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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할 때 주문하고 지난 여름방학에 읽기 시작했다. "서양미술사"나 "미디어 철학", '씨네21'에 연재한 칼럼들을 떠올려보면 엄청 새로운 소재는 아닌데도 이번 책에 저자가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개인적으로 읽기 어려웠다. 영 진도가 안 나가 여유 없는 학기 중에는 엄두도 못 내다가 올 방학에는 꼭 완독하기를 목표로 삼았다. 드디어 다 읽었다. ㅠ_ㅠ 처음부터 "이미지 인문학 1", "이미지 인문학 2"로 세트처럼 출간했는지라 2권도 당연히 주문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방학은 다 갔으니 다음 여름방학에나 읽을 수 있을까. 언젠가는 분명히 읽어야 "이미지 인문학" 독서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래 전에 저자가 '사인을 인쇄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트위터에서 화냈던 게 생각난다. 이번 책 속표지에도 손수 사인을 해주셨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읽어와서 이제는 희미하게 인상으로만 남았고, 읽는 동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가 제대로 이해하며 읽었는지도 솔직히 확실치 않다. 부제처럼 현대에 이미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있다. 현대에는 옛날처럼 가상과 실재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이를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분야가 현대예술(특히 미디어, 사진, 컴퓨터그래픽 등)이다. 우리 모두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만 생각해도, 우리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현실과 가상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진 파타피직스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살고 있다.
"'철학'은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는 데서 출발했다. 플라톤 같은 관념론자든 데모크리토스 같은 유물론자든, 모든 철학자는 가상의 베일 뒤에 숨은 참된 실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상상과 이성,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을 봉합선 없이 이어준다. 이로써 가상과 현실 사이에 묘한 존재론적 중첩의 상태가 발생한다. 그것을 우리는 '파타피직스'라 부를 것이다. '파타피직스'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디지털 생활세계의 존재론적 특성이자, 동시에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대중의 인지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이 보여주듯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일 뿐 아니라 그 혼합현실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굳이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고 가상의 허구성을 폭로하려 해왔다면, 디지털 대중은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판단중지를 수행한다. 가상이 한갓 허구임을 알 때조차도 그들은 그것을 또 다른 현실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10쪽.
최근 사진 찍기 좋아하는 아는 동생이 '이제 예술적인 사진 찍는 일도 거의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참신한 사진을 찍는 일이 어렵다'는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경기도미술관에서 '콜라주'를 주제로 묶은 기획 전시에서 여러 사진 작품을 보았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전시를 보았더니 (전에도 보았던 작품들이었는데도) 사진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부러 봉합선을 살려둔 구본창의 사진 작품을 비롯, 현란한 합성 기술을 활용하여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장면과 상황들을 천연덕스럽게 연출한 사진들까지. 과연 동생 말대로 현대에 이미지로 예술을 할 때에는 '보다 참신할 것!!'이 핵심 강령이다. 인위적이든 자연스럽든 의외의 사물, 사람들을 한 장면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내기에 성공했느냐가 작품 자체의 존재 의미를 규정할 테다. 이 책 띠지에 써 있는 '글자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다' 라는 말 그대로, 그러한 작가의 의도를 더 잘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가질수록 관람하는 이는 현대 이미지 예술을 더욱 깊이 향유할 수 있다.
