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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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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 한장 천천히 읽기 좋아요. 작가가 말하려는 내용을 읽고 잠시 스스로 사색에 잠기기도 좋은 책입니다. 얇지만 많은 내용을 넓게 가지고 있어서 천천히 읽어 가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배송도 빠르게 온 편이라 잘 읽고 있어요. 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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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 한장 천천히 읽기 좋아요. 작가가 말하려는 내용을 읽고 잠시 스스로 사색에 잠기기도 좋은 책입니다. 얇지만 많은 내용을 넓게 가지고 있어서 천천히 읽어 가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배송도 빠르게 온 편이라 잘 읽고 있어요. 추천 합니다. 
r****e 2024.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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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_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의 책을 쓰기 시작하라.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_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의 책을 쓰기 시작하라." 내용보기
위의 도서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은게으른 나날을 보내는 나에게는 매력적인 책제목이었다.게다가 하얀 침구류 사진을 배경으로 멋진 금색 디자인이 어우러진 표지가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경쾌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는 달리이미애 번역가도 옮긴이의 말에 남겼듯이17세기 문어체로 쓰여 있고 때로 옆길로 새 나가는 등전체적으로 장황하고 산만하게 느껴져서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_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의 책을 쓰기 시작하라." 내용보기

위의 도서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게으른 나날을 보내는 나에게는 매력적인 책제목이었다.


게다가 하얀 침구류 사진을 배경으로 멋진 금색 디자인이 어우러진 표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경쾌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는 달리

이미애 번역가도 옮긴이의 말에 남겼듯이

17세기 문어체로 쓰여 있고 때로 옆길로 새 나가는 등

전체적으로 장황하고 산만하게 느껴져서 집중력 있게 읽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출간된 지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의 2018년에도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게으름, 죽음, 결혼에 대한 저자의 번뜩이는 통찰력과 함께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의 문제",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의 공포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의 책을 쓰기 시작하라.",


"결혼을 하기는 겁나지만, 

춥고 외로운 노년도 마찬가지다. ",


"문학의 어려움은 

자신이 바라는 바 그대로 정확히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데 있다. "

라는 시그니컬하면서도 인간애가 느껴지는 

여러 멋진 글귀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끈질기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느끼기엔 장황함과 산만함에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의 균형감 있는 철학과 인간애를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아 그것으로 만족한다.


다음에는 그의 대표작이자 (위의 도서와는) 다른 장르인 소설 

『보물섬』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를 읽어봐야겠다.



p.s.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Robert Louis Stevenson 


 


 


==============================



모두가 돈벌이가 되는 직업에 종사해야 하고

이에 불참할 경우에는 

책임 모독죄를 묻는 법령에 위촉되어 

거의 열광적으로 노고를 기울여야 하는 바로 요즘 세태에,

충분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즐기자고 주장하는 

다른 편의 외침은 허세와 허풍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리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른바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근면성 못지 않게 그 입장을 진술할 타당한 권리가 있다.







계속 노고를 바치고 힘겹게 언덕 꼭대기에 올라 

모든 일을 끝냈을 때 

여러분의 성취에 무관심한 사람을 마주하면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물론자는 물질주의적이지 않은 사람을 저주하고,

금융업자는 주식을 모르는 사람을 참아 주는 척하고,

문필가는 문맹자를 경멸하고,

온갖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얕본다.



이런 사정 탓에 게으름을 변명하려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은 아니다.


여러분이 사업에 반대하는 말을 했다고 감옥에 갇히지는 않겠지만,

바보처럼 말하면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어떤 주제를 다룰 대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잘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변명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달라.


확실히, 근면성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합당한 주장을 많이 늘어놓을 수 있다.


다만 근면성에 반대하면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지금 내가 하려는 바가 그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젊은이는 다분히 게을러야 한다.


매콜리 경처럼 멀쩡한 정신으로 

학교 우등상을 받지 않고 달아나는 사람이 도처에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소년들은 보관함에 넣어 두고 

나중에 꺼내 보지도 않을 메달을 받으려고 큰 대가를 치르고는 

피폐한 상태로 사회에 진출한다.


소년이 독할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더라도 매한가지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수업을 빼먹고서 활발하고 분주히 유익하게 보낸 시간은 

후회스럽지 않다.


오히려 수업중에 자다 깨다 하면서 

흐리멍덩하게 보낸 시간을 지워 버리고 싶다.


나는 학창 시절에 많은 강의에 출석했다.


팽이의 회전이 동역학적 안정성을 보여 주는 사례임을 지금도 기억한다.


Emphyteusis(영구 소작권)는 병명이 아니고

Stillicide(적하권)는 범죄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한다.


이런 단편적 지식을 내팽개칠 생각은 없지만,

땡땡이를 치면서 바깥 거리에서 얻은 잡동사니 지식만큼 

귀중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 강력한 교육의 장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술하지 않겠다.


그곳은 디킨스와 발자크가 좋아한 학교였고,

인생의 이모저모를 가르치는 여러 분야에서 

무명의 달인을 매년 많이 배출한다.


이런 말로 충분하다.


어떤 소년이 거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배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땡땡이를 치는 학생이 언제나 거리를 배회하지는 않는다.


원한다면 교외 정원을 지나 시골로 나갈 수 있다.


그는 라일락 꽃다발을 개울에 내던질 수도,

돌 위에 흐르는 시냇물 노래에 맞춰 파이프를 피워 젖힐 수도 있다.


덤불에서는 새가 지저귈 것이다.


거기서 그는 폭넓은 생각의 흐름에 빠져들어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될지 모른다.


이것이 교육이 아니라면,

무엇이 교육이란 말인가?






사실 영리한 사람은 내내 미소를 머금은 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귀로 들음으로서,

용감하게 밤을 지새우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보다 

진정한 교육을 많이 받을 것이다.


물론 힘겨운 정규 학문의 정점에 올라야만 얻을 수 있는 

차갑고 무미건조한 지식이 있다.


그러나 지식은 주위에 널려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바라보기만 하면 

따뜻하게 고동치는 삶의 사실을 얻을 수 있다.





     p 009 ~ 014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1. 인생을 위한 준비


==============================



큰 재산을 모아도 

끝까지 천박하고 애처로우리만치 둔감한 사람이 많다.


반면에 그들과 함께 인생을 출발한 게으른 자는,

미안한 말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그려 낸다.


그는 시간을 들여 제 건강과 정신을 보살폈다.


무엇보다도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했다.


심오한 학문의 전당에서 읽지는 않았어도,

탁월한 목적에 따라 위대한 책을 살짝 맛보고 대충 훑어보았다.


게으른 자의 인생 전반에 대한 

지식, 생활의 기술 일부를 얻기 위해서

학생들은 히브리어 어원에 관한 지식을,

사업가들은 반 크라운 백동화를 내놓지 않을까?


아니 게으른 자는 그런 지식보다 중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지혜말이다.


다른 사람이 각자의 취미에서 느끼는 

유치한 만족감을 많이 보아 온 그는 

자신의 취미를 빈정거리듯 너그럽게 봐줄 것이다.


그는 독단론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들을 차분하게 충분히 고려한다.


비범한 진실은 찾지 못하더라도,

논란이 분분한 거짓을 자기 의견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방식에 따라 "평범한 길"이라 불리는,

그리 번잡하지 않지만 평탄하고 쾌적한 샛길을 지나

"상식의 전망대"로 나아갈 것이다.


거기서 대단히 웅장하지는 않아도 유쾌한 전망을 볼 것이다.




     p 014 ~ 015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1. 인생을 위한 준비


==============================



우리가 가장 과소평가하는 의무행복이다.


행복함으로써 우리는 익명으로 세상에 은혜의 씨앗을 뿌린다.


그 씨앗은 우리도 모르게 남아 있고,

그것이 싹을 틔울 때 가장 놀랄 사람은 

바로 그 씨를 뿌린 사람이다.


얼마 전에 누더기를 걸친 맨발의 소년이 

구슬을 잡으려고 거리를 달려가는 폼이 너무나 명랑해서,

그 아이가 지나친 모든 사람의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 중 하나가 평소 침울한 생각에서 벗어나서는 

그 꼬마를 세워서는 용돈을 주며 말했다.


"즐거운 표정이 때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보렴."


아이가 조금 전에는 기쁘게 보였다면,

이제는 기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눈물에 젖은 아이보다 

미소 짓는 아이를 이처럼 격려하는 데 찬성한다.


나는 무대 위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눈물에 값을 치르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를 대량으로 구매할 용의가 있다.






따라서 빈둥거려야만 행복한 사람이라면 

빈둥거리며 지내야 한다.


