논설을 많이 쓴, 국내용 지식인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정치색 없이 신앙가로 알고 있는 우치무라 간조 역시 일본과 예수, 오직 두 개의 ‘J’만을 사랑한 종교인이었을 뿐, 식민치하에서 고통받는 조선 민중의 모습을 제대로 예수의 가르침대로 보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이들 일본 근대의 위대하다는 사상가, 지식인들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이들이 촘스키같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비판까지 하는 세계의 지식인이 아니라, 그저 일본 국내용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어갈수록, 우리나라를 비롯 동아시아 침략을 오래 준비하고 실행한 행동대 조슈 군벌들과 이들에게 합리화 이론을 제공한 일본 근대시기 사상가들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가치관은 정말 일본 열도가 동해상에 떠 있는한,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우리가 그들의 사고방식, 행동방식을 알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을 쿠슈처럼 바다건너 자신들이 진출할 땅으로 쉽게 여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고방식과, 이들 1910년의 침략자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현재 일본 정치가들의 사고방식 역시 한 맥락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을 독자에게 확인, 각인시켜주는 장점을 가진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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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에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본사 간단 읽기'란 부분이 있다. 간략히 일본사를 정리해주는 부분인데, 통사를 읽고도 자꾸 까먹는 내게 두고두고 유익할 것 같다. 일본사를 전혀 모르는 분들은 이 부분을 먼저 읽고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좋겠다.
참, 이 책은 조선의 미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 아사카와 다쿠미의 삶도, 일제시대 한국인의 변호를 도맡은 후세 다쓰지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고 있기는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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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10년 딱 100년 전에 내가 사는 이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한민국의 국토는 너무 작다. 하지만, 섬에서 대륙으로 가려면 조선만큼 편리한 땅이 없었다. 일본은 일본의 이익선으로 본 것이다. 조금만 더 정치가 안정 되었고, 집안 싸움 안하고 조금만 서양과의 교루가 이루어져 있었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을 이라고 생각이 든다.
진정 일본은 한국을 사랑했을까? 하는 소제목을 보고는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아마 일본은 한국을 좋아 했을 것이다. 예전 어떤 책에서 Love와 Like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성이나,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해야 옳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사랑은 너무 아무 곳에서나 붙이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가 쥐를 쫒다 쥐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누구나 이치에 맞지 않다고 웃을 것이다. 이건 내가 너를 잡아 먹을 것이라는 목적이 있기때문에 좋아 한다는 표현이 맞다. 이책에서 말하는 일본은 한국이 자국에 많은 이익을 주는 대륙으로의 도약의 발판이 될수있는 중요한위치기 때문에 목적의 도구로서 좋아 했다고 볼수있다.
조선에 매국노들 그러니까 친일파가 있듯이 일본에도 조선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의 쪼가리다. 예전 임진왜란때도 장수가 자신의 군사를 데리고 조선군으로 투항한 사건도 있었듯이 독립운동을 도운 일본인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왜 자신의 조국을 버렸을까? 아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친일파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보통의 경우 억압이 아닌 자신의 사욕을 위함이다. 지금도 이책에서 말하듯이 일본은 달라진 바가 없다. 한국도 많은 사람이 우리의 과거를 잊고 일본을 찬양하는 젊은이가 많다. 좋은 것은 본 받아야 하지만, 무조건 적인 맹신은 나라의 민족정신이라는 단어의 색바램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가 왜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누구든 바로 독도의 역사 정도는 대답할수 있는 국민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학교 수업에서 역사를 선택으로 하게 되면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과거를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안다고 했다. 이 책은 우리의 암울한 과거를 알고 적을 알고 앞으로의 길잡이가 되길 바라는 책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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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각 저 | 효형출판 | 432쪽 | 600g | 153*224mm | 2010년 05월 31일 | 정가 : 15,000원 나는 재난에 예민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굶는게 싫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에 대해 마음이 쓰인다. 전 세계에 사고가 날때마다 보내는 구호금은 아주 크지는 않더라도 꾸준했고, 매월 나가는 기부금과 합하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가까운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마을을 덥쳤다. 사람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연일 일어나고 아직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게될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던 중이라 마음이 서늘하게 식어버렸다. 이어읽기 (e-book)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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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하는 것.