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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대한 다윈주의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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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종교는 종교에 대한 사회과학적, 과학적 분석을 거부하여 왔다. 종교인들은 종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교에 입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비종교인의 분석은 타당한 분석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비종교적 틀을 가져와서 종교를 분석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데닛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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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종교는 종교에 대한 사회과학적, 과학적 분석을 거부하여 왔다. 종교인들은 종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교에 입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비종교인의 분석은 타당한 분석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비종교적 틀을 가져와서 종교를 분석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데닛의 표현대로라면, 화성인이 지구에 와서 관찰을 하듯이 관찰가능하다.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 역시 이러한 책들 중 하나이다.

 

데닛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이 책이 종교 유전자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위해서 다윈주의의 분석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다윈주의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요점은 설명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데닛의 다윈주의적 설명에서 주목할 것은 지향적 자세이다지향적 자세란 무엇일까? 개미가 창형흡충에 감염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른 동물들에게 잡아먹히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것은 개미의 의지일까? 아니다. 개미가 행동하지만 개미의 의지가 아니며 개미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형흡충의 의지일까? 창형흡충에게는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창형흡충의 의지도 아니다. 이것은 번식을 위한 호르몬 혹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물론 유전자 혹은 호르몬의 의지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의지 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이 찾을 수 있다. 해바라기가 해를 보는 것이 해바라기의 의지인가? 나무가 하늘을 향하는 것이 나무의 의지인가? 이러한 지향적 자세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에도 적용가능하다.

 

밈이란 사람의 문화적 경향 혹은 생각들 인데 여기에도 지향적 자세가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도 일종의 밈이라 볼 수 있기에 종교에도 지향적 자세가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종교가 의지의 개입 없이 선택적 생존을 통해 살아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는 종교를 다윈주의를 통하여 분석하는 데 있어 기초가 된다, 한편, 개미와 창형흡충 대신에 인간과 종교를 대입해보면 데닛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데닛이 종교가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지향적 자세도 우리의 생존에 용이할 수 있다. 다만 가능성을 열어 두어여 한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종교에 대해 객관적 분석의 틀을 들이밀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종교의 지향적 자세(확장방식)에 진지한 검토를 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종교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에 입문해야 하고 종교의 분석틀을 사용해야한다는 금기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데닛은 화성인이 와서 지구를 관찰하듯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 서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종교에 위협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가 확장하기 위해 갖는 지향적 자세를 해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고 지향적 자세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데닛의 이러한 객관적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는 미국의 상황에서 그러하다.

 

여담으로 이 책은 다윈주의가 갖는 분석틀로써의 장점을 다시 한번 알게 해준다. 또한 대니얼 데닛의 논리 전개 방식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데닛의 팬이 될 것 같다.




s*****t 2012.06.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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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게 위험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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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게 위험한 생각일까    2006년 종교에 대한 대담한 선전포고가 나왔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대니얼 데닛은 『주문을 깨다』을 냈다. 두 대가가 거의 동시에 이런 책을 낸 것은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종교에 대한 회의주의자들의 시각이 어느 정도는 성숙해졌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고, 또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심화되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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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게 위험한 생각일까 

 

2006년 종교에 대한 대담한 선전포고가 나왔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대니얼 데닛은 주문을 깨다을 냈다.

두 대가가 거의 동시에 이런 책을 낸 것은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종교에 대한 회의주의자들의 시각이 어느 정도는 성숙해졌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고, 또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그만큼 심화되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니얼 데닛의 책보다 훨씬 유명하고, 많이 팔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생물학을 기반으로 하여 종교는 거의 악()에 가깝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는 그보다는 훨씬 침착하다. 그리고 보다 타협적인 느낌이 들지만, 정작은 아주 근본적인 면을 지적하면서 조근조근 종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니얼 데닛이 깨려고 하는 주문(呪文, spell)’이란 무엇일까?