이것은 파격적인 원칙이다.


다만 기아와 구빈원 때문에 그리 쉽게 남용될 수 없는 원칙이다.


현실적인 한계 내에서 이 원칙은 

모든 도덕률 중에서 가장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p 019 ~ 020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1. 인생을 위한 준비


==============================



결혼을 하는 사람도 많고 

과감한 전투도 많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 일정한 시간에 

음식물 1인분을 맛있고 신속하게 우리의 몸에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집어 넣는 세상에서,

우리가 이룰 것은 아주 많은 듯하다.            


또한 급히 둘러보면,

가급적 많이 성취하는 것이 

말썽 많은 인간 삶의 유일한 목표로 보인다.


하지만 정신과 관련해서는,

겉으로만 그리 보일 뿐이다.


삶이 행복할 때 우리는 하나가 다른 하나로 

끝없이 이어지는 상승 음계에서 살아간다.


앞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우리는 작은 행성에서 보잘것없는 일에 빠져 살아가고 

짧은 기간 너머로 영속하지 못하더라도,

별처럼 도달할 수 없는 희망을 품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희망의 시간을 늘려 가게 되어 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떻게 시작하는가의 문제이지 

어떻게 끝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이지 

무엇을 소유하는 가의 문제가 아니다.


열망은 영원한 기쁨이고,

토지처럼 확고한 소유물이며,

즐거운 행위라는 수입을 매년 제공하는 

결코 탕진할 수 없는 재산이다.


열망이 큰 사람은 정신의 부자다.


삶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그저 지루하고 형편없게 연출된 연극에 불과하다.


재주도 지식도 없는 사람에게 

세계는 색채의 배열이거나 

정강이뼈를 부러뜨리기 쉬운 울퉁불퉁한 보도일 뿐이다.


제 욕망과 호기심 덕에 사람은 

참을성도 발휘해 가며 계속 존재하고,

사물과 사람의 모양새에 매혹되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과 즐거움에 새로운 갈망을 느긴다.


욕망과 호기심이라는 두 눈을 통해 

가장 매혹적인 색깔로 칠해진 세상을 바라본다.


바로 그 눈 덕분에 여자는 아름답게, 

화석은 흥미롭게 보인다.


자산을 탕진하여 거지가 된 사람이라도 

이 두 개 부적이 있다면 여전히 부자처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p 023, 024

        엘도라도

           1. 인생을 위한 준비


==============================



행복한 마음으로 우리는 

이르지 못할 화살을 달에 쏘아댄다.


우리의 희망은 도달할 수 없는 엘도라도에 있다.


여기 지상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끝내지 못한다.


어떤 관심사를 뿌리째 잡아당기면 

갓처럼 스스로 새로운 씨앗을 흩뿌릴 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고통이 끝나리라 기대하겠지만 

이는 새로운 근심의 시작일 뿐이다.


아이가 이가 나고 교육을 받고 마침내 결혼하는 것을 지켜볼 때,

슬프게도 이제는 매일 새로운 두려움과 

새롭게 떨리는 다정함을 느끼게 될 뿐이다.


손자의 건강은 자식의 건강 못지않게 애처로운 걱정거리가 된다.


다른 한편 여러분은 결혼하여 아내를 맞을 때 

이제 꼭대기에 도달했으니

편안한 비탈길을 내려가리라고 생각할 터다.


그러나 구애를 끝내고 결혼 생활을 시작한 데 불과하다.


고압적이고 반항적인 사람은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사랑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고,

그러려면 남편과 아내 

둘 다 친절과 선의를 발휘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야기는 결혼식 제단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지혜와 관대함을 겨루는 가장 아름다운 시합이,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향한 

평생의 투쟁이 부부 앞에 펼쳐진다.


실현될 수 없다고? 

그렇다,

분명 실현 될 수 없다.


그들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데 끝이 없다."*

(*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전도서」12장 12절)


라고 전도자는 불평했다.


그는 직업으로서 문필업이 

얼마나 높이 칭송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사실 책을 쓰거나 실험을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재산을 모으는 데도 

끝이 없다.


문제는 문제를 낳는다.


우리가 영원히 연구하더라도 

원하는 만큼 박식해지는 일은 결코 없다.


우리는 우리 꿈에 걸맞는 조각상을 만든 적이 없다.


어떤 대륙을 발견하거나 산맥을 넘으면 

그 너머에 다른 바다나 다른 평야가 나타날 뿐이다.


우리가 신속하게 부지런히 파헤치더라도 

무한한 우주에는 또 다른 공간이 남아 있다.


그것은 마지막 장까지 읽을 수 있는 칼라일의 저서와는 다르다.


우주 한구석에서도, 

개인 정원이나 외딴 작은 마을 근방에서도, 

날씨와 계절이 지극히 오묘하게 계속 달라지므로 

평생 산책하더라도 

언제나 새로운 놀라움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지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소망은 단 한 가지다.


오직 한 가지만 완벽하게 달성할 수 있다.


바로 죽음이다.


갖가지 상황에서 죽음이 

달성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면서 불가능한 희망을 향해 

끊임없이 행군해 나아가며 기이한 광경을 연출한다.


불굴의 모험적인 개척자처럼 구는 것이다.


실로 우리는 목적지에도 도달할 리 없다.


그곳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우리가 수백 년을 살고 신의 능력을 갖추더라도,

결국에는 우리가 원했던 데 그리 가까워지지 않을 터다.


오, 힘겹게 일하는 인간의 손이여!

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싫증 내지 않고 내딛는 발이여!


머잖아 곧 눈에 띄는 산꼭대기에 이르고 아주 조금만 더 가면 

지는 해를 배경으로 엘도라도의 뾰족탑이 붎현듯 보일 것만 같다.


여러분은 자신이 받은 축복을 알지 못한다.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것은 도착하는 것보다 낫다.


진정한 성공은 힘겨운 노력 자체이기 때문이다.




     p 025 ~ 027

        엘도라도

           1. 인생을 위한 준비


==============================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너무나 급격하게 일으키고 

몹시 무섭고 우울한 결과를 가져오므로, 

인간 경험에서 이에 견줄 것이 없고 

그 유사한 것도 지상에서 찾을 수 없다. 


죽음은 맨 마지막에 일어나는 사건이므로 

다른 사건을 모두 능가한다. 


그것은 폭력배처럼 그 희생자에게 갑자기 달려들기도 하고, 

때로는 희생자의 성채를 주기적으로 포위하고 

이십 년에 걸쳐 슬며시 잠입하기도 한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의 삶에 쓰라린 혼란이 일고, 

그리 가깝지 않은 많은 벗들을 

함께 어울리게 해 주었던 연결 고리가 떨어져 나간다. 


의자가 텅 비고 홀로 산책하고 홀로 잠자리에 들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은 우리 벗을 데려가되, 

완전히 데려가지 않고 흔적을 남긴다. 


소적이고 비극적인 그 흔적은 

이내 견디기 힘들어지므로 서둘러 감춰야 한다. 


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부터 중세 유럽의 교수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주목할 만한 광경과 관습이 이어진다.


아주 가난한 사람도 무덤으로 갈 때는 행렬이 뒤따른다.


추모할 만하지 않은 사람의 묘소에도 비석이 세워진다.


우리는 옛사랑과 우정의 잔재에 대한 존중을 보여 주려고 

으스스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례식에 동행하고,

고용된 장의사는 문 앞을 누비고 다닌다.


이런 일들에 수반된 시인의 웅변은 

인간을 과오에 빠뜨리는 데 다분히 기여했다.


아니 그 과오는 수많은 철학에서 

온갖 자질구레한 논리로 구체화되고 규정되었다.


그렇지만 부산하고 신속히 흐르는 실생활에서 사람들은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위험한 과오를 저지를 시간도 실제로는 거의 없다.




     p 029, 030

        세겹의 놋쇠

           1. 인생을 위한 준비


==============================



사실 사람들은 죽음의 가능성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겁에 질려 속삭이지만,

죽음처럼 건강한 사람의 행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이 지구는 혼잡한 우주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신속하고 맹목적으로 이동하는 수백만 별들 사이에서 

똑같이 신속하고 맹목적으로 이동하다가 

무언가와 충돌함으로써 싸구려 폭죽처럼 폭발할 수 있다.


그러면 병리학적으로 볼 때,

모든 기관을 갖춘 인간의 신체는 

한 자루의 폭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배의 화약고가 배에 위험하듯이 

최소한의 폭죽만 있어도 인체 조직 전체가 위험하다.


숨을 쉴 때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폭죽에 불을 붙인다.


