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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봄날들, 그 봄이 꽃으로 들어찬 손바닥들을 내보이려는 순간에 "전화벨"은 울렸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작가는 새벽 세시부터 오전 아홉시까지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고요한 여섯 시간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손끝에서는, 어떤 뜨거운 것들이 번져나왔던 걸까. 뜨거운 사랑으로 말미암은 뜨거운 청춘과 부르짖음과 상처…… 그것들을 써 나가다 참지 못해 울먹이고야 마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 작품에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그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p.236 윤. 제대할 때까지 바깥세상의 누구에게도 편지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걸 보면 그런 다짐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 같다. 백지에 대고 정윤이라고 썼다가 윤이라고 썼다가 다시 정윤과 윤 사이를 열 번은 오고갔다. 지금 막 다시 윤이라고 쓰고 마침표를 찍고 오래 네 이름을 보고 앉아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남김없이 마친 후에 나는 낙엽처럼 아스러져 울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비밀 일기장을 훔쳐보고 난 뒤에 느끼는 공감과 연민같이 묵직하게 밀려오는 감정 때문이었을 테다. 오래된 공책 귀퉁이에 윤, 미루, 단, 명서, 윤교수를 차례로 끼적이기도 했다. 책 속에서 밥 먹고 잠자는 마음으로 읽어낸 쓰린 문장들을 도로 게우기 위해 애썼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몸 어딘가에 지독하게 펼쳐진 잿빛 파노라마 때문에 흐트러질 것만 같았다. 격렬하고 첨예한 시대의 흙더미 속으로 걸어들어간 청춘들. 누가, 거기에서, 그 계절 속에서, 사랑하지 않고 싶었겠는가.
p.291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이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하얗고 물렀던 초등학교 시절이었을까.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전학을 갔다. 친구가 교탁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난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나 서러웠다. 꿀컥꿀컥, 뭔지도 잘 모르는 감정을 삼키면서 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활짝 웃는 얼굴인 엄마가 "눈이 빨개졌네? 속상한 일 있었구나?" 하면 그제야 왈칵 눈물이 쏟아지곤 했었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그때 나를 꼭 안아주던 엄마, 내 집 현관 같다. 늘 그렇다. 마음으로 씌어진 글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 착 붙는다는 건, 말하지 않았는데도 안다는 건, 그래서 아픔과 죄책감으로 점철된 그 사람 가슴에 이불을 덮어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늘 그렇다.
상처를 보듬기 위해 상처를 쓰는 작가, 신경숙. 그녀의 신작『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아파하는 이에게 건네고 싶다. 운동장 지름을 따라 걷는 청춘들, 캠퍼스 가득한 녹음 속에서 사랑을 말하는 청춘들, 자신이 지나쳐온 뜨거웠던 시절을 '그래도 좋았다' 라고 추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두웠던 시대와 그 시대를 견뎌내려 애썼던 이들의 사랑과 그 사랑이 열렬하게 남기고 간 청춘의 흔적. 그 모든 것을 어디 하나 덧나지 않게 엮은 섬세함을 나누고 싶은 마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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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이라는 말에는 푸른 물이 들어있다. 돌아보면 그랬다. 새로운 곳에 소속되고, 처음 자유를 만나고, 어색한 자리들을 전전하고, 하얗게 밤을 새우고, 자꾸 도시로 들어가려고 하고, 운전을 배우고, 시간이 섬광처럼 지나가고, 낯선 곳을 두리번거리고, 자꾸 취해서 쓰러지고, 난데없이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그런 시간들을 다 지나고 돌아보면, 모든 것은 마땅한 자리로 가 있었다.
신경숙은 물 같은 담백한 문장으로 이번엔 청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가장 아픈 시절이기도 했다. 왜 청춘은, 왜 아름다움은 기쁨이지만은 않을까. 왜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할까.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내 눈물을 바깥으로 쏟아내야만 했었다면, 이번엔 가슴의 고요한 중심에 그 눈물을 내려놓게 된다. '나의 엄마'에 대한 소회와 '나 자신'에 대한 소회가 이렇듯 다른 것이다. 너무 놀라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고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되는 것처럼.
