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3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7.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데미안의 주제적 원형, 루이 랑베르
"데미안의 주제적 원형, 루이 랑베르" 내용보기
청소년기가 으례 그러하듯, 나 역시도 특정한 책과 음악에, 때론 영화에 온 정신이 빨려들 듯 하던 때가 있었다. 너무도 그리워 애닳은 마음으로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충만해져 오던 마음과 딱 그만큼 변해 있는 세계를 대면하곤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우리는 모두들 섬세한 감각을 지닌 분석가가 되어 책의 곳곳에 숨겨진 세계의 지도를 찾아 헤매거나, 학교라는 울타리
"데미안의 주제적 원형, 루이 랑베르" 내용보기

청소년기가 으례 그러하듯, 나 역시도 특정한 책과 음악에, 때론 영화에 온 정신이 빨려들 듯 하던 때가 있었다. 너무도 그리워 애닳은 마음으로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충만해져 오던 마음과 딱 그만큼 변해 있는 세계를 대면하곤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우리는 모두들 섬세한 감각을 지닌 분석가가 되어 책의 곳곳에 숨겨진 세계의 지도를 찾아 헤매거나, 학교라는 울타리에선 결코 만져지지 않는 현실을 책에서 찾아내는 은밀한 기쁨을 통해 성인이란 문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누구랄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붙들고 열병을 앓곤 했는데, 그 책은 다름아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작중 화자인 싱클레어는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자신이 지금껏 알아왔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서서히 알게 되는데 이러한 한 사람의 정신이 지닌 질적 도약을 책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을 아프락사스."라는 문구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의 요소를 동시에 지닌 관념적 존재인 아프락스로의 도약은 오로지 의식주로만 만족하며 구체적인 사고에 머문 유년기가 마감되고 한 개인의 의식 속에 선과 악을 포함한 광대한 사유와 상상의 세계를 품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렇듯 <데미안>은 모든 사람이 거쳐갈 수밖에 없는 정신적 성장의 한 국면에서 만나게 되는, 글로 쓰여진 다소 낯선 외모와 말투의 친구이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러한 점으로 인해 몰입의 깊이와 강도는 기존과는 사뭇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데미안>의 이러한 특성이 바로 시간 앞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책들 속에서 여전히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등불이 되어 곁에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하지만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를 접하게 되면서 결국 <데미안>의 소설적 주제가 근 100년(<데미안>은 1919년에 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세기의 시대적 고민과 성찰 등에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되면서 한동안 놀라움을 숨기긴 어려웠다. 발자크는 1832년에 헤세의 <데미안>과 조응하는 <루이 랑베르>라는 일종의 전형적인 인물을 내세웠으며, 그 형식면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서사와 서간문, 일기, 아포리즘 등을 내러티브의 전개에 따라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발자크가 문학적 실험이란 측면에서 헤세을 포괄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헤세는 발자크로부터 연원하는 소설적 주제에 천착하면서도 정신분석학적 지식을 통해 얻어진 인간 내면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러한 주제를 좀더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정교화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바로 <루이 랑베르>가 지니고 있는 문학적 의의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드디어 나는 헤세의 <데미안>, 린저의 <유리반지(한역본: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때)> 등이 품고 있는 소설적 주제의 더 넓은 바다와 만나게 되었다. <루이 랑베르>라는 원형이자 전범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말이다.

 

덧붙임: 한글로 이번에 초역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번역으로 일궈주신 송기정 교수의 노력에 한 명의 독자로서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u***f 2010.10.2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 랑베르, 천재가 행복하려면
"루이 랑베르, 천재가 행복하려면" 내용보기
진정한 천재는 과연 누구일까? 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어찌 보면 이런 순진한 질문들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순진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사상들을 쏟아내는 책이다. 이는 이 책의 주인공 루이 랑베르의 모습과도 닮은꼴이다. 루이 랑베르는 간단히 말해서, 그냥 천재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루이 랑베르, 천재가 행복하려면" 내용보기

 

 진정한 천재는 과연 누구일까? 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어찌 보면 이런 순진한 질문들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런 순진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사상들을 쏟아내는 책이다. 이는 이 책의 주인공 루이 랑베르의 모습과도 닮은꼴이다. 루이 랑베르는 간단히 말해서, 그냥 천재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실체는 매우 복잡하고 다사다난하게 해석된다.

 

 작가 발자크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루이 랑베르>라는 책을 읽고, 꽤나 어렵고 심오한 책이라고 느꼈다. 그런 탓에 리뷰를 쓰기도 조심스럽다. 내가 던지는 감상 하나하나가, 이 천재 루이 랑베르에 대한 또 다른 얽히고설킨 해석이 될까 걱정이 되서다. 그렇기에, 그저 간단하게 이 책을 읽은 나의 감상에 대해 써볼까 한다.

 

 <루이 랑베르>는 절대적 사유에 이름으로써 인간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필연적인 실패라는 주제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이것은 철학 소설을 비롯한 발자크 작품 전체의 일관된 주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화자는 루이 랑베르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에 비유한다.