우리가 일부 철학자들이 주장하듯 

삶의 추상적 관념에 온 마음으로 매달리거나 

우주 만물을 끝장낼 폭발적 사건을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의 절반만큼이라도 두려워한다면,

나팔 소리가 매시간 울리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 소리를 따라 전투에 나가지 않을 터다.


출항을 알리는 깃발이 돛대에서 휘날려도 

누가 출항하는 배에 오르겠는가?


(이 철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가 얼마나 비장한 각오로 

저녁 식탁의 일상적 위험에 맞서는지 생각해 보라.


식탁이야말로 역사상 어떤 전쟁터보다도 위험해서 

아주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거기서 비참하게 뼈를 묻었다!


어떤 여자가 꼬임에 빠져 거친 바다보다도 

위험한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그리고 늙으면 어떻게 되는가?


인생 항로에서 어느 정도 나아가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밑 얼음이 얇아지는 것을 느끼고,

주위와 뒤에서 동시대인들이 빠지는 것을 본다. 


70대에 들어 지속되는 삶은 기적일 뿐이다.


밤에 노쇠한 육신을 침대에 눕히는 노인이 

다시 해를 보지 못할 가능성은 너무나 크다.


그가 실제로 그것을 염려할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더 즐거운 때는 없었다.


그들은 밤에 그로그를 마시고 추잡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동년배나 그보다 젊은 사람의 부고가 들려오면 

소름 끼치는 경고로 듣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았다는 단순하고 유치한 기쁨을 느낀다.


돌풍에 펄럭이는 촛불처럼 꺼지거나 

비틀거리다가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그들의 심장은 여전히 건강하고 겁먹지 않은 채 

웃음을 터뜨리며 노년 시절을 보낸다.




     p 030 ~ 032

        세겹의 놋쇠

           1. 인생을 위한 준비


==============================




실로 죽음의 그림자에 덮인 계곡에서 

인간이 얼마나 태연하고 명랑하게 말을 재촉하며 달리는지는 

깊이 숙고할 만한 중요한 주제다.


그 길은 황량하고 덫 천지이며,

길의 끝은 마지막 위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파멸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비 경마를 구경하러 가는 일행처럼 그 계곡을 질주한다.




     p 032 ~ 033

        세겹의 놋쇠

           1. 인생을 위한 준비


==============================



우리는 성냥불이 깜박이는 찰나를 산다.


우리가 진저비어 병의 코르크 마개를 펑 뽑는 순간 지진이 우리를 삼킨다.


그런데 우리가 진저비어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지진을 거의 무시한다는 사실은 

기묘하고, 앞뒤가 맞지 않고, 더할 나위 없는 불가사의 아닌가?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의 공포는 

그럴듯한 말이지만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어렵다.


돛의 각도를 조절하는 밧줄을 단단히 붙들지 않고 

쥠으로써 수많은 선박 사고를 면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신의 피조물은, 

규율을 잘 지키는 전문 선원이나 얼빠진 농사꾼을 제외하면 

누구나 밧줄을 꼬꼭 붙들어 맨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둔감성과 

무모한 과감성을 보여주는 기이한 일례다!



우리는 고상한 형이상학적 용어를 

일상 대화에 부적절하게 끼워 넣어서 혼란을 자초한다.


우리는 임종이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결과를 제외하면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인생살이를 어느 정도 경험하더라도, 

삶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실제로 짐작할 만큼 

높이 비상하여 초탈한 사람은 없다.


욥과 오마르 하이얌부터 토머스 칼라일과 윌트 휘트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은 오로지 생활의 고찰에서 인생의 정의로 올라서게 해 줄 

폭넓은 관점으로 인간의 상황을 바라보려는 시도다.


현인들은 삶이 덧없는 망상이자 한 편 연극이고 

꿈같은 속성을 지닌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줄 수 있는 최대한 만족감을 우리에게 준다.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은 수백 년간 같은 일을 해 왔다.


수많은 대머리들이 그 문제를 숙고하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수많은 단어가 메마르고 모호한 책 속에 차곡차곡 끝없이 쌓인 후에 

철학은 다소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이 주제에 대한 의견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삶은 "감각의 영속적 가능성" 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결론이다!


사내는 쇠고기나 사냥이나 여자는 좋아할 수 있지만

감각의 영속적 가능성은 분명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절벽을 무서워하거나 치과의나 

곤봉을 든 거구의 적 혹은 장의사를 겁낼 순 있지만,

추상적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이라는 단어를 놓고 

수십 가지 의미로 싫증 날 때까지 장난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철학에 관해 논의할 수 있지만,

한가지 사실은 언제나 참이다.


즉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의 항존(恒存)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삶(life)이 아니라 

생활(living)을 사랑한다.


조심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장래를 어느정도 고려한다.


그렇지만 어떤 인간의 눈도 

오로지 임종의 시간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건강과 좋은 날씨, 포도주, 활동적인 직업, 사랑, 자기 인정을 

어느 정도 기대하기는 하지만 이런 기대의 총합은 

삶의 가능성과 결과에 대한 전반적 전망에 이르지 못한다.


또한 이런 기대를 가장 강렬하게 품는 사람은 

일신상 안전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생활의 우연적인 사건에 깊은 관심을 두고,

각양각색의 경험을 열정적으로 즐기다 보면 

사람은 경고를 무시하게 되고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목숨을 걸기도 한다.


식이요법을 하며 건강을 위해 일정한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보다는 

위험한 곳에 밧줄을 묶는 산악 등반가나 

단단한 울타리를 흥겹게 뛰어넘는 사냥꾼이 

확실히 생활을 사랑한다.



이 문제의 양쪽에서 극히 불쾌한 허튼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맹렬한 성직자들은 

인생을 너무 짧아서 변변치 못한 장례행렬 차원으로 격하한다.


우울한 무신론자들은 

굉장히 요원한 세계이기라도 한 듯이 무덤을 갈망한다.


양쪽 다 식탁 의자를 끌어당기고 앉아 저녁을 먹을 때 

이따금 자신이 뱉은 말을 조금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로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 한 병은 

그 문제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저서들에 대한 답변이 된다.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이 따뜻해질 때 

사람은 궤변을 잊고 장밋빛 사색의 영역에 들어선다.


죽음이 지휘관의 동상처럼 찾아와 문을 두드려도,

다행히 우리 손안에 다른 것이 있으니 마음대로 두드리게 내버려 두라.


조종(弔鐘)이 온 세상에 울리고 있다.


온 세상에서 매시간 누군가는 통증과 황홀경에 작별을 고한다.


우리 앞에도 그 덫이 놓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좋아하는 나머지 죽음에 대한 공포를 품을 여유가 없다.


삶은 우리에게 평생 지속될 밀월여행이고,

가장 긴 여행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빛나는 신부에게, 식욕과 명예에, 허기진 마음의 호기심에, 

자연을 바라보는 눈의 즐거움에, 민첩한 육신에 대한 자부심에 

온 마음을 빼앗기더라도 이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감각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감각의 영속적 가능성에 관심을 두기 전에 

사람은 대체로 머리가 다 벗어지고 감각은 몹시 둔해진다.


우리가 인생을 막드른 벽(프랑스식 표현으로는 자루 끝)에

이르는 오솔길로 여기든 고귀한 운명을 맞이할 순서를 기다리며 

능력을 갈고닦는 대기실이나 체육관으로 여기든 간에, 

설교단에서 우레같이 고함을 지르는 무신론적인 

짧은 시집에서 삶의 공허와 덧없음을 훌쩍거리든 

으레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세월을 기대하든 

영구차에 타기 전 단계로서 환자용 의자에 앉으려 하든 간에,

이 온갖 관점과 상황에서 가능한 결론은 오직 하나다.


우리는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포에 귀를 틀어막고 

자기에게 주어진 경주에서 일편단심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p 033 ~ 036

        세겹의 놋쇠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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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남녀가 무엇보다도 갈고닦아야 할 자질은 

용기와 지성이다.


인생에서 우리의 불안정한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지성의 시작이고

그 사실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것이 용기의 시작이다.


너무 심스럽게 앞날을 보지 않고,

과거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는 

이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잘 된 사람의 특징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위한 준비를 마쳤을 뿐 아니라 

덤으로 좋은 친구이자 좋은 시민이 되기도 하다.


우리는 다정한 대접을 받고자 할 때 겁쟁이를 찾지 않는다.


극심한 공포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


자신의 시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있다.




     p 037

        세겹의 놋쇠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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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둔다면, 

어느 누가 삶을 시작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결국, 이렇게 투덜대는 것은 

얼마나 유감스럽고 가련한 일인가! 


온도가 일정한 응접실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결말을 간과하다니!


