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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선술집에서 친구녀석과 적적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본의아니게 옆자리에 앉은 초로의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듣게 되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등산을 다녀온 것 같은 세 남자는 아직 해거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꽤나 거나하게 취해있었는데,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는 내 맘 몰러. 니가 우리 마누라처럼 자식새끼들 뒷바라지 말고는 관심없는 여자랑 살어봐라. 나는... 매일 아침에 찬물에 물말아먹고 나온다. 알기나 아냐?” “내가 군대 생활을 최전방에서 했잖냐. 그 때 하도 줄빠따를 맞어서 아직도 허리를 못써 내가... 하~ 진짜 고생 많이 했네... 그 왜 진철이 있잖냐? 니들도 알지? 그 자식이 면회를...” “나 수원 살 때 말이야. 아... 왜 우리 아들 세 살땐가 네 살땐가... 야~ 야~! 야 임마~ 너같은 놈은 내가 학교 다닐 때면 내 얼굴도 똑바로 못쳐다봤어.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놈이 어디서 잘난척이야~~ ” 세 남자의 대화는 수신기를 못찾은 전파처럼 어지러웠으며, 순서나 주제를 무시한 채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이제 막 늦은 점심겸 저녁끼니를 떼울 요량으로 반주를 두서너잔 주고 받았을 따름인지라 밍숭맹숭, 겸연쩍은 대화를 나눌 따름이었다. 자연스레 그 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굉장히 이색적인 장면이었다. 함께 둘러앉아 서로의 얘기를 무시한채 자신의 이야기만을 장황하게 또 목청껏 부르짖는, 황혼의 사내들... 우리는 별 말을 할 수가 없어 묵묵히 술잔만 털어넣고 있었다. 세 남자가 돌아가고 조용해진 술집에서 어느덧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되어 우리는 예의 그 사내들의 대화를 흉내내기도 하면서 농을 던지고 있었다. 저렇게 서로 자기말만 할거면 뭐하러 같이 술을 마시냐는 친구에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는 나이들어도 저러지는 말자 키득거리던 기억이 난다. 누구라도 무라카미 류라는 이름을 들으면 쉽게 SM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리라 생각한다. 그의 소설속에서 빈번하게 소재로 쓰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소설 전체에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관통하고 있다.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상처 그리고 소통의 부재를 치유하고 연결하는 도구로써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설속 화자는 살아있을 때에도 있는둥 마는둥 하는 인물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죽은 사람이다. 유령도 귀신도 아닌데 형체도 없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며 그의 눈과 입(존재조차 하지 않는 눈과 입)을 통해 우리는 소설속으로 들어간다. 말하자면 그는 중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신호를 수신하기만 하는 존재를 화자로 선택한 작가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어디에 있든 나는 수신만 할뿐이다. 나는 뭔가를 발신한적이 없다. 발신한다는 의사 표시도 한 적이 없고, 당신이 발신한 것을 확실이 수신했습니다. 하는 확인도 할 수 없었다. 재생 전용의 비디오가 있듯이 나는 수신 전용의 존재다. 화자는 살해당했다. 29년만에 처음 생긴 여자친구로부터... 그녀의 가방에서 우연히 발견된 Mask Club이라는 카드에 의문을 품고 어느 맨션에 잠입했다가 누군가로부터 살해를 당하고 형체가 없는 영혼으로 그 집을 떠돈다. 그 집에서는 7명의 여자가 매주 모여서 SM플레이를 벌인다. 화자의 여자 친구는 그 여자들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7명의 여자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상처를 갖고 있다. 그녀들은 발신전용이거나 수신전용이거나 수신도 발신도 되지 않는 먹통이 되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이 없는 이 세상에 딱 한 대 밖에 없는 전화기처럼... 결국 그녀들에게 SM플레이는 전화선 같은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6대의 전화기를 연결해주는 전화선 말이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은 전화기와 전선과 전파를 모두 찾기 위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보았던 세 사람처럼 끊임없이 전파를 보내고 내 전파를 실어줄 전선을 찾고 내 전파를 수신할 전화기를 찾는 과정이 곧 삶이라는거다. 타인의 명령에 따라 욕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선술집에서 세 남자를 본 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 세남자처럼 계속 발신만 하고 내 모습을 발견했다. 기억이 분명치 않을 정도로 술이 취한 밤, 받아주는 사람 없는 전파를 계속 보내고 또 상대방이 보내는 전파는 수신 할 수 없는 상태로 비틀거리는 나를 인식한 것이다. 인간은 내 예상보다 더 빨리 또는 더 명징하게 존재의 가벼움을 인식하게 되는 법이다. 반성하거나 시정하겠다는게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누구든... 내 전화좀 받아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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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을 사서 읽은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근래는 전에 읽은 책들을 서재에서 다시 꺼내어 읽고있습니다. 10여년전에 읽은 책들이 새롭습니다. 군데군데 꼽혀있는 책갈피의 문장들도 새롭습니다. 문득 파트리크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의 문학적 건망증이라는 단편이 생각납니다. 곧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표지가 선정적입니다. 여자들의 누드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무라카미류는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중에는 마음에 드는 책도 있고 보다가 덮어버린 책도 있습니다.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는 이전에 덮어버릴뻔한 책 중 한권입니다.
