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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성장한다는게 이런것일가?, 갑자기 모든것이 확 바껴버리는게 아니라 시나브로 변해가는것, 언제 이렇게 되었지싶을만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한층 성장해있는것, 이 책의 주인공인 디니의 모습이 그랬다.
아이들의 성장기는 그들이 속한 가정사와 무관할수가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도 할 수없다. 가정의 울타리안에서 그게 전부인듯 안주한다면 성장하는 모습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을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와 성적의 연결고리를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성장을 단절시키는 요인이 되고만다.
그렇기에 이제 막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두 아이의 부모인 난, 혹시나 부족한 환경에 아이들의 꿈이 저하되지않을까 걱정이 많아지고 모든것을 챙겨주어야할것같고 많은 뒷받침을 해줘야할것같은 압박감마저 든다.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에 발맞추려 모든 인생의 촛점이 아이에게 맞춰진듯 빡빡하기까지하다. 그건 아마도 대다수의 부모들이 느끼는 요즘의 풍경이라 자위한다.
하지만 좋은 미래를 준비한다는 미명하에 닥달하고 요구하고 무언가를 기대하는것말고 아이를 믿어주는것은 얼마만큼 이었을까?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해나가고있었고 성장해야만하는것인데 그것마저 부모들이 해주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또한 어떤환경이든 아이들은 그들만의 성장을 하고있었는데 말이다.
비록 평소 한없이 빈약해보이고 무능력해 보이는모습에 도대체 뭐가 될까 싶어지는 환경속에서도 ....
디니의 부모님은 1년에 한번꼴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삿짐을 싼다. 거기엔 좀 더 나은 환경속에서 아이들을 키워야하겠다는 의지는 전혀없어보였고 다만 엄마아빠가 서로를 끔찍히 사랑하고 있었고 가족모두를 믿는다는 사실은 존재했다. 그러한 현실은 학교에 제대로 다닐수 없는 환경과 가난의 연속이요, 16살의 어린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사이 결혼을 하고 들어와 아기를 낳은 언니와 감옥에 가야만하는 오빠였다.
그 상황은 매사에 긍정적인 엄마에게도 받아들이기 히든 것이었을까, 남편의 부재를 틈타 스위스 국제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어 떠나는 자신의 언니편에 13살 디니를 딸려보낸다. 학교도 사회도 공백으로 만들어버리는 1년에 한번씩 이사해야만했던 현실로 가족이 전부였던 디니가 가족의 품을 떠나 머나먼 스위스로 날아가야하는 상황은 모든것을 잃어버리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왜 가야만 하는지, 어떠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모와 이모부의 손에 이끌려 납치당하듯 끌려온것이다. 그래서 처음배운 이탈리아어가 납치당하다였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알고싶은 단어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만큼 디니는 성장해간다.
온갖 모습의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있는곳, 그곳에서 디니는 결코 특별한 아이가 아니었다. 친구들간에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었고 선생님과 학생간엔 자유분방하게까지 느껴지는 소통과 교류가 있었다. 불평불만을 귀담아 들어주고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교장선생님과 그 어떤 험담에도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지 않는 객관적인 모습들이었다.
하루종일 불만을 달고사는 릴라에게 가정의 불화가 있음을 내비치고 감각적이면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주던 구스리 역시 특별한 배경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건 단지 배경일뿐 그 아이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었다. 본연의 모습만으로 사람을 볼 줄 아는 환경속에서 아이들은 너무도 멋지게 성장해갔다.
또한 거기에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스위스의 설경들을 상상하는 커다른 묘미를 안겨주는데 전교생 모두가 함께하는 스키학습과 이별여행을 떠나는 학생들간의 여행을 지원해주는 학교의 모습은 멋지기까지했다. 1년의 시간동안 디니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많은 성장을했다. 자신을 옭아매고있는 가족을 떠나 대자연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면서였다. 우린 항상 눈에 보이는곳에서 통제하에 아이를 키우고있었던듯한데 아이들은 이렇게 자신만을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었나보다.