소설은 열병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또는 한 때 그러하였던 모든 이에게 보내는 한 통의 긴 편지 같다. 삶은 기쁨도 절망도 아니라고. 삶은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안고 같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옆얼굴을 보아주는 일이라고. 그리하여 이제 '나의 엄마'에게 그랬듯이, '나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깊이 안아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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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쁨 만큼이나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며 세상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는 청춘들, 병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고독감에 쌓여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한채 겉돌고 있는 정윤. 자신의 방의 창문에 검을 도화지를 붙일만큼 외부에대한 자신의 마음에도 벽을 쌓아간다.
입학과 휴학.. 그리고. 복학한 정윤의 첫 수업에서의 윤교수의 크리스토프에 관한 이야기가 가슴속에 새겨진다.
그는 강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어린 예수를 무사히 강 건너 편으로 옮겨주었다."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들이네.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 나르게" -p 63
은근히 시선을 모으는 남학생과 그의 옆에 얼굴을 숙이고있는 여학생, 윤교수의 교재타이핑을 자처한 정윤은 교수 사무실에서 그 두학생과 조우하게 된다. 예쁜외모에 쭈글쭈글하고 이상한 손을 가진 여학생, 그에대해 묘한 동질감과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 후 우연히 시위가 일어난 거리에서 남학생을 만나게되고 이 세명의 인연이 시작되게 되는데...
어떤 경우에도용기를 잃지 말라.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힘든 일은절대 생기지 않는다. - 톨스토이
애인의 죽음을 뒤따른 언니의 분신자살, 그때문에 미루의 손에 남겨진 화상상처들이 그것이었다. 속내를 공유하는 그들에게 잠시나마 밝은 빛이 스쳐간다. '오늘을 잊지말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였고, 더 이상 과거의 아픔으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매 순간이 추억이 되어 가슴에 흔적을 남겼고,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 세상과의 벽을 허무는데 성공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위태로운 마음을 의지하던 대들보 윤교수가 시대적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사임하며, 윤을 짝사랑 하던 고향친구 단이 쓸쓸히 군에서 세상을 떠나고, 미루역시 가족과의 불화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자아를 확립해야 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큰 시련을 연속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현실에 또다시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죽음 이야기가 되버렸다"는 작가의 말 따나 20대의 그들이 이겨내기엔 너무나도 큰 시련이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과연 내가 그들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겨낼수 있다는 자신감은 미루의 행적처럼 묘연해지기만 했다.
지독하리만큼 어린나이의 이들에게 '죽음'이라는 위기와 슬픔이 자주 찾아온다. 어느누가 주변사람이 다 죽어나가는데 잘 이겨낼 수 있겠는지 작가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새벽3시에 일어나 아침 9시까지 글을 썼다는 작가는 죽음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소설을 바꾸기위해 기쁜일만 생각하려 애썼다고 한다. 어둠부터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까지 글을 썼기때문일까? 다행히도 죽음으로 뒤엉킨 이 소설은 기쁨이 깃든 새벽녘의 햇살처럼 기대와 희망을 말하며 끝맺음 된다. 끝까지 우울하고 비극적이었다면 신경숙작가의 집에 전화벨좀 울려 드렸으리라..
크리스토프 와 전화벨
서로에게 힘이되어주고 손을 잡아주어야할 시기, 윤이 화상으로 일그러져버린 미루의 손을 잡아주었던것 처럼 작은 관심어린 행동과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깨어나게 한다. 책속에서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벨, 그것은 정윤이 미루에게 내민 손처럼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그리고 상처의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의 구조요청이자 나를 향해오는 손길이었다. 윤교수의 크리스토프처럼 우린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법을 배우며,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지혜를 알아가야한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 p291
슬픔을 이기지 못해 남은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고 간 단이나 미루와는 달리, 나는 윤처럼 그 모든 고뇌를 이겨내고 살아 있겠노라 다짐한다. 죽을만큼 힘들땐 나의 마음을 담은 전화를 하면 될테니..(헵시바님 전화번호는 저장중..-_-) 그리고 나를 찾는 전화벨에도 마음을 다해 대할거라고.. 힘들땐 날 찾아.
