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제목 때문에 편견을 가지게 되는 책들이 있다. 감상적인 제목에 소설가 신경숙의 발문이라니. 제목만 힐끗 보고 한쪽으로 치워둔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내 손에 들려졌다. 그리고 일주일에 걸쳐 천천히 읽어가다가 한 3분의2 분량은 주말 밤에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을 읽는 내내 가끔씩 젖어드는 눈도 당황스러웠지만 더 난감했던 것은 당장 바로 읽었던 부분을 게시판 같은 곳에 옮기고 싶은 욕망이 불쑥불쑥 이는 것을 참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직접 소개하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다만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지금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절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윤똑똑이들이. 이 책은 갑작스럽게 뇌종양 아이의 어머니가 된 늦깎이 유학생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저자는 첫째 아이 희에게 뇌종양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결국 희는 항암 치료와 뇌종양 제거 수술을 거치면서 실명한 한쪽 눈과 시야가 아주 좁아진 나머지 눈, 그리고 몸의 약 40%가 마비되는 아이가 된다. 저자는 이런 과정에서 본인과 가족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알리기 위해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덜 힘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를 감동시킨 것은 바로 캐나다의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한 복지제도였고 또 그 제도의 빈틈을 온몸으로 메워 주는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었다. 저자는 희가 뇌종양 판정을 받자마자 본능적으로(한국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다.) 막대하게 들어갈 치료비를 걱정한다. 하지만 캐나다의 의료보험제도는 모든 것을 보험 처리를 통해서 무료로 제공해 (혹은 관련 재단의 보조금으로 해결해) 저자를 감동시킨다. 저자는 “돈 걱정 안하고 희의 병만 걱정할 수 있는 또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본인의 처지”를 돌아보면서, 희와 똑같은 병을 앓는 한국의 누군가를 생각하고 가슴이 아프다. 특히 돈만 있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소아암에 때문에 고생하는 한국의 많은 아이들과 그들의 “돈이 없어서 슬픈” 부모를 생각하면서. 가끔 북구나 영국, 캐나다의 잘 짜여진 복지제도를 언급하면서 사회복지학 교과서는 그런 시스템이 갖는 ‘비효율’을 얘기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의료보험제도(NHS)를 얘기하면서 그 단점으로 장시간 기다려야 하는 것, 시설의 노후화 등이 단점으로 언급된다. 종종 비싼 의료보험료가 도마에 오르기도 하고, 지저분한 병원과 복잡한 절차 역시 탐탁치 않게 여겨지는 것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그곳에서는 그게 안 된다고 한다. 항상 차례를 지켜야 하고, 모든 상황이 다 미리 짜인 제도 속에서 결정되니까. 그럼 그들이 우리보다 불행할까?
우리가 흔히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말과 달리 서구 복지제도는 “철저하게 인간을 무시한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그 시스템은 항상 부모가, 가족이, 이웃이 제 역할을 못할 것을 전제한 상태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부모, 가족, 이웃에게 전가하는 우리나라와는 상반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런 인간을 무시한 시스템은 자칫 사람보다 시스템이 우선하는 주객전도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자칫하면 사람 냄새가 휘발되어 없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곳곳에서 ‘정’을 강조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캐나다의 자원봉사자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는 안 된다”라고 실망하기보다는 “한국에서도 최소한 유럽식 복지국가 수준의 시스템이라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인상깊은구절] 혹 그들 중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친지나 친구가 여기 형편없다고,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한국보다 더 살기 불편하다고 투정한다면, 안심하시라. 그들은 평범하게 잘살고 있구나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험한 꼴 당하지 않고, 가족 중에 누군가 크게 아프지 않고 무사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고. 실직을 했거나 당장 먹을거리가 없는 빈민자가 되었거나 큰 사고로 혹은 병으로 병원신세를 져야 하거나 장애인이 되었을 때, 이럴 때에나 비로소 긴급하게 작동되는 정교한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런 경험 없이 큰 목소리로 비난만 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아직 무사하고도 평안한 것일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