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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식인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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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시작되기 전의 페이지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이 책은 저자가 1965년 일본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출간한 결과물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만큼이나 일본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기에, 당시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저자를 초청해 그 해답을 듣고자 한 내용이 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이해된다.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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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시작되기 전의 페이지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이 책은 저자가 1965년 일본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출간한 결과물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만큼이나 일본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기에, 당시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저자를 초청해 그 해답을 듣고자 한 내용이 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이해된다. 사전적으로는 지식인이 높은 수준의 지성과 폭넓은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지만, 그러한 능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발휘될 때 과연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을 적절하게 펼쳐내야만, 그 사람을 일컬어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겠다.


저자 역시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려 드는 작자’로 여기는 풍조를 거론하고 있다. 아울러 ‘정치사회에서는 물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박탈’된 ‘본질적으로 무력한 존재들’이라는 비난에 대해, 지식인의 입장에서 저자가 변명을 시도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먼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지식인이 처한 상황과 지식인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색하고자 한다. 어느 사회나 ‘지배 계급은 그 자신의 궁극적 목적인 이익에 준하여 실용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권력자의 이익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으로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 교수로서 정치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을 정치교수(politic professor)라는 의미로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신조어로 일컫고 있는데, 이러한 부류의 인물들을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라고 하겠다. 


저자에 의하면 ‘지식인이란 자기 내부와 사회 속에서 구체적 진실에 대한 탐구와 지배자의 이념 사이에 대립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따라서 ‘지배 계급의 사주를 받아 자칭 엄격한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일컬어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행동하는 ‘근본주의와 지식인의 행위는 동일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개혁론자들의 온건한 논리야말로 지식인에게 지배 계급의 원리 자체와 싸울 것인가 아니면 지배 계급에 반대하는 척하면서 그 계급에 봉사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필연적으로 지식인이 근본주의적 입장에 서게 만드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저자는 ‘지식인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누구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일도 없고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리를 배당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로 특징되는 지식인이 처한 ‘모순’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행동해야만 한다는 점을 ‘지식인과 대중’이라는 항목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자신의 근원적 상황과 형성 과정에 의해 영원히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는 그 이념에 대항하여 부단히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 자신이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기에 ‘작가는 지식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작가 역시 진정한 지식인으로 역할을 하는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혀 있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면서, 그 주변부가 누렇게 변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대학 신입생 시절 동기들과 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기 위해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 읽은 후 책의 뒷면에 적힌 대학 신입생으로서의 다짐을 적은 다음의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얄팍한 지식인(知識人)의 때를 벗어버리고자 몸부림을 치며 이에 나의 모습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역시 이러한 생각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앙드레 말로의 책에서 인용한 “삶은 아무 가치가 없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삶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라는 구절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권력에 빌붙지 않고 항상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는 처지의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여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6.02.