한잣말, ‘주문술법을 부리거나 귀신을 쫓을 때 외는 글귀로 정의되고, 원제의 ‘spell’주문’, ‘주술’, ‘마력등으로 번역된다. 말하자면, ‘사람을 홀리게 하는 어떤 의도나 힘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대니얼 데닛은 바로 그것을 종교와 연결시키고 있고, 정확히는 종교자체가 아니라 종교가 불가침이라는 생각과 주장주문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니까, 대니얼 데닛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종교’, ‘에 대해서 아무런 논증도 없이 그냥 믿는 것, 믿음에 대한 믿음이다. 종교와 신에 대해서 엄밀한 잣대를 가지고 학문적 연구를 수행하고, 그에 대해서 토의를 해보자는 것이 대니얼 데닛의 기본적 의도이자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도, 신도 그렇게 학문의 대상이 되고,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아니 되어야함을 증명(적어도 주장)한 후, 직접 그 장으로 뛰어들고 있는데, 종교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종교의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믿음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종교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종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대니얼 데닛은 종교가 없고, 또한 종교에 대해 시종일관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가 무조건 종교란 이란 관점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meme)’이라는 새로운 복제자의 관점에서 종교가 생겨날 수 있는 조건과 실제로 생겨난 진화적 사건에 대해서 충분히 인정하고 서술하고 있다. 대니얼 데닛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신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논증 없이 믿기를 강요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인정할 수 없음보다 아무런 논증 없이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대니얼 데닛의 태도다.

 

그래서 대니얼 데닛이 인용하고 있는 철학은 대답 없는 질문이고, 종교는 질문할 수 없는 답이라는 알 수 없는 이의 말이 종교에 대해서 정말 잘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물로 철학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도 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대답보다 질문을 훨씬 많이 하고 있다. 그게 철학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종교도 현실적으로 정만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게 어떤 힘인지, 정말 정당한 힘인지, 혹은 종교만이 부여할 수 있는 힘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질문을 하고, 연구하고, 논증하고, 토의하자는 게 바로 대니얼 데닛의 주장이다. 그리고나서 그의 연구와 논증,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니얼 데닛은 메아리를 원하고 있다. 누구든 답하시오, 하고 말이다. 물론 그게 아무런 과학적 근거를 가지지 않은(대니얼 데닛은 과학적 근거라는 것이 종교에서도 충분히 얘기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일방적인 주장이라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보고 있지만 말이다.

 

옮긴이인 김한영은 이러한 것을 대니얼 데닛의 위험한 생각’(대니얼 데닛의 또 다른 책 다윈의 위험한 생각을 패러디 한 것이다)이라고 하고 있지만, 나는 과연 이게 과연 위험한 생각인지 그게 궁금하다.

 


(2013. 12)

YES마니아 : 로얄 n*****m 2015.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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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 깨트려야할 주문에 대하여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 깨트려야할 주문에 대하여" 내용보기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사람들에 비하면 ‘대니얼 데닛’은 ‘덜 알려진’ 인물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하지만 그 둘에 비해서 ‘대니얼 데닛’이 ‘뒤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둘이 좀 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있었을 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대중에게 다소 덜 알려진 현대의 철학자들을 좀 더 접할 기회가 많은 내 입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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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사람들에 비하면 ‘대니얼 데닛’은 ‘덜 알려진’ 인물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하지만 그 둘에 비해서 ‘대니얼 데닛’이 ‘뒤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둘이 좀 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있었을 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대중에게 다소 덜 알려진 현대의 철학자들을 좀 더 접할 기회가 많은 내 입장에서 보자면, ‘대니얼 데닛’은 정말로 그냥 스포트라이트 밖에 서있는 무신론자일 뿐이다. 그의 통찰력과 지식, 그리고 신과 종교라는 주제를 대하는 자세는 앞의 둘에 비해 결코 모자람이 없다.

