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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만큼은 최고다. 한국최초의 동경 유학생, 한국 최초의 영어통역관, 독립협회 설립, 만민공동회 주관, 105인 사건 지휘 등..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은 바로 윤치호다. '좌옹의 길'은 윤치호 그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담은 작품이다. 그가 어떻게 친일파로 변절했는지.
윤치호는 대부분 영문으로 무려 60년이나 일기를 썼다고 하니, 그 꾸준함은 실로 대단했다. 그 일기를 읽고 싶었지만 너무 길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솔직하기 이를데 없었다. 성매매 이야기나 관심있는 이성, 성욕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고 있으니, 군자인 척하는 동양식 선비정신에서는 탈피한 건가 싶었다. 유학 시절 그는 백인들이 흑인에게 내뱉는 인종 차별적 발언에 대해 진저리 치고 있어서, 그 역시나 알게 모르게 동양인으로서 백인의 호기심이 대상이 되거나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나 짐작이 됐다.
개신교의 일원으로 교육과 계몽을 내세웠던 그가 친일적 행보를 보인 것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부터라고 하는데, 그뒤 그는 한동안 갈 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좌옹의 길'에서 좌옹은 좌파를 의미하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그가 친일적 행보를 걷게되는 심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를 좌옹(佐翁)이라고 불렀다. 왼쪽 좌(左)옆에 사람 인(人)을 붙이면 도울 좌가 된다. 오른 쪽 우(右)옆에 사람 인을 붙여도 도울 우(佑)가 된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사람다운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좌파냐 우파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냐 하는 것이 사실은 문제가 된다. 그는 과연 좌옹, 즉 도움을 주는 늙은이였는가.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 스스로는 도움을 주는 인물이 되려고 한 것만은 틀림없다.'(131쪽)
이 언급은 그가 친일로 기울었다는 평에 대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는데, 신념과 노선은 사라지고 모호하고 애매해졌고,사람다운 사람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가고 있었으니. 좌옹이라는 말도 그를 신랄하게 풍자한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는 '친일파가 되고 싶지 않았던 '친일파''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그는 자신에게 씌여진 친일파라는 오명이 터무니없다면서 이렇게 반발했다.
'일본의 신민으로서 조선에서 살아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일본 정권의 명령과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아들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딸들을 공장에 보내야만 했는데, 무슨 수로 군국주의자들의 명령과 요구를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군가 일본의 신민으로서 한 일을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132쪽)
정의나 신념은 사라지고, 일제에 영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나 늘어놓는 폼에서 그 화려한 스펙과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을 그가 마냥 초라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그는 일제에 협조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그랬노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이 억울하기 이를데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을 좌우를 떠나 중립적이고 사람다운 사람이고자 했을 뿐이하고 항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니었다. 이 작품 속에는 현제명, 홍난파 등 여러 유명인사들이 잠깐씩 언급되고 있는데,이들의 처신 또한 가관이었다. 윤치호는 그들을 비난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는데, 학교 다닐 때 음악 시간에 이들 곡을 꽤 배우고 불렀던 기억이 나면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현제명이나 홍난파가 이런 인물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는데. 대체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건지 회의가 들었다. 애국가도 누가 작사했는지 몰랐는데 이 책에서는 윤치호 작사라고 언급하고 있어서 정말 당혹스러웠다. 애국가 작곡, 작사가 모두 친일 논란의 당사자라니. 그런가하면 해방되고 나서 친일파 색출이 사회적으로 부상하자, 명단에서 빼주겠다면서 돈을 요구한 사람도 등장했다니, 헬조선의 역사는 해방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판이다.
아마도 윤치호에게는 해방되던 해 세상을 떠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친일파 소리에 억울해하지 않아도 되니. 윤치호의 일대기를 더듬어가면서 일그러진 조선 지식인의 초상화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강자에 빌붙는 것이 문명을 일구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좌옹의 길'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조성기님 작품은 정말 오랫만에 읽었다. 한 이십년만이던가. 전에 읽었던 작품을 떠올리면서 '좌옹의 길'을 읽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을 받았다. 시대가 왔다갔다 하고, 시점이 바뀌어서 그런건가 했는데, 그보다는 윤치호의 애매한 처신을 좇다보니 작품 역시나 전반적으로 산만해진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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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 그는 친일인명 사전에서 친일파로 분류된 인물이다. 왜 저자 조성기님은 국민의 감정에 반하는 친일파 윤치호를 평전과 소설을 겸한 방식으로 글을 썼을까? 그를 옹호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함일까? 저자는 작가 후기에 다음과 같이 글을 쓴 이유를 밝힌다. "윤치호는 독립운동파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닌 중도파 내지는 경계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일제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우리 세대가 그 시대의 미묘한 굴곡과 숨결들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끝으로 이 작품이 소설임을 양지해 달라고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윤치호는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60년간 대부분 영어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갑신정변이 발발하기 직전부터 조선 학도병으로 징병되던 때까지 근 60년간 공책으로 하면 30권 분량이라고 한다. 그의 일기장들이 분실되지 않도록 자녀들이 보관해 오던 것들이 충남 천안 출생으로 국사학을 전공한 김상태님이 일기 대부분을 꼼꼼하게 번역하였고 지금 우리가 윤치호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쓰이고 있다. 영어로 일기를 쓴 이유는 자신의 사생활과 속마음까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게다. 그 정도로 윤치호의 영어 일기는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소상히 기록했다. 사료적 가치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윤치호를 작품 속에서 '좌옹'으로 부른다. '도와주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서북파와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기호파의 팽팽한 대립 분위기 속에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 지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파도가 휘몰아치는 격랑의 시대를 살아온 윤치호는 조심스럽게 그들을 와주고 싶어했다. 경고망동하지 말라고. 해외에 나가 독립운동하는 길만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국내에서 일본의 눈치를 살치며 가족을 돌보며 열강의 침략 속에서 지혜롭게 나라를 위하는 일들을 찾아내는 길도 꼭 필요했던 일이라고 항변하는 듯 하다. 윤치호는 부패한 조선 관료만으로는 새 시대를 개혁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윤치호가 바라본 조선 관료들은 오직 자기 탐욕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족속들이었고 각성하기 보다는 도리어 파멸로 이끄는 짐승들이었으며 주도적으로 독립을 위해 나설 용기나 정력이 결여된 무기력한 지식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조선 5백년 동안 정치적인 반대와 모욕적인 차별을 받아온 서북인들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했던 기호인들을 증오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단결된 힘을 발휘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윤치호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될 바에 차라리 같은 동양인인 일본의 힘을 빌려 자강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에서 보이듯이 자신의 친일적인 태도는 다른 무리들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조선 백성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친일보다는 용일, 일본을 이용해서라도 조선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치호를 친일파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관련 단체들 내에서도 얼마간의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윤치호 일기'를 바탕으로 소설 형식이나마 용기를 내어 글을 쓴 저자 조성기님의 도전에 큰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가 평전으로 쓴 '한경직 평전', '유일한 평전'을 구할 수 있는 대로 읽어 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