사진이 등장하면서 사물 그대로를 그리는 회화는 힘이 빠졌고, 합성 기술이 현란해지면서 사물 그대로를 보여주던 사진도 의심을 받고 있다. 인쇄술(과 공교육)이 발달한 근대 이후 구술문화는 힘을 잃고 문자가 지식에 권력을 부여했지만, 현대에는 이미지를 다루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획득한다. 글자로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을 되새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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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미지 인문학」이미지를 갖고 글을 잃다
「이미지 인문학」를 읽으며 번역이 잘 안 된 외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한글로 번역된 게 맞는데 행간의 의미 파악이 안 되고 문장 이해가 힘들다. 물론 이 책은 외서가 아니다. 이미지에 대한 포괄적인 진중권 씨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진중권 씨의 책을 한번도 읽을 적이 없어서 원래 문체가 이런지 알 길이 없다. 진중권 씨는 소통하기 힘든 글을 썼다. 표지를 보면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거라며 이미지에 중점을 뒀다. 그래서인지 글에 대해 조금 소홀한 것이 아닐까. 글과 문장은 담백하고 전달하기 쉬운 게 최고다. 내용이 어렵고 글마저 어려우면 그 책은 읽기가 힘들다. 내용이 어렵고 글이 쉽다면 그 책은 읽기 좋은 책이 된다. 하지만 내용이 쉽고 문장이 어렵다면 그것은 최악의 글이 된다. 이미지가 무엇인지 책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내용이 어려운 건지 쉬운 건지 알 도리가 없지만 문장은 분명 어렵다. 같은 내용을 가지더라도 쉬운 표현을 고를 수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본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 시기에 책은 자연의 거울로 여겨졌다. 세계를 알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전자매체의 등장과 더불어 "구텐베르크 은하"는 서서히 종언을 고한다.' 이 문장은 종이책이 전자매체에 의해 서서히 밀려나고 있음을 뜻하는 문장이다. '구텐베르크 은하'란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하여 인쇄술에 혁명을 일으킨 구텐베르크를 인용한 묘사다. 구텐베르크가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건 유명한 사실이지만 이를 평소에 인지하지 못한 독자라면 '구텐베르크 은하'가 무엇인지 한참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위 문장은 그래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문장 중 하나다. 「이미지 인문학」에는 이렇게 소통이 소홀한 문장이 가득하다. 이미지를 읽지 못하고, 설령 글자를 몰라 문맹자가 될지라도 소통할 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글자를 알고 이미지를 읽을 수 있더라도 소통할 수 없다면 그게 진정한 사회에 대한 문맹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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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미지가 텍스트를 대신하는 때가 되었다. 예전의 광고에는 구구절절 광고하는 제품의 성능과 특징과 장점을 늘어놓았지만, 이제는 제품의 이름마저 언급되지 않는 광고까지 생겼다. 이미지로 충분한 것인가.
이렇게 사소한 이미지의 힘은 가상 속의 현실, 현실 속의 가상, 현실을 만들어내는 가상 등으로 중첩되며 점점 더 힘을 늘려가고 있다. 우리 시대의 미학자 진중권 교수님은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 <이미지 인문학 1>(2014, 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에서 다양한 이미지들의 층위를 설명하신다.
부제에 나오는 '파타피직스'부터 생소한 개념이다. 책 맨 앞에 나오는 '지은이의 말'에서 저자는 포스트 디지털 시대를 맞아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디지털 생활세계의 존재론적 특성이자, 동시에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디지털 대중의 인지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이 보여주듯 오늘날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일 뿐 아니라 그 혼합현실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지칭하는 이름'(10쪽)라고 '파타피직스'를 설명한다. 그리고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인한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적'(14쪽)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우선 1장 '디지털의 철학'에서 가상에 대한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면서 플라톤의 이데아, 창세기의 원죄, 자연의 수학화 등을 설명한다. 주어진 것으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이제는 가상을 만들어간다. 이런 가상은 가상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들어가고(가상현실), 가상이 현실로 튀어나오고(증강현실), 가상이 살아 움직이는(인공생명) 진화 알고리즘을 거친다.
1장에서는 여러 우화와 문학 작품, 역사적 사실 등을 통해 설명하지만 인문학적 지식이 없는 내게는 꽤 어렵다. 그래서 실제로 가상과 현실을 융합한 실제 작품들을 예로 들어 가상과 현실을 설명하는 2장에서부터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명호 작가는 피사체 뒤에 차단막을 침으로써 현실(사진)을 가상(회화)에 가까워지게 하고(가상현실), 바다 이미지를 캔버스에 전사해서 사막의 지평선 위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로는 가상을 현실로 체현(증강현실)한다.
3장은 '파타피직스'를 전면에 내세워 초현실주의와 초합리주의, 가상과 현실의 중첩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촉각이 가상으로, 시각이 가상으로, 청각이 가상으로 이어져서 또다시 가상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칼라TV, 팝캐스트, 일베 등을 든다.
4장에서는 기록 매체인 사진의 개념 변화를 설명했다. '사진은 죽음을 기록한다. 빛의 기록photo-graphy는 곧 죽음의 기록 thanato-graphy이다.'(185쪽) 사진은 이제 사진이 찍히던 당시의 현실을 기록할 뿐 아니라 가상을 담은 회화를 닮아간다. 5장은 4장에 이어지는 개념으로, 보도, 과학, 역사 영역에서의 사진 변화를 담았다.
이렇게 다양하게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특히 일부 합성 사진 외에는 현실의 충실한 기록으로만 생각했던 사진에서 다양한 실험적 기법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았다. 이런 변화에 담긴 철학적 의미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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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책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 ‘역시’하며 감탄한다. <이미지 인문학1>은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개념들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너무 많은 작품과 디지털적 문화현상을 적절하게 예를 들고 있어 현란할 정도다.