긴 여름방학을 맞이하며 가족을 향해 날아간 디니가 어떠한 결정을 할지 너무도 궁금한가운데 책은 끝을 맺고 있었지만 그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는 디니가 아닌 자신의 꿈을 행한 판단을 내릴수있을만큼 성장했음을 보았다. 여름방학이 끝난후 미국이냐 스위스냐를 결정하는것부터, 먼 미래의 희망을 향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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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우리 작가의 책과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데 도대체 그게 뭘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피어오르던 의문은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곳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아, 바로 그거였다. 대개 우리 청소년 책에서는 선과 악이 확연히 구별되어 대립하는데 반해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지루한 느낌마저 들지만 다 읽고 나면 진정 주인공이 성장한 게 느껴지고 덩달아 읽는 나도 뭉클한 뭔가가 느껴지는 것이다.
처음 디니 가족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참 별난 가족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솔직히 이렇게 무책임한 부모가 있을까 싶어 화가 났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훌쩍 떠나버리는 디니의 아빠.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서 살 곳을 물색한 다음 가족을 부른다. 그러면 디니 엄마는 남편을 따라 가족을 이끌고 이사를 간다. 아이들이 새로운 곳에 정착하느라 얼마나 힘든가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디니 언니가 열여섯에 임신을 하고 오빠는 툭하면 말썽을 부리는 상황을 보며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다면 디니 아빠도 뭔가 깨닫고 달라지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들은 중요하지 않다. 가족을 키워드로 잡았다면 잘못 짚었다. 물론 디니는 자신만 가족을 떠나 이모와 이모부와 살게 되자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디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움을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다 그래도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즉 디니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가 주된 이야기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디니가 이모와 이모부를 따라 스위스로 떠난다.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디니 가족이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지만 어느 누구도 디니에게 설명해 주지도 않을 뿐더러 독자에게도 아무 말이 없다. 이모부가 교장으로 일하고 이모가 교사로 있을 학교에 디니도 함께 간다는 사실 밖에 알지 못한다. 그제서야 제목과 연결시켜 그곳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 디니가 겪는 일이 주된 이야기겠거니 짐작했다. 그렇다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 즉 이방인으로서의 어려움이 나오겠거니 했다. 그 중 나쁜 친구가 있어서 대립하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친구가 착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히 말하듯 못된 아이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나마 가장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 릴라 정도다.
스위스에 있는 미국인 학교지만 아이들 인종은 다양하다. 그만큼 성격들도 다양하다. 그러나 각자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릴라가 불평불만을 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그게 문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릴라의 성격이 그런 데에는 분명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암시하는데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릴라 엄마 아빠의 행동을 보고 짐작하도록 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니의 마음이지 릴라의 가정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군더더기로 비칠 수 있는 요소는 모두 생략했다. 덕분에 별별 추측을 다 해본다.
자신이 납치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창문에 구조를 요청하는 글을 써 놓아도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는 이모와 이모부의 재치와 여유, 수업 도중에 예고 없이 나온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몇 시간씩 토론하도록 이끄는 수업 방식이 왜 그리 부럽던지. 또한 아이들끼리 이웃 나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여행가는 모습을 보며 지리적 여건에 따라 사고의 틀도 규정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것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벗어나야만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우리와 다른 방식의 삶을 만날 수도 있다. 또 작가의 재치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영 마음에 안든다. 내용에서 교환학생에 대한 것이 안 나오기도 하지만 디니가 다른 곳으로 간 이유는 그런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기대한 것도 내용과 안 맞지만 읽고 나서도 작가의 메시지를 담기에는 여전히 뭔가 부족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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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이루고 있는 중심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중심이 흔들리면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아이들의 생각과 정서는 어떨까? 그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까?? '늘 새로운 기회'를 찾는 아빠 덕분에 디니는 항상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적응하고 또다시 떠나서 적응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것이 옳은 생활 방식인지 아닌지를 따질 겨를도 없이..아니 인식할 틈도 없이 '디니'는 이모와 이모부가 있는 스위스의 국제학교로 가게 된다.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말 그대로 납치되듯 멀리 떨어진 스위스에 도착한 '디니'가 중요하다.