그런 인생은 수백 번 거듭 죽는 것이고,

그것도 십 년 내내 죽은 상태가 아닌가! 


사망으로 인한 슬픈 면책도 받지 못하고 

살아서 죽은 것이 아닌가! 


마치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련한 변화를 참을성 있게 관람하는 듯이!


영속적 가능성은 보존되어도 

감각은 암실에 보관된 

사진 건판처럼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신중하게 간직된다. 


건강을 구두쇠처럼 조금씩 허비하기보다는 

낭비벽이 있는 사람처럼 단번에 잃는 편이 낫다. 


병실에서 매일 죽는 것보다는 

사는 듯이 살고 끝내는 편이 낫다.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의 책을 쓰기 시작하라. 


의사가 일 년을 장담하지 않더라도, 

한 달을 놓고 주저하더라도, 

용감하게 밀고 나가 일주일 안에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보라. 


완성된 일에 대해서만 유용한 노고를 존중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의도를 품은 사람의 정신은 

불시에 다가온 죽음보다 오래 남는다. 


온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려고 의도한 사람은 

그것에 서명할 시간이 되기 전에 죽더라도 좋은 일을 한 것이다.







모래 삼각주의 맨 끝에 비참하게 뒤처지기보다는 

벼랑 위에서 온몸에 비지땀을 흘릴 때, 

인생은 한결 품위 있게 가라앉지 않을까? 


신이 사랑 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멋진 말을 그리스인들이 만들었을 때 

이런 죽음을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분명 그런 사람은 몇 살에 죽음에 사로잡히든 

젊어서 죽는 셈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의 가슴에서 환상을 빼앗지 못했다. 


뜨겁고 열렬한 인생에서 그는 존재의 정점에 발끝으로서서는 

단숨에 뛰어올라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망치와 끌의 소음이 가라앉지 않고 나팔 소리가 끝나지 않았을 때 

영광의 구름이 뒤따르는 가운데 이 행복한 운명의 열렬한 정신은 

정령의 땅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p 039, 040

        세겹의 놋쇠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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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에 도달한 지금 뉴헤이븐과 디에프를 

거쳐 온 것이 부끄럽지 않다.


들르기 아주 좋은 곳들이었고,

그렇게 거쳐 왔어도 목적지에 도달했다.


내가 예전에 지녔던 의견은 

지금 갖게 된 견해에 이르는 노상의 여러 단계였을 뿐이고,

지금의 견해도 다른 견해로 이르는 단계에 불과하다.


나는 젖 먹는 아기였던 시절이 부끄럽지 않듯이 

내 나름의 만능 해결책을 지닌 

맹렬한 사회주의자였던 것이 창피하지 않다. 


물론 세상은 수많은 면에서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으려면 

조금은 혹독한 시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뭔가를 하고, 뭔가가 되고, 뭔가를 믿어야 한다.


마음을 정확히 균형잡힌 공백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보다는 

균형잡힌 공백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중간 단계에 있을 뿐이더라도 열정을 품은 것은 

나중 회고할 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p 045, 046

        심술궂은노년과 청춘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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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이처럼 보수주의자가 되면서 

나는 인간의 견해라는 공통된 궤도에서 

평범한 변화의 순환을 거치며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이가 들고 체온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통풍이나 흰머리를 감수하듯이 

이런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것이 나은 변화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개탄스럽게도 더 나쁜 변화일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에 대한 선택권이 없고,

비틀거리며 쇠락하는 내 육신을 막을 수 없듯이 

마음의 이런 동향도 막을 수 없다.




     p 046

        심술궂은노년과 청춘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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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풍부한 가능성을 예견하고 

때로는 언뜻 스친 신중함에 얼어붙어 

지식의 이런저런 귀퉁이를 움켜쥐려 하면서 

두박질치듯 흘러 가는 세월은 

인간을 휩쓰는 급류 같다.


인간은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계속 이어지는 물보라와 얼마간 씨름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가떨어져 

어둡고 바닥 모를 바닷속에 가라앉는다. 


우리는 흘끗 보고 얼핏 감지할 뿐이고, 

제 지론에서 찢겨져 나와, 

빙글빙글 돌면서 삶의 이런저런 관점을 마주한다. 


마침내 자기 의견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 자는 

바보나 불한당뿐이다. 


우리는 삶의 어떤 상황을 보고는 

그것을 연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공들여 세운 견해는 

한낱 인상에 지나지 않는다. 


숨 돌릴 틈이 생기면 

그 기회를 잡아 수정하고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정신없이 서둘러 달려가는 동안에, 

소년이다 싶으면 어른이고, 

랑에 빠졌다 싶으면 결혼했거나 차였고, 

어떤 연령대에 이르렀다 싶으면 

다른 연령대가 시작되었고, 

완전히 어른이 되었다 싶으면 

무덤을 향해 쇠락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혼란스럽고 덧없이 흘러가는 상황에서 

일관성을 찾거나 

명료하고 영속적인 견해를 기대하는 일은 헛되다. 


의견을 형성하는 것은 

작은 방에서 사물을 소량 실험하는 과학이 아니다. 


우리는 권총을 머리에 댄 체 이론을 세운다.


시간이 다하기 전에 하기 전에 

우리가 직면한 일련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뿐 아니라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도 불변의 항수로 간주할 수 없다. 


이처럼 만물이 유전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듯하고, 

가장무도회에서 내 가면이 

장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싫어했던 것을 좋아하게 되고 

좋아했던 것을 싫어하게 된다.


밀턴이 예전처럼 지루해 보이지 않고 

에인즈워스는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일은 분명 더 어려워졌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전처럼 어렵지 않다. 


허세를 부려 봐야 소용이 없다. 


숨바꼭질 세 번의 멋진 승부도 어째서지 묘미를 잃었다. 


우리의 특성은 조절되거나 달라진다. 


그에 따라 의견도 조절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면,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다.


스무 살의 견해를 마흔에도 똑같이 지니고 있다면 

이십 년간 얼빠져 지내 온 것이고, 

예언자는커녕 회초리로 많이 맞아도 

현명해지지 않는 고집불통이 된 셈이다.


이는 런던 항에서 인도로 출항한 선장이 출발할 때 

템스 강 지도를 들고 갑판에 나와서는 

고집스럽게 항해 내내 

다른 지도는 사용하지 않는거나 마찬가지다.




     p 047, 048

        심술궂은노년과 청춘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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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마음과 몸이 세상의 한끝에서 다른 끝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나다닐 때다.


다른 나라의 풍속을 체험해 보고, 한밤중 종소리를 들으며, 

도시와 시골에서 일출을 보고, 어떤 부흥회에서 개종하며, 

형이상학을 두루 섭렵하고, 미숙한 시를 쓰고, 

불구경을 하러 1.6 킬로미터를 달려가며,

「에르나니」에 갈채를 보내려고 하루 종일 극장에서 기다릴 때다.


젊은 혈기의 방종에 대한 옛말에는 일말의 의미가 있다.


원기 왕성한 시절의 병을 앓지 않고 

그 시절을 영원히 끝내 버린 삶은 

예방 접종을 받지 않은 아기처럼 믿을 수 없는 대상이다. 


마지막 소설이 나올 때까지 

젊음을 화려하게 잘 간직해 온 사람이었던 비컨스필드 경은 

"참으로 놀랍게도, 경험 없는 젊은이의 감정은 

매시간 격동적으로 변한다."라고 말했다.


이 유동성은 젊은이가 보살펴야 할 

특별한 재능이고, 일종의 순결성이며, 

큰 위험을 겪어도 다치지 않고 더러운 진창길을 지나도 

진흙이 덕지덕지 묻지 않게 해 줄 마술 갑옷이다.


젊은이가 항해에 나서고, 사색하고,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두 하게 하라.


그의 영혼은 고양이처럼 목숨이 여러 개 달려 있다.


그는 어떤 기후에서도 살아갈 테고,

조금도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꽤 많은 기회가 있는데도 

결딴나는 사람은 처음부터 구해 줄 가치가 없다.


그런 사람은 강철이나 불, 분노나 진정한 기쁨으로 이뤄지지 않고 

접합제와 포장용 실로 이어 붙인 허약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p 051, 052

        심술궂은노년과 청춘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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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젊은 시절의 엉뚱한 짓을 

조금도 후회할 필요가 없다.


일면으로는 정도를 넘어선 것이었을 테고,

이는 노년의 기행이 다른 면에서 

상도를 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그런 엉뚱한 언행은 여러분의 나이에 걸맞은 것으로서 

그 연령대의 태도와 열정을 표현했지만,

여러분의 외부에 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고 

현재 상황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비판이 편파적이었음을 이제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부당했다고 인정할 필요는 없다.