고전 철학은 피직스(physics)와 메타피직스(metaphysics)를 구별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전제한다. 그런데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무너지고 있다. 가상과 실재, 허구와 사실이 중첩된다. 이것을 ‘파타피직스(pataphysics)’라고 한다. 진교수는 이런 현상은 선사시대(prehistory)에 있었던 주술의 원리라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로 인해 이제는 선사시대와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역사이후(post-history)의 ‘기술적 마술’이라고 이름 짓는다. 그러기에 파타피직스는 ‘묘함, 혹은 섬뜩함(uncanny)’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본래 메타피직스(形而上學)을 패러디한 ‘파타피직스’는 과학주의에 대한 반발로 고도의 지적 농담을 담아내는 사이비과학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파타피직스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와 초합리주의(surrationalism)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교수는 설명한다.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과 가상이 묘하게 중첩된다. 최근의 비디오 게임도 점점 더 현실과 가상이 중첩된다. 한 마디로 ‘파타포(pataphor)’의 능력이 힘껏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예술이나 게임 정도에 국한 되지 않는다. 파타피직스의 파타포는 이제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진교수는 협송(narrowcasting)인 ‘칼라TV’가 촛불 시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는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어떻게 파타피지컬한 놀이인지를 설명한다.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된 이 놀이가 과도하게 진지해져 정치적 파장이 커졌을 때 그것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파타피직스의 현상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일베’(일간베스트) 트롤링 사이트다. 저자는 국정원이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전략을 사용해서 젊은 층을 선거에 동원했다고 지적한다.
이 책 덕분에 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이해하고 조금은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수없이 접하는 디지털 이미지들과 현상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현시대도 현재의 나의 삶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지 인문학 2>를 검색해 본다. 아직 발행되지 않은 듯하다. 출판되는 즉시 사서 읽어야겠다. 파타피직스의 이미지로 가득찬 디지털/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나는 지금의 수많은 이미지에 어떻게 반응하고 사유하고 살아내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진중권 교수의 근간 <게이미피케이션-게임의 미학>도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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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이미지의 미학 [ 이미지 인문학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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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문학 1 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파타피직스의 세계 진중권 지음 천년의상상
인문학이라는 용어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내게 이미지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어서 더욱이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이 글을 쓴 저자가 TV에서 얼핏 본 기억 뿐인 진중권이라는 인물이다. 워낙 강하고 말 잘하고, 센 말도 서슴치 않는 인물로 그저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고, 이를 다소 순화시키려는 의도인지 몇 번 예능에서 그 모습을 비췬 바가 있어서, 그저 얼굴과 이름을 매치 시킬 수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수많은 저서를 집필한 대단한 지식인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디지털 이미지 속에 감추어진 새로운 세계와 사물. 2008년부터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미학 이후의 미학인 디지털 미학, 미디어 미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쉬지 않았던 전개해왔다고 하는 진중권이라는 인물이 두 권의 책을 통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등장한 제2차 영상문화, 제2차 구술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부제로 언급되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라는 용어부터가 너무 낯설기에 하나씩 찾아보며 책을 읽으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지만, 인내와 끈기를 바탕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먼저 파타피직스라는 용어는 과학의 패러디(parody)를 목표로 하는 엉터리 학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 말 만으로 그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저자는 수많은 사진을 제공함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 109쪽 디지털 이미지는 과거의 모상이 아니라 미래의 모형이다라는 글에 줄을 그었다. 한 번 줄을 긋기 시작하면 형광펜으로 몽땅 도배를 해도 부족할 터이지만…. 모처럼 낯익은 인물이 등장하여 반가움도 잠시, '파사드 프로젝트', '리얼 버추얼 액추얼', '메타포', '파타포', '웹캐스트', '팟캐스트', '푼크툼', '픽토리얼리즘', '크로노토피아', '스냅숏'등등의 용어가 나를 조롱하는 듯 하기도 하다. 