-내가 흥미를 가진 것은 우울증 환자와 분열증 환자들이 느끼는 시간 감각의 특성과 차이에 관한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결정적인 뭔가가 이미 발생했으며,결과는 모두 불행한 것으로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식의 시간속에 있다고 한다. 거기에 비해 분열증 환자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지금 바로 뭔가가 일어날 텐데 그걸 모르는 것은 자기뿐이며, 모든 현상은 그것을 암시하는 신호라는 식으로 지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극히 드물게 그 두 가지를 미묘하게 회피하는 순간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이를테면 영원히 계속되는 폭발 같은 것으로, 즉 모순되는 것 같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순간으로서 지각하는것.-
-역시 이름이 없으면 이야기하기 불편한 걸까? 이름이 필요할까?-
-아이들이 모두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릴 때는 누구나 신경증적 경향이 있다고 심리학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은 세상과의 마찰 속에서 점차 포기를 배운다.-
공감이 갑니다. 우울합니다. 스펜서 존스의 <선물>이 생각납니다. 어린아이일때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갖기위해 무슨짓이든 서슴없이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지고 싶고 하고싶은 것들을 포기해 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가슴속에 응어리만 남은채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하고싶은것은 도덕적고 사회적 규범이 허락하는 안에서 하면서 살아갑니다.
-슬로 모션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누군가 내 앞에 샴페인 잔을 내밀고 있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취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취하면 또 다른 자신이 나타나는 것이 두려웠다. 내이야기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그래도 술은 좋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와인을 음료로 생각해 매끼 거르지 않고 마시던 때가 부럽습니다.
-인생 전반에 비하면 SM은 편하다. 어차피 돈이 얽힌 게임이며 게임 중에 역할이 확실해서 편하다. 어떻게 하면 미움받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또 비밀과 배덕의 향이 있어 자신은 반사회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짓의 절실함과 충실감을 가질 수도 있다. 자신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쾌락의 세계에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데 지나지 않는다.-
SM은 단순이 채찍질하고 변태짓을 하는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변태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변태입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합니다. 무라카미류의 소설은 역시 SM이 빠지면 어색합니다.
-SM플레이에서는 일반적인 일상생활과 달리 인간관계의 골대가 정해져 있다. 오르가슴이다. 수치와 아픔을 이용해 오르가슴에 이르는 것, SM 플레이에서는 그것만 생각하면 되지만,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 편의점 점원이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우리는 어디에 골을 설정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해야 좋은지 모른다. 역원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다.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자기가 으스대든지 상대방이 으스대는 꼴을 받아주든지,친해지든지 아니면 왕따가 되든지, 그중 택일할 수밖에 없다.-
오르가슴은 참 좋습니다. 느낄수 있을때 많이 느끼도록 합니다. 나이가 들면 오르가슴 느끼기도 힘들어집니다.
-결국 똑같은 심리다. 속물적인 레스토랑에서 주인이 스파클링 와인을 선물하게 되면 순수하게 좋아하면 된다. 들뜰 필요도 없고 반발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남이 호감을 보이거나, 무시하는 행동에 과잉반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남자가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나한테는 그런 남자가 없었다. 어릴 때 내 옆에 있던 남자들은 내 몸을 이용했을 뿐, 나를 받아들여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자가 나를 받아들여 준다고 하는 개념을 잘 모른다.-
이성간의 우정은 참 애매모호합니다. 우정은 두명이상의 사람사이의 혐동 관계를 말할 때 쓰는 단어라고 백과사전에 나옵니다. 혐동이란 서로 마음과 힘을 합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를 말합니다. 점점 더 길고 복잡해집니다. 단어는 단어일 뿐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류는 쉽게 알지 못하는 정보를 선심쓰듯 턱턱 내어줍니다. 마약,SEX,SM,자살,.. 모두 좋습니다. 무라카미류를 처음 접한 것은 13년전에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입니다. <초전도 나이트클럽><코인로커베이비즈><토파즈><러브앤팝><공생충>등 대부분을 읽었습니다. 잘 쓰는 작가입니다. 근래들어 활동이 예전만 못합니다. 좋은 작품을 기대하며 SM에 대한 환상을 품어봅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책은 언제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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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인가? 잊을만하면 한 권씩 무라카미 류의 책이 번역되어 등장하니, 도대체 이 인간 얼마나 많은 책을 쓴 거야, 라고 여기게 된다. 소재는 딱 무라카미 류를 위한 것이다. 여성들로 이루어진 SM클럽 이야기. 