배경은 스위스이다.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얼마나 가고 싶은 나라인지 갈망하는 독자를 비웃듯이 '디니'는 스위스의 풍경등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저 자신은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기게 된다.
청소년들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그려가는 성장소설은 내가 즐겨읽는 류의 소설이기도 하다. 나의 글속에서 늘 등장하는 나의 아이들은 한창 자신의 주관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좌충우돌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의 매력은 '샤론 크리치'란 작가 때문에 더욱 기대감을 갖었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라는 소설속에서 보여지던 소녀의 성장과 소녀가 이해하게 되는 어른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소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같은 저자의 또다른 성장소설에 대해 갖는 기대감은 어쩌면 당연하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디니의 아빠는 자유롭다 못해 자신의 2세들을 너무 방임형으로 키우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이것은 현대..지금 교육이 우선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만의 시선이지만 말이다. 아빠의 행동 때문에 좋은 재주를 펼쳐보지도 못하는 엄마와 디니처럼 적응하느라 버거웠을까 사고를 친 오빠, 그리고 너무 일찍 결혼을 해버린 언니..이것은 분명 부모의 잘못된 선택으로 등떠밀린 주변 가족의 인생이다. 어찌어찌해서 그래도 조금은 안정적이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이모와 이모부와 함께 디니는 스위스에서 또다른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게 된다. 13살 디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디니의 부모는 아주 간단한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디니는 오로지 가족에게서 자신만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때문에 새로운 스위스 국제학교에서의 모든 생활이 그저 남의일처럼 느끼고 있게 된다.
하지만 성장소설의 뿌듯한 묘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국제학교라는 명성답게 세계 모든 아이들이 모이게 되고, 아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 당연한 일은 여기에서는 전혀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서툰 외국어를 말할때 전혀 거리낌없이 한다던지. 또는 자신의 감정의 숨겨야 한다던지..등등의 고민은 정말정말 쓸데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디니는 또다른 생각을 가진 또 다른 아이로 한 뼘씩 커가고 있다.
스위스란 나라가 배경인 점은 어쩌면 하얀 눈속에, 그리고 때묻지 않은 자연속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환경은 디니가 새로운 새상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있는, 그리고 그 곳에 하나하나 자신의 기록을 만들고 남겨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듯 하다.
자신보다 더 불행한 가족사를 가진 친구들을 보기도 하면서, 때론 새로운 언어를 표현하면서 익히게 되는 감정의 조절이나, 멀리서 보내오는 가족들의 편지를 통해 디니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하는 자신을 차곡차곡 만들어가게 된다.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타인을 사랑하는 것, 타인을 배려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음을 청소년 독자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더 눈부시게 빛나는 산 위의 눈들..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실때 느껴지는 시원함은 디니와 그리고 친구들과 이 책을 읽는 청소년 독자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한 컷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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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들어설 때,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게 마련이다. 지금 서 있는 이 낯선 곳이 내가 서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걱정스러움과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지탱해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두려움과 걱정스러움이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감정 속에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감정도 있게 마련이다. 그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면 낯선 곳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과 특별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도미니타 산톨리나 도오네(이하 ’디니’)는 보여주고 있다. 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아빠로 디니네 가족은 여러 곳으로 이주를 하며 다녔다. 새로운 살 곳은 기회가 있는 것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아빠, 그 아빠를 사랑하는 엄마,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스텔라 언니와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크릭 오빠와 디니는 ’새로운 곳’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디니 엄마의 가족들은 이런 가족의 모습이 이해할 수 없다. 아이들의 교육, 제대로 된 직장이 우리네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모습에서 나 역시도 그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단정짓고 말았으니 말이다. 