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두 부류다. 더럽거나 혹은 깨끗하거나... 매국노와 독립운동가. 나를 그 두 갈래의 갈림길에다 세워둔다면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하고 걸어갈 것인가. 독립운동가의 길을 가련다하고 주저없이 말하지 못하는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산해보고, 어느 쪽이 나한테 더 유리한 것일까를 따지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뜻일까... 좀더 어렸을 때라면 "당연히!" 독립운동가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나는 망설여진다.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였지만,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이 토히로부미의 맏아들 이토 히루쿠니에게 아버지의 죄를 사과하고,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의 양아들이 된다."(p139). 안중근을 칭찬하기는 쉬워도 안준생을 욕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 [1910년, 그들이 왔다.]는 조선사의 곁다리로서가 아니라 당시 일본의 입장이나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반가운 마음으로 펼쳐든 책이다. 그간 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펴낸, 이 책의 글쓴이는 이상각. "조선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글쓴이는, 일제강점기 전후 21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즈음의 조선역사를 공부하면서 주워들은 이름이 대부분이다. 책은 "정한을 꿈꾸다" / "열도의 침략자들1" / "열도의 침략자들2" / "진정 그들은 한국을 사랑했을까"의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만난 그들은, "일본순사"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악랄하고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인간들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악의 평범함, 사고의 부재는 이 책에서 소개된 21인의 일본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일테다. 인간 개개인으로 보자면 "몹쓸 인간"은 아닌데, 당시의 일본과 조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개입되면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자주 묻게 되었다. "니토베 이나조는 20세기 초 국제적인 시각을 지닌 대표적인 교양인이자, 퀘이커 교도로서 경건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위인대접을 받는다."(p86), 이광수가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셔서 이런 위인을 내리셨는가."(p250)라고 극찬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나 하버드대학에서 철학, 경제학을 공부하고 일본문화의 수준을 과시한 오카쿠라 텐신 역시,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쁜 인간들이 아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개인적인 삶 역시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그들의 국가관. 일본을 너무나 사랑했던(?) 것이 그들의 비극인가. 일본을 위해서 조선은, 조선인의 희생쯤은 그들의 안중에는 없었던 것일까. 몇 해 전 TV프로그램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피력하던 일본인 교수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비난과 모멸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배신감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에 포함시키기엔 아까운, 조선인을 위해 애썼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 같은 훌륭한 이름을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조선을 사랑했던 "아사카와 다쿠미"의 이름 역시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법으로 역사를 볼 수 있어 내겐 꽤나 유익한 시간을 제공해 주었던 책이다. 이 책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일본을 보느라 조선을 보지 못한 우를 범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간 한쪽만 쳐다봤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 [1910년, 그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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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굴레는 현재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아픔을 안겨준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독도와 관련해서 아직도 일본과의 관계가 서먹하고 우익 단체가 등장함으로서 우리는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대로 보기라고 할까. 비록 그 우두머리에 이들이 있었지만 그 뒷면에는 나라를 버린 우리 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나라를 팔어버린 매국노 이완용을 다 알것이 다. 같은 이씨라서 종종 나에게 혹시 자손이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듣는다. 근데 반대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들처럼 꼭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생각만 한 인물들만 있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외교적으로도 조선을 상대적으로 예의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있다. 역사적인 자료를 찾아봐야만 하겠 지만 그 진실은 있다. 일제침략기에 우리문화재가 상당수 밖으로 유출된 경우를 볼수 있다. 근데 과연 그들는 문화를 사랑한것인지 한국이라는 자체를 사랑한것인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난 전자라고 생각 한다.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문화재가 상당수 일본에 거주하고 있음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고 반환운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참 뼈아픈 과거가 아닐수 없다.
