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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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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타 뮐러 장편 소설 『숨그네』 (문학동네, 2021)를 읽고   삶이 어둡고 긴 터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터널 속에 갇혀 끝을 상상하며 살고 있다고,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고행이라는 불가의 말처럼 번뇌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솔로몬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서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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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 장편 소설 숨그네(문학동네, 2021)를 읽고

 
삶이 어둡고 긴 터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터널 속에 갇혀 끝을 상상하며 살고 있다고,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고행이라는 불가의 말처럼 번뇌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솔로몬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서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처절한 상황을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어느 문장이나 단락을 떼어 놓아도 그대로 ‘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세상의 끝 극한의 절망이다. 배고픈 천사,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음식으로 환원되는 생각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는 혼돈 속에서 할머니가 헤어질 때 했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희망 삼아 버텨 낸 수용소의 5년,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시처럼 아름답고 소름 끼치도록 구체적인 묘사들에 가슴을 졸이며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절망과 적응, 삶에의 의지를 ‘빛나는 은유’로 빚어 쓴 시 같은 소설이다.     

 


 

루마니아에 사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 수용소로 끌려가는 사람들. 17세 ‘레오’를 통해 사선을 넘나드는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야기는 탄탄한 플롯에 의해 수용소로 가지 전, 수용소, 집으로 돌아와서의 시간순으로 배치된 듯 보이지만, 구조 자체가 단순하지는 않다. 회상과 기억을 거듭하면서 고무줄처럼 과거로 미래로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옮긴이가 소개하는 책의 줄거리를 적어 본다.      

 “『숨그네』는 레오가 돼지가죽으로 만든 ‘축음기 상자 트렁크’에 짐을 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리나무 공원에서 ‘들짐승 같은’ 밀회를 즐기는 열일곱 살의 동성애자 레오는 ‘돌에도 눈이 달린, 골무 같은 소도시’를 벗어나 ‘나를 모르는 곳’으로만 가고 싶다. 이곳만 아니라면 동성애자라는 ‘목덜미에 두른 불편한 침묵’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이 쉼 쉴 수 있을 것만 같다. 레오는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할머니의 작별 인사를 배웅 삼아 가축 운반용 열차에 몸을 싣고 우크라이나로 떠난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오 년 동안 레오와 수용소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낯선 타인’으로 만들어간 건 혹독한 추위도, 강제노동도, 수용소 사람들이 배급받는 옷과 신발을 팔아 사욕을 채우는 파렴치한 감독도 아닌 배고픔이었다. 배고픔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중략 

배고픔은 형태와 단계를 바꾸어 나타난다. 배를 채우면 눈의 허기가 찾아오고, 눈의 허기를 채우면 또 다른 허기가 솟아나 아귀 지옥의 연대기를 만들어간다. 배고픔의 끝, 욕망의 끝에서 ‘한 방울 넘치는 행복’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배고픈 천사와 숨그네는 멈추지 않는다”     

 


 

「짐 싸기에 대하여」에서 (17P)

“나무복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라고 적혀 있다.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은 마치 주문처럼, 종교처럼 레오에게 들러붙었다. 그래서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라고 쓰기도 했다.      

 


 

「명아주」에서 (30P)

“점호 시간에는 부동자세로 서서 나를 잊는 연습을 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크지 않아야 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내 뼈를 걸어둘 만한 구름 자락을 찾았다. 나를 잊고 하늘의 옷걸이를 찾으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비가 눈을 찌르고 옷이 피부에 들러붙는 날도 잦았다. 추위가 내장을 찌르는 날도 잦았다. 그런 날은 하늘이 내 흰자위를 뒤집었고 점호는 그걸 다시 뒤집었다. 걸릴 곳이 없는 뼈들은 오로지 나한테만 걸렸다”라고 적고 있다. 점호... 뼈들을 걸어 둘 구름조차 없는 잔인함이라니.     