 

 최근 들어 ‘종교’라는 주제에 꽤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서관에서 KDC도서분류법 기준으로 200번 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늘어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속에서 훌륭한 책을 찾기란 꽤나 힘든 일이다. ‘대니얼 데닛’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주문’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신랄한 논의를 가로막는 ‘주문’을 깨트린 작품은 정말로 많지 않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같이 유명한 글을 빼고 나면 과연 믿음에 대한 논쟁을 다루는 책들 중 진지하게 읽을 만한 책은 과연 어떤 게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난 운이 좋았다. ‘대니얼 데닛’. 앞서 말했든 우리나라에선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난 철학과 학생인지라, 대중들이 다소 접하기 힘든 현대 철학자의 이름을 훨씬 많이 접할 수 있었고, 개중에는 ‘대니얼 데닛’이라는 인물도 있었다. 이 주목할 만한 철학자의 이름에, 나는 주저 없이 『주문을 깨다』를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뭐,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훌륭한 책이었다. ‘대니얼 데닛’은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니, 해학적인 문체나 시니컬한 자세를 제쳐두면, 저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비하면 ‘리처드 도킨스’나 ‘대니얼 데닛’의 논의가 훨씬 깊이 있고, 특히나 ‘대니얼 데닛’의 논의는 ‘리처드 도킨스’의 논의와는 또 다른 관점이 있는지라, 확실히 주목 할만 했다. 『만들어진 신』이 ‘창조론이 어째서 글러먹었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면, 『주문을 깨다』는 ‘종교가 과연 정말로 신성불가침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환기라고 할 수 있다. 기실 『주문을 깨다』라는 제목부터가 비판적 사유의 영역으로 ‘종교’를 끌어내리지 못하게 하는 ‘주문’을 깨트린다는 의미다. ‘신이 존재하기에 종교가 나타났다’는 고루한 생각을 버리고, 그렇다면 ‘종교’가 어떻게 기원했는지, 그리고 ‘종교’가 어떻게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을 보여준다.(결코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은, ‘대니얼 데닛’은 이것을 정답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주문’을 깨트리고, 생각해보라는 취지에서 이 책을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그 과정 속에서 ‘종교’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만들고 보호하려는 자세를 맹렬하게 비판한다.

 

 종교를 믿고, 종교를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만일 그들 자신이 자신들의 신념을 현미경 아래 놓고 보기를 꺼린다면, 종교에 회의적인 우리에게 우리의 의심을 표현하지 말고 자제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옳다면, 특히 좀 더 깊이 반성한 후에 그들이 명백히 옳다는 것이 입증되면, 우리 회의론자들은 그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들의 대의에 열정적으로 합류할 것이다. 우리도 그들 대부분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 즉 우리가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고통이 적고 모두에게 자유와 정의와 행복과 의미가 골고루 돌아가는 평화로운 세계를 원한다.(pp.42~43)

 

 따라서 나는 종교의 이해득실을 따져보자는 나의 제안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 심정에 공감하지만, 그들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선언한 다음 분개한 표정이나 비통한 표정을 짓고 그 뒤에 숨어버릴 권리는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사랑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의 소중한 친구가 사랑할 가치가 전혀 없는 어떤 사람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랑에 빠진 가슴 아픈 경우를 경험해 본 적 있는가?(p.331)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꽤나 불쾌한 제안일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매우 정중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이다. 과격한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나, 통렬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어투와는 다른, ‘우리 함께 좀 더 면밀하게 논의해봅시다.’라는 정중하고도 일관된 주장이 이 책 안에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덜 정중한 문장이 없진 않다.

 

 당신(종말론자)은 스스로 이렇게 물어본 적 있는가? “만일 내가 틀렸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당신 주위에는 당신과 똑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을 것이고, 따라서 책임감이 분산되고, 애석하게도 희석될 것이다. 그래서 만일 후회의 말을 내뱉을 상황이 오면 당신은 “열성적인 군중에 휩쓸렸노라”라고 값싼 변명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당신은 불편한 사실 하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미혹에 빠진 군중들이 서로를 부추기며 지옥으로 통하는 환락의 길로 몰려가는 예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이 그런 집단의 한 사람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한 개인으로서 나는 당신의 신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오만함,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당신의 비이성적인 확신이 소름끼칠 분이다.(p.85)

 

 하지만 이정도 쯤이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냉소에 비하면 정말인지 신사적인 비판이 아닌가? 솔직히 말해 이렇게 완곡한 어투로 나 역시 이따금 소름끼치게 만드는 위와 같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 또한 ‘대니얼 데닛’이 꽤나 정중한 자세로 이 글을 썼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대니얼 데닛’이 거듭 말하는 것처럼,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은 그 실패가 너무나도 확실하게 드러난 공산주의의 시작 역시도 틀림없이 ‘좋은 의도’였다. ‘대니얼 데닛’이 거듭 말하는 것처럼, “우린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만 놓아둬!”라고 백만 번쯤 자신을 변호해봐야 무의미하다. ‘좋은 의도’로 가득 차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여러 믿음들을 ‘좋은 의도’로 분석해봐야 하지 않을까?

