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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의 외침, 아!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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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그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배화교로 알려진 파르시교(또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설한 인물로 조로아스터를 페르시아어로 ‘짜라투스트라’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전기가 아니다. 니체가 불러낸 짜라투스트라는 가공의 인물이다. 그의 입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짜라투스트라였일까? 니체가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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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그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배화교로 알려진 파르시교(또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설한 인물로 조로아스터를 페르시아어로 짜라투스트라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전기가 아니다. 니체가 불러낸 짜라투스트라는 가공의 인물이다. 그의 입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짜라투스트라였일까? 니체가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이기에 짜라투스트라를 불러낸 것일까? 짜라투스트라는 다시 인간이 되고자 한다. 그는 외친다. 신은 죽었다., 세상은 인간과 짐승과 초인이 있다. 그러면서도 신은 존재하지 않고 신들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일신교보다는 다신교적 색채가 강하다. 하지만, 그는 신에게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열망을 갖는다. 그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는 우리 인간들은 신을 사랑하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20대였고, 다시 읽는 지금은 20년 이상 지나왔다. 읽고 나서 느낌도 상당히 다르다. 그 시절의 일기를 들추어 보니, 역시 세월이 나를 변하게 하는지, 내가 세월을 따라 성숙한 것인지. 그의 외침이 목소리가 줄어든 느낌이다. 세상이란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획일적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점점 집단 속의 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책을 어려워한다. 아니 싫어한다. 그러기에 읽기를 포기하지만, 신은 죽었다는 구절만으로 이 책을 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는 철학자이다. 그러기에 사유를 하는 것이고, 인간의 고뇌를 대신 짊어진 정신적 용사인 것이다. 그 시대에 대세는 기독교였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니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많은 것을 풀어나가기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입산수도를 마친 짜라투스트라가 하산을 하여 자신의 배움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하지만, 받아들이려는 인간의 의심만을 던지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친절한 스승으로 인간에게 설한다. 세상이란? 신이란? 인간이란? 이런 것이라고. 세상은 어쩌면 철저한 질서의 체계이다 그러기에 새로운 질서는 질서가 아니다.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기에 질서를 파괴하는 악의 행동이다. 새로운 것들은 질시의 대상이 되고, 핍박을 받는다. 특히 그것이 종교와 인간을 위한 가르침이라면, 체계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항상 금기시하고 박해를 했다. 니체는 왜 종교에서 벗어나고 싶어한 걸까? 목사인 그의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아니면 진정으로 초극을 꿈꾸었는지도, 인간 니체가 더 궁금해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간직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인간이면서 나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인간 자체를 인간의 가장 길 잘든 가축으로 만든다. 인간은 우리는 행복을 만들어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똑 같은 것을 원하고 모든 사람들이다 똑같다. 사람들은 행복을 원한다.

 

무엇이 행복일까? 불행이 없으면 평이한 삶만 존재할 것이다.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단순한 존재인가. 인간은 비교를 원하기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좋은 평판과 자그마한 재산 없이는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그러기에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로 추락한다., 다행이 이 만족이 물질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신적인 것까지 확대된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자아는 만물의 척도이며, 가지이고 가장 정직한 존재이다. 자신이 육체이며, 네 육체의 큰 이성이다. 그 큰 이성은 자아를 말하지 않고, 자아를 행하는 것이다. 감각과 정신은 자만심이 매우 강하니, 자신도 감각의 눈을 구하고, 정신의 귀로 귀 기울인다. 사람 속에는 얼마간의 광기와 얼마간의 이성을 갖고 있다.

 

인간의 의지들, 진리에의 의지는 인간의 모든 존재하는 것을 우선 사유가능 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로 생명 있는 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한다. 봉사하는 자의 의지 속에서 또한 주인이 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 인간은 끊임없는 권력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초극해야만 하는 무엇이다. 보통의 삶은 자기 자신을 권력을 위해서 희생시킨다. 오직 삶이 있는 곳에만 의지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권력에 의지이다. 사랑에의 의지, 그것은 또한 죽음까지도 기꺼이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잘 모른다. 인간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인간에게 짊어지기 무거운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꼭 서로 미워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냥 존재로써 인정하기를.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 없다. 우리는 과거의 수호자로써 현재에 존재할 뿐이다.

 

온 몸에 과거의 기호를 잔뜩 써 놓고 그 기호들 위에 새로운 기호로 덕지덕지 칠을 하고, 이렇게 하여 너희는 모든 기호 해독자로부터 자기 자신을 잘 숨겨 놓았던 것이다. 너희는 신앙 그 자체의 살아있는 부정이며 모든 사상의 골절상이다.