말실수뿐 아니라 모든 실수는 

현재의 진실이 불완전함을 진술하는 강력한 방식이다.


젊은이의 어리석은 행동은 

아기나 젖먹이의 당혹스러운 질문 못지않게 

건전한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의 반사회적인 행동은 우리 사회의 결함을 가리킨다.


급류에 휩쓸린 사람이 바위에 부딪혀 비명을 지를 수 있고,

때로 그 비명이 어떤 이론으로 표출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셸리는 영국 국교회에 대해 애를 태우다가 

모든 악의 치유책을 보편적 무신론에서 찾아냈다.


마음이 넓은 점은이들은 사회 불의에 속을 태웠고,

그 치유책으로서 모든 제도의 폐지와 무정부주의의 천국만을 보았다.


셸리는 어리석은 청년이었다.


잘난 체하는 혁명가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죽은 듯이 있느니 바보가 되는 편이 낫다.


삶의 격렬한 충돌과 부조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절망적으로 아둔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지론을 비명처럼 내지르는 편이 낫다.


어떤 사람은 우주를 알약처럼 꿀꺽 삼키고 

뒤에서 떠밀려 미소 짓는 형상처럼 세상을 살아간다.


제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만한 두뇌를 지닌 젊은이를 내게 보내 달라!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역설적인 현실이 그 일을 도맡아서,

익살극이 끝나기 전에 본격적으로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대대적으로 쓸어 내고 베어 내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평가하고 청춘이 

노년에 건네주는 거친 교훈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며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실로 우리가 여기 지상에서 

우리의 성격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키우고 강화하며,

장차 고귀해질 삶에 대비해 더욱 공감적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스스로 최대한 분발하는 것이 최선이다.


따분하고 점잖은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 줘 봐야 

천사를 서툴게 모방한 데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서 젊은이의 의견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면,

노인의 의견도 그보다 낫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끝없는 희망은 확고한 맹신과 함께 인간의 가슴을 지배한다.


사람은 인생의 이전 단계에서 잘못했음을 매번 깨닫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전적으로 옳다는 놀라운 결론에 이를 뿐이다.


수백 년간 실패를 거듭한 후 인류는 

아직도 완벽한 입헌적 황금시대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 미로를 그토록 오랫동안 탐사했어도 보람이 없었으므로,

인간의 가련한 이성은 우리가 더 오래 탐사할 필요가 없고 

중심이 아주 가까이 있으며 샴페인을 터뜨릴 오찬이 차려져 있고 

분수로 장식되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만일 중심이 존재하지 않고 좁은 골목이 이어질 뿐이며 

온 세계가 끝도 출구도 없는 미로라면 어찌할 것인가?



일전에 엿들은 대화를 실례를 무릅쓰고 옮기겠다.


"내 주장은 진실이오."라고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지만 절대적 진실은 아니지요." 라고 상대방이 대답했다.


첫번째 사람이(그의 말에서존슨 박사의 말투가 느껴졌다.) 대답했다.


"선생, 절대적 진실 같은 것은 없소!"


실로 어떤 문제든 양면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자명하다.


역사는 그 사실을 보여 주는 긴 예증이다.


자연은 그 사실을 우리의 아둔한 머리에 넣어 주려고 내내 애써 왔다.


우리는 한순간 멈춰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그것을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인다.


광신자는 바로 이 위대한 진실을 무시함으로써,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뿐이라고

우리의 귀에다 계속 떠들어 대면서 우리를 뒤흔든다.


광신자는 혈색 좋은 멋쟁이로 잠

시 상황을 지배하고 세상을 뒤흔들어 선잠을 깨운다.


그러나 일단 그가 사라지면 영향력이 없고 

조용한 일단의 사람들이 반대쪽 면을 상기시키고 

그 관대한 기만을 허물기 시작한다.






노인은 한쪽에 서 있고

젊은이는 분명 다른 쪽에 서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양쪽 다 옳다는 것이고,

그보다 확실한 것은 양쪽다 틀리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르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하라.


다르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 차이의 한 형태라기보다는 

일치의 한 형태일지 누가 알겠는가?




     p 054

        심술궂은노년과 청춘

           1. 인생을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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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조상들보다 삶을 두려워한다. 


결혼을 하겠다든가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찾기 어렵다.


결혼을 하기는 겁나지만, 

춥고 외로운 노년도 마찬가지다. 


남자들 간의 우정은 아주 유쾌하지만 한결같이 지속되지 않는다. 


어떤 친구는 결혼하고 나면 우리를 내칠 테고, 

다른 친구는 중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오래지 않아 

이름이나 추억으로 혹은 어쩌다 보내온 

아주 읽기 힘든 편지로 남을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어떤 광신적인 생각에 빠져서 

떫은 얼굴로 우리를 쳐다볼 것임을 우리는 줄곧 안다. 


인생은 이렇게 갖가지 방식으로 

남자들을 강제로 떼어 놓고 멋진 우정을 영원히 깨뜨려 버린다. 


남자들의 우정이 지속되는 동안 그토록 기분 좋았던 

융통성과 편안함이 우정을 더 쉽게 깨뜨리고 잊히 게 한다. 


친구를 열두 명이나 둔

(이 지상에 그토록 부유한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남자는 자신의 행복이 아주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을, 

운명이 한두 번만 타격

(죽음이나 가벼운 말 몇 마디, 도장 찍힌 서류 한 장 어떤 여자의 빛나는 눈)

을 가하면 한 달 내로 행복을 전부 잃으리라는 것을 외면할 수 없다. 


불안감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결혼은 확실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두세 번이 아니라 

오직 한번의 인생에 행복을 걸어야 하므로.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러분이 

더욱 명확하고 완벽하게 합의해 나갈수록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발적 사태가 많이 일어나리라고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여러분이 

바람에 휘날려 정박지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낫을 휘두르지 않는 한, 

여러분의 집에는 늘 친구가 있었다.


바스티유 감옥에서 같은 감방에 수감되거나 

무인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은

당장 난투극을 벌이지 않는다면 

타협의 여지를 찾기 마련이다. 


그들은 상대의 행동 방식이나 기질을 알게 되어 

어느부분에서 경계해야 하는지, 

어느 부분에서 온몸으로 기댈 수 있는지를 깨달을 터다. 


처음 몇 년간의 조심성은 말년의 확고한 습관이 된다. 


그래서 지혜와 참을성을 통해 

두 사람의 인생은 뗄 수 없는 하나가 되어 간다.



그러나 안락한 결혼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결혼은 분명 너그러운 남자의 정신을 편협하고 무디게 만든다. 


결혼한 남자는 해이해지고 이기적이 되며, 

그의 도덕성은 기름이 껴서 변질한다. 


리드게이트가 로저몬드 빈시와 부적절한 결혼을 할 때뿐 아니라, 

래디슬로가 자기보다 고귀한 도로시어와 결혼할 때도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난롯가의 따뜻한 위기는 남편 마음속의 

근사한 야성을 완전히 말려 버린다.


그는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해서, 

아내를 포함해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안락과 행복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어제는 남은 동전 한 닢 까지도 남들과 나누었을 테지만, 

늘 “그의 첫 번째 의무는 자기 가족"이다. 


그는 포도주를 쌓아두고 

지극히 소중한 가장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으로 

그 의무를 대부분 완수한다.


이십 년 전에 이 남자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용감한 행위를 감행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쪽에도 적합하지 않다. 


의 영혼은 잠에 빠져서, 

어떤 말로도 그를 깨울 수 없다. 


돈키호테가 총각이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 우스가 결혼을 잘못 한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여자에게는 이런 위험이 훨씬 적다. 


여자에게 결혼은 쓸모가 많고, 

인생의 더 많은 부분을 열어 주며, 

훨씬 더 자유롭고 유용하게 살아가게 해 준다. 


그러므로 여자는 결혼을 잘하든 못하든 간에 

어떤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진실로 가장 명랑하고 진실한 여자는 노처녀이고,

노처녀들과 결혼 생활이 

진정한 모성적 손길을 지닌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사실은 안락한 결혼 생활이 

여자에게도 무언가를 제한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듯하다. 


럼에도 법칙은 확고하다. 


뛰어난 남자와 여자를 고르고 싶다면, 

좋은 총각과 좋은 아내를 선택하라.




     p 063 ~ 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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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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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사람이 사랑에 빠져야만 결혼한다면

대부분은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더라도 

집안 풍파를 겪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지만 

집 안의 애완동물로는 적합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사랑은 지나치게 격렬한 열정이라서 

어떤 경우에도 가정에 적절한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격렬한 감정이 그러듯이,

사랑은 남자의 성격에서 최고의 것뿐 아니라 

최악으로 비열한 것까지 토해 놓는다.