한국과 일본.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언제가 견제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우리의 문 화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뼈아픈 과거가 발목을 잡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문물을 개방하고 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급부상한 나라다. 아픔을 주긴 했지만 받아들 일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격이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읽다가 울분을 토하기도 할것이다. 위안부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많은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과연 그들과 우리는 변할수 있을까. 한편에서는 우익단체로 인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 지고 있다. 일본내에서도 뉴스거리고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말 역사적으로 이런일이 없었다면 얼 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미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수는 없는법. 과연 정말 이대로 양 국의 관계가 어떻게 치닫을지 걱정스럽기도 한다. 역사를 다시 되돌려 보기 우리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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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페리 제독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이후 일본은 양이론과 개국론으로 분열된다. 그리고 막부시대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일본제국 건설을 지향한다. 자국이 식민지가 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리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지식인들은 외국으로의 유학에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정신을 답습한다. 그 결과 일본의 부국강병을 위해 그리고 일본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정한론과 조선병탄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제국주의적 식민사관에 눈 먼 일본은 조선을 넘어 아시아 전역을 피로 물들인다. 이 과정에서 일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하고 이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를 지탱한다. 이 책 《1910년, 그들이 왔다(2010.5.31. 효형출판)》는 각종 최신 연구 자료와 서적을 통해 조선의 망국과 병탄 시기에 활약했던 주요 일본인 21명의 실체를 추적(p8)하였다. 이들은 일본이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팽창시키던 시기, 일본 중심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1910년, 그들이 왔다》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일본인들이 조선(우리나라)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다. 지금까지도 가끔 터져 나오는 독도영유권주장과도 같은 우익의 목소리는 일본 구석진 곳에서 들리는 소수의 의견이 아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 ․ 일 병탄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지식인이라고 불릴만한 인물들의 얼토당토않은 망언은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제국주의 정신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놀란 점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하여 죽은 이토 히로부미 한 사람을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막부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일왕의 개인숭배와 군국주의의 몸통이었던 상징적인 존재 메이지 무쓰히토, 정한론과 천황숭배사상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요시다 쇼인, 무사도를 일본 정신으로 승화시킨 니토베 이나조, 근대 일본의 군사와 정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일본 군국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마가타 아리토모,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 이노우에 가오루 등 조선 병탄 시나리오에 참여한 일본인은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양심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님을 보여준다. 일본은 과연 변할까. 반성과 사과 한마디 없이 아직까지도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의 자국 영토 주장 등 우익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일본은 뿌리부터 철저하게 잘못된 시점으로 조선을 인식하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는 우리에게 변한 모습을 보여줄까. 나는 그들이 잘못을 깨닫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들의 실상을 숙지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읽혀지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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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일제가 단순하게 근대화를 통해 이룬 서구화된 무기와 우수한 전술로만 한국을 병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제국주의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을 위한 식민지로서 한국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아 정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의 정치지도자들과 지식인까지 총동원되어 정한론이야말로 일본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국가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할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기본적 덕목을 망각한 채,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부역과 역사왜곡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의 모습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배회하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의 클론에서 닮은꼴을 찾아낼 수가 있다. 이상학 작가는 막부시대를 마감하고,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 메이지 일왕에서부터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으로 대변되는 근대화 운동을 통해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군국주의 시스템을 마련하고, 국민교육, 징병제, 신분차별의 철폐와 같은 사회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일본은 마침내 세계열강의 일원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 그 막후에는 메이지 유신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한국 병탄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토 히로부미가 있다. 