어찌 이렇게 무지하기만 한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글자를 읽고는 있지만, 글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서 안도하는 한숨을 쉬기도 하고, 이내 또다시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대로 마지막 장을 읽고 덮으면서, 긴 시간 수고한 나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동 선거관리위원회 일을 맡고 있는 지라, 4일 지방선거를 치루면서 주민센타에서 대기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들고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 247쪽, '막대함'과 '무한함' 이 책, <이미지 인문학>은 ‘무한한 이미지’의 세계를 이미지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미학을 횡단하며,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렇게 문자로 설명을 늘어놓고도, 무슨 소리인지 싶기만 하다. 인간의 정신을 기술적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회화, 사진 등 전통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생물, DNA, 비트, 나노까지도 포함한다. 그저 흥미 위주의 추리소설이나 가벼운 소설 만 읽다가 이렇게 중후하고 묵직한 세계를 접하고 보니, 물론 그 동안의 독서에 대한 반성도 되지만, 역시 공부는 끝없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있다. 이러면서 아이들에게 인문학을 읽어야 한다느니, 공부 좀 하라느니 하는 잔소리는 좀 더 줄여야 할 지경이다.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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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어려운 이유는 평생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에게 대한 개념정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파타피직스와 언캐니를 다루고 있는 이미지 인문학은 2권으로 구성된 책이다. 진중권 교수가 쓴 책은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이미지 인문학은 그간 그가 보여준 지식세계의 일부분을 본 느낌이 들었다. 글은 말하듯 쉽게 쓰는 걸 선호하는지라 막상 수많은 개념들이 몇 페이지 안되는 지은이의 말 속에 모두 등장하는데 파타피직스, 언캐니부터 플루서, 보드리야르같은 학자는 관련 학과나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것이라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파타피직스의 개념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현실사회에 등장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을 통찰력있게 꼬집은 저자의 필력이 더해지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서서히 개념론적 원리를 수긍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다. ![]() 조금 앞선 세대인 진중권 교수처럼 같이 공유한 디지털은 모뎀으로 송수신했던 PC통신과 컴퓨터일 것이다. 대전 EXPO나 수많은 박람회, 전시회에서도 디지털 기술 안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넣은 발명품들을 많이 보아왔다. 가상세계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현실처럼 느껴지고 현실에서 보여지는 개념들이 가상세계처럼 느껴지는 파타피직스의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들이 공유하고 경험해왔던 것들이다. 예를 들면 터치스크린이 있는데 화면을 누르면 그림이 움직인다거나 기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초반에는 신기함 정도에 머물렀지만 다른 기술과 만나게 되면서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이제 빼놓을 수 없다. 전국민이 보유하다시피 한 스마트폰도 터치스크린 개념이 들어간 것인데 디지털 체계와 아날로그가 만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디지털 체계 속으로 편입된 우리들의 주변환경은 이제 신기하거나 놀랍지 않은 일상적인 세계가 되버렸다. 이 파타피직스는 많은 개념들에 포함된다. ![]() 파타피직스는 프랑스 작가인 알프레드 자리가 제안한 새로운 분과로 형이상학을 패러디한 명칭이라고 한다. 알프레드 자라가 제안한 파타피직스는 초현실주의와 초합리주의에 영향을 주었는데 파타피직스는 한마디로 상상력을 통해 가상과 실재를 화해시키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개념적 사례를 들춰봄으로써 우리 일상에서 드러난 많은 예들이 결국은 파타피직스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성필의 '마그리트의 빛', 이명호의 '나무' 연작 시리즈, 안성석의 '역사적 현재' 시리즈, 시몬 아티의 <벽 프로젝트> 연작 시리즈, 칼라 TV로 본 1인 미디어의 등장, 나꼼수로 대표되는 팟캐스트, 닌텐도의 Wii,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진의 기호학, 픽토리얼리즘, 다큐멘터리, 사회주의 팝아트, 포레스트 검프 등 진정한 지식확장을 충족시키는 책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볼 때는 그런 개념이었는지조차 몰랐는데 부제처럼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파타피직스라는 세계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 시대의 흐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왔고 현재는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요소를 편입시켜 이미지로 재현시키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영화 <아바타>나 <매트릭스>는 가상현실 속의 세계이지만 양극단을 넘나드는 공간이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근미래에 실현될 것 같은 소재인데 허공에 투사된 영상 위에 손으로 조작한다. <아이언맨>에도 등장하여서 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에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었나 싶다. 메타포에서 파타포로 넘어가다보면 은유적으로 패러디하여 표현하게 된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등장하는 체스보드 위에 말이 되어 싸우는 해리포터 일당과 소설 <겨울나라의 앨리스>는 스토리 라인이 체스의 특정 기보에 따라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앨리스는 현실의 육체가 통째 가상으로 들어간 케이스다. 19세기에 이런 상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진정으로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걸 여실히 보여준 예가 아닌가 싶다. ![]() 결론적으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미지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된 수많은 예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본다는 점이 의미있다. 