내.가.그.쪽.으.로.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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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매순간 우리에게 힘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합니다. 산다는 것은 무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어두운 상실의 터널을 지난 청춘들의 성장기
신경숙 작가의 신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할 즈음 “그냥 걸었어”라는 노래로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가수의 부고를 접했다. 비도 오고 울적해서 그냥 걸었는데, 걷다 보니 그녀의 집 앞이라는 노래. 노래 속에 전화 벨이 흐르던 노래. 한 시인은 이 노래 속 여인의 “어떡해?”라는 문장만큼 상대를 걱정해 주는 문장이 있겠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하도록 하자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엔 제목처럼 전화벨 이야기가 숱하게 나온다. 그러고 보니,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주인공 여자가 사랑하던 남자(유부남)를 마음에서 접은 것도 남자의 아내가 아이에게, “아빠에게 전화 받으시라고 해라”라는 대목에서였고, <깊은 슬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나한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전화한다고 했으면 전화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통화가 되는 핸드폰이 아니라, 누군가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 옛날 전화기. 이 책을 읽으며 그 때 그 어린 시절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 책에는 5월이면 거리는 시위 진압을 위한 최루가스로로 거리가 자욱해지고, 어떤 학생들은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던 시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두 명의 남자, 두 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많고 많은 감성 중,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답게 중간쯤 읽다 보면, 이미 슬픈 결말이 예견된다.
젊은 시절 숱한 약속들은 사라지고, 잊혀지고, 지켜지지 못한다. 청춘이란 이렇게 혹독하다. 그러나, 젊은 시절 그들의 분노와 슬픔, 치기 어린 투쟁들은 그들을 훌쩍 성장시킨다. 산다는 것은 ‘무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이므로.
책의 후반부에 두 명의 청춘은 사라지고, 두 명의 청춘은 남는다. 그리고 미력한 ‘희망’을 보이면서 끝을 낸다. 결론에 대해 극단적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신경숙 작가의 작품 중 이 정도의 ‘희망’을 보인 작품이 또 있었나…생각해보니, 처음인 것도 같다.
책을 마치고 나면, 꼭 흰 쌀밥을 지어 ‘깻잎’을 얹어 먹고 싶어진다. 그리고 ‘오늘을 기억할’ 무엇인가를 하며, ‘언젠가’ 하고 싶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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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년만에 걸려온 전화, 수화기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어디야? 하고 물었다. 소설은 처음 이렇게 시작하지만, 이것이 마음을 심난하게 만든다. 언제였던가? 이십몇년만에 걸려온 전화, 전화기에 뜬 번호는 모르는 번호임을 나타내듯 그냥 숫자만 나열되어 있었지만, 여보세요? 소리를 듣는 순간, 난 그녀임을 알아챘다. 내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간 소리 역시 어디야? 이었다. 잘 있었냐는, 어떻게 지냈냐는,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냐는 일상적인 물음이 아니라 어디야? 하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묻고는, 그 물음이 침묵으로 빠져들게 만들 수 밖에 없는 물음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채고 있었다. 사랑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죽음이야기라는 것이 또 내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다. 엄마가 자신을 이 도시로 보내고, 그리고 자신에게서 떠나가고, 단이가 그녀를 부르며 스러지는 가운데 고통을 하나, 둘 가슴속에 담아놓고 추스리기도 힘이 드는데, 또 미루 마저, 그리고 명서가 흔들리면, 어떻게 그것들을 다 감당할수 있을까. 고단한 삶 속에서 정윤은 그렇게 성장했고, 그렇게 이 도시에서 살아남았으며, 그리고 그렇게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십몇년만에 걸려온 그 전화를 받고,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정윤이 명서의 갈색노트 마지막장에 적어 넣었던 그 말, 내가 그 쪽으로 갈께! 이었다. 소설은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청춘소설이자 연애소설이기도 하고, 그리고 아픈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 젊은날의 기록이기도 하다. |
![]() 사흘의 연휴 기간동안 단 한 권의 책만을 읽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덮고 난 후, 그 어떤 책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단, 윤, 명서, 미루야...
윤교수가 눈 감기전에 손가락을 펜대삼아 제자들에게 남긴 말을, 오늘 나는 대신하고자 한다.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p354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부슬비가 내리는 오후, 노란 <어.나.벨>을 들고 홍대길을 거닐었다.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p378 '작가의 말' 중에서
공교롭게도 이 몇 자를 끄적이는 오늘은 '그 분'의 1주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위로만 요하지도 않겠다.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작고 희미한 빛을 보겠다. 빛이 되겠다.