 


 

「명아주」에서 (35P)

“나는 혀를 안으로 당기고 공기를 씹었다. 침과 저녁연기를 삼키며 구운 소시지를 생각했다.”, “칫솔을 입에 집어넣기 전에 두 번 먹었다. 주린 눈으로 노란 불을 먹고, 주린 입천장으로 연기를 마셨다.”, “가마의 우르르 소리와 함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쏟아졌다. 저녁 풍경은 배고픔의 파노라마였다. 땅거미가 내리고, 나는 막사의 노란 불빛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런 순간을 경험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세상 모든 것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음식으로 환원되고 있는 순간이다. 이런 문장들의 연속이어서 나는 심장이 점점 작아져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긴장하며 한 줄 한 줄 읽어 나갔다.      

 

   

「손수건과 쥐」에서 (88P) 

“수용소에서는 그런 손수건을 쓸 일이 없었다. 그 수년 동안 물물교환 장터에서 먹을 것과 바꿀 수도 있었다. 그 손수건이면 설탕이나 소금. 어쩌면 좁쌀도 얻을 수 있었다. 배고픔에 눈이 멀어 그런 유혹도 느꼈다. 내가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손수건이 내 운명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운명을 포기하면 지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 같다. 아무리 혹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나로 치환된 손수건이 아닐까 생각했다. 구걸을 나갔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수프와 함께 준 흰 아마포 손수건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보관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 가져온다.    

 


  

「누가 땅을 바꿔놓았나」에서 (213P)

“뼈와 가죽만 남으면 감정은 담대해진다. 나는 차라리 겁쟁이이고 싶다. 차이는 근소하지만 나는 내 힘을 울지 않기 위해 쓴다. 어쩌다가 감정이 흔들릴 때는 상처를 향수 鄕愁 잃은 메마른 이야기로 바꾼다.”라고 말하고 있다.

 배고픔과 향수를 잊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사람은 울지 않으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른눈으로 견뎌왔다고 적고 있다.      

 


 

「수용소의 행복에 대하여」에서 (275P)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나는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 방울 넘치는 행복이 스쳐 간다. 머릿속의 새 둥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이토록 가련한 '레오'는 수용소에서 돌아온 후로도 평범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수용소의 행복에 대하여」에서 (276P)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매일같이 다른 허기가 생겨나 채워지기를 기다리지만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줄 수 없다. 나는 배고픔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자부심이 아니라 겸허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급기야는 ‘고향이 수용소의 행복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음을 안다’라고 고백한다. 극한의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고 삶 전체를 지배하고야 만다.      

 


 

「보물에 대하여」에서 (326P) 

“나는 내 해골 전체가 커다란 부지라고, 수용소 부지라고 말해야 한다. 침묵으로도 말로도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침묵할 때도 말할 때도 과장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나 거기 있었다는 없다. 적절한 한도도 없다. 그러나 보물은 있다.”, “내 귀향은 감사함이 끊이지 않는 절름거리는 행복이며, 사소한 일에도 뱅글뱅글 돌아가는 살아남음의 팽이다. 그것은 내가 견디지도 놓아주지도 못하는 나의 보물들처럼 나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나는 내 보물들을 육십 년이 넘도록 사용하고 있다. 그것들은 허름하고, 집요하고, 은밀하고, 혐오스럽고, 잘 잊히고, 쉽게 용서하지 않으며, 닳아도 새것이다.” 

수용소에 있었다는 사실이 보물이고, 닳아도 새것이라고 말하는 레오를 어쩌면 좋을까...     

 

 

집에 돌아와서도 수용소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최근 “어떤 사건은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라는 시를 읽었다. 그리워했던 집이었는데, 두려웠던 수용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는 레오. 마음의 무덤덤하고 피폐함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갈구했던 삶의 일상에서 꿈에서까지 자신을 지배하는 수용소에서의 극한의 고통을 이기기 어렵고 그것을 아예, 극복할 의지도 없이 그림자처럼 지배당하며 그 후 60년을 살아간다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직장을 구해 일도 해보고 결혼도 해보지만 결국은 가족들과 섞이지 못하고 홀로 떠난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은 어디까지 그 잔인함을 당하며 견뎌낼 수 있을까? 함께 갔던 사람들의 3/5 이상이 죽어갔던 상황에서도 그들을 핍박한 사람들은 있었고, 같이 끌려온 무리 중에서도 물건을 빼돌려 사욕을 채우느라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들을 외면한 무리도 있었다는 것이 환멸스러웠다.      