진중권 교수의 필력도 대단한 것이 이론적 정립을 위해 그 유래를 깊이있게 파고들어 수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이어주고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해주기에 인문학적으로도 지식의 파도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력적인 노란색상과 고품질의 사진, 적절히 포진된 일러스트 단면 이미지와 깔끔하게 정리된 편집점은 책의 가치를 높이고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지식인이 된 듯 지적 허영심을 허용한다. 이 책을 다 읽고난 뒤 이미지 인문학 2편인 섬뜩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언캐니의 세계도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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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하면 떠오르는 건 상대방의 평가다. 이미지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평가되는가 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미지를 통해 호감과 비호감을 구분짓는 잣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신문이나 만화, 영화,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지금에 와서는 컴퓨터라는 존재로 인해 디지털 시대를 넘어 포스트디지털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이미지는 인간에게 있어서나 과학기술에 있어서 이미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지금도 그 이미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인문학도 진화하고 있다. 철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인문학이 과거의 인문학이었다면 지금은 미디어적 요소를 지향하는 인문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인식론을 추구하는 학문에서 언어론적 학문으로, 여기서 다시 미디어적 학문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문학도 책에서 영상으로 변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고,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1》을 통해 인문학의 변화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은 총 1. 2편으로 나눠서 1편에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한 철학의 변화를, 2편에서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존재하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한 세계 속에서 디지털 사진(이미지)을 중심으로 인간이 갖게 되는 감정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1권에서는 ‘파타피직스pataphysics’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데, ‘파타피직스’는 프랑스의 작가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1873~1907)가 제안한 새로운 분과로, 형이상학을 패러디한 명칭이 바로 ‘파타피직스’다. 이 책에서는 파타피직스를 사이비 과학이나 고도로 지적인 농담으로서 과학을 말하고 있는데, 가상과 현실이라는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포스트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존재에 대해 반문함과 동시에 이 시대에 인문학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나 사진(이미지)을 통해 사유하고, 철학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과거에 상상력을 대표하는 것이 은유의 능력이었다면, 이제 파타피직스가 메타피직스의 패러디인 것처럼 파타포는 메타포의 패러디다. 파타포와 메타포는 상상력의 성격이 다르다. 메타포에서는 가상과 현실이 분리된다.(...) 반면 파타포에서는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지 않고 중첩된다.(본문 126쪽 中)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디지털은 낡은 것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이 사라져서 낡아진 게 아니고, 그 반대로 아날로그 매체가 사리졌기 때문이라고 디지털의 낡음을 설명한다. 그렇다. 디지털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아니 낡은 것을 넘어 새로운 매체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즈음 인문학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엔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요, 언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기술과 인식이 조화를 이룬 ‘테크노에틱technoetic’ 인문학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고, 과학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한 인문학도 거기에 발맞추어 새로운 인문학이 계속해서 탄생할 거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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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문학1]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키워드 ‘파타피직스’
어느새 ‘디지털’이라는 낱말은 낡은 것이 되었다. ‘디지털’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어진 것은 디지털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로 아날로그 매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 p.007 ‘인문학 위기’란 결국 텍스트에 기초한 고전적 인문학의 위기다. 정보의 저장 및 전달의 매체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책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오늘날 인간의 의식은 영상으로 빚어진다. 텍스트 중심의 인문학은 이제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이미지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인문학을 요청한다. - p.008 미디어는 세계와 인간을 매개하면서, 동시에 그 둘을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세계와 인간은 미디어와 더불어 공진화한다. 이렇게 변화한 세계는 과거와는 다른 ‘존재론’을 요구하며, 그렇게 변화한 인간은 과거와는 다른 ‘인간학’을 요구한다. - p.009 저자는 현재를 포스트디지털 시대로 규정하고, 포스트디지털시대의 디지털인문학은 기존의 디지털인문학과 다른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든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키워드는 ‘이미지’다.