디니는 꿈을 꾼다. 디니가 생각하고 걱정하고 원하는 일들이 꿈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듯 하다. 이야기는 디니가 샌디 이모와 남편인 맥스 이모부에게 납치 되면서 시작된다. 스위스 남쪽 루가노에 있는 학교의 새 교장선생님인 맥스 이모부와 선생님인 샌디 이모는 디니와 함께 스위스에 가게 된 것이다. 손을 흔들며 아빠를 불렀지만 자신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꿈을 꾼 디니는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가진 듯 하다. 개학을 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이탈리어를 공부해야 하고, 늘 행복해하는 구스리와 늘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릴라,케이스케와 벨렌이라는 새로운 이들과 만나게 된 디니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떨어내기 시작한다. 샌디 이모가 그 곁가지를 거미풀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에게는 공중에 달린 작은 뿌리가 있었는데 마치 땅을 향해 뻗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게 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뿌리를 공중에 매달고 있는 작은 식물. (본문 40p) 디니는 침실 창에다 표지판을 만들어 "납치 됐어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라고 항변해 보았다. 혼자인 느낌과 가족과의 이별에서 오는 쓸쓸함으로 디니는 표지판에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붙였다. 그러나 곧 디니는 ’그라지에(고맙습니다-이탈리어)’로 새로운 표지판을 달게 되었다. 이모와 이모부의 너그러움을 받아들이려는 디니의 발버둥이였다. 결국 디니의 창에는 ’안녕, 스위스여. 내 사랑 스위스여!’라는 뜻의 ’챠오, 스비체라. 벨라 스비체라!’라는 표지판이 붙게 되었다. 그 표지판의 글들은 디니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두려움과 외로움에서 시작된 스위스의 생활을 기회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그 생활에 적응해가면서 낯설움이 아닌 특별한 선택이였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그 글들 속에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디니의 친구 릴라의 모습 역시 이런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디니를 통해서 심적인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면, 릴라의 행동 변화 역시 또다른 적응의 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든 변화가 바로 그들을 한뼘 더 성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리 모습이 어땠는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 이후로 우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떠올리며 우리가 무엇이 될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서 ’이들이 무엇이 될까?’ 생각했다. "일 년, 아니면 이 년, 아니면 삼 년 전에 우리는 노란 숲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학교를 선택했죠. 기억하세요?" "그 선택은 정말 중요했어요! 이 길이 더 힘든 길이었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가끔 혜택받은 길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선택한 길이에요. 그리고 우리를 서로 만나도록 해 준 길이죠." "우리를 한번 보세요! 우리는 지금 다시 숲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갈림길 앞에 섰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갈가요? 우리는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까요?" (본문 269p, 270p)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곳과 대면해야 한다. 새로움과 갈림길에는 늘 두려움과 걱정스러움 그리고 호기심이 공존을 하게 된다. 그 선택이 비록 힘들고 어려운 길이 될지라도, 그 선택이 잘 못 되었다 할지라도 그 선택은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특별함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어쩌면 나 자신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혜택받은 길’일지도 모른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걱정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곳에서 특별함을 찾았으면 한다. 디니의 변화되는 과정은 이렇게 특별함을 찾을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디니는 하늘을 날고 있는 꿈을 꾼다. 새로운 곳은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디니는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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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책 보는 데 시간이 좀 걸리고 집중도 잘 안 된다. 잘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를 먼저 썼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디니가 놓인 형편을 같이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디니라고 하는, 도미니카 산톨리나 도오네는 엄마와 크릭 오빠와 스텔라 언니 그리고 아빠와 함께 살았다. 아빠는 좋은 기회를 찾아서 여기저기 옮겨다녔다. 엄마는 아빠와 같이 살기 위해서 언제나 이삿짐을 쌌다. 크릭 오빠는 문제를 일으켰고 스텔라 언니는 말이 없어졌다. 디니도 나름대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조금 힘들었다. 아빠는 집을 떠나고 크릭 오빠는 감옥에 가고 스텔라 언니는 아기를 낳게 되었다. 디니는 이모와 이모부한테 납치당하듯이 집을 떠나 스위스에 갔다. 이모부는 교장 선생님이고, 이모는 선생님인 학교에 디니가 다니게 되었다. 식구들을 떠나서 낯선 곳에 간 것을 디니는 슬퍼했다. 아빠 엄마가 다시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디니의 생각과는 달리 엄마한테 연락도 오지 않았다.