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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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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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산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이다. 교양철학 발표할 때 담당했던 사르트르의 사상에 대해 공부를 하다 빠져들어서 사게 되었다. 그 때는 이 책을 읽을 때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실존주의라는 담배를 피운거 마냥 그냥 읽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다니면서 서가에 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니 그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시 보인다.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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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산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이다. 교양철학 발표할 때 담당했던 사르트르의 사상에 대해 공부를 하다 빠져들어서 사게 되었다. 그 때는 이 책을 읽을 때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실존주의라는 담배를 피운거 마냥 그냥 읽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다니면서 서가에 있던 이 책을 다시 읽으니 그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시 보인다. 지식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 쓴 얇은 책 어떻게 생각하면 책 제목처럼 지식인을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하는가에 대한 사르트르의 날카로운 추리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귀족대신에 새로운 지배층으로 자리잡은 부르주아대해 쁘띠 부르주아(작은 부르주아라고 생각)적 생활을 하는 지식인이 앞장을 서서 노동자의 편을 들어야 사회가 바뀐다라는 것이 골자인 책이다. 현재와 많이 다른 1950년대의 모습이 물씬 풍겨오는 책이다. 당시만 해도 사르트르가 일본강연을 할 때, 일본의 적군파등 스탈린주의의 모습을 한 공산주의건 아니면 인도주의의 모습을 한 공산주의건 판을 쳤고, 부르주아에 기대고 사는 쁘띠 부르주아에게 사르트르른 지식인으로써 자각(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자각하는 것 처럼^^)을 하고 현실 참여을 유도하고 있다. 들어보면 참 좋은 말이다. 얼마 안 되는 쁘띠 부르주아적 기득권을 접고 노동자 운동에 참여하라. 그 때는 그 말이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요즘 지식인이라고 하는 다시 말하면 사르트르가 일컬었던 지식인들 의사, 교사들은 거의 이제는 쁘띠 부르주아가 아니라 부르주아가 되버린 것 같다. 안정화된 속에서, 스스로를 가꾸어가는 자생하는 식물이 된 것이다. 사실 그들의 출생도, 교사라는 직업은 모르겠지만 의대가서 의사되려면 돈 꽤 들어간다. 노동자의 집안에서 의사가 되기에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은 더이상 노동자의 집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가 낳은 자식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막히는 부분이 있다. 뒤의 문학에 관한 부분이다.문학이란 무엇인가와 존재와 무란 책에서 밝힌 것을 압축해서 나타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번역에 주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서 사르트트 전집 완역판이 완벽하게 나와서 불어를 몰라도 사르트르를 이해하는데 막힘이 없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부르주아 부르주아해서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했던 행동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행동하는 지식인 그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o****z 2003.11.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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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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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지식인의 책임과 정치적 참여를 논리적으로 변증하며 지식인은 중립을 가장한 무행동이 아니라 시대적 부조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세이집으로 지식인의 윤리와 정치적 주체성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현대 지성의 역할을 재사유하게 만들며 개인적 양심과 공적 책임 사이의 긴장, 지식인의 발언이 사회적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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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지식인의 책임과 정치적 참여를 논리적으로 변증하며 지식인은 중립을 가장한 무행동이 아니라 시대적 부조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세이집으로 지식인의 윤리와 정치적 주체성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현대 지성의 역할을 재사유하게 만들며 개인적 양심과 공적 책임 사이의 긴장, 지식인의 발언이 사회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에 따른 책임의 무게를 독자에게 되묻는 고전적 논쟁서이다.