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라는 그의 촌철살인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니콜라스 카 등 디지털 트렌드 전문가들의 분석과 궤를 같이 한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논문에서 시작하였다. 기본적으로는 2008년부터 ‘디지털 미학과 미디어 미학’을 주제로 기술미학연구회와 함께 진행했던 각종 연구와 토론, 원고들을 바탕으로 하나 이번에 단행본화하면서 대폭적으로 수정, 가필하였다. 미학자인 동시에 이 시대 대표적인 논객으로서, 특히 PC통신에서 트위터까지 온라인매체를 십분 이용해왔던 그이기에 더욱 이러한 주제를 잘 파고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지 인문학1>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미술작품 감상을 통한 포스트디지털예술과 이미지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동향과 풍경들이다.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디지털 혹은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을 구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자 ‘이미지 인문학’이다. 제목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 이 책은 한권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키워드가 다르다는 점-1권의 키워드는 ‘파타피직스’, 2권의 키워드는 ‘언캐니’-을 제외하면 각 권의 구성은 유사하다. 다만 1장과 3장 때문에 <이미지 인문학1>이 좀 더 개관적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 ‘파타파직스’는 무엇일까. 프랑스 작가 알프레드 자리가 주창한 개념으로 일종의 사이비 과학을 의미한다. ‘상상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디지털 시대의 주요 키워드는 메타포, 하이브리드, 하이퍼텍스트 등이었다.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영역과 여지가 거의 없어진 시대, 끊임없는 변주와 새로운 매체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창조자들의 숙명이다. 이러한 논의가 있은 지는 불과 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진중권의 분석에 따르면 그 시대도 벌써 종언했으며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완전히 다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지 인문학1>을 읽으며, 과거 구디지털 시대는 모더니티와의 결별이 아닌 모더니티와 현재의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교두보로서의,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이행기’는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였다. 진중권의 지적처럼 메타피직스(형이상학)와 메타포(은유)가 구디지털 시대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1장 中] 첫째 전설에서는 인간이 가상으로 걸어 들어가고, 둘째 전설에서는 가상이 현실로 튀어나오고, 셋째 전설에서는 가상이 살아 움직인다. 이 세 가지는 이미 기술적으로 실현되었다. 이 첫째 마술을 우리는 ‘가상현실’이락 부른다. 이른바 ‘몰입기술’을 통해 현실의 주체는 가상의 세계에 입장한다. 둘째 마술은 ‘증강현실’이라 불린다. 여기서는 영상인식, 위치추적 등을 통해 가상의 좌표를 현실적 좌표와 매치함으로써 가상이 현실적 공간에 중첩된다. 셋째 마술은 ‘인공생명’이라 부른다. 오늘날 이미지는 ‘진화 알고리즘’을 통해 스스로 증식하고 진화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살아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이미지다. - p.063 [2장 中]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사진은 지표성을 잃었다. 디지털 사진은 복제가 아니라 생성이나 합성의 이미지다. (...) 디지털 사진은 현실의 ‘사본’이 아니다. 그것을 여전히 ‘재현’이라 부른다면 그것이 재현하는 현실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합성 이미지는 우리 현실을 열등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 우리의 현실은 이미 현재와 잠재가 어지럽게 뒤섞인 혼합현실이다. ‘가상현실’은 어느새 ‘현실가상’이 되고 있다. - p.109 [3장 中] 과학과 기술을 전유한 상상력이라는 면에서 파타피직스는 과학과 기술을 적대시하던 과거의 낭만주의적 상상력과는 구별된다. 외려 과학과 기술을 상상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빌렘 플루서가 말하는 ‘기술적 상상력’애 근접한다. 다만 이 기술적 상상력을 진지한 목적이 아니라 지적 농담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파타피직스의 본질을 이루는 과학기술과 시적 상상력의 융합은, - p.125 [4장 中] “디지털 이미지는 전통적 사진의 시각적 사실주의보다 열등하지 않다. 완벽하게 사실적이다. 오히려 너무 사실적이다.” 디지털 이미지의 과도한 선명함은 (...) “인간의 시선보다 더 완벽한 어떤 다른 시각”, 즉 “컴퓨터의 시각”에서 나온다. 컴퓨터의 눈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그저 재현의 옛 방식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 리얼리즘을 지향하든 포토리얼리즘을 지향하든 디지털 이미지가 보여주는 현실은 언제나 ‘낯설게’ 나타난다. 그것은 디지털 이미지가 전통적 사진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 이미 고유의 미학을 추구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 p.253 [5장 中]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디지털은 사진의 기록적 성격을 파괴한다. 이로써 조롱당하는 것은 역사, 더 정확히 말하면 역사주의 의식이다. (...) 역사는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사실은 허구로, 증명은 날조로, 진리는 오락으로 대체된다. (...) 관거에 역사는 해방된 미래를 위해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하는 행위였으나, 디지털 부족에게 과거는 사극의 재료요, 미래는 SF의 배경일 뿐이다. 역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환상의 재료, 허구의 배경이자 농담의 소재일 뿐이다. - pp.312~313 플루서의 지적처럼 디지털 시대의 상상력은 ‘기술적 상상력’이다. 그리고 파타피직스가 도래한 디지털 시대의 심화기, 탈지디털 시대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 파타포의 세계이다. 