책의 마리 작가의 말을 보니 도쿄 데카당스(tokyoDECADENCE)라는 웹사이트에 연재되다가 사이트가 폐쇄되면서 <다빈치>라는 인쇄잡지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 그런 작품이란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도쿄 데카당스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거의 변태적인 포르노에 가까운 영화였는데 그 내용이 SM에 관한 것이었다. 내용은 뭐랄까, 뭐, 음, 딱히 구체적으로 이야기 않는 게 좋겠다.(개인적으로 문의를 해온다면 알려드릴 용의는 있지만) 무라카미 류가 감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와 긴밀하게 연관되었던 영화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영화보다는 책 쪽이 좀더 점잖다고 보여진다. 소설의 도입은 스물 아홉인 내가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죽기 얼마전 나는 미키라는 여자를 사귀었는데 그녀의 핸드백에서 떨어진 MASK CLUB이라는 플라스틱 카드의 주소로 찾아들었다가 그만 누구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한 여자의 목소리와 자태에 나타난 수치와 아픔을 보고 우리는 그녀가 굴복했음을 안다. 타인이 굴복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공포인 동시에 쾌락이기도 하다. 굴복한 인간은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우리는 일곱 명의 모임을 MASK CLUB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정체불명의 존재로 남아 이들 클럽의 여성들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찰의 도중 ‘데츠오’라는 또다른 존재까지 만나게 되는데, ‘데츠오’ 또한 자신처럼 살해당한 후 클럽의 본거지인 맨션의 어딘가에 기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죽음을 맞은 이후 스스로에 대한 자각을 하면서 이들은 또다른 존재로 살아간다. “요령은 포기하는 것이었다. 살아남고 싶다는 본능을 나는 일시적으로 잊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점차 공포는 사라지고 아픔도 완화된다는 것을 알았다. 무저항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의식을 상대에게 맡겨버리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계속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모호해진다. 그때 자의식을 몸에서 떨쳐내버리면 공포와 아픔은 더욱 약해진다. 지금 이렇게 맞고 있는 것은 대체 누구일까, 가엾기도 하지,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소설의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이들의 존재 형태 내지는 존재 방식이 거론되지만,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듯하다. 여하간 나는 ‘데츠오’라는 인물의 부탁을 받아 벌레에게 옮겨 붙어 이들의 SM 파티에 끼어들었다가 그만 사라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시점에서 소설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게 되는데, 전반부가 죽은 나를 주인공으로 한다면 후반부는 생뚱맞게도 내가 우연하게 들어간 몸의 주체인 사라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라의 입을 통해 미키, 쿠미코, 사오리, 레이코, 사라, 마리, 루미코라는 일곱명의 여자들이 어떻게 하여 MASK CLUB라는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으며, 또 왜 남자들을 살해했는지가 설명된다. “인생 전반에 비하면 SM은 편하다. 어차피 돈이 얽힌 게임이며 게임 중에 역할이 확실해서 편하다. 어떻게 하면 미움받지 않을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까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또 비밀과 배덕背德의 향이 있어 자신은 반사회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짓의 절실함과 충실감을 가질 수도 있다. 자신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쾌락의 세계에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노예 내지는 자신의 완전한 소유물로 생각하고 괴롭히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디스트나 이와 정반대의 경우를 통해 쾌락을 느끼는 매저키스트의 양상은 현대 사회의 모든 수직적인 구조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음을 설파하는 소설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자의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다만 작가의 말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이 소설은 남성중심사회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이전 시스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이전 시스템에서 받은 수혜에 안주하려는) 남자를 ‘죽은 자’로 설정하고, 이들이 들여다보는 여성들의 SM 클럽이라는 새로운 사회 또는 조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 여성 대부분이 어린 시절 남성으로부터 받은 성적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으며 남성들만을 살해하는데, 이는 남성 중심의 사회와 여성 중심 사회의 역전이라는 다소 급진적이고 몽환적인 무라카미 류의 사고방식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무라카미 류의 작품들을 상, 중, 하로 분류한다면(인간이 너무 책을 많이 냈으니까) 중에 해당하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다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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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훈련기간 중에 접했다.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그 고통.. 처음 겪어봤다. 내가 책을 못 읽어서 이렇게 애가 타다니..