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디니를 이모와 이모부한테 맡긴 것인가 보다.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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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 만남, 일상을 통해 보는 아이들의 성장일기]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둘째를 다른 학교로 전학보냈다. 학기 시작할 때 전학을 가면 아이들과 훨씬 어울리기 좋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그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벌써 4달리 지나가건만 무엇이 문제인지 융화되는데 적지 않은 고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청소년 상담을 하는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힘든 시기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아이들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었을까? 그건 바로 전학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새로운 공간에서 이미 친분을 형성한 아이들의 무리 속에 어울린다는 것은 쉽지 않고 또한 떠나온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는 것 역시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에 비하면 이 책 속의 주인공 디니는 강한 아이인 듯하다. 그건 아버지를 따라 식구가 많은 이사를 하면서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반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다. 가족들과 함께 거처를 옮긴 것이 아니라 디니 혼자 이모 손에 이끌려 이모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하고 스위스라는 낮선 곳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은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기 쉽다. 디니는 그런 표현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편지를 읽으면서 어느정도 냉소는 담기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디니가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이들 역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가족사에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많은 변화를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무엇은 전해주자라는 의도로 책이 쓰였다기 보다는 디니를 비롯한 스위스의 국제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일상 속의 사건을 통해 이들이 겪어가는 성장의 과정을 보여준다. 개별적으로 이루지는 사건이 다소 나열된다는 지루한 느낌도 들지만 책의 첫머리의 디니와 이 책이 끝날 즈음-물론 시간 상으로는 1년여 밖에 되지 않지만-에 훨씬 성장해 있는 디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성장소설의 묘미인가 보다. 간혹 이런 책을 읽으면서 늘 반성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뭘 전해주려고 하는지 그걸 찾아내려고 하는 습관이다. 자연스럽게 몰입하기보다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독서를 방해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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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돌이처럼 몇 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던 생활을 거듭하던 디니는 이모와 이모부를 다라 스위스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된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이라면 누구나 기대하고 꿈꾸는 일이겠으나 디니에게 그 일은 마치 납치처럼 여겨진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낯선 장소, 낯선 생황, 그리운 가족. 도착한 곳은 아름답고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지만 디니에겐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 디니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기계발서에서 만나듯 대범하고 용기있고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다. 낯선 곳이 두렵고 낯선 환경이 불편하며 낯선 언어와 사람들 앞에서 자신만 멈춰서 있는 것 같이 느끼는 소극적인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니를 통해서 우리는 낯선 생활의 어려움과 두려움과 자신을 깨고 나오는 일의 버거움을 배울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한 새로운 생활의 즐거움과 성장의 뿌듯함과 움츠러 들었던 자신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용기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낯선 나라로 떠나는 아이들도 많은 요즘 낯선 곳에 가서 씩씩하게 이겨내서 성공했더라 하는 이야기들도 좋겠지만 이처럼 주저하면서 두려워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긍정의 힘을 얻어가는 디니의 이야기도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종종 혹은 가끔 꿈꾼다. 지금이 아니라면 여기만 아니라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라면 하는 꿈을 꾼다. 허나 익숙한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꿈꾸듯 멋지고 낭만적인 일들은 없고 온통 혼란스럽고 두려운 일들 투성이다. 