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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속의 예수 ('예수 왜곡의 역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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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을 손에 잡은 지 꽤 오래 되었건만 리뷰 쓰기가 만만찮다. 초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나라에서 종교에 대하여 입에 올리고 글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신중해야 할 일인지는 PD수첩의 경우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성경은 구약부터 신약까지 수회 보다 훨씬 많은 횟수를 통독했으니 신앙심이 깊은 신도만큼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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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예수 왜곡의 역사'! 이 책을 손에 잡은 지 꽤 오래 되었건만 리뷰 쓰기가 만만찮다. 초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나라에서 종교에 대하여 입에 올리고 글을 남기는 것이 얼마나  신중해야 할 일인지는 PD수첩의 경우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성경은 구약부터 신약까지 수회 보다 훨씬 많은 횟수를 통독했으니 신앙심이 깊은 신도만큼은 아니지만 초보신자 보다는 많이 읽은 듯하다. 이 책에서도 지적한 몇가지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으나 별 답을 얻지 못한 채 성경은 책꽂이에 꽂히고 말았다. 신심깊은 기독 친구가 새롭게 해석된 성경을 선물로 주었지만 더이상 성경을 손에 잡지않고 이후로는 다른 서적에 탐독하였다.

 

제목 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아 이 책을 들고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撤)한다"는 옛 말 처럼 눈에 보이는 글의 뜻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숨은 저자가 전달하고픈  정신과 의도를 느껴볼려고 노력했다. 성경에 대한 '축자영감설'이나 '성서무오설'에서 벗어나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경에 접근하여 풀어내는 방법이 교회에서 단락 중심으로 설교하는 신앙적 접근법과는 많이 다름을 알겠다. 그동안 내심 궁금했던 예수님에 대한 이질적 의문을 해결하는 상당한 지적충족의 책읽기였다. 성경의 네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저자에 대한 부분과 각 복음의 차이, 예수님의 행적과 사역(비기독인은 잘 안쓰는 용어)에 대한 역사비평적 해석이 과히 전문가다운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성서에서 보여지는 차이에 대해 그 역사적 배경을 안다는 것이 '믿음'과는 별다른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그 의미를 앎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종교적 신성성(神聖性)이 퇴색되기보다는 보다 깊은 신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실수와 불완전한 이해에서 생긴 흐릿한 안개를 걷어내고 나면 더욱 반짝이는 지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진실일 뿐이었고, 진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닐 뿐이었다.(10쪽)는 저자의 말을 십분 이해한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기독인의 설명으로 이해가 안되는 의문에 대하여 불경스런 느낌이 전혀없이 전후를 판단해보는 참으로 도움되는 독서였다.

 

오랜 시간 책을 읽고 느낀바를 이렇게 짧게 정리하려니 섭섭하기도 하지만, 길게 쓴다고 좋을 것도 없다. 워낙 잘쓴 출판사 서평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믿음에만 의존하여 진실을 외면하면 영성에 대한 비판만 생길 뿐이다. 다만 성경과 예수님에 대한 짧은 지식이 있고 관심있으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책이란 느낌이다. 성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무리를 한다.

 

성경을 믿지않는 사람들도 성경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성경은 반드시 읽고 연구해야 마땅한 책이다. 성경은 단순한 신앙서적이 아니다. 생각과 믿음, 경험과 활동, 사랑과 증오, 편견 등 서양 문명의 기초를 닦은 사람들의 의견이 집대성된 역사적인 기록이다. 성경은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들, 예컨대 우리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성경은 실제 사례를 들어 교훈을 주고 훈계하는 책이다. 또 우리에게 진실을 추구하고, 억압에 맞서 싸우며,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평화를 지키라고 촉구하는 책이다. 성경은 지금보다 더 충만한 삶을 살라는 의욕을 일깨우고,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라고 용기를 북돋우는 책이다. (374~375쪽)


 

e***i 2010.07.10. 신고 공감 4 댓글 9
리뷰 총점 종이책
오류가 없다던 성경의 수많은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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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믿던 안믿던 간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그것은 세계 공통 연도가 서기의 기원이 예수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 친척들도 기독교가 많아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닌적이 있었다. 기독교는 참 대단하다. 분명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인데 우리 고유의 종교보다 훨씬 많이 퍼져 있는 것을 보니. 성공한 서양문물의 현재를 대변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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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믿던 안믿던 간에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그것은 세계 공통 연도가 서기의 기원이 예수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나도 우리 친척들도 기독교가 많아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닌적이 있었다.