존양왕이를 주장하면서, 막부토벌에는 성공했지만 옛 동료들과의 정치투쟁에서 실패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극단적인 정한론의 주창자로 지금도 일본에서는 마지막 사무라이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2년 전, 일본 도쿄의 우에노 공원을 찾았을 때 그의 동상을 볼 수가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 때 일본 지폐에서 가장 고액권에 그 얼굴이 인쇄되어 있을 정도였다. 아마 우리나라 지폐의 세종대왕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의 상대적 평가의 골을 깊고, 극단을 달린다는 것을 사이고 다카모리와 이토 히로부미의 기술로 잘 알게 되었다. 군 출신이자 일본의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그리고 사이토 마코토에 대한 서술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군 출신 총독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나 회유책으로 한국에 대한 지배를 영구화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런 인사들의 무단통치는 요시다 쇼인이나 오카쿠라 텐신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지식인들의 정치 외적인 측면에서의 지원사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마지막 장인 <진정 그들은 한국을 사랑했을까?>였다. 한 때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마땅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했어야 할 연구의 사례는 모두 야나기 무네요시의 차지였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보여 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족의 정서를 한(恨)으로 규정짓기도 했다. 두 개의 “J"만을 사랑했다는 우치무라 간조 역시 그 민족이라는 벽을 넘는데 실패했다. 고난 받는 한국 민중을 위해 일본 관헌의 핍박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야나기 무네요시와는 다른 차원의 한국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아사카와 다쿠미의 이름은 솔직히 <1910년, 그들이 왔다>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한국 사람보다도 더 한국을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무지(無知)가 그저 놀라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2010년, 망국 백년이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무한 경쟁이 시대정신이었던 20세기 초의 모습은 오늘날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 때가 총칼로 대변되는 무력이 지배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전개되는 경제 전쟁이라는 이름의 더 혹독한 경쟁시대다. 태평양 전쟁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일본의 경제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렇다면, 우리는 백 년 전 망국의 뼈아픈 체험을 교훈으로 삼아 가까운 이웃이지만 잊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긴 일본과 어떤 식의 공존을 도모해야 하는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다시 한 번 조심스레 옷깃을 여미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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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경우 재임 기간동안 잊을만하면 신사 참배를 강행하여 주변국과 마찰을 빚곤 했었다. 당시 그는 총리라는 신분으로 참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라며 억지 논리를 펴기도 했는데 자신이 총리라는 직위를 버리지 않는 한, 사석에서 발언한 내용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공식화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리가 만무하다. 주목할 것은 그 무렵에 일본내 극우파 인사들의 황당한 발언이 이어지는가하면 역사 왜곡 문제가 심각하게 불어지기도 했고 일부 국민들의 지지 의사도 뻔뻔해지고 과격해지더라는 것이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참전 군인들의 유품을 전시한 곳에서 카미가제 특공대원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장면을 말이다. 특공 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애국심에 감동하여 그리했다면 그는 분명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자격이 없으며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일본의 발전과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정치가들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꽃다운 젊은이들이 제국주의에 희생되었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해야 옳다.
<1910년, 그들이 왔다> 이 책은 조선 침략과 태평양 전쟁에 연루된 21인의 일본인을 설명한 책이다. 일본은 임진왜란때 잠시 조선에 주둔했었던 것을 마치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라도 된 것인양 역사를 날조해가며 '조선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중국에는 황제가 있고 일본에는 천황이 있으니 중국을 따르는 조선이 일본을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고 말이다. 이와같이 정한론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중심에 서있었던 인물 대부분은 모순과 억지로 일관하며 제국주의의 칼날을 세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흔히 일본의 민족성과 문화를 '국화와 칼'에 비유한다. 이 책에서도 '찻잔속의 비수'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차를 마시는 행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소박함을 추구한다던 사람이 다도를 벗어나는 순간 칼을 휘두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침략자가 된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근대화에 있어서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합리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결국은 제국주의를 최우선으로 택했고, 패전 후 조선과 아시아에 대한 반성은 없으면서 원폭을 내세워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철저한 이중성에 말문이 막히고 가끔씩은 지긋지긋하다. --;;