드라마처럼 한 컷트 넘어가듯 책에서처럼 페이지처럼 휘리릭 넘어가듯 우리의 일생은 넘어가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다만 한시간 한시간 하루하루 한달 한달 꼬박꼬박 살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노력에 노력을 통해 한 마디 두 마디 새로운 말들을 배우고 생각과 생각의 끝에 나와 내 주변의 상황을 알고 이해하고 긍정하고 실수와 착오를 거듭하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마음을 붙이고 고민과 고민의 끝에서야 겨우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실패와 많은 실수와 좌절을 거둬내면서 겨우 겨우 긍정의 마음을 꺼낼 수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의 이야기 샤론 크리치의 <교환학생>이었다. - 다락방서 허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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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샤론 크리치 작가의 책은 [바다 바다 바다]와 [루비홀러]라는 두권을 책을 만난적이 있는데 이 작가는 청소년들의 성장기를 아이들의 심리변화에 따라 모험 가득한 이야기로 전개해 나가는 작가인거 같아요! 특히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찰자 관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두권의 책도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이번에 출판된 [교환학생]이란 책도 역시 여자 주인공이 바라본 릴라와 구스리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꿈으로 보여주며 의미심장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더라구요! 사실 교환학생이야기라기 보다는 여기 저기 떠돌며 살아야하는 가정환경에 자라던 주인공이 학교일을 하고 있는 고모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프랑스 학교엘 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기도 하고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도 많은 성장을 가지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랍니다.
무엇이건 자신있게 도전하고 긍정적으로 임하는 구스리를 통해 주인공도 조금씩 변화해가는데 더불어 불평으로 가득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릴라에게서는 반감도 가지고 질투심도 느끼고 하면서 주인공이 가장 많이 성장하더라구요! 역시 자신과 라이벌이 되는 존재가 가장 많은 성장을 돕는거 같아요! 하지만 이왕이면 긍정적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긍정적인 자세로 용감하게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그런 아이로 성장해주면 더 좋겠죠!
이 책은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해 나가는 학교를 배경으로 멋진 스위스의 경치들을 눈에 보이듯 잘 묘사하고 있어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꼭 갔다온 그런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한답니다. 책의 맨 앞쪽에 등장하는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그림지도는 책을 다 읽고 다시 들여다 보면 한눈에 주인공의 이야기가 보이더군요! 이런 지도가 이야기를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어 주네요! 꼭 주인공의 추억을 되살리는 그런 느낌을 받는달까요?
이 책을 읽으며 릴라의 성장 이야기와 우리와 환경이 다른 아이들이 어떤 학창시절을 보내고 또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들여다 보며 우리의 아이들이 국적이 다르거나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은 아니지만 나고 자라면서 만나는 다양한 친구들과 부대끼며 그들과 같은 고민을 공감하며 스스로를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키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에 대한 한가지 아쉬운점은 이 책은 출판하기 전에 거쳐야하는 마지막 검열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는지 아니면 시기적으로 빨리 출판해야했던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책의 제목도 내용과 썩 잘 어울리지 않으며 오타가 무척 많아 조금은 책을 읽는데 방해를 받기도 했답니다. 아마도 출판사에서 충분히 고려하고 책을 다시 출판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참, 그레이스와 틸리 두분의 고모가 보내주던 편지가 무척 인상깊고 재밌었답니다. 어쩜 릴라의 친구들처럼 티격 태격하면서도 두고모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릴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편지가 부러웠습니다. 두고모의 백만번 천만번의 뽀뽀와 사랑을 받는 릴라가 부럽기도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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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크리치의 [교환학생]은 가능성, 혹은 기회를 찾아서 미국 각지를 전전하고 있는 아빠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늘 이사를 하며 새로운 곳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디니가 '스위스'라는 낮선 나라에 가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이다. 디니는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착한 아이로 살아가는지를 알고 있는 아이다. 그런데 13살이 되었을 때, 오빠는 경찰에 체포되고, 언니는 16살이라는 나이로 아기의 엄마가 되는 상황이 되고,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이모를 따라 스위스로 가게 된다. 그동안 디니는 아빠가 찾는 새로운 기회때문에 늘 새로운 곳에 적응하면서 살아야했지만 가족이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의 상황이 변하고, 자신은 홀로 스위스라는 정말 낯선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디니가 스위스의 학교에서 겪는 일과 성장과정이 주 내용을 이룬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완전히 낯선 곳에 던져졌을 때, 디니는 자신의 가족을, 자신의 상황을 새롭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가족의 사랑과 관심에서 벗어난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해나가는가를 잘 그려낸 작품 같다.