 

 

랑베르의 한숨을 통해 나는 슬픔에 대한 찬미를 배웠다. 그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가장 아름다운 구절들보다도 훨씬 더 깊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게다가 정당하게든 부당하게든 법에 의해 비난받는 열정으로 인한 베르테르의 고통을 태양의 찬란함과 계곡의 이슬, 그리고 자유를 갈구하는 가엾은 루이의 괴로움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베르테르가 욕망의 노예였다면, 루이 랑베르의 영혼은 노예 자체였다. 동일한 재능을 가졌다면 가장 감동적인 사랑, 혹은 가장 순수하기에 가장 진실된 욕망에 근거를 둔 사랑의 감정은 천재의 비탄을 능가할 터였다.

 

 

 결국 루이 랑베르가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또한 격렬한 사랑의 감정임을 생각해 볼 때, 루이 랑베르가 베르테르에 비유된 이 구절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실 루이 랑베르가 그의 사랑하는 여인 폴린에게 쓰는 애정어린 편지는, 베르테르가 사랑에 빠져 쓰는 편지 못지않게 직설적이며 강렬하다. 

 

 

- 당신을 향한 사랑이 얼마만큼 나를 궁지로 몰고 갔는지 감히 당신께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벅찬 어려움이라도 오로지 당신으로 인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불행에 처한 내 모습을 당신께는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고귀한 영혼에게는 불행이 주는 힘이 행운의 위력보다 더 크지 않던가요?

 

 

 루이 랑베르는 폴린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에서, 이런 그의 사랑의 강렬함을 표현한다. 철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사유가 돋보이는 이 책이기에, 루이 랑베르의 이런 낭만성은 더욱 주목받는다. 사실 루이 랑베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쓰는 편지가 담긴 부분만 떼어서 생각해본다면 어느 낭만 문학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루이 랑베르의 사랑이 베르테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를 자기 파괴의 길로 몰고 간다. 루이 랑베르가 폴린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에서도 이는 암시된다. 그는 폴린을 향한 격렬한 사랑이 자신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알 수 없을 정도라는 것임을 얘기한다. 자신의 폴린을 향한 사랑이 너무 커서 광기에 사로잡힐 정도라는 것을 루이 랑베르는 마지막 편지를 통해 고백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그 치미는 광기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이 미칠 듯한 사랑에 의한 열광과 흥분이 더 크다. 루이 랑베르는 그 사랑의 감정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도, 그 열띤 사랑의 감정을 굳이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

 

 

- 우리는 이토록 격렬한 우리의 삶을 매순간 견디면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요?

첫키스를 나누는 순간에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루이 랑베르는 자신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광기를 느끼면서도, 그러한 광기가 자신에게 왔음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그에겐 이 애정이, 사랑의 광기가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파리에서 체류하는 동안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이다. 루이 랑베르는 파리에 만연하고 있던 황금만능주의에 환멸을 느꼈다. 파리의 사치와 쾌락 속에서 루이 랑베르는 자신에 사막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랬던 그에게 사랑은, 그를 다시 자기 자신의 본질에 다가서게 했다. 열정이란 으레 그렇듯 누구에게나 맹렬한 것이지만, 그의 격렬한 감각과 사고의 본질과 삶의 방식은 그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을 가진 열정에 빠뜨렸다.

 

 때문에 결말에서 루이 랑베르는 좌절당한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의 보살핌 속에 행복하게 떠난다. 그의 천재성은 그를 사회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그의 인간 본연으로의 사고를 유지하고픈 욕망이 그를 육체를 초월한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광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인간 본연으로서의 사랑이, 그의 연인의 애정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루이 랑베르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 했다. 이런 루이 랑베르의 고뇌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 <루이 랑베르>는 여러 가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o****k 2012.12.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이런책이 싫어요
"나는 이런책이 싫어요" 내용보기
나는 발자크하고는 안맞나보다. 아니, 발자크건 칸트건 사물의 관점을 정의하기 위한 정의를 먼저  이해시켜야 하는 글들은 딱 질색이다. 고리오영감도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다. 그나마 스토리가 탄탄했던 나귀가죽정도가 좋았던 듯.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의학도인 내게 18세기의 영혼론(일원론이건 이원론이건)을 기반으로 한 이론 자체가 한마디로 bullshit이라고 여겨져서 몰입
"나는 이런책이 싫어요" 내용보기

나는 발자크하고는 안맞나보다.

아니, 발자크건 칸트건 사물의 관점을 정의하기 위한 정의를 먼저  이해시켜야 하는 글들은 딱 질색이다.

고리오영감도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다.

그나마 스토리가 탄탄했던 나귀가죽정도가 좋았던 듯.

 

제일 힘들었던 것은, 의학도인 내게 18세기의 영혼론(일원론이건 이원론이건)을 기반으로 한 이론 자체가 한마디로 bullshit이라고 여겨져서 몰입도 빵이었다.

이런이런

추리소설이나 읽고 개운하게 입가심해야되겠다.

j******0 2015.07.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