 


 

소설이라지만 이런 것을 실제로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이 쓰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증언을 기록하면서 이야기의 씨앗이 시작되었다. 헤르타 밀러는 독재체제의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하면서 신문과 잡지에서 잘라내 보관했던 ‘낱말 상자’를 가져갔다고 한다. 낱말들을 조합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문창과 수업에서 스토리 창작 연습으로 배운 적이 있다. 

 


 

과연 언어의 마술사답게 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 냈다. 숨그네, 배고픈 천사, 심장삽, 감자인간, 양철키스, 볼빵 등이 그것이다. 헤르타 뮐러는 베를린에서 전후 전체주의의 공포를 생생히 묘사한 소설들을 썼다. 2009년,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그이 마지막 약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나에게 이 책의 백미는 은유의 아름다움을, 슬프고도 빛나는 묘사를 알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 그만 살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도 말썽꾸러기 아이도 사랑해야 할 존재들로 바뀌었다. 쌀 한 톨, 물 한 모금, 넘쳐나는 자유에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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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 헤르타 뮐러 장편 소설 『숨그네』 (문학동네, 2021)를 읽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처절한 슬픔과 아픔을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어느 문장이나 단락을 떼어 놓아도 그대로 ‘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세상의 끝 극한의 절망이다. 배고픈 천사,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음식으로 환원되는 생각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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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헤르타 뮐러 장편 소설 숨그네(문학동네, 2021)를 읽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처절한 슬픔과 아픔을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어느 문장이나 단락을 떼어 놓아도 그대로 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세상의 끝 극한의 절망이다. 배고픈 천사,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음식으로 환원되는 생각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는 혼돈 속에서 할머니가 헤어질 때 했던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희망 삼아 버텨 낸 수용소의 5,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시처럼 아름답고 소름 끼치도록 구체적인 묘사들에 가슴을 졸이며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은유로 빚은 시 같은 소설이다.

 

루마니아에 사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우크라이나 수용소로 끌려가는 사람들. 17레오를 통해 사선을 넘나드는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야기는 탄탄한 플롯에 의해 수용소로 가지 전, 수용소, 집으로 돌아와서의 시간순으로 배치된 듯 보이지만, 구조 자체가 단순 치는 않다. 회상과 기억을 거듭하면서 고무줄처럼 과거로 미래로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옮긴이가 소개하는 책의 줄거리를 적어 본다.

 

숨그네는 레오가 돼지가죽으로 만든 축음기 상자 트렁크에 짐을 싸는 장면으로 시 작한다. 오리나무 공원에서 들짐승 같은밀회를 즐기는 열일곱 살의 동성애자 레오는 돌 에도 눈이 달린, 골무 같은 소도시를 벗어나 나를 모르는 곳으로만 가고 싶다. 이곳만 아니라면 동성애자라는 목덜미에 두른 불편한 침묵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이 쉼 쉴 수 있 을 것만 같다. 레오는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할머니의 작별 인사를 배웅 삼아 가축 운반 용 열차에 몸을 싣고 우크라이나로 떠난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오 년 동안 레오와 수용소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낯선 타인으로 만들어간 건 혹독한 추위도, 강제노동도, 수용소 사 람들이 배급받는 옷과 신발을 팔아 사욕을 채우는 파렴치한 감독도 아닌 배고픔이었다. 배 고픔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중략

배고픔은 형태와 단계를 바꾸어 나타난다. 배를 채우면 눈의 허기가 찾아오고, 눈의 허기 를 채우면 또 다른 허기가 솟아나 아귀 지옥의 연대기를 만들어간다. 배고픔의 끝, 욕망의 끝에서 한방울넘치는행복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배고픈 천사와 숨그네는 멈추지 않는다

 

짐 싸기에 대하여에서 나무복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라고 적혀 있다.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은 마치 주문처럼, 종교처럼 레오에게 들러붙었다. 그래서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라고 쓰기도 했다.

 

명아주에서 점호 시간에는 부동자세로 서서 나를 잊는 연습을 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크지 않아야 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내 뼈를 걸어둘 만한 구름 자락을 찾았다. 나를 잊고 하늘의 옷걸이를 찾으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비가 눈을 찌르고 옷이 피부에 들러붙는 날도 잦았다. 추위가 내장을 찌르는 날도 잦았다. 그런 날은 하늘이 내 흰자위를 뒤집었고 점호는 그걸 다시 뒤집었다. 걸릴 곳이 없는 뼈들은 오로지 나한테만 걸렸다라고 적고 있다. 점호... 뼈들을 걸어 둘 구름조차 없는 잔인함이라니.