j****6 2014.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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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매우 철학적이고 현학적이고 아리쏭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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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간된지 3년째 접어드록 있지만, 독자 리뷰가 잘 안달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현학적이라는 것이다. 현학적이고 만연체적인 영어문장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채 번역한 어려운 한글문장에도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리처드 도킨스와 더불어 다니얼 대닛의 문장 자체가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는 매우 어렵지 않나 추측이 된다. 쉽고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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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출간된지 3년째 접어드록 있지만, 독자 리뷰가 잘 안달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현학적이라는 것이다. 현학적이고 만연체적인 영어문장을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한채 번역한 어려운 한글문장에도 원인이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리처드 도킨스와 더불어 다니얼 대닛의 문장 자체가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는 매우 어렵지 않나 추측이 된다. 쉽고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순한 내용도 너무 현학적으로 돌리고 돌려, 길게 늘려 표현하는 문장들이 너무 많다. 오죽하면 한국인 최종덕 교수가 이 책 서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해설부분을 달아, 기본적인 개념을 먼저 설명하려고 했을까? 그만큼 이 책의 내용전개는 독자가 정확한 맥을 잡고 독서를 진행해 나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본 책은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철학 비판서다. 저자는 결국 종교도 과학적인 지식을 통한 검증대상일 뿐이라고 누누이 설명을 하고 있어 마치 종교 대 과학의 논쟁의 내용으로 전개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전개를 통해 종교를 비판하고 있다.

 위협적이거나 난처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강한 감정이 필요할 때,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어떤 일을 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전에 강하고 중요했던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혼령을 지어내고 그 혼령과 대화하고 충고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이런 경향성으로 부터 조상숭배라든지, 죽은자들과 산자를 매개하는 샤먼 그룹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샤먼의 여러가지 점을 치는 행위를 통한 방향제시와 해석이 우연히 맞아떨어지게 되면 그 부족에는 그것이 좋은 비결로 작용하게 되어 아직 체계화 되지 않은 민속종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된다. 이런 무수히 많은 민속종교들은 경쟁을 통해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한 끝에 비로소 교의화된 종교로 형성이 된다.

 이런 체계화된 종교는 종교만 맡아서 관장을 하는 집사계층을 만들어 내게 되고 더욱더 이런 계층에 의해 공고화 되고 성장한다.

 이렇게 공고화된 종교체계에 속한 개인들은, 그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그 종교를 믿게 되면 정말 진실한 믿음이 아니락 믿음에 대한 믿음을 가진 상당수가 출현하게 된다. 정말로 믿는다기 보다는 성경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권위를 가진 성직자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지금 믿음은 없고 약하지만 틀림없이 사실일 것이기 때문에 믿고자 노력하는 믿음을 말한다. 저자는 이런 믿음에 대한 믿음을 비판하면서 당현한 듯, 자녀들에게 이런 믿음을 전파시킬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자유를 확대해 나가야함을 보여준다. 종교적인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믿음체계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서는 결코 객관적인 종교분석은 불가능함을 이야기 한다.

 

 종교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가?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서도 결코 무신론자와 종교인 간에 차이가 없음을, 종교인은 선하고 무신론자는 악할 것이라는 편견에 대해 가차없는 논리적 비판을 가한다.

 

 이 책 끝부분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런 편견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종교의 뿌리와 변천, 진화에 대해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 있는 책이지만 앞에서도 서술한 바 같이, 너무 현학적인 문체의 책이다 보니 별로 권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저자 대닛의 문체에 비하면 리처드 도킨스의 문체가 오히려 훨씬 쉽고 유머러스하고 명료하게 다가올 정도이다. 확실히 대닛은 철학자이고 도킨스는 근간이 생물학자인 것이 맞는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c*****e 2013.0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