#연말리뷰
s*****i 2025.1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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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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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그걸 정의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야금야금 책읽기를 시작할 때 처음 만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들과 그 외의 저서들을 통해서, 지식인이란 비판적이며 자기 성찰을 할 줄 아는 지성인으로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비판적, 성찰적 지식인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로 구분해왔다. 비판을 할 줄 모르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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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그걸 정의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야금야금 책읽기를 시작할 때 처음 만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들과 그 외의 저서들을 통해서, 지식인이란 비판적이며 자기 성찰을 할 줄 아는 지성인으로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비판적, 성찰적 지식인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로 구분해왔다. 비판을 할 줄 모르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내 생각이다. 강준만적인 생각은 그의 저서를 많이 읽지 않고 있는 요즘에도 완전히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소한, 한국 사회라는 기괴한 현실 속에서 지식인의 성찰과 비판은 배부른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그건 지식인들의 지식인이라 일컬어지는 강준만이 퍼뜨린 '지식인론'의 파장이기도 했지만, 함석헌, 김재준, 안병무, 리영희로부터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그리고 숱한 인터넷 논객들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정말 그렇다"라는 강한 긍정일 수밖에 없다. 1965년 9월과 10월에 걸쳐 사르트르가 일본에서 행한 세 차례 동안의 강연을 수록한 이 책은, 물론 한국 사회와 한국의 지식인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지식인론은 사르트르 당대의 사회 현실과 그에 따른 사르트르의 비판적 사고과 선택을 떠나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이 너무도 많다. "지배 계급은 그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인 <이익>에 준하여 실용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의 수를 결정한다. 지배 계급은 동시에, 산업 발전의 정도에 따라, 또 경제 상황과 새로이 등장한 필요에 맞춰, 잉여가치분의 얼마를 그들 전문가의 봉급으로 내줄 것인지를 결정한다. 오늘날, 사태는 명약관화하다. 기업은 대학으로 하여금, 낡아 퇴색한 인문주의(人文主義)를 포기하고, 그 대신 기업진단가나 중간관리자, 전문가 등을 공급해 줄 전문화된 학습을 시행하도록 하기 위해 손을 뻗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30쪽) 놀라지 마시라.(강준만의 말투로!) 이건 한국의 어느 비판적 논객이 게시판에 올려놓은 언사가 아니다. 아마 사르트르가 당대의 프랑스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사르트르의 말에는 아직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실상, 이 강연들은 사르트르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엄살 섞인 목소리로 담아낸 것일 게다. 즉, 나는 많이 아는 놈이다. 나는 부르주아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도 아니다. 괴롭다. 으아! 아, 그래. "자기가 사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단하나, 가장 혜택받지 못한 계층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72쪽) 십자가를 져라, 이 먹물들아! 자기 분석을 통해서 자기 결단에 이르는 사르트르의 고뇌와 사유, 그리고 삶의 선택의 치열함은 이 책의 두께를 착각하게 만든다.
n****w 2004.02.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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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자산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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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선과 악의 구분에 있어 자본의 소유 유무에 그 기준을 둔다. 자본의 소유계급은 악이며 타도의 대상이며 그 이면이 까발려져야 할 허위와 착취의 근원이다. 지식노동자들의 본래 역할은 이들을 두둔하는데 있었다. 회개의 길은 계급적 전향에 있다. 자본 소유자의 계층에서 태어난 지식인은 무산자의 편에 서야만 선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사르트르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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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선과 악의 구분에 있어 자본의 소유 유무에 그 기준을 둔다. 자본의 소유계급은 악이며 타도의 대상이며 그 이면이 까발려져야 할 허위와 착취의 근원이다. 지식노동자들의 본래 역할은 이들을 두둔하는데 있었다. 회개의 길은 계급적 전향에 있다. 자본 소유자의 계층에서 태어난 지식인은 무산자의 편에 서야만 선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보편성의 정의는 [계급의 해체]다. 여기서의 계급은 자산의 소유에 따른 실존적 상황으로서의 계급의식의 반영이다. 자기계급을 뛰어넘어 무산자를 향하는 것이 속죄의 길이다. 또한 진정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자산자 출신의 지식인의 운명이다. 이를 위해 끝없는 긴장과 계급의식의 잔재를 송두리째 뽑아내고자 투쟁하는데 참 아름다운 지식인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무자산은 선인가? 자산을 소유하고 동료인간의 실제적 어려움을 못 본체하는 자는 선하지 못하다. 무산자도 선하지는 않다고 자산자를 두둔하는 지식인도 선하지는 않다. 그래서 무산자의 편에 서고 계급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지식인의 자기정체가 붕괴되는 그날까지 자기자신을 불사른다면 비로소 선하다 할 수 있다고 한다. 신을 거부한 지식인 자신의 닫힌 체계 속의 역할이다. 성공을 위한 판단기준? 악을 설정했으므로 오케이! 궁극적 역사의 판단기준도 변증법적으로 확인했으니 오케이! 동기부여? 순수함을 좇는 청년의 열정이 있다면 오케이! 자본을 소유한 모든 짐승들을 비웃고 드러내고 자본을 뺏아내자. 반드시 인류는 행복해 질 것이다! 2%가 부족하다. 뭘까? 우리능력 밖의 문제다.
s***y 2004.04.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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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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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샤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한 1965년 9월과 10월, 도쿄와 쿄토에서 행한 세 차례의 강연내용을 가필 없이 수록한 강연대본이다. 샤르트르는 이 강연에서 지식인이 처한 상황과 정의, 대중과의 관계, 지식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및 기능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지식인의 범주에 작가가 포함된다는 것을 조밀한 언어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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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샤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한 1965년 9월과 10월, 도쿄와 쿄토에서 행한 세 차례의 강연내용을 가필 없이 수록한 강연대본이다. 샤르트르는 이 강연에서 지식인이 처한 상황과 정의, 대중과의 관계, 지식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및 기능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지식인의 범주에 작가가 포함된다는 것을 조밀한 언어로 증명한다. 