 

나는 혀를 안으로 당기고 공기를 씹었다. 침과 저녁연기를 삼키며 구운 소시지를 생각했다.”, “칫솔을 입에 집어넣기 전에 두 번 먹었다. 주린 눈으로 노란 불을 먹고, 주린 입천장으로 연기를 마셨다.”, “가마의 우르르 소리와 함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쏟아졌다. 저녁 풍경은 배고픔의 파노라마였다. 땅거미가 내리고, 나는 막사의 노란 불빛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런 순간을 경험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세상 모든 것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음식으로 환원되고 있는 순간이다. 이런 문장들의 연속이어서 나는 심장이 점점 작아져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긴장하며 한 줄 한 줄 읽어 나갔다.

 

손수건과 쥐에서 수용소에서는 그런 손수건을 쓸 일이 없었다. 그 수년 동안 물물교환 장터에서 먹을 것과 바꿀 수도 있었다. 그 손수건이면 설탕이나 소금. 어쩌면 좁쌀도 얻을 수 있었다. 배고픔에 눈이 멀어 그런 유혹도 느꼈다. 내가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손수건이 내 운명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운명을 포기하면 지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 같다. 아무리 혹독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나로 치환된 손수건이 아닐까 생각했다. 구걸을 나갔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수프와 함께 준 흰 아마포 손수건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보관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 가져온다.

 

누가 땅을 바꿔놓았나에서 뼈와 가죽만 남으면 감정은 담대해진다. 나는 차라리 겁쟁이이고 싶다. 차이는 근소하지만 나는 내 힘을 울지 않기 위해 쓴다. 어쩌다가 감정이 흔들릴 때는 상처를 향수 鄕愁 잃은 메마른 이야기로 바꾼다.”라고 말하고 있다. 배고픔과 향수를 잊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사람은 울지 않으면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른눈으로 견뎌왔다고 적고 있다.

 

수용소의 행복에 대하여에서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나는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방울넘치는 행복이 스쳐 간다. 머릿속의 새 둥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수용소에서 돌아온 후로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매일같이 다른 허기가 생겨나 채워지기를 기다리지만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줄 수 없다. 나는 배고픔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자부심이 아니라 겸허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급기야는 고향이 수용소의 행복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음을 안다라고 고백한다. 극한의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고 삶 전체를 지배하고야 만다.

 

보물에 대하여에서 나는 내 해골 전체가 커다란 부지라고, 수용소 부지라고 말해야 한다. 침묵으로도 말로도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침묵할 때도 말할 때도 과장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나 거기 있었다는 없다. 적절한 한도도 없다. 그러나 보물은 있다.”, “내 귀향은 감사함이 끊이지 않는 절름거리는 행복이며, 사소한 일에도 뱅글뱅글 돌아가는 살아남음의 팽이다. 그것은 내가 견디지도 놓아주지도 못하는 나의 보물들처럼 나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나는 내 보물들을 육십 년이 넘도록 사용하고 있다. 그것들은 허름하고, 집요하고, 은밀하고, 혐오스럽고, 잘 잊히고, 쉽게 용서하지 않으며, 닳아도 새것이다.” 수용소에 있었다는 사실이 보물이고, 닳아도 새것이라고 말하는 레오를 어쩌면 좋을까...

 

집에 돌아와서도 수용소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최근 어떤 사건은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라는 시를 읽었다. 그리워했던 집이었는데, 두려웠던 수용소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는 레오. 마음의 무덤덤하고 피폐함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갈구했던 삶의 일상에서 꿈에서까지 자신을 지배하는 수용소에서의 극한의 고통을 이기기 어렵고 그것을 아예, 극복할 의지도 없이 그림자처럼 지배당하며 그 후 60년을 살아간다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직장을 구해 일도 해보고 결혼도 해 보지만 결국은 가족들과 섞이지 못하고 홀로 떠난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은 어디까지 그 잔인함을 당하며 견뎌낼 수 있을까? 함께 갔던 사람들의 3/5 이상이 죽어갔던 상황에서도 그들을 핍박한 사람들은 있었고, 같이 끌려온 무리 중에서도 물건을 빼돌려 사욕을 채우느라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들을 외면한 무리도 있었다는 것이 환멸스러웠다.