실제로 지어지지 않을 가설적 건축 프로젝트 ‘아키그램’이나, 존재하지 않는 대학의 교수를 자처하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의 음악작품을 발굴해 발표하는 작곡가 피터 시켈레, 만화의 주인공을 예언자로 모시는 패러디 교회 ‘서브지니어스 교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흥미로운 것은 진중권이 포스트디지털 시대, 파타피직스의 예로 드는 것 중 상당수가 20세기(심지어 초중반까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이전의 포스트디지털적 특성, 시대 구분의 무의미성, 진중권의 안내에 따라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면면을 확인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역시나 동시대를 스스로 정의할 수는 없는 건지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의 무책임할 만큼 광범위하고 근본 없음처럼 탈디지털 시대의 특성 역시 가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중첩 속에 생동하고 있는 (역사의)‘흐름’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미지 인문학1> 책 전체도 하나의 파타피직스 놀이처럼 여겨질 정도다. 흥미를 돋우는 예술 작품 해석,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설명, 그래서 다루는 주제와 내용을 감안했을 때 생각보다 대단히 편하게 읽게 되는데 얼마만큼 많이, 정확히 이해하느냐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일 듯싶다. 모든 인문학이 그러하듯. 어쨌든 <이미지 인문학1>을 통해 누구나 얻어갈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 있는데, 가장 꼽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해외 예술가와 작품 예시도 많지만) 한상필, 이명호, 정홍섭, 안상석 등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과 현재 트렌디한 예술작품의 감상법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2권이 궁금해지게 하는 ‘언캐니’ 개념과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대중적 파타피직스 놀이 개념을 들 수 있다. 두 개념 모두 관련 단행본이 예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전자는 <이미지 인문학2>, 후자는 <게이미피케이션-게임의 미학>)이 있다. 한편 책을 읽으면서 편집에도 눈이 갔는데 주제상 총천연색에 수많은 이미지 자료가 삽입될 것은 예상했지만 본문 안에 QR코드를 넣어 독자의 하이퍼텍스팅을 유도하는 것이 재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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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철학적인 인물중 강신주와 진중권이 가장 유명하다. 재미있게도 진중권은 철학자가 아닌 미학을 전공한 후 언어 구조주의를 독일에서 공부했다. 유명인물은 많지만 한국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두 인물이다. 진중권은 그중에서도 워낙 여러 사안에 대해 끼어들기를 많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유명해졌다. 한편으로는 그가 끼어들었다는 표현보다는 그저 일반 사람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SNS에 올렸는데 기사화 되었다. 솔직히 단 한 번도 진중권이 쓴 글을 직접 읽어 본 적이 없다. 대부분 그가 썼다고 하거나 말했다고 한 것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약간 똘아이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 균형을 위한 발언으로 이해할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언론에 의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우연히 그가 출연한 예능프로를 시청하게 되었다. 예능만큼 이미지 세탁이 좋은 프로도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진중권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졌다. 그도 그저 한 명의 사람일뿐이다. 다소 많은 논쟁에 대해 언급하며 스스로 거부하지 않는 자세때문에 더 소비된 측면이 있을 뿐이지 나랑 똑같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이라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똑똑하고 유식하다는 면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상당히 많은 글을 쓰고 각장 토론 자리에 참여하지만 정작 그가 쓴 글을 읽지 않아 한 번 정도는 읽고 싶었다. (아직까지 강신주의 책을 읽지 않아 똑같은 심정이다) 미학책은 다소 딱딱할 듯 하고 이 책은 괜찮을 듯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에 사진이 많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인문학에 대해 떠든다고 하는데 분명히 구조주의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어려운 용어가 마구 썪여 있을 것은 뻔하다. 책을 들쳐보니 사진이 꽤 많다. 이러면 도전할만하다. 몇 번 읽을까하다 말았는데 이번에 읽게 되었다. 역시나 이런 책을 읽을때면 늘 느끼는 감상문이 꼭 이렇게 어렵게 써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 몰라 그러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다. 분명히 집고 넘어 갈 것은 책에 나오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고 낯설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 단어 자체가 외국말이라 한국어로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서 오는 읽기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도 끝까지 다 읽었고 읽는데 어렵다며 책 읽기를 잠시 멈춘적은 없으니 책이 꼭 어렵다고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책 자체가 이미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 어렵지만 쉽다. 용어를 나열해가며 설명하는 부분은 읽어가며 넘어가면 된다. 전체 맥락을 잘 쫓아가면 이해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이미지에 대해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이미지는 진실인가 사실인가. 이미지는 진실일수도 있고 사실일수도 있다. 이미지는 진실이 아닐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이미지 자체가 현실과는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연예인을 볼 때 한 개인 자체로 보지 않는다. 그가 대중에게 노출된 영역만큼 그를 알게된다. 그가 갖고 있는 여러 모습중에 일부인데도 일반 대중은 그 모습을 전체로 오해한다. 심지어 본인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데도 그가 출연한 역할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림에서도 실제 모습과 다른 모습을 그린다. 중세 시대 초상화는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렸다. 왕의 모습을 더 위엄있게 그리거나 의도적인 확대, 축소로 왜곡된 모습을 노출시켰다. 