*'힘든' 오늘을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꼭 선물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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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의 기억.. 거리로 나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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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 크리스토프라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 보았나? 크리스토프는 중세 서양의 전설에 나오는 성인 이름일세. 전래에 의하면 크리스토프는 가나안 사람이라네. 거인으로 힘이 장사였던 그는 무서운 게 없었어. 자신은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사람에게만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지. 하지만 아무리 여기저기 떠돌아도 자신을 바칠 만한 위대한 인물을 찾을 수가 없었지. 실의에 빠진 크리스토프는 어느 강가에 집을 짓고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지냈다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크리스토프는 겨우 삿대 하나만 지닌 채로, 강물이 아무리 불어나도 그 삿대로 강물을 헤쳐 나가며 사람들을 강 저편으로 건네주었다네. 배도 없이 맨몸으로 사람들을 태워 건네주는 뱃사공 역할을 한 셈이지. 어느 날 밤이었어. 크리스토프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자신을 부르는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네. 세 번째 부르는 소리에 크리스토프는 기이하게 여기며 삿대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 강으로 갔지. 어둠 속의 강가에 한 아이가 있었어. 아이는 오늘 밤 안에 강 저편으로 건너가야 한다면서 간청을 했지. 크리스토프는 깊은 밤이긴 하지만 이깟 쯤이야! 여기며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네. 그런데 크리스토프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자 강물이 마구 불어나 순식간에 키를 넘을 지경으로 강물이 범람했지. 뿐인가. 처음엔 가벼웠던 아이도 강물이 불어남에 따라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어. 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철근 같은 무게가 크리스토프의 어깨에 내려앉았지. 자신만만하던 크리스토프는 처음으로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어. 삿대로 겨우 균형을 유지하며 아이를 어깨에 태운 채 불어난 강물을 헤치고 간신히 강 저편에 이르렀지. 크리스토프가 말했지.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껏 너보다 더 무거운 사람을 실어 나른 적이 없구나.” 그 순간 아이는 사라지고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예수가 눈앞에 나타났지. 그러고는 말했다네.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page 59~61 윤교수의 강의
우리는 크리스토프일까, 아니면 그 등에 업힌 아이일까? 조금 길지만 이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얘기하며 이 일화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았다. 이 책 전체를 동맥처럼 흐르며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 정윤, 명서, 미루, 단. 네 사람의 엇갈린 사랑과 이별이, 그 과정이 살을 에듯 내게 전해져 왔다. 이 책을 뭐라 표현할까? 연애 소설?, 사회소설?, 성장소설?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힘들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지면에 오르내리는 것은 “죽음”, “절망”,“헤어짐” 이다. 네 사람은 각자가 가진 아픔과 상처를 서로를 통해 치유 받고 치유한다. 먼저 이 책의 화자 중 한 사람인 주인공 정윤은 엄마의 죽음을 목도한 후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우울한 청춘이다. 그의 대학 동기 명서와 명서의 친구 미루는 아픈 과거를 공유하며 과거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삶을 유리하고 있다. 정윤의 어릴 적 친구 단은 정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신도 알지 못하여 스스로를 벌 주고, 상처 입고, 결국엔……. 네 청춘은 함께 있을 때 더 큰 힘이 되었고,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그림자 같은 사이로 발전하지만, 한편으론 명서의 말대로 서로 알지 못했더라면 서로에게 닥칠 불행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윤은 사촌 언니집에 기거하며 스스로 몇 가지 다짐을 한다. 책을 다시 읽을 것. 책을 읽을 때마다 발견한 새로운 단어와 그 뜻을 노트에 적어 개인사전을 만들 것. 일주일에 시 한 편씩을 외울 것. 추석 때까지는 엄마 묘소에 가지 말 것. 이 도시를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걸을 것.