 

고통의 최대치를 짐작해 본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토지 등 대하소설을 좋아해서 두세 차례씩 읽었던 나는 산 사람들이나 독립운동가들, 저 용정의 혹독한 추위와 싸우는 가난한 이주민들과 독재의 폭력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젊은 인생들에서도 한숨과 눈물을 섞어가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숨그네를 읽으면서도 몇 배의 혹독한 기억들이 덮쳐와 책을 읽는 내내 목젖이 뜨거웠다.

 

소설이라지만 이런 것을 실제로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이 쓰였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증언을 기록하면서 이야기의 씨앗이 시작되었다. 헤르타 밀러는 독재체제의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하면서 신문과 잡지에서 잘라내 보관했던 낱말 상자를 가져갔다고 한다. 낱말들을 조합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는데 그 방법은 문창과 수업에서 스토리 창작 연습으로 배운 적이 있다. 과연 언어의 마술사답게 단어들을 조합해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 냈다. 숨그네, 배고픈 천사, 심장삽, 감자인간, 양철키스, 볼빵 등이 그것이다. 헤르타 뮐러는 베를린에서 전후 전체주의의 공포를 생생히 묘사한 소설들을 썼다. 2009,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그이 마지막 약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나에게 이 책의 백미는 은유의 아름다움을, 슬프고도 빛나는 묘사를 알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 그만 살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도 말썽꾸러기 아이도 사랑해야 할 존재들로 바뀌었다. 쌀 한 톨, 물 한 모금에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넘쳐나는 자유에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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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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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받아 구매했다. 책을 읽으면 인류애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길래 무슨 소린가 했었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이 읽어서 소년이 동성애자인 것도 랑데부란 단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해했고 이 어린애가 수용소 이야기인 것도 읽으면서 알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으면 충격이 덜했을까 싶기도 했다. 너무 표현이 잘 된 책이라 읽는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웠다...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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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받아 구매했다. 책을 읽으면 인류애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길래 무슨 소린가 했었다. 아무 배경지식이 없이 읽어서 소년이 동성애자인 것도 랑데부란 단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해했고 이 어린애가 수용소 이야기인 것도 읽으면서 알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으면 충격이 덜했을까 싶기도 했다. 너무 표현이 잘 된 책이라 읽는 입장에서는 너무 괴로웠다...결말도 나는 썩 후련하지 않아서 이 책이 힘들었다.
s*****5 2023.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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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상을 우리의 세계로 변화시킨 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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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런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슬픔보다 침통함이 어울리고 아름답다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닌 언어가 감정에 작용하는 힘이다. 혹은 숨 멎을 듯 영롱한. 그 느낌이 이 책을 지배한다.         수요일이면 할머니들이 간혹 떠오른다. 특히, 일본 극우파들의 말로 일제강점기(우리의 허락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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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런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슬픔보다 침통함이 어울리고 아름답다는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닌 언어가 감정에 작용하는 힘이다. 혹은 숨 멎을 듯 영롱한. 그 느낌이 이 책을 지배한다.

 

      수요일이면 할머니들이 간혹 떠오른다. 특히, 일본 극우파들의 말로 일제강점기(우리의 허락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에서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어린 10대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던 상황을 미화시키거나 모르쇠로 일관할 때는 더욱. 이럴 때 빠지지 않는 나라는 독일이다. 그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각종 자료가 명백하게 그 시절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으며,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수십년이 지나도 마땅히 해야할 도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가 하면, 아무리 작가들이 1980년의 광주의 봄을 처절하게 이야기해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 혹은 이 땅에 같이 살면서 어떻게 사실이나 진실을 철저하게 외면할 수 있는지를 마주하고 있을 때는 할 말이 없다. 이런 세월의 짐 혹은 삶의 무게를 글로 써내려간 이야기가 <안네의 일기>를 생각나게 하면서도 더 처절하고, 객관화된 독자가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공산국가로 기억하는 루마니아인인 작가가 표현하는 글들은 주옥같다는 게 무엇인지 몇 십장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한 권을 다 읽고나면, 안개낀 아침에 이슬이 풀잎에서 쪼로록 떨어지는 느낌만 남는다. 처절함이 미화되지 않고 가벼운 용서나 이해로 변질되지 않지만 삶이 무엇이고 그 시간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본명하게 알려주기에.