 

인간은 모르는 존재이다. 선악을 구분하지만 진정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짜라투스트라의 신에 대한 부정. 내가 창조했던 이 신은 인간이 만든 작품으로 인간의 광기였던 것이다. 모든 신들과 똑같이 그 신은 인간이었고, 인간과 자아의 초라한 조작이 필요했다. 과연 너희가 신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한다. 그러니 모든 신들에 대해서 제발 좀 침묵해다오. 이제는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으로 인해 신은 죽었다. 신이 없는 종교가 있을까 그러기에 종교에 대해서 더 부정적인 생각을 보인다.

 

  신이 인간이 십자가에 매달리는걸 보고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는 게,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의 지옥이 되었으며 마침내 그의 죽음이 되었다. 신들은 있지만, 그러나 하나의 신은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신성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나귀에게 예배 드리고 향을 피워놓고서 찬양하는, 기이한, 경건한 연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연도는 이렇게 울렸다. 아멘! 그리고 찬양과 영예와 지혜와 감사와 영광의 힘이 영원토록 우리 신에게 있으라! 죽음이란 신들에게 있어선 언제나 하나의 편견일 뿐이다. 내겐 이러한 형상을 한 신이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신앙과 성직자, 무릎 꿇고 계단을 오르라. 너희 죄인들이여

 

짜라투스트라를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짜라투스트라에겐 신이 없다. 나는 신이 없는 짜라투스트라이다.짜라투스트라는 고독한 자이다.일 것 같다. 그는 삶의 대변자, 괴로움의 대변자, 순환의 대변자로서 우리를 부른다.

 

우리가 더 잘 즐거워하는 법을 배우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아픔을 꾸며내려는 것을 가장 잘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살기란 어렵다. 그것은 침묵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큰 사람은 용서와 동정까지도 초극하는 것이다. 나는 올바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높이는 것은 다만 다른 사람들을 낮추기 위해서이다.

 

삶은 쾌락의 샘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이 샘물이 마르지 않는 샘물인양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나 만족을 모르기에 미래라는 희망에 기대를 한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는 의심만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신이란 스스로 삶을 베는 삶인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증가시킨다., 지식으로는 그를 따를 수 없다. 학자들은 그를 따를 수 없다. 지식은 있어나, 정신은 없는 허깨비 같은 존재인 것을, 인간은 지혜에 목말라하며 만족할 줄 모른다. 일찍이 나는 눈먼 자로서 행복한 길을 갔다. 그때 너희는 그 눈먼 자의 길에 오물을 던졌었다. 최후의 행복을 나는 이젠 지복의 섬들에서 멀리 떨어진 잊혀진 바다들 사이에서 찾아야만 하는 걸까  모르면서 배우지 않고 배척을 한다. 자신의 모름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더 높은 이를 불신하고 깎아내려 스스로 평등의 자에 맞추어 버린다.

 

질서, 사상과 제도에서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속박을 받고, 그것이 진리인양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함정이다. 이것은 권력의 의지의 다른 표현이고, 비겁한 인간이 만든 거짓이다. 하지만, 인간은 철저하게 여기에 종속된다.

 

너희의 사상이 패배 당한다 하더라도 너희의 겁먹은 그것을 넘어서 개선을 외쳐야 한다. 국가가 민족이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라. 너희는 전쟁에서 지쳤고 이제 너희의 피곤함이 이 새로운 거짓 신에게 봉사한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며, 무엇보다도 권력의 지렛대인 많은 돈을 원한다. 그들 모두가 왕좌에 오르려 한다. 마치 행복이 왕좌 위에 앉아있기라도 하는 듯이. 한 민족에게는 선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다른 한 민족에게는 조롱거리, 치욕으로 불리어 왔다.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먼저 사물들 속에 가치를 심었다. 평가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만물은 정의와 형벌에 따라 도덕적으로 질서 잡혀져 있다.

 

그는 인류에게 과학은 과학으로써 만족해야지 진리를 찾는 새로운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니 진리로써 머물러야지 그것이 다른 종교의 행태를 띨 것 같음을 경고한다. 옛적부터의 공포가, 결국은 세련되고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되었고, 오늘날엔 내가 생각하기엔 과학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과학도 새로운 공포에 지나지 않는가?

 

그의 가르침. 인간이기에 가지는 수많은 약점들, 그 중에서 사랑은 가장 고독한 자의 위험이다. 살아있기 만한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사랑하려는 사람은 실로 사랑함에 있어서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은 웃기는 것이다. 너무나 너무 나 인간적인 짜라투스트라의 외침. 우리는 그의 외침을 새겨들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이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오랜 기다림 속에서 인간을 사랑했기에 인간들 속에 흔들리는 자신까지 내보인다.