술에 취해서 심술궂게 굴거나 종교적 감정에 취해 소동을 벌이고 

독기를 부리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사람은 사랑에 빠져 

변덕을 부리고 질투심을 불태우고 까탈을 부린다.


세상사와 변화에 꽤 정직하고 소박하며 

친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그리한다.




     p 067, 068

        1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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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에 혹시 흥미가 이는 독자라면, 

동의하는 쪽보다는 반대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내 조언을 따를 사람이 없을 테니 

적어도 해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하려는 말은 중요하다. 


결혼은 너무나 중대하고 결정적인 조치이므로 

경박하고 변덕스러운 남자들은그에 매혹된다. 


그들은 종잡을 수 없는 돌풍과 급류에 몹시 시달려 왔고, 

불타는 갈망으로 허공의 섬을 향해 항해하거나 

람이 멎어 꼼짝달싹 못 할 때도 많았으므로, 

단단한 땅을 발로 밟을 수만 있다면 

어떤 위험 이든 무릅쓰려 한다. 


이 결사적인 선원들은 항해에 지쳐 

피로한 돛단배를 근사한 바위로 몰아간다. 


마치 결혼은 평생 이어질 탄탄대로이고, 

한여름의 일요일에 교회 종이 울릴 때나 

삶에 대한 욕망으로 잠을 이룰 수 없던 밤에 꾸었던 

꿈이 당장 이뤄질 것만 같다. 


결혼을 하고나면 자신이 차분해지고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어떤 친목 단체에 가입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단 한 번의 행동으로 

혼란과 시끌벅적함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악마의 속임수다. 


언제까지나 봄바람은 불안감을 퍼뜨릴 테고

지나가는 얼굴들은 후회를 남길 것이며,

온 세상이 귀에 대고 계속 그들을 불러낼 것이다. 


장미꽃밭이 아니라 쟁터라는 점에서 

결혼은 인생과 같은 까닭이다.




     p 076

        1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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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언제까지나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쓰라린 환멸에 직면하면서도 

우리는 행운과 건강, 나은 행실을 계속 기대한다. 


너무나 자신 있게 기대하므로 

그것을 누릴 자격은 갖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내가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쓰거나 

한니발처럼 군대를 이끌거나 

마르쿠스 아우레리우스처럼 고결한 덕을 실천하여 

유명해질 리는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희망에 부풀어 

여러 탁월한 자질이 내 몸속에서 결합되어 

성스러운 명예로 후세까지 이어지리라고 

기꺼이 믿고 싶어진다. 


우리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점은 없다. 


소년 시절부터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열망과 비행에 대해 

의도적으로 감미로우며 모호하게 생각해왔다.


"아, 잠시만 죽어 있을 수 있다면!"이라는 

톰 소여위 열망을 누구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는 

"해적절을 계속하는 한은 자신의 행동이 

절도죄라는 오명을 다시 쓰지 않으리라."

라는 두 해적의 결심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소년 시절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소년기는 끝났고,

(글쎄, 언제 끝났을까?)

스무 살에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스물다섯에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서른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직도 

그 목가적 시가의 한가운데 있을지 모른다.


인류가 수백 년간 개화되었어도 

미개한 조상의 어떤 특징을 아직 간직하듯이,

개개의 인간은 이미 나이 들어 

존중받고 영국 대법관이 되었어도 

젊은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나이 들어 가는 방식은 

황무지를 습격하는 군대와 같다.


흔히 말하듯 우리가 도달한 나이에 

전초 기지만 세워 점유하고는 행군을 처음 시작한 곳,

후방과의 병참선을 계속 열어 둔다.


우리의 진정한 기지는 그곳에 있다


그곳은 시작점일 뿐 아니라 

우리의 능력을 샘솟게 하는 원천이다.




     p 077, 078

        2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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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물머리에 말뚝을 박는다고 해서 

불가피한 밀물을 막거나 늦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은 교묘한 속임수가 통하지 않고,

결혼의 "신성한 의식"도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처럼 느껴진다.


결혼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유혹적인 무언가가 있어서 

결혼에 이르는 단계가 

지극히 단순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결혼은 쓰라린 집착들을 영원히 묻어 주겠다고 한다.


결혼은 평생 지속될, 

변함없고 친숙한 벗을 제공하고,

축복해주는 적극적 사랑이 아니라 

축복받는 수동적 사랑의 화창한 앞날을 열어 준다.


결혼에 이르려면 즐거운 구애 과정뿐 아니라 

공적 의식과 반복되는 법적 서명을 거친다.


그처럼 권위 있게 둘러진 성벽 안에서 

선량하고 다복하고 행복할 수 없다면

괴롭겠다고 사내는 당연히 짐작한다.



하지만 남자의 일생에서 

결혼만큼 성급하고 무모한 행위는 없다.


여러분이 여러 해를 그럭저럭 살아왔다고 가정해 보자.


과감하게 말하자면 여러분이 폴이나 호러스보다 

유망한 경험을 해 온 것은 아니다.


그들처럼 여러분은 이룰 수 없는 선을 보고 갈망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혐오스러운 악행을 저질렀다.


체질에 따라 진땀이나 식은땀을 흘리며 

한밤중에 깨어나서는 울적하고 놀란 마음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기 행동과 말을 돌아보았다.


때로는 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긱도 했다.


인생보다 훨씬 덜 위험한 당구 게임에서 

실수를 계속 저지른 사람이 물러나듯이.


여러분은 못된 제 행위로 

본인이 가장 예리한 상처를 입었고,

옛 명언으로 애처롭게 말하자면 

자신의 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에 기대곤 했다.


그러고 나면 자기 행위의 이면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현명하고 친절한 부분이 의식되었다.


이 모순은 그 무엇으로도 해소될 수 없어 보였고,

실로 그랬다.


여러분이 어른이라면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남자라면,

자신의 경우는 아주 특별하므로 

골치 아픈 자기 생활에 대해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다! 진심으로 인정한다!


이런 변명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여러분의 적은 자신밖에 없다고 동의하자


여러분은 영원히 무력한 

일종의 도덕적 불구라고 동의하자.


그리고 그런 운명에 대한 

순수한 동정심을 품고 여러분을 고려하도록 하자.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도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아니! 여러분은 한 인생을 이끌어 오면서 

희한하게도 실패했는데, 

이제 그 인생에 다른 인생을 결합하는 것보다 

현명한 일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인가? 


이는 여러분이 아주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했으니 

열 개의 도시를 지배하겠다고 자청하는 셈이다. 


결혼 단계로 나아가면 여러분에게 남아 있던 

위안과 변명거리도 떨어져 나간다. 


여러분은 자신의 적에 그치지 않고, 

아내의 적도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그저 아랫사람의 자세로 살아왔다. 


살면서 주위에 모질게 강타를 날리기도 했지만 

스스로 선택하거나 추진한 것이 아니였으므로 

절반의 책임밖에 없었다. 


이제 여러분은 매사를 독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이 여러분을 만들었지만 

결혼은 여러분 스스로 선택했다. 


아내의 온갖 고통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오직 여러분이다. 


가석방 죄수를 위험한 고갯길로 이끌어 가기 전에 

사람은 자신이 아는 바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계속 길을 잃었고,

그 결과를 지금도 개탄한다. 


그러면서도 능숙하게 아내 손을 잡고 

맹목적으로 끌어당겨 뒤따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알다시피 아내를 선택한 것은 여러분이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행복을 바라면서 

여러분의 희생양으로 선택한 셈이다.




     p 079 ~ 081

        2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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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결혼에서 꽁무니를 빼는 남자는 

전쟁터에서 도망가는 남자나 마찬가지다.


미덕을 발휘할 기회를 회피하는 것은 

용감하게 전진하다 쓰러지는 것보다 고약한 실패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온당하지만,

다가온 유혹에서 몰래 달아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금세기 가장 고상한 책의 가장 고상한 단락에서

늙은 교황은 젊은 영웅의 시련을,

아니 그의 부분적 실패와 불완전한 승리를 기뻐한다.


그런 남자다운 자질이 없다면,

양심이 없는 편이 낫다.


그러나 달아나도록 가르치는 것과 

한층 조심하며 행군할 수 있도록 

위험한 지점을 알려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 글의 진정한 결론은 

불안감을 떨치고,

믿음이라는 그 찬란하게 빛나는 

용감한 미덕을 껴안으라는 것이다.


