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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화과정이라는 이론이 있다. 엘리아스를 위시로한 학자들의 이론으로 요지는 인간의 충동억제와 자기통제의 내면화를 통해 점점 문명화된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이론이다. 이 문명화된 현재의 인간은 과거의 세련 되지 못하고 욕망과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짐승적인 충동과 욕망억제가 가능한 자기통제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문명화의 중심은 서유럽이며 문명의 접촉을 통해 오지의 여러 부족들도 점점 문명화 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문명화이론은 서유럽을 문명화의 중심에 두면서 서구문명의 우월을 내세우고 나아가 서유럽에 의해 오지의 부족 사회도 문명화 되었다는 주장은 자칫 식민지지배를 정당화 할 가능성이 있다고 뒤르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이론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 이 책 `음란과 폭력`의 저자인 한스 페터 뒤르 교수이다. 뒤르는 문명화이론을 반박하기 위하여 10여년 동안 총 5권의 책을 집필하고 한 대 묶어 문명화과정의 신화로 명명한다. 이 저서 음란과 폭력은 이 연작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문명화이론에서 과거나 문명화 되지 못한 사회는 수치심을 모르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통제되지 않은 충동으로 짐승같은 행태의 생활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 문명화된 인간은 수치심을 알고 충동 억제와 통제를 내면화하여 진보된 행태의 생활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뒤르는 그 의견에 반박한다. 현대 뿐만 아니라 과거와 문명화 되지 못한 지역사회도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통해 각 사회에서 수치심을 느꼈다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오지 부족들의 생활상에서 보여주는 여러 의복이나 생활상에서 보여주는 엄격한 규율등에서 나타나는 성에 대한 입장은 문명화된 사회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고대부터 전해져 오는 여러 문헌들을 통해서도 성에 대한 입장은 수치심을 동반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입증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성적 수치심을 가지고 있기에 되려 상대방을 모멸하고 수치심을 주기 위해 은밀한 부위를 일종의 무기로 사용하는 예는 시대와 사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방어하거나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성기를 보여주는 행위의 기록들은 오지 부족사회의 증언 부터 서유럽의 여러기록이나 증언, 매체를 통해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명화 되지 않은 부족 사회의 건물에 성기형태나 성기를 드러낸 인간의 형태 그림이나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서유럽의 여러 건축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그 의미는 악령이나 불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공통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성기가 악령이나 신에게 일종의 모멸감을 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며 이 또한 성은 수치심의 대상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성에 대한 인식이 시대와 사회를 가리지 않고 공통적인 지점이 많다는 점을 뒤르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각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관련 범죄의 유사성이나 그것을 다루는 그 시대의 인식 또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성관련 범죄에 대한 인식의 상이한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범죄자들의 변명인 `상대방의 잘못`으로 떠넘기는 듯한 뉘앙스의 변명이나 소위 문란한 여성에 대한 보복과 교육의 목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등의 증언들은 지금은 물론인요 중세부터 근대 초기, 오지 부족사회에서 조차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었다.
특히 전시상황에서의 폭력은 오히려 현대 사회로 넘어 올 수록 더 잔인한 면모를 보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고대 전쟁부터 중세 백년 전쟁이나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난 군인들이나 군중들에 의해 자행된 성범죄는 읽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하지만 월남전네 참전한 미군들의 이야기나 19세기 2차세계 대전 당시 나치, 소련의 붉은 군대등에 의해 자행된 성범죄 이야기는 그야말로 지옥을 연상케 했다. 예로 독일이 소련군에 점령당했을 당시 베를린에만 12만명, 동부에는 200만명의 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대상은 나이를 가리지 않았고 환자나 심지어 시체마저도 그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들이 고통에 시달렸으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많았다고 한다. 범죄의 구체적인 묘사는 책을 읽기 괴롭게 만들었다. 오히려 중세시대나 오지 부족, 고대의 전쟁당시 벌어진 범죄는 인간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전시상황에서 벌어진 범죄를 다룬 목차에서 한중일 얘기도 나온다)
이런 전시 상황에서 지휘관들이나 상부는 제지 하기는커녕 방관하거나 더 나아가서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문명화이론을 주장한 학자들은 는 이런 상황은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병적인 예외적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자기통제에 벗어날 만큼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문명화된 현대 인간의 전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미국대학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런 주장을 무색해 한다. 그 설문조사에서 남학생들의 과반 수 이상이 성관련 범죄를 저질렀거나 시도를 해보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뒤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에서 남태평양의 외딴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인간이 문명화 되어왔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는 사회지만 가장 은밀하고 금기된 영역으로 들어가면 인간사회는 조금도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만큼은 문명화 되었다고 생각되는 사회나 그렇지 않은 사회 모두 공통된 행태의 모습들을 보인다. 오히려 문명화되었다고 생각되는 시대와 사회에서 일어난 폭력들이 더 끔찍해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엘리아스와 달리 뒤르는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고 도시화 될수록 전통사회 보다도 충동 억제 기능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면서 미래를 암울하게 내다봤다. 이유는 전통사회에서는 인구 밀도가 적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인구밀집이 클수록 익명성 뒤에 숨어서 충동을 드러내는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뒤르는 문명화이론을 반대하는 책들을 발표한 후 엄청난 비난과 공격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문명화이론의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진영에도 공격을 받았다.(책 내용중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반하는 주장들이 보인 이유다) 그럼에도 뒤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확실히 주장해야 한다는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뒤르는 비난과 공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책을 쓴것이라 믿고 싶다. (물론 책을 읽으면 인류에 대한 희망과 애정이 사그러들지도 모르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끔찍한 이야기들 뿐만이 아니다. 문명화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수집한 방대한 자료 때문에 생전 처음들어 본 지역들과 부족들의 이름이 가득 나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뒤에 실린 주석은 저자 자신이 수집한 자료의 신빙성을 강력히 주장하려는 듯, 원문 만큼이나 방대하게 실려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 인해 이 책은 이 관련 분야의 책들 중 월등한 자료를 담은 일종의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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