일본이 조선을 강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던 다른 나라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국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다른 나라가 약소국을 점령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는 식으로 서로 나눠먹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속주국의 자원과 노동력이 절실해졌다는 이유도 제국주의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은 손꼽히는 경제 대국으로 우리와도 정치,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 없이는, 제대로 된 과거 청산 없이는 결코 두 나라의 동반자적 관계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910년, 그들이 왔다> 어찌보면 참 평범하고 담담한 제목이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수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피를 생각하면... 백년이든 천년이든 우리 후손들에게 그 날의 교훈을 되새기게 해서 우리 역사를 새로이 써나가야 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야욕에 이 땅이 희생된 것은 사실이나, 이미 조선이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정조 때 잠시 중흥기를 맞지만 정조 사후에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을 치닫는 가운데 허수아비 왕을 내세워 사리사욕만 채웠던 정치인들과 고통받는 국민들의 모습이 구한말이라도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병탄 시나리오의 주역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치밀하고도 철저하게 준비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일본의 만행에 대해 사죄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남북관계를 비롯해서 정치,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들앞에 당당할 수 있을 만큼 힘을 키우고 국제 문제에도 보다 관심을 가져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1910년,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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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에서 1910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연도다. 그해가 바로 얼마 전까지는 한일합방으로, 지금은 경술국치로 불렸던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유전자에 그 해와 그 당시의 매국노들은 깊이 각인되어 지금도 일본이라면 치를 떨게 만들 정도다. 물론 일부 보수 세력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선동을 하고 바람을 쏟아내지만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뒤면 어떨까? 일제 치하 35년 동안 사람들 뇌리 속에 뿌리박힌 친일사관과 문화가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기 1910년, 경술국치,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이 누군가? 하고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인 21명은 낯익은 인물과 낯선 인물이 교차한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인물도 깊이가 얕아 이름과 그 놈이 나쁜 놈이다는 것 정도에 그쳤는데 이 책은 그들의 죄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당시 일본의 시대상과 변화를 같이 그려내면서 그 인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하는데 이 부분이 사실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이 시각은 한국의 것이라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새롭게 평가한 부분은 역사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은 정한을 꿈꾸었던 인물들이고, 다음은 열도의 침략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사랑했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을 다룬다. 이들 개개인의 평가는 시대와 그 나라에 따라 많이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제국주의 욕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진실보다 거짓과 폭력으로 조선을 대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근대화와 조국 번영에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위선과 거짓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그들을 평가한다. 21명의 일본인 중에서 두 명이 일본 천황이다. 이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천황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주고, 그들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보여준다. 목적에 의해 신으로 군림했다가 패전으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목숨과 자리를 보전한 그들을 보면 맹신과 우상에 휘둘린 일본 국민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 속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피눈물과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731부대와 관련한 최근 연구 결과는 히로히토의 거짓과 위선을 낱낱이 벗겨버린다. 이 사실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첫 다섯 명은 일본이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중심인물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그중 ‘식민은 문명의 전파’라고 외친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최근 친일세력의 주장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를 지나 명성황후 제거의 선봉에 선 이노우에 가오루를 만나게 되면 그 당시의 살인자들이 단순한 야쿠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강제 병탄 후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성을 무시하고 굴절시키면서 그들이 노렸던 바를 현재의 우리 모습에서 만나게 될 때 친일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머리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마지막 장에서 다룬 한국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분석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조선 문화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연구들이 오히려 문화 통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에선 그가 이룩한 업적들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란 틀 속에서 조선의 구원을 찾으라고 외친 우치무라 간조의 주장은 그가 사랑했던 일본과 예수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또 다른 방식의 통치에 대한 옹호임을 말해준다. 