 

모든 깊은 우물들의 경우엔, 체득이 느리고, 깊은 우물은 자기 밑바닥에 무엇이 떨어졌는가를 알기까지는 오래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갈 적에 사람들은 나를 비웃었고, 그리고 그때에 사실상 내발은 떨렸다.

 

그의 메시지가 무얼까  한마디로 초인이라는 새로운 인간인가? 아니면 더욱 인간다워지라는 것인지, 인간으로써 책임을 다하라는 것인지 그는 모든 시작과 진행을 인간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현실에서 우리는 이루어내야 한다. 천국의 나라도 좋지만,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이곳에서 더 사랑하고, 더 착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길인 것 같다. 삶에 더욱 충실 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열릴 것이다. 우리는 지상의 나라를 원한다. 지상에서 산다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하지만 내게 아직도 진짜 나의 인간들은 없구나.로 탄식을 하지만 이것이 그의 시간 나의 때가 왔다. 그의 희망은 우리의 미래, 우리들의 자손이었다. 그는 자손들을 위해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만족한다.

 

      너는 자식을 소망해도 괜찮을 사람인가? 너는 창조하는 자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넘어서 사랑해야 한다. 그럼으로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짜라투스트라는 자기 자신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사슬에 묶여 누워있었다. 열망이 내게 그러한 덫을 놓았던 것이다. 내가 나의 아이들의 희생물이 되고 그들로 하여 내 자신을 상실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열망이다. 너희가 단념하는 일까지도 인류의 미래라는 직물에 짜여지며, 너희는 무까지도 하나의 거미줄이며 그리고 미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미인 것이다.

 

많은 가르침을 던진 그는 우리에게, 나를 잃고서 너희 자신을 찾으라고 명한다. 신들은 모두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바란다. 이제 비로소 인간의 미래라는 산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원한다. 초인이 살게 되기를. 초인의 최선을 위해서는 최악이 필요한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 자신들 때문에 괴로워했지, 아직 인간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고민은 없고 개인에 대한 고민만을 짊어지고 인간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듯 착각한다. 우리는 인간임을 더욱 직시하고 인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길이 쉽지는 않은 길이지만,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 한 지고 가야 할 짊이기에 후손들을 위해 조금 나누어 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후예라는 희망이 있기에 이 길을 걷고 있다.

 

우리 앞에 길은 많이 있다. 단지 우리가 한길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던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인간들을 생각하면 나아가면 언젠가는 더욱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 시인이 번역한 책이라, 시적인 표현 같은 문장이 좋은 것 같다.



p*******t 2011.11.25. 신고 공감 10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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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감탄...감탄!!!
"감탄...감탄...감탄!!!" 내용보기
이 책을 소설책 쯤으로 생각하면 정말 오산일 것 같다.그렇게 생각하고 읽는다면 이내 지치고 말테니까..다시 말해서 이책은 소설처럼 줄줄 읽혀지는 맛은 없다..왜? 당연히 철학서이고 내용이 심오하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그 문장들은 꼼꼼하게 그리고 천천히 곱씹어 봐야 의미를 알수 있을 만큼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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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소설책 쯤으로 생각하면 정말 오산일 것 같다.그렇게 생각하고 읽는다면 이내 지치고 말테니까..다시 말해서 이책은 소설처럼 줄줄 읽혀지는 맛은 없다..왜? 당연히 철학서이고 내용이 심오하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그 문장들은 꼼꼼하게 그리고 천천히 곱씹어 봐야 의미를 알수 있을 만큼 깊이가 있다.1시간 동안 열심히 읽어도 5장도 못 넘겨 볼수도 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아...정말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그리고 사물에 대한 당신의 사고의 깊이가 한층 깊어 질것이다..물론 보통 사람들은 읽을 수 없다. 읽더라도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10번을 읽어도 무슨소리인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남에게 이야기 해주기 힘들것이다. 나는 자신 할수 있다. 당신이 과연 선택된 인간인지 한번 실험 해보라...이책을 끝까지 읽고 구구절절이 가슴으로 이해할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사상가다.

