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서 "뭍혀 버린 양서"를 조사했던 적이 있다. 수 많은 다독가 분들이 가르쳐
주신 책들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책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조용히 뭍혀 있었다. 그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며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역시나 베스트셀러가 최고는 아니라는 점과 남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내게 맞는 책은 따로 있다는 깨달음이다.
일례로, 여전히 내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아직도 그 책의 진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이 평론가로 있었더라면,
그 명작들은 앞서 얘기했던 수 많은 책들처럼 조용히 뭍혀버리지 않았을까..?
묻히지 않은 양서들은 작게는 수백에서 길게는 수천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현재에까지 고전이라는 분류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필독서는 왜 그리 많은지.... 독서경력이 일천한 나로서는,
이름만 들어보고 읽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 하다. 현 시대에 쏟아져 나오는 책들도 1년에 몇 만권이라는데
그 중에서 보고 싶은 책들도 너무나 많기에 미뤄두고 있는 셈이다. 때론 그런 생각도 한다. 고전이 무조건
우위에 있는 것인가? 현재 나오는 책들도 훌륭한 책들이 많은데, 타인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춰서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고전은 무엇일까?
정 진홍님은 <고전, 끝나지 않은 울림>의 서두에서, 고전이란 한 번 읽고 덮을 수 없는 책이라고 말한다.
"처음 읽어 좋은 책, 두 번 읽어 다시 좋은 책, 읽을수록 새삼 새 책을 읽는 듯한 새 감동이 빚어지는 책"
책의 평가 기준은 '그것의 읽힘이 되풀이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메세지에 크게 공감하는
나를 발견한다. 타인이 정한 평가기준이 아닌, 자신에게 깨달음과 느낌을 주는 책. 수 차례 되읽힘을
이끌어 내는 책이 바로 고전인 것이다. 이 책은 정 진홍님이 생각하는 여덟 편의 고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소개와 함께 또 하나의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정 진홍님은 이 책이 이래서 좋다 저래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당신께서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적어 내려갈 뿐.. 앞서 말했듯 고전이란 누군가에게 되읽힘을 제공하는 책이고,
저자 분은 수 차례에 걸쳐서 그 책들을 읽고 사유한 흔적들을 남겼다. 흥미로운 것은 반복적인 되읽음을
할 때마다 그 책들은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책 제목대로 끝나지 않은 울림을
제공하는, 그래서 새로운 끌어당김을 반복하는 책들의 이야기이다.
1.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 도스토예프스키
2. 삼국유사 / 일연
3. 모비 딕 / 허먼 멜빌
4.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5.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6. 돈 끼호떼 / 세르반떼스
7. 아Q정전 / 노신
8. 차라수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익히 들어 아는 책도 있고, 생소한 책도 있다. 그렇기에 이 책 자체만으로도 내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흔하디 흔한 유명작들에 대한 소개와 설명으로 점철된 책이 아니기에, 훌륭한 책의 조건에 대한 나의
막연한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가르침을 준다.
저자는 자신의 고전을 평가함에 칭찬만 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그 역시도 우리들과 같은
고민을 했던 것이다. 느껴지는 바가 없는 읽음. 타인들이 만들어 둔 작품 평가와 호평 속에서도 스스로도
그리 느끼지 못함에 들게 되는 묘한 위화감. 마담 보바리를 읽으면서 느꼈던 작품 배경에 대한 거슬림,
돈 끼호테를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에 대한 분노를 가감없이 적어냈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책들을 고전이라고 칭한다면, 또 이 책에서 저자가 써내려 간 이야기들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닌, 본인의 독서 소감과 행위의 흔적들이라면, 독자인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의 책을 수 차례 반복해서 읽음에서 그 사람이 얻는 '앎'은 독자의 지식과 환경,
경험에 따라 다르다. 책을 읽으며 학생일 때와 책을 쓰는 입장에서 읽을 때, 평론가로서 읽을 때, 연륜이
쌓인 지금 독자로서 바라볼 때의 느낌은 전부 다른 것이다. 매번 다른 느낌을 전해 주기에 고전이라
칭하는 것이며, 다시 읽게 되는 것이다. 독자는 정 진홍이라는 지식인의 사유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또 그의 독서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읽는다'가 '느낀다'가 되려면 어떤 독서를 해야 하는지를 이 책은
가르쳐 준다. 고뇌의 흔적들과 깨달음의 경험은 올바른 독서법을 갈구하는 내게 큰 영감을 준다.
한가지 아쉬웠다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책들은 저자 분의 사유 흐름을 따라가기가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책은 '그 만의 고전'이고 나의 고전은 아니니까.... '나만의 고전'이 되려면 나 역시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소중한 포스팅을 다시 떠올려 본다. 수 많은 이들의 역사가, 경험과
사유의 흔적들이 담겨져 있을 그 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다. 나만의 고전 목록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재읽음을 요구하는 책이 고전이라면, 그 목록의 책들도 누군가의 고전이며, 지금
읽은 이 책은 나만의 고전이 될 것 같다.
다시 읽어야겠다는 끌림을 전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