 

      소제목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 책을 소설보다 한 편의 모노드라마 형식의 연극이나 생각날 때마다 쓴 쪽지글 같게 한다. 짐싸기로 시작된 이 책이 대화와 침묵이 공존하던 시간에서 거대한 침묵의 공간으로 바뀌고 가장 극단의 상황이 남은 기억으로 그래도 살아있음으로 연결되는 그 고리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YES마니아 : 골드 n********y 2013.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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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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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수용소 문학 작품을 간만에 접했다 읽은후 정서적 데미지가 있는 작품도 있어서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었지만 이작품도 참 처절한 작품이었다개인적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의 하루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지만 숨그네 역시 추천하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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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수용소 문학 작품을 간만에 접했다 읽은후 정서적 데미지가 있는 작품도 있어서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었지만 이작품도 참 처절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의 하루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지만 숨그네 역시 추천하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4*****5 2025.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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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는 하나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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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그네 # 유태인의 과거를 기억하다  우리의 과거시간 중 1945년부터 1953년의 어느 시기는 어떤 단어로 규정해야 할지 방치되어 있습니다. 숨그네. 헤르타 뮐러를 소개한 이 단어는 알고 있는 현실이 누군가의 현재가 될 때 비극이라는 감정을 뛰어넘는 현실이 됨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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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그네 # 유태인의 과거를 기억하다
  우리의 과거시간 중 1945년부터 1953년의 어느 시기는 어떤 단어로 규정해야 할지 방치되어 있습니다. 숨그네. 헤르타 뮐러를 소개한 이 단어는 알고 있는 현실이 누군가의 현재가 될 때 비극이라는 감정을 뛰어넘는 현실이 됨을 봅니다.
YES마니아 : 골드 n********y 2025.01.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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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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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나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 되었다가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년 간 노역했다.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를 침묵으로 지켜보았던 시골 마을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어린 뮐러에게 정체 모를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다. 이후 티미쇼아라의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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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루마니아 니츠키도르프에서 태어나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 되었다가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년 간 노역했다.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를 침묵으로 지켜보았던 시골 마을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어린 뮐러에게 정체 모를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다. 이후 티미쇼아라의 한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루마니아문학을 전공했고,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젊은 독일어권 작가들의 모임 '악티온스그루페 바나트' 에 유일한 여성 멤버로 참여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82년, 루마니아 정부의 강도 높은 검열을 거친 작품 『저지대로 문단에 데뷔했다. 1984년 베를린에서 재출간된 『저지대는 유럽, 특히 독일 문단과 정치권의 이목을 끌었고, 루마니아 정부는 저지대를 금서 조치했다. 이어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뮐러는 남편이자 동료 작가였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함께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망명지 베를린에서 전후 전체주의의 공포를 생생히 묘사한 소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 다. "마음짐승, 산문집 「악마가 거울 속에 앉아 있다, 시집 「모카 잔을 든 우울한 신사들」 등을 발표했으며, 아스펙테 문학상, 리카르다 후흐 문학상, 로즈비타 문학상, 독일비평가상 등 독일의 거의 모든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2009년,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b******y 2023.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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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_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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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예술로 기워낸 수용소 문학의 정수!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올려야 하는 인간의 고독한 운명!           순찰대가 레오폴트 아우베르크를 찾아온 건 1945년 1월 15일 새벽 3시, 영하 15도의 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꼼짝없이 러시아 강제수용소로 징집된 레오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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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예술로 기워낸 수용소 문학의 정수!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올려야 하는 인간의 고독한 운명!

 

 

 

 

  순찰대가 레오폴트 아우베르크를 찾아온 건 1945115일 새벽 3, 영하 15도의 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꼼짝없이 러시아 강제수용소로 징집된 레오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하나씩 주었고, 그것으로 마음의 정리를 하는 듯했다. 반면 레오는 너무 나쁜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진즉에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열일곱 살의 동성애자였던 레오의 삶에 새겨진 혼돈의 무늬가 곧 혐오로 뒤바뀌리라는 것은 시간 문제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떠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수용소라는 단어에조차 무감각했기에,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그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 말이 내내 자신과 동행하리라는 것을. 그 말이 자신이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여 심장삽의 공범이 되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어주리라는 사실을.