그 후 만나게 되는 박연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아사카와 다쿠미 등의 열정과 인본주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동시에 전후 반일감정과 반공산주의에 의해 그들의 업적이 폄하되고 무덤이 훼손된 것에선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책은 조선 병탄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똑같이 우리에게 우린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대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이 땅에 온 수많은 이민자와 산업연수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이유가 그 시대를 통해 현실을 알고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 사유의 장을 현실의 우리에게 확장하는 것도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망령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지우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겠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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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말이 많았다. 요즘이야 뜸한 이야기지만 그 때만 하더라도 매년 8월이면 으레 나오는 뉴스중의 하나였다. 당시 나는 야스쿠니 신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신사라는 이름이 있어 우리네 절과 비슷한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를 통해, 교육을 통해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네 조상을 무참히 살해한 사람들의 위패가 있는 그곳을 말이다. 일본에 대한 막연한 미움 그것은 교육으로 인해 만들어진 감정이다. 내가 직접격지 않았어도 일본에 대한 반감은 확실히 내 마음 속에 존재 한다. 정규 교과과정의 공부라는 것은 중요한 몇 가지의 사실만을 알아가는 단계라면 이러한 책들은 세부적으로 알아가는 단계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 속에 자의적으로 만든 생각을 정립시키는 단계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은 어른들이 가지고 있던 반감에 비해 사실 덜 와 닿고 있었다. 단지 일본에 대한 미움이 두루뭉술하게 단지 일본이니까. 라는 의식정도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1910년, 그들이 왔다」일제의 만행의 모습들을 인물이라는 세부적인 사람들의 정치적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함으로서 우리가 흔히 접해보지 못한 그들이 기본 이념들을 서술하고 있다. 쇄국주의로 일관하던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병탄, 그것은 비단 이 책에 나와 있는 16인을 비롯한 많은 인간들의 악행이지만 그들이 구심점이 되어 병탄의 주역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각 장을 나열하면 침략 전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 어디에서 비롯된 지 알 수 있는 [정한을 꿈꾸다]와 본격적인 침략의 과정이 시작된 [열도의 침략자들]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배척 받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진정 그들은 한국을 사랑했을까?]로 나뉜다. [정한을 꿈꾸다]에서는 막부 시대의 폐막과 함께 왕권강화를 위한 세력 다툼으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러운 때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꾀하던 일본인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장에서 가장 눈여겨 볼 인물은 요시다 쇼인으로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다. 일본이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조선의 침략으로 인해 보상받아야 한다는 정한론은 대두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나이지만 많은 조선 침략의 원흉을 키워 냈고 그가 가진 이론을 그들의 제자들이 실현했기 때문에 조선 침략의 가장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열도의 침략자들]에서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침략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던 인물들이 모여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명성황후의 살해를 주도한 이노우에 가오루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사실들을 주도한 인물들이 대거 배치 되어있다. 흔히 역사적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 사실을 주도한 사람은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교육을 통해 배운 역사라는 것은 전체를 말하는 것이지 세세한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전체적인 내용의 틀 속에서 많은 내용들을 찾아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단지 번거롭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이유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모른체 나쁜 감정을 가질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병탄의 주인공들은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잔인한 모습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관념 그로인해 펼쳐진 그들의 정책들이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에 대한 잔인한 만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정 그들은 한국을 사랑했을까?]라는 장으로 넘어가면 일본인이지만 조선의 모습을 좋아 했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나쁜 놈들을 보고 난 후의 눈 정화용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우치무라 간조라는 인물이다. 내가 책을 통해 본 이 인물은 그다지 조선에 대한 마음은 전혀 없는 인물로서 비쳐졌다. 일본과 조선에 대한 그의 종교적인 모습으로 약간은 광신도적인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는 일본과 기독교적 종교에만 심취해 있는 모습이고 그러한 모습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동정이 아닌 절박한 현실을 회피 할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하고자 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현실의 부정은 현실에 대한 또 다른 방법의 안주이며 이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심리를 심어줄 수 있는 궁극의 술책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이때까지 교육이라는 것이 무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받은 교육이나 그 당시 사람들이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교육들이 결국 한 사람의 이념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함으로 그러한 것들로 인하여 이러한 감정과 생각들로 굳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교육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로 다가온다.「1910년, 그들이 왔다」를 통해 다시 한 번 20세기 초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존재에 대한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