[인상깊은구절]
선한자나 악한자나 모두가 음독자가 되는 곳을, 나는 국가라 부른다. 선한자나 악한자나 모두가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곳을 나는 국가라 부른다. 만인의 느린 자살을 '삶'이라고 하는 곳을, 나는 국가라 부른다!
2***2 2001.0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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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웅..-_-;
"꾸웅..-_-;" 내용보기
대부분의 철학 원서들이 그러한 맛으로 읽는걸지도 모르지만, 정말 이 책은 안 읽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읽기 위해 집어들고 또 내던지기를 수십번 반복하면서 그렇게 끝까지 읽었지만 무조건 읽는데만 혈안되다보니 결국에는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대체 무얼 이야기 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인지 이해를 바란건 너무도 큰 내 바램에 머무르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읽기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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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철학 원서들이 그러한 맛으로 읽는걸지도 모르지만, 정말 이 책은 안 읽히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읽기 위해 집어들고 또 내던지기를 수십번 반복하면서 그렇게 끝까지 읽었지만 무조건 읽는데만 혈안되다보니 결국에는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대체 무얼 이야기 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인지 이해를 바란건 너무도 큰 내 바램에 머무르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면 나의 읽기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그런걸지도 모른다. 철학이란 결코 그냥 다른 사람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렇구나 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조금조금 읽어나가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고 또 자신의 생각으로 정립하려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그 철학은 자신의 것이 되고, 자기 자신에게 한발 깊숙히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더 읽어야 될지 모르는 책이 바로 이 책인 듯 하다.
q*****2 200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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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따라 모험따라 나서는 저항여행
"친구따라 모험따라 나서는 저항여행" 내용보기
가끔 사람들의 목표가 한결같다는 데에 놀라게 된다. 십인이면 십색이라고 하였고, N개의 사람에 대해 N개의 성이 존재한다고 하거늘 그것은 단지 광고쟁이의 15초 카피마냥 가벼운 팔랑임인가. 어찌 그리도 사람들의 모습에는 일반적이고 무난한 삶만이 추구된다고 여겨지는지. 그래서인가, 조금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언가에 심취해있음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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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의 목표가 한결같다는 데에 놀라게 된다. 십인이면 십색이라고 하였고, N개의 사람에 대해 N개의 성이 존재한다고 하거늘 그것은 단지 광고쟁이의 15초 카피마냥 가벼운 팔랑임인가. 어찌 그리도 사람들의 모습에는 일반적이고 무난한 삶만이 추구된다고 여겨지는지. 그래서인가, 조금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언가에 심취해있음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제 정착해야지. 철 들때도 되었잖아 

한 가지 가치만이 무미건조하게 존재할 때 그 이면에는 한 가지 명확한 실체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화폐의 가치이자 시장의 가치. 이 세상에 나를 ‘얼마짜리’로 둘 것이냐는 개량화할 수 있고 수치화할 수 있는 가치. 드디어, 나는 시장에 데뷔한다.

 

나는 드레곤마운틴의 파리때들처럼 끝자리 수를 떨구거나 올리는 일에 열중한다. 빛나는 삶이란 사라지고 노예 근성을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고상하고도 근원적인, 세상과 인류가 소통하려는 가치는 존재 불가 판정을 선고받고, 나는 내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대상을 찾아 비난을 시작한다. 나의 지선至善은 사라지고 나를 변명하기 위한 위선, 다른 가치로부터 나의 현실을 규정하는 방식으로만 가치를 찾는다. 그러나 미스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달아나거라, 나의 친구여, 너의 고독 속으로, 그리고 거칠고 힘찬 바람이 부는 곳으로. 파리 쫓는 총채가 되는 건 너의 운명이 아니다.]

 

괜한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뭘로 살아도 파리채보다는 나은 것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내가 파리를 잡지 않는다면 세상에 파리가 넘쳐나 내 목까지 파리가 넘실대게 될꺼라는 자학적 환영에서는 벗어나도 좋지 않을까. 애초부터 똑뿌러지는 가치 기준이란 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왜 그렇게도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

 

우리는 니체의 이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진리를 배우고 지식을 쌓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자. 우리에게 의무와 믿음만을 강요하는 찰떡처럼 맛나게만 믿어왔던 민족과 사회, 문화와 질서라는 주변의 모든 무게감있는 풍경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상을 세우는 일에 너무 열심히다. 영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존재가 사라지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아, 그 지랄맞은 보편성. 깐죽거리며 나를 더 넓은 세상과 조우치 못하게 방해하는 일관성. 그 모든 늪으로부터의 저항. 내가 새롭게 나와 만나고,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 저항은 [무언가]에 저항하기 위함이 아니라, 안락한 삶만이 유일한 가치임을 강조하는 지루한 세상에 언제나 [저항]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혁할 [목적]이 아니라 저항의 담론을 재생산하기 위해!

 

나이 서른의 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세계를 몰락시킬지도 모른다는 노예적 착각으로 가득한 세상에 부는 바람을 가로지르며 떠나게 되는 길 위에,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구한다. 시체를 구하는 게 아니고 또한 짐승의 무리나 신도들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저항은 그렇게 끝도 없는 시작을 길 위에서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