 

 

 

참전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우리가 러시아인들에게는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에 책임이 있는 독일인들이었다. / 50p

 

 

 

  양배추수프만 먹던 뼈와가죽의시간이었다.

  훗날 레오는 수용소 시절을 이렇게 정의한다. 배가 고프다는 것 말고는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곳, 공복을 먹고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는 허기가 다른 모든 생각을 길들이는 굶주림의 시간만이 존재하는 곳. 빵의 덫에 걸리지 않는 자가 없고, 빵의 법정 앞에서는 일반적인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죽음은 곧 그들의 옷과 아껴둔 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는 곳. 나의 오장육부를 초라하게 만들고 수치심이 사치가 되는 곳.

 

 

 

  뻐꾸기시계를 바라보며 지금은 몇 시인가보다 난 얼마나 더 살까를 더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삶이란 얼마나 처참한가. 수용소는 향수도, 소망도 박탈한다. 집이 있는 바깥세상의 소식을 오래도록 듣지 못하면 집으로 가고 싶기는 한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자문하게 된다. 또한 수용소는 무언가를 결정할 필요도, 결정할 의지도 사라지게 한다. 이따금 권태만이 그저 가끔 내가 잘 지내는지 알고 싶어 할 뿐이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수용소로 돌아가는 길을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부르게 될 줄 또 누가 알았을까.

 

 

 

수용소 시절 이전부터 이후에 이르는 이십오 년 동안 나는 공포 속에 살았다. 나라와 가족들에 대한 공포. 나라가 나를 범죄자로 가두고, 가족들이 나를 치욕으로 여겨 내쫓으리라는 이중 추락의 공포였다. / 12p

 

 

설원에 우리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설원에서 서로서로 바짝 붙어 똑같은 걸 강요받는 우리 모습을 보는 이가 없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나는 용변이 급하지 않았지만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았다. 그 밤의 세계가 얼마나 인정머리 없고 고요하던지, 서둘러 대소변을 보는 우리를 얼마나 웃음거리로 만들던지. () 눈밭은 우리를 어찌나 혹독하게 다루던지, 맨엉덩이를 드러낸 우리를 아랫도리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외롭게 버려두었다. 그 유대 속에서 우리의 오장육부가 얼마나 초라하던지. / 24p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체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 바뀐다면 죽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픈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줄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 167p

 

 

 



 

 

 

 

  때로 물건들은 형언할 수 없는 의외의 섬세함을 가지게 된다.

  레오에게 있어 베개는 아껴둔 빵의 은신처이고, 건더기 없는 양배추 수프를 한 술 한 술 퍼올릴 때마다 달그닥거리는 소리는 시린 배고픔의 진한 양철키스. 한 달에 한 번 공장 경비실에서 배급받는 우유는 가혹한 노동의 화학냄새를 마비시키고 천천히 죽으라고 내어주는 다른 세상의 맛이다. 총알이 튕겨 오르듯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 검은 포플러는 총살을 기다리던 날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고, 집에서 가져온 붉은 포도주색 실크스카프는 더 이상 나에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한다.

 

 

 

  하지만 때로 어떤 물건은 살아가야 할 의미를 주기도 한다. 레오는 어느 러시아 여인에게서 받은 하얀 아마포 손수건, 명주실로 손뜨개하고 작은 장미꽃 문양이 수놓아져 있는 그 아름다운 손수건이 자신을 살게 했노라 고백한다. 수용소 안에서는 도무지 쓸 일이라고는 없지만, 수년 동안 물물교환 장터에서 먹을 것과 바꾸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지만 손수건만이 유일하게 운명이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너는 돌아올 거야라던 할머니의 작별인사가 손수건의 모습으로 바뀐 게 틀림없다고, 손수건이야말로 수용소에서 그를 보살펴준 단 하나의 존재였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리라. 이렇게 헤르타 뮐러는 단어와 대상의 거리를 좁히는 시도를 통해 수용소에서의 일상을 집약적이면서도 생생하고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독특한 언어 세계관을 완성해낸다.