사진이 출현하며 진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진실이라고 믿었다. 사진은 조작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진마저 조작이 된다. 아날로그 시대에 사진 자체를 편집할 수 없다. 찍힌 사진 자체는 거짓을 말하지 않겠지만 사진을 찍히기 전 단계에서 조작은 가능하다. 살인 사건을 찍었다. 엄청난 사진이다. 하지만 찍힌 사진과 달리 이 사진은 연출된 모습이다. 이것은 진실인가, 사실인가, 조작인가, 현실인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찍는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우리가 본 사진은 진실이 아닐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얼마든지 연출된 모습을 찍어 실제와는 다른 이미지로 조작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사진을 찍은 후에 그 중에 입맛에 맞는 사진만 노출시켜 의도적으로 이미지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연예인이 춤을 출 때 사진을 찍고 그 중에 배가 순간 나오거나 - 실제 나온 것이 아니라 동작때문에 나온다 - 이상한 모습만 노출시킨다면 사람들은 연예인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이제 사진은 디지털화되며 진실여부를 따질 수 없게 되었다. 단 한번도 외국에 가 본적도 없는 사람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실제 투병하신 (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자녀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버지 실물사진과 함께 사진을 찍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였다.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없이 각 나라의 사진을 구한 후에 합성하면 된다. 합성사진을 보고 어느 누구도 진실여부는 가리지 못한다. 굳이 합성여부를 조사하지 않는다면. 이제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보고 있는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실인지 사실인지 여부는 신경쓰지 않는다.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하냐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런 흐름은 방송에서도 가상 결혼이 점점 발전하며 실제 입맞춤까지 한다. 그들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모호한 상황에 빠진다. 그들이 실제 사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프로그램에 하차하며 서로 만날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그토록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며 실제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두 남녀가 말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무협영화를 보며 '저게 무엇이냐'고 했다. 말도 안되는 영화라고 했다. 이제 무협영화는 차라리 애교다. 처음부터 현실이 아닌 영화라고 대놓고 말했지만 이제 문학작품(드라마, 영화등등)은 그 자체로 이미지화 되었다. 드라마에서 현실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귀신을 보며 마법을 체험한다. 주변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며 주변인들도 깨닫는다. 현실에서는 있음직한 일도 아닌 상황이 벌어진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시공간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똑같은 시공간인데도 사람들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제는 외계인이 등장해도 환호한다. 어른들마저. 지금은 이미지의 시대다. 문자로 되어있는 글은 읽지 않아도 영상으로 되어있는 그림은 본다. 오죽하면 사진마저 GIF를 통해 연속보여주며 활동사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할까. 볼만한 영상도 많고 책으로 읽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영상으로 접할 수 있다. 저자들이 직접 책으로 펴낸 내용을 강의와 강연으로 설명하고 촬영해서 유투브 등에 올려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문자로 되어있는 책은 시대의 종말을 맞이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할 말과 생각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각종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어디가서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읽는 내 입장에서 할 말은 '책은 다르다'이다. 영상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시청하다 멈춤할 수 있지만 시청하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할 때 이미 영상은 지속적으로 흘러간다. 반면에 책은 읽다 중단하고 내 생각을 이어간 후 다시 읽을 수 있다. 수동적으로 보이는 책읽기가 가장 능동적인 사고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미지 인문학>은 다소 용어가 낯설고 진중권이 썼다는 선입견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들지만 막상 읽을만 한다.(??) 읽는데 딱히 막히거나 이해가 안 되어 주저하는 면은 없었다. 책 내용을 자세하게 하자면 훨씬 길고 깊게 리뷰를 써야 하겠지만 그럴려면 용어까지 하나씩 다 불러내야 해 이정도로 끝낸다. 우리는 이미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미지에 속으면 안 되지만 이미지가 소비되며 현실과 가상의 차이가 무의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글을 쓴 내 이미지는 과연 맞는 것일까.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용어의 향연에 짜증날 수도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사진이 많아 기쁘다.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118580306 생각의 시대 - 로고스 생각의 시대 작가 김용규 출판 살림 발매 2014.08.27 리뷰보기 저자인 김용규의 책을 우연히도 보름동안 두 권을 읽... blog.naver.com ![]() http://blog.naver.com/ljb1202/205261317 ![]() http://blog.naver.com/ljb1202/220049751759 영장류 게임 -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영장류 게임 작가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 출판 책읽는수요일 발매 2013.03.11 리뷰보기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통치(??)... blog.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