   본질적으로 무력한 존재들인 지식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일면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단정적이며 현실적이다.

    ... 지식인들의 말에 누가 귀을 기울여 줄 것인가? 더욱이 그들은 본질적으로 무력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전혀 생산하지 않으며, 기껏 봉급에 의존하여 먹고 사는데 ... 중략...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박탈되어 있는 것이다. ... 중략 ... 그들은 힘도 없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들이다. 경제적 힘도, 사회적 힘도 가지지 못한 그들은 ... 후략 ...  10~11쪽

    프랑스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이후 지식인의 영역침범(?)은 사회 각 방면에서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지식인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이 지적능력과 관계되는 업무(문학, 의학, 법률, 수학, 자연과학, 응용과학 등등)를 통해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후 이 명성을 이용, 보편적이고 독단적인 의견을 주장하고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서구에서 상업자본주의가 출현한 이후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해주고 기득권자인 성직자와 귀족계급과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지식인의 역할이 무척 중요했다. 이런 전통이 점점 실용적인 전문가를 만들었고 이는 지식인들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이런 정신이 ‘부르주아의 휴머니즘’으로 발전해 갔다고 샤르트르는 주장한다.

    그는 사이비 지식인의 전형을 이렇게 비유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많은 사이비 지식인들이(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해 혹은 알제리 독립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의 식민지 통치방식은 사실 도를 지나친 감이 있다. 우리의 해외 영토에는 너무 여러 가지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어느 편의 것이건 폭력에는 반대다. 나는 백정이 되기도, 백정의 희생물이 되기도, 둘 다 원치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식민자에 대한 원주민들의 반항에 반대한다. ... 중략 ... 나는 피식민자들에 대한 식민자들의 만성적 폭력(테러에 의해 지탱되는 끔찍한 착취, 실업, 영양실조)에는 찬성이다. ... 중략 ... 피식민자들이 자기들을 억압하는 식민자들에 대항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데는 반대다. 65~66쪽

    이 문구를 가만히 음미해보면 마치 일본제국의 이중적인 지식인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920년대와 30년대의 일본 지식인들 중에는(대개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지만) 진정으로 조선(朝鮮)의 독립을 지지하고 조선민중의 처참한 현실을 동정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개의 교수나 학자들은 일본제국의 침략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거나 최소한 잔인한 탄압은 피하면서 지배하자는 편의적, 상식적 평화만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결국 일본제국을 파멸로 이끈 원인중 하나가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건전한 비판세력이 정권의 무한적 운영에 대한 견제와 조절기능을 갖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보편적 평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평화를 구축해야만 하며 그런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 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어쩌면 사회를 감시, 견제하는 일정한 역할을 지식계층이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설파한다.

    진정한 지식인은 <근본적>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 중략 ... 자신이 갖고 있는 모순의 성격 때문에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 속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갈등은 어느 것이나(그것이 계층간의 갈등이건 혹은 국가간의, 인종간의 갈등이건) 지배 계급이 다른 불우한 계급들을 억압하는 데서 비롯되는 개별적인 문제들이며, 자기 역시 억눌린 자임을 의식하고 있는 지식인은 어느 경우에나 억눌린 자의 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68~69쪽

    아무도 지식인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지 않았으나 그것을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지식인에게 모순적인 고민을 안기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지식인은 고뇌하고 절망하기도 하며 그 바탕 위에 희망을 얘기하기도 한다.

    여기서 글을 쓰는 작가가 과연 지식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부차적인 질문이 될 것 같다. 샤르트르는 작가는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지식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해주고 그들에게 빌붙어 갖가지 실험적 정책을 내 뿜었던 과거와 현정권의 지식계층이 일반민중에게 어떤 배려와 희망을 주었을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면 지식전문가의 정밀한 통찰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걱정이 앞선다.