희망은 소년과 같아서 눈멀고 저돌적이며 쾌할하고,

소금을 갖고 제비를 쫓아다니기 좋아한다.


믿음은 진지하고 노련하면서도 미소를 띤 어른과 같다.


희망은 무지에서 피어나지만,

두 눈을 크게 뜬 믿음은 

우리의 인생과 폭압적 상황이나 

인간의 나약한 결심에 대한 확고한 인식 위에서 자란다.


희망은 무조건적 성공을 기대하지만, 

믿음은 실패를 확신하고 명예로운 패배를 일종의 승리로 여긴다. 


희망은 친절한 옛 이교도 같지만,

믿음은 기독교 시대에 성장해서 일찌감치 겸손을 배웠다.


희망찬 기분일 때 사람은 최고의 기품과 미덕에 

당장 도약할 수 없어서 분개한다. 


믿음을 지닐 때는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하면서 한 해가 오고 갔어도 

명예를 아직까지 조금이나마 지켜냈다는 데 긍지를 느낀다. 


전자는 아내가 천사이기를 기대한다.


후자는 아내가 자신처럼 

잘못을 저지르고 경솔하며 진실하지 않거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아지려고 몸부림치며 빛을 발하고 

무력한 자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희망을 품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세상의 복잡 다단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인형은 톱밥으로 채워져 있지만 아주 좋은 장난감임을. 


희망과 사랑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완벽성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굳게 고수할 때 인생의 자극제이자 버팀대가 되어 줌을. 


여러분 자신은 허약함으로 가득 차서, 

즉 불완전함에 있어서 완전하지만, 

사랑스럽고 보존치가 있는 무언가를 내면에 지녔음을. 


대다수 인간은 

이런 졸렬한 저주를 받았지만 폭넓게 해석하면, 

이 저주가 여러분에게 교훈이자 모범이고 

평생의 고귀한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여러분은 

늘 자신의 무가치를 견디고 벗의 결함을 쉽게 용서할 것이다. 


아니 여러분은 오점을 인식하면서 현명하게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혼자들의 결함은 

서로를 끊임없이 매시간 자극해서 

한층 낫게 행동하고 더 높은 곳에서 만나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결함들 사이에서 용기와 위안을 주는 

친절한 미덕이 늘 살며시 드러날터다.




     p 087, 088

        2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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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 인간들은 지독한 바보로군!"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 퍽이 하는 말)



인간을 정말로 깜짝 놀래서 선입견을 떨쳐 버리게 하는 사건은 

인생에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 밖의 사건은 대개 예상대로 일어난다.


사건이 꼬리를 물고 실로 유쾌하고 다양하게 이어지지만,

놀랍거나 강렬한 사건은 거의 없다.


모든 사건들이 결합되어 

사색의 배경이 되거나 반주처럼 줄곧 이어질 뿐이다.


사람은 차분하고 주의 깊고 

명랑한 사고 습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고,

내일이 오늘과 어제와 똑같이 이어지리라 

기대하는 인생관을 지니게 된다.


그는 사랑에 빠진 친구와 지인들의 변덕에 익숙해질 것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대감으로 

자신에게도 사랑이 다가오기를 고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직관도, 다른 사람의 행위도 

진실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올바른 생각이나 글 중에 

개인적 경험이 아닌 것은 없다.






눈에 끼었던 막이 마침내 떨어져 나갔을 때,

남자는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상황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느긋한 반감이나 기호에 따라 행동할 게 아니라 

압도적인 감정을 상대해야 한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통과 쾌감의 가능성을 감지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불합리한 모험 그 자체다.


진부하고 합리적인 세계에서 우리는 

그것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 결과는 원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중대해진다.


어쩌면 그리 사랑스럽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두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서로의 눈을 조금 들여다본다.


둘 다 이런 일을 수십 번 겪었어도 별다른 결실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다르다.


상대방이 신의 창조물의 핵심이자 중심점이 되고,

그간 힘겹게 쌓아올린 의견이 

단 한 번의 미소에 무너지는 상태에 즉시 빠져든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의 계획은 

단 하나의 지배적인 생각과 결합되어 

우리의 사소한 보살핌은 수없는 현신이 되고,

삶 자체에 대한 사랑은 그토록 소중하고 탐나는 인간과 

같은 세상에 머물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뀐다.


그러는 동안 지인들은 망연히 바라보면서 

서로 열렬히 힘주어 묻는다.


아무개가 대체 그 여자에게서 무엇을 보는 걸까?


그 여자는 그 남자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p 089 ~ 091

        3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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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큐피드" 는 

옛 네덜란드풍 정원의 테라스 끝에서 우리에게 미소를 보내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대에게 웃으며 화살을 쏘아 댄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빨리 쏘아 대도 

사냥감은 떨어지는 그의 화살 밑에서 

흩어지고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어떤자는 화살을 맞기도 전에 떠나고,

어떤 자에게는 단 한 번 몸짓하고

단 한 번 열정적으로 외칠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모두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 세대가 가 버리고 연극이 끝나고 

삼십 년의 파노라마가 너덜너덜해져 

세계의 무대에서 물러날 때,

그 위대하고 강렬한 불멸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는지,

멋진 믿음으로 필멸의 상황을 경멸한 그 연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우리는 물을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지나간 풍류의 노래 몇 편과 기억할 만한 행위 몇 가지

그리고 부모 성향에서 행복한 기질을 물려받은 아이 몇 명을 보여 줄 뿐이다.




     p 100

        3 사랑에 빠지는 것에 관하여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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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격언은 겉으로 보기에 순전히 거짓인데도 

그 거짓에 우연히 결부된 다른 주제에 관한 

절반의 진실 때문에 세상에 통용된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퍼진 과도한 속담 하나는 

진실은 말하기 쉽고 거짓은 말하기 어렵다는 

터무니없는 진술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진심으로 좋겠다. 


그러나 그러려면 진실을 찾는 게 먼저이고 

그런 다음에 타당하고 정확하게 발언해야 한다. 


정확성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도구, 

가령 자나 수준기, 각도기가 있더라도 

정확성을 기하기는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부정확하기가 훨씬 쉽다. 


저울에 눈금을 표시하는 사람부터 

제국의 국경선이나 천체 항성의 거리를 측정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정밀한 방법을 사용하고 

끊임없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물적 정확성이나 불변의 외부 물체에 대한 

명확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달라지는 얼굴을 그리는 것은 

산의 윤곽을 그리기보다 어렵다. 


인간과 관련된 진실은 이처럼 

더 막연하고 미심쩍어서 포착하기 어렵고 

전달하기는 더욱 어렵다. 


산만한 일상적 대화에서 사실의 진실성은 

본래 단순하고 하찮은 문제이다.


이런 종류의 거짓말은, 

상황에 따라 중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거짓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상습적 거짓말쟁이가 아주 정직한 사람일 수 있으며 

아내나 친구들과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반면에 의례적인 거짓말을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과 얼굴 모두 하나의 거짓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거짓은 친밀감을 해친다. 


역으로 감정을 꾸미거나 왜곡하지 않으려는 

정조(情操)의 진실성, 관계의 진실성, 

자신의 감정과 친구에 대한진실성, 

이것이 사랑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진실이다.





뛰어난 언변은 진실에 유용하게 쓰이지 않는다면 

응접실용 재주일 뿐이다. 


문학의 어려움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의도하는 바를 쓰는 데 있고, 

그저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바 그대로 정확히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데 있다. 


저서나 공식 연설문을 쓸 때는 이런 어려움이 흔히 인정되고, 

유서를 쓰거나 명료한 편지를 쓸 때의 어려움도 모두들 인정한다. 


그러나 교양 없는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바가 한 가지 있다.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지만 그들의 기지로는 

형이상학의 비약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일상사도 이 어려운 문학적 기술로써 이뤄지고,

그 기술의 숙련도에 따라 

타인과의 교제가 자유롭고 충만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정반대의 경험을 하는 것이 주지의 사실인데도 계속해서 그리 가정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언어에 완전히 통달하지 못하면, 

가장 사랑스럽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천성적 자질이 파묻혀 썩어 버린다. 


친교의 기쁨과 사랑의 이지적 부분은 

바로 이 유머비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풍부히 넘쳐 나는 사람이더라도 

전달 매체가 부족하면 애정의 시장에 

그 어느 것도 유리하게 내놓을 수 없다. 


외국어의 경우에 이처럼 명백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린시절에 배운 모국어에도 부분적으로 해당된다.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언으로 말한다. 


어떤 방언은 풍부하고 정확하지만, 

다른 방언은 엉성하고 빈약하다. 