 

 

 

고향에 돌아갔을 때 유리병들이 내 증인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던 걸까. 나는 믿음이 담긴 병과 의심이 담긴 병,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뚜껑 있는 병에는 귀향을, 나무마개로 밀봉한 병에는 수용소에서의 영원한 삶을 담은 것이었을까.

() 귀향과 수용소의 삶이 서로 반대말이었나. 그렇다면 나는 그 두 가지 모두에 맞서고 싶었다. 아마도 나는 그 순간부터 수용소의 삶, 아니 삶이라는 것이 희망에 의존하지 않게 할 작정이었다. 매일매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그런 마음에 휘둘리지 않도록 애썼다. / 182p

 

 

스카프는 트렁크 바닥 하얀 아마포 손수건 옆에 있었다. 손대지 않은 지 벌써 몇 달째였다. 스카프는 피붓결처럼 고왔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흐르는 듯 부드러운 마름모꼴 스카프를 보고 나는 수치심에 휩싸였다. 황폐한 나에 비해, 스카프는 예전처럼 나긋나긋했다. 광택과 무광택이 섞여 있는 바둑판무늬도 그대로였다. 스카프는 수용소에서 변하지 않았다. 바둑판무늬 속에서 조용히 자기 원칙을 지켰다. 스카프는 이제 내게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스카프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 201p

 

 

 

  5년 만에 레오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수용소 사람들은 고향으로 갈 때쯤이면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을 거라고 수군댔지만, 모든 것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기에 고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 자신뿐이다. 그는 고향 땅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들 틈에서 이방인처럼 현기증을 느낀다. 추락과 비굴함에 길들여진 그는 가족에게도, 결혼한 아내에게서도 정착하지 못한다. 자유인이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수용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하여 너는 돌아올 거야로 시작된 이야기는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로 끝을 맺는다.

 

 

 

시간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하차했고 세상과 끝장났으므로. 아니 세상이 우리와 끝장을 냈으므로. / 52p

 

 

너는 돌아올 거야. 삽질을 하며 나는 다시 정신을 추슬렀고, 총에 맞아 죽기보다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배를 곯고, 추위에 떨고, 중노동을 하고 싶었다. 나는 할머니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돌아갈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 말을 부정했다. 그래요, 할머니, 하지만 그거 아세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 82p

 

 

 




 

 

 

 

  『숨그네는 전쟁의 그늘과 상처를 다루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밀어 올려야 하는 인간의 고독한 운명을 다룬 역작이다. 어쩌면 수용소란, 숨을 쉴 때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흔들리고 마는 인간의 헤어 나올 수 없는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h***s 2022.08.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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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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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숨그네헤르타 뮐러 저/박경희 역문학동네 | 2010년 05월 17일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라는 책이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라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제야 읽어보았다. 정말 참혹한 상황인데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다니 놀랍기도 하고...ㅜㅜ 내가 저런 상황이면 버틸 수 있었을까 슬프기도 하고...ㅜㅜ 언어가 된다면 원어로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아래는 내가 가장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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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숨그네

헤르타 뮐러 저/박경희 역

문학동네 | 2010년 05월 17일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라는 책이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라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제야 읽어보았다. 

정말 참혹한 상황인데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다니 놀랍기도 하고...ㅜㅜ 

내가 저런 상황이면 버틸 수 있었을까 슬프기도 하고...ㅜㅜ 

언어가 된다면 원어로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아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c******a 2020.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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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나치집권시대에 관한 글은 독일인의 입장에서만 쓴 글들만 읽었던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고, 유대인이 쓴 글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슬플 것 같고, 화날 것 같아서 시작을 못했던 것도 있고. 이번에 북클럽에서 겨울님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읽고 <운명>도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함께 읽으려고 구매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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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나치집권시대에 관한 글은 독일인의 입장에서만 쓴 글들만 읽었던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고, 유대인이 쓴 글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슬플 것 같고, 화날 것 같아서 시작을 못했던 것도 있고.

이번에 북클럽에서 겨울님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읽고 <운명>도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넣으면서 함께 읽으려고 구매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시리즈에서 여성작가 먼저 읽으려고 정리하는데, 이러고 보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뭔가 더 보수적인 느낌이다.
d*********5 2019.08.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