    작가의 기능은 인간의 가치를 억압하고 파괴하는 모든 기존 질서체계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것이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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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부르주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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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었습니다.`쁘띠 부르주아'란 말은 여기서 지식인을 가리키는데요. 사르트르가 언급한 `지식인'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 머무른것이 아니고 자신의 분야에서 얻은 `보편적 지식'을 인간과 사회 전체에게로' 보편화'시키는과정에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지식인'이란 계급 자체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특수주의'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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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읽었습니다.`쁘띠 부르주아'란 말은 여기서 지식인을 가리키는데요. 사르트르가 언급한 `지식인'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 머무른것이 아니고 자신의 분야에서 얻은 `보편적 지식'을 인간과 사회 전체에게로' 보편화'시키는과정에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지식인'이란 계급 자체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특수주의'를 비판하는데,아이러니컬하게도 `지식인'계급은 지배계급에서 탄생합니다.정확히 말하면...`지식인'이 처음 나타난 것은 부르조아 계급에서였습니다.부르조아가 자본주의 발달로 인해 자본가가 되었고,자본가가 현재 지배계급이 되었죠.. 그래서 이들 `지식인'들을 `쁘띠 부르조아'라고 하죠..`쁘띠'가 `작은'이란 뜻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이해했습니다...`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추천합니다...
YES마니아 : 로얄 w****f 2000.07.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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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남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는 존재인가?
"왜 난 남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는 존재인가?" 내용보기
언젠가 j신문의 고등학생을 위한 논술강의에서 '지식인'이라는 주제로 연재한 것을 보았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지식을 축적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집단이라며,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등의 책들의 일독을 권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은 명약관화하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쌓은 지식과 명예를 바탕으로 현 사회
"왜 난 남의 문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는 존재인가?" 내용보기
언젠가 j신문의 고등학생을 위한 논술강의에서 '지식인'이라는 주제로 연재한 것을 보았다. 그 기사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지식을 축적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집단이라며,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등의 책들의 일독을 권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가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은 명약관화하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이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쌓은 지식과 명예를 바탕으로 현 사회의 모순점을 지적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에도 벅차서 힘들어 하면서도, 가끔씩은 남들에게 봉착한 고난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장애인들은 사회에 소외되어 있으며, 환경은 계속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파악해야 할 것은 이러한 문제들의 피해자는 사회에 대한 통찰과 문제 해결에의 의지를 갖기는 커녕, 먹고 사는 문제에도 급급한 소수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지식인이라는 존재는이러한 모순점을 파악하고 있으며, 당사자가 아님에도 마치 자신의 문제인양 해결에 앞장선다. 이러한 자가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식인이며, 기자가 말한 지식인이란 바로 지식 전문인으로서 기존 사회체계를 확고하게 함으로써 지배계급에 의식적, 무의식적 동조를 하는 집단일 뿐이다. 하지만 제목에서처럼 지식인이 나서는 이유를 단순히 변명한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그리고 도덕적 감수성에서 유발된 비체계적이고 일시적인 이유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지식인에게 부딪히는 문제들도 우발적인 것들이 아니며, 구조적인 문제점임을 깨달아 자신에게 닥친 문제해결이 곧 프롤레타리아의 문제해결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우선시함을 사르트르는 명시한다. 그러기에 '나는 쁘띠 부르주아이다.'라는 언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젊은 날의 혈기에서 시작하여 군대갔다오면 사라지는 엘리트의식 및 동정심에서 시작하는 우리 대학의 운동권학생들을 변명해주는 책이 아니다. 실존주의자이자, 맑시스트로 전향했으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통렬히 자각하였던,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의 자기 선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책을 읽지만, 사르트르의 생애와 실존주의, 맑시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r****6 2001.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말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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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처음 교양 세미나를 하게 될 때 이 책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특별히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그래서, 그것뿐이다.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은 '변명'일 뿐이다.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어중간한 계급이 받는 억압과 불신에 대해 지식인 스스로가 말하는 변명이다. 모순 속에서도 끝까지 민중의 옹호자로 남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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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처음 교양 세미나를 하게 될 때 이 책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특별히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그래서, 그것뿐이다.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은 '변명'일 뿐이다.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어중간한 계급이 받는 억압과 불신에 대해 지식인 스스로가 말하는 변명이다. 모순 속에서도 끝까지 민중의 옹호자로 남자고 사르트르는 외치치만, 웃기는 소리다. 이러니 엘리트가 욕을 먹는 거다. 사르트르는 스스로 얼만큼 민중과 유대를 맺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어정쩡한 태도로 사회 모순을 고칠 수 있기는 했을까. 모순을 지적하는데서 끝난 건 아닌지. 이러니 저러니 지식인에 대한 얘기는 더 하지 않겠다. 괜히 흥분했군. -_-;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얻는 것은 분명히 있다. 고등학교 때 입시를 위해 공부만 해왔던 대부분의 대학생 - 지식인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나처럼 욕이라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1. 3.26 f.y.

[인상깊은구절]
지식인의 역할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해> 근본주의적 태도로써 그 모순을 초극하는 것이다. 그의 고독이야말로 그를 <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되게 한다. 즉 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제 권리에 내재하는 추상적 성격을 공격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그러한 권리를 없애 버리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체적 권리를 더하고자 - 자유와 함수 관게에 있는 진리를 민주주의 속에 구현시키면서 - 바라기 때문이다.
r****a 2001.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