윤의 이러한 다짐들은 오래 전 한 사람을 보낸 나의 다짐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책을 읽을 것. 도시를 걸을 것. 시를 외울 것…… 수많은 분초를 지나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윤의 다짐을 보며 잠시 그 때 그 사람 생각도 해 보았다. 책을 읽을 때 경험하는 신비로움은 책 속 어느 단어, 어느 문장이 내 삶을 말해 줄 때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일련의 슬픔을 겪은 후 윤과 명서는 윤 교수를 찾아가고, 윤 교수는 절망에 빠진 두 청춘을 이끌고 눈 덮인 산으로 들어간다. 눈 덮인 소나무 숲에서 두 사람은 윤 교수와 함께 긴 장대로 눈을 털어내며 하는 말은 윤 교수가 삶에 지친 곧 두 사람에게 하고픈 금언이었다. 눈을 털어주게. 여기서 겨울을 지내보니 이 상태에서 내일 또 눈이 내리면 이 나뭇가지들이 견디지 못하고 뚝뚝 부러질 거야.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자네들과 내가 눈을 털어주세. 멈추지 않고 계속 눈을 털어내는 윤을 명서가 말리려 하자 윤 교수는 만류하며 스스로 멈출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한다. 청춘은 아프다. 그 아픔을 견디는 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더 애착을 갖게 될 것이다. 신경숙 작가는 이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통해 말한다. 마지막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살아 있으라. 고 나의 삶이 어디까지 이를지 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폭풍 속을 거닐고 있는가. 물결이 되어 연못 속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나는 이른 봄 추위에 얼어붙은 창백한 자작나무일 뿐인가? -릴케, 『나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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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 조금씩 조금씩 무게가 커지는 기분이 든다. 항상 소설속의 인물들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을 잠시 덮어두고 표지를 보는데 "신경숙의 글은 눈처럼 처음에는 가볍게 독자의 마음속에 쌓이다가, 책을 덮는 순간 그 가벼운 눈들이 독자의 마음에 눈사태처럼 퍼진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나 역시 이 책을 딱 덮는순간 마음속에 일렁이는 감동은 눈사태와 같았다.
○ 내가 보내고 있는 20대와 그들의 20대는 무척이나 다르고, 나는 슬퍼졌다. 부끄럽지만, '에밀리 디킨슨'이 누군지 몰라서 책을 읽는 초반부에 검색을 하면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속에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청춘의 상징'이 나에게는 낯설고 어색했다. 그리고 그렇게 '젊음'의 시기의 상징이 되는 인물이, 시, 책이 있다는게 부러웠다. 과연 지금 나를 포함하는 20대에게는 나중에 현재를 회고할만한 인물에 누가 있을까? 시를 적고, 외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청춘의 모습은 과연 어디에서 끊겨버린걸까? 그들의 청춘은 너무 암울하고 우울했다. 어쩌면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겪어나가면서 돌파구가 되어준 것들이 그들에겐 문학이고 시위였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에 실종을 겪고, 사라지고, 죽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고 뒤틀리고 꼬여나갔다. 그래도 그들은 웃고,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 비극, 그리고 또 비극 하늘하늘한 스커트 차림의 윤미루는 이 소설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살아가는 캐릭터였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언니의 삶을 항상 닮아가고, 응원하며 살아왔고, 나중에는 언니의 삶의 굴레까지 짊어지다 그렇게 운명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끝이 비극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그리고 울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중 책장을 덮을 때까지 생존해있는 인물보다 죽은 인물이 더 많을 정도로 비극적이다.
○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책에는 항상 '타자기'처럼 한 글자씩 띄어 입력하는 글귀가 등장하곤 한다. 세상은 어두침침하다. 세상은 항상 의문투성이고, 어느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이들은 웃을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간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그리고 그 아픔을 나누면서...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미루가 살아간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적어나가던 '음식물'들의 기록노트에 서로가 이야기를 남기며 '그 들의 노트'로 만들어가던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 우울한 지하방에는 백합을 심어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어나갔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화를 걸며 그렇게 항상 '의미'가 되었다. 어쩌면 항상 손에 핸드폰을 쥐고 살고, 누군가가 전화를 했다면 '부재중 통화'에 기록이 남는 그 세대와는 다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의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세상은 갈수록 실시간의 시대로 접어들어가고 있다. 항상 손끝에 전화기가 있고, 항상 누군가를 향해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이젠 공중전화기를 찾아다닐 이유도 없고, 엽서를 쓰고,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나의 생활에 순간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신경숙 작가는 책 끝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말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우리식의 청춘소설이 없는게 슬펐다고..."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고, 읽는 '재미'가 있다. 그녀에게 고맙다. 내가 몰랐던 우리나라의 청춘을 소개해줘서...! 이 순간, 왠지 누가 나에게 전화했을지 목소리를 듣기전까지 모르고 설레는 그런 전화를 받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