책은 참 어렵다. 솔직히 지금도 읽고 있는 중이다. 난 책을 보면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린다.(다 그런가?) 근데 이건 도저히 상상이 불가능하다. 죽은 사람이 안 되어봤으니 어찌 가능하리요.... 인내심으로, 류에 대한 충심으로 읽었으나 힘들다. 책을 읽고는 지친다. 나중에 내가 성숙하고 혹시 아는가..... 죽어봤다가 다시 깰지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어쨌든..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감상문 another sttory~ 책을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뒤에 류님이 친절히 그랬더군. 소설에서의 죽은 자는 옛날 남성위주의 시스템에 기생하여 어째어째 살아가려는 지금의 남성들을 뜻한다고... 그렇다면 마스크 클럽은 무엇인가? 그런 남성들을 벌하러 온 심판자들인가? 난 글을 읽으면서 마스크 클럽에 반감을 가졌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가? 도저히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후반부에서 "나"가 되어 책을 이끌어나가는 사라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정말로 힘들다.
그들이 추구하는 건 쾌락이다. 그들은 그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쾌락을 위해 인륜을 저버린 자신들에게 상처를 준 사촌뻘되는 사람이나 계부를 원망할 자격이 있는것일까? 그래놓고 "난 상처받았어 치유받아야돼~"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물론 그들의 고통과 상처는 내 상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동감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을 공감할 수 없다.
끝.
마지막으로 상황을 가능한 모두 묘사했다는 류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다시 한번 충심을 표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라져라. |
|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불편하다. 물론 69나 영화소설집 같은 책도 있지만 '토파즈' '인더미소수프'같은 책은 읽는 사람에게 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류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롤로그에서 '나'는 살해당한다. 그후 유령, 혹은 알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그저 미키가 어떤 여자이고, 왜 자신이 살해당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살해당한 맨션에서 미키와 그녀와 같이 있는 여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에는 주인공이 없다. '나'는 그저 화자일 뿐이다. 그것도 사건이나 인물에 관여할 수 없는 철저히 외면당하는 화자이다. 모든 일의 발단이 되는 미키 역시 중심에서 비켜서있다. 다른 여자들 역시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사건이 중심이 되는 소설도 아니다. 참으로 설명하기 난감한 책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으나 누군가 이 책에 관해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게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무라카미 류'의 팬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으니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기뻤다. 한번 잡으면 금방 읽을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책 표지가 책과 겉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
| 무라카미류의 책을 이번에 처음 접해봤다. 신문에 나온 광고를 보고 SM이 어떻게 다루어져 있을지 참 궁금했다. 처음 글을 읽을때 나오는 서점점원이 주인공인줄 알았는데 그냥 단순히 서술하는데 그칠 뿐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7명의 여자들은 모두 어린시절에 상처로 인하여 SM을 하게 된것같다. 어린시절의 상처때문일까? 사라라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남성의 일그러진 욕심(?)으로 어린 소녀의 성장이 비틀어져버리는 것같다. 어린시절의 상처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줄도 모른체 싫은 기억은 가둬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도모르게 반사회적(?)인 경향을 띄게 되는것 같다. 욕심많은 남자들에게 여왕으로 군림하면서 경제적인 이득과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새디스트적인 느낌도 만끽하고 어떤 남성에게도 소속되길 거부하고 간섭받길 거부하는 모습또한 인상적이었다. 물론 미키와 같은 M도 있지만 그녀도 한남자를 사랑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여러명을 같이 만나는 모습에서 신뢰감을 갖지못하는 상처를 볼수 있었다. 무라카미 류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아직도 잘 알수가 없다. 그러나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린시절의 상처는 정말 사람의 인생관과 영혼을 망친다고 느꼈다. 남성에게 상처받은 영혼들이 레즈SM으로 발전하고 살인하는 그리고 죽은 남성도 농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죽은 남성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걸 알면서도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7명의 모습을 다 보여주고 화자가 이제 사라에 대해 어느정도 안다고 느꼈을때 사라지게 없애버리는 고도의 S라고 느꼈다. 끝장면에서 이름을 부르며 사라져버리라고 할때의 사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 작가의 이름만으로 책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라카미 류가 바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이 사람의 책은 읽고 또 읽고 싶을 만큼 재밌는 책이 있는 반면 다시 읽기 싫은 책도 있다. 뭐... SM에 관한 묘사들이야 토파즈나.. 다른 책에서도 나왔던 내용들이니 새삼스럽게 들먹일 것도 없고... 죽은 자의 입을 빌어 옮기는 극의 전개가 놀랍다. 특히 죽고난 화자가 겪는 신비한 현상과 관념을 통해서 이동하는 장면들 등등은 놀라웠다. 처음 개미를 읽었을 때 인간적인 시점을 철저히 배제했기 때문에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것처럼(뒤로 갈수록 개미들이 인간스러워졌지만...) 이 책도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죽은 후의 세상에 대해 상당히 그럴듯하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다만 책 안에 챕터를 나누는 페이지의 여자 사진과 표지의 그로테스크한 여자의 사진이 참 불편했다. 꼭 SM만을 위한 소설인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