디니가 스위스의 미국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역시 디니처럼 다양한 이유로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개성적인 친구들이다. 구스리와 릴라, 케이스케와 벨라가 드러내는 개성은 책 곳곳에 보인다. 디니는 자신이 비눗방울 속에 갇힌 조그만 점이라고 여기는 소극적인 아이다. 그런 디니가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알아간다.
덧붙임 : 이 책의 제목이 왜 [교환학생]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디니가 스위스의 학교에 가게 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교환학생'과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의 원제가 주는 느낌을 전혀 살려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Bloomability"는 디니의 친구인 일본인 케이슈케가 만들어낸 말로(케이슈케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특이한 단어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꽃 필수 있다'는 말로 '가능하다'라는 말을 대신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두는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데, [교환학생]이라는 뜬금없는 제목이라니 --''
또 덧붙임 : 오타가 많이 보여서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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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책이 <교환학생>이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크리스티네 뇌스틸링거의 작품이냐고 묻는다. 샤론 크리치의 작품이라고 하면 나중에 보겠다는 말을 한다. 샤론 크리치라는 작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 듣고도 어느 정도는 호감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매력이 있다. 나 역시 샤론 크리치가 어떤 상황 속의 아이를 내 앞에 데려다 놓을지라도 기꺼이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샤론 크리치라면 작품 속 아이의 장점을 잘 보여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디니의 가족은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살아 본적이 없다. 아빠의 표현대로라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이라는데 엄마, 스텔라 언니, 크릭 오빠를 볼 때 그 ‘새로운 기회’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기회’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떠돌이의 삶을 아빠는 단지 미화해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문득 저넷 윌스의 <유리성>이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샤론 크리치의 <교환 학생>과 저넷 윌스의 <유리성>은 부모가 아이들을 대하는 부분은 확연히 다르지만 일가족이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거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나름대로 많은 상처를 안게 된다는 공통점도 있다.
열세 살 때 디니는 이모와 이모부의 손에 끌려 스위스의 국제학교를 가게 된다. 잦은 이사로 환경이 변하는 것이야 워낙 자주 있었던 일인지라 놀랄 일은 아니지만 부모, 형제와 떨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엄마와 이모와 이모부의 짧은 만남 끝에 자신이 스위스에 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이 이곳에 오는 것에 대하여 디니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게 되었기에 디니는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가족이 자신을 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과의 분리 불안에 디니는 주변을 돌아 볼 여력이 없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잦은 이사를 했었지만 스위스로 오기 전은 언어에는 별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선 들리는 소리조차 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운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와 어떤 집단에 자신이 막 들어 왔을 때 모두가 아는 것을 자신만 모른다는 그런 생소함은 없었다. 그냥 각각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를 보면 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디니는 아이들 속으로 확 뛰어들지 않는다. 다가오는 친구들을 받아주기는 하지만 디니 스스로 친구를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 놓아 권총으로 불리는 릴라를 만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구스리를 만나면서 디니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낯선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게 된다.아빠가 늘 말하던 새로운 기회를 디니 스스로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샤론 크리치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상하게도 몰입이 안 되었다. 등장인물들도 따로 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이 어디서 온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