이상적인 화자의 말은 사실의 진실성에 꼭 들어맞고,

망토처럼 어설프게 외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운동선수의 피부처럼 선명하게 밀착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런 사람은 벗들에게 한층 명료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신생을 진정으로 가치 잇게 만드는 것,

즉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






올바로 이해하자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정신의 진실이 참된 진실성이다.




     p 101 ~ 104, 109

        4 교제의 진실성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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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감이 약하고 그리 절실하지 않은 관계라면?


진정 가치 있는 관계일까?


우리는 이해받지 못하고,

그저 불운한 일이 생길까 염려한다.


올바로 행동하려고 잘못 노력하며,

말 못 하는 방치된 애완견처럼 상대 발치에서 아양을 떤다.


때로 시선을 끌어(오랜만에 기회를 잡아) 

가련한 미소를 띠고 꼬리를 흔든다.


"그게 다예요?"

다냐고? 당신이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알겠는가?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무관심한 사람에게 인생을 허비한다면 더더욱 어리석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의 도덕률이 탁월하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기뻐해도 좋다.


우리는 남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만 

우리 마음을 이해받을 수 있다.


인간 감정과 관련된 문제에서 

가장 너그럽게 판단하는 사람이라야 

가장 호소력 있게 간청할 수 있다.




     p 111, 112

        4 교제의 진실성

           2. 사랑과 결혼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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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아주 편안한 속도로 우리를 실어 가면서 

지나치는 풍경을 거의 방해하지 않으므로 

우리 마음은 시골의 평온과 정적에 잠긴다.


달리는 객차에서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생각은 내키는 대로 인적이 드문 정거장에 내려서 

마을로 이어지는 포플러 가로수 길을 따라 올라간다.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멀리 금빛 속으로 미끄러지듯 

멀어져 가는 긴 기차를 바라보는 철도 역무원과 함께 

생각은 뒤에 남는다.




     p 122, 123

        남쪽 여행

           3. 삶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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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 상황이 이처럼 다양하고 미묘하다면,

우리 몸속 상황은 더더욱 그러하다.


세계는 인간 가슴속에 있기 때문에

어느 인간도 세계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고 솔로몬이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 내면에서 최고의 찬탄 어린 기쁨을 만들어 내는 

요인들의 조화로운 화합은 누구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요인들 중 일부는 

우리 몸의 체질에 영원히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잇는 것을 전부 열거한 후에도, 

평소보다 민감해진 병든 신경의 감수성이나, 

청각과 시각에 관여하는 귀와 눈처럼, 

실로 미적 감각에 관여하는 

두뇌의 정교하고 미세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멋진 전망과 위대한 그림에 감탄한다.


하지만 참으로 경탄스러운 것은 우리 내면의 마음이다.


마음은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세세한 것들을 그러모으고 

어떤 색깔이나 주위에 퍼지면서 

차츰 변화하는 빛과 어둠으로부터 명료한 전체를 만들어 내고, 

그것만을 그림이나 전망이라고 부른다.




     p 128

        남쪽 여행

           3. 삶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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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주장했듯 도보 여행을 그저 시골을 둘러보는 

좋거나 그저 그런 방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풍경을 둘러보는데 그만한 방법은 많이 있다. 


젠체하는 예술 애호가들은 인정 않겠지만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생생하다. 


하지만 도보 여행에서 풍경 감상은 부수적인 일이다. 


실로 도보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그림같은 풍경이 아니라 

유쾌한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침에 희망과 활기에 찬 기분으로 길을 나서고 

밤에 쉬면서 평화롭고 

정신적으로 충만한 기분을 만끽하고자 한다. 


배낭을 짊어질 때가 더 즐거운지 

벗어 놓을 때가 더 즐거운지는 알 수 없다. 


출발의 흥분은 도착의 흥분을 기대하게 한다. 


걸음을 옮기는 것은 그 자체가 보상일 뿐 아니라 

나중의 추가적인 보상도 약속한다. 


그래서 기쁨은 기쁨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나 빈둥거리거나 

한 시간 내에 8킬로미터씩 걸으려 한다.


이 두 가지를 견주어 판단해서 덕을 보지 않고, 

낮에는 온종일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 내내 다음날을 준비한다. 


지나치게 많이 걷는 사람은 

특히 도보 여행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자신은 리큐어를 큰 잔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으므로 

작은 리큐어 잔에 따라 마시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품는다.


조금 마실 때 더욱 감미롭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터무니없이 먼 길을 걸으면 온몸이 혹사하고 마비될 뿐이고, 

오감은 얼어붙고 별빛 없는 밤처럼 몽롱한 머리로 

한밤중에 여관에 도착하게 된다는 점을 믿지 못한다.


온건한 도보여행자의 포근하고 빛나는 저녁 시간이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그에게 남은 것은 

잠들기 전에는술을 두 배로 늘리고싶다는 것과 

침대에 눕고 싶다는 신체적 욕구뿐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라면 

담배 맛도 없고 씁쓸하기만 할 것이다. 


행복을 얻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두 배로 들이고도 

결국 행복을 놓치는 것이 그런 사람의 운명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과유불급이라는 옛말의 표본이다.



보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 떠나야 한다.


떼 지어 가거나 둘이 떠나도 이름만 그렇지 

실은 도보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소풍에 가깝다. 


도보 여행은 반드시 자유로워야 하므로 홀로 떠나야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추거나 계속 갈 수 있고 

이 길이나 저 길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보폭대로 걸어야지 

경보 선수 옆에서 총총걸음 치거나 

아가씨와 보조 맞춰 맵시 내며 걸어서는 안 된다. 


또한 마음이 온갖 인상에 열리고 

생각이 눈에 보이는 풍경에 물들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온갖 바람에 울리는 피리 같아야 한다. 


"걸음을 옮기려면서 말하는 것은 지혜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시골에 있을 때는 시골처럼 단조롭게 지내고 싶다.” 라고 해즐릿은 말한다. 


이것이 도보 여행에 대한 모든 진술의 핵심이다. 


아침의 사색적 침묵을 

바로 곁에서 깨뜨릴 거슬리는 목소리가 없어야 한다.


사람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야외의 많은 움직임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도취에 빠질 수 없다.


그 도취는 느긋해진 두뇌의 황홀경으로 시작해서 

이해할 수 없는 평온함으로 끝난다.




     p 137 ~ 139

        도보 여행

           3. 삶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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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걷는 동안 기분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들뜬 기분으로 출발할 때부터 

행복하고 차분한 기분으로 도착할 때까지 

확실히 많이 달라진다.


하루가 가는 동안 여행자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나아간다.


점점 더 자연 풍경에 녹아들고 

야외의 취기에 흠벅 젖어들다가

마침내 길을 재촉하고 

주위 사물을 유쾌한 꿈속에서처럼 바라본다.


처음에는 더 명랑하지만 나중에는 더 평온해진다.


하루를 마감할 때쯤이면 그는 글을 구상하지도 않고

크게 소리 내어 웃지도 않는다.


넓적다리 아래 근육이 조이는 

매순간의 순전히 동물적인 쾌감과 육신의 건강함,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끼는 즐거움이 

타인의 부재에 대한 위안을 주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목적지에 이르게 한다.



노상의 휴식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한마디 해야겠다.


언덕 위 이정표에 이르거나 깊은 숲속의 교차로에 이르면 

여러분은 배낭을 내려놓고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자기 속에 침잠한 여러분의 얼굴을 새들이 날아와서 바라본다.


둥글고 푸른 하늘 아래 담배 연기가 오후의 공기 속에 흩어지고,

햇살이 따뜻하게 발을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며 벌어진 셔츠를 한쪽으로 쓸어 간다.


이런 순간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양심이 편치 않기 때문이리라.


여러분은 길가에서 실컷 빈둥거려도 좋다.


우리가 괘종시계나 손목시계를 지붕 너머로 내던지고 

시간과 계절을 더는 기억하지 않는다면 

천년 왕국이 도래한 거나 마찬가지다.


평생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p 142, 143

        도보 여행

           3. 삶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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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너무나 귀엽게, 

꽃처럼 예쁘고 강아지처럼 순진하게 등장하는 

고향 꿈나라에 머물게 내버려 두면 편하다.


머지않아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서 나와 

사무실에 가야 하고 증인석에도 가야 한다.


오, 양심적인 부모들이여,

한동안 아이들을 너그럽게 대하라!


아직은 장난감들 가운데서 잠시 졸게 하라!


앞으로 거치고 전투적인 삶이 그들에게 전개될지 누가 알겠는가 




     p 192

        아이의 놀이

           4. 일상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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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저/이미애 역
예스24 | 애드온2


b*******s 2018.01.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