기독교는 참 대단하다. 분명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인데 우리 고유의 종교보다 훨씬 많이 퍼져 있는 것을 보니. 성공한 서양문물의 현재를 대변하듯 동네슈퍼의 갯수만큼 교회가 방방고을고을 없는곳이 없으니.

 

 이책의 저자 바트 어만은 성경에 대해서 매우 깊이 연구한 신학자이다. 저자도 어릴적부터 신앙을 가지고 신학공부까지 하게 되었고 성경을 모두 외울정도로 연구하였는데, 그러면서 성경의 여러 오류들을 발견했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도 그런 오류들을 공부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하면 그것들을 모두 잊고 신도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한다. 신도들에게 올 혼란이 걱정되서일까?

 


 

 

 예수의 얼굴부터 말이 많았다. 나사렛 출신인 예수가 백인이라니... 확실한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수의 원래 모습이 복원되었다는 기사도 본적이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예수의 모습은 예수의 본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걸 본 기억이 나는데 상하고 상처났다는등 못생긴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예수의 모습부터 목사들의 발언까지 지금의 기독교는 확실히 정통이라고 볼수 없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었다. 백인들 중심으로 서양의 이원론이 세계의 중심이 되면서 기독교가 전세계에 퍼졌기 때문에 예수의 모습도 서양화, 자본주의화 된것인지... 지금의 기독교는 확실히 자본에 쩌들어 있는듯 보인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의 말이 있는데도 대전의 존경받는 장모목사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나라는 모두 가난하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고, 쓰나미가 예수를 믿지 않아서 일어났다는 망언까지 서슴치 않고 있으니...

 

 저자는 성경의 한단어 한단어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서 기록되었다는 '축자영감설'과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서 무오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실제 성서를 일부 읽어보았더니 저자의 말이 사실인것을 알수 있었다. 나도 교회에서 성서무오설을 교육받았으나 스스로 성경을 읽으면서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분명 이스라엘의 신일뿐이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천사를 시켜 어린아이들을 죽이거나 이집트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있다. 사람을 창조한 신이 왜 특정 인종을 차별을 하는가? 자신을 믿지 않아서? 그렇다면 지금 현존하고 있는 수많은 그들의 말로 이단들은 왜 가만히 나두는가? 그런 의문들 속에 보낸 시간의 기억들이 이책을 통해 다시 다번 떠오른다.

 

 사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권유하는 사람은 많지만 성경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 많은 분량을 필요한 몇구절만 반복해서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난 초등학교 시절과 고등학교시절 잠시 다니면서 성경을 읽어본적이 있다. 십수년이 지난 일이다. 그런데 교회에 수십년을 다녔다는 독실한 신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잠깐 다녔던 나보다 성경에 대해서 더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내가 잘나서가 결코 아니다. 학창시절 공부도 못했고 암기력도 좋지않음을 밝히는 바이다. 독실함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천국에 가기위한 수단으로서 신앙을 이용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적이 있다.(물론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지만 안그런 사람들도 있다)내가 만난 기독교인의 90%는 천국을 보내주지 않으면 당연히 교회를 가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황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성경은 결코 그런 이야기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지금의 교회는 솔직히 많은 신도들을 모아 헌금을 받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천국행 티켓을 판매하는 영업사원들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예수님의 그 주옥같은 말씀은 뒷전이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며 저주라고 느껴질만큼 끔찍한 이야기만 강조하고 있다.

 

 난 비록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말리거나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있다. 지금의 교회가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예수를 사랑하고 믿는다면 성경도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천국에 가기위해 아둥바둥하는 것보다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에 더 중점을 두었으면 하고 새신자를 모을때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턱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며 협박하는 것보다 예수가 어떤 사람이고 그분의 사랑이 어떠한지등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교회다니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중 거의다가 천당 앤 지옥이야기부터 꺼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님이 구원을 하러 오신것이지 협박을 하러 오신것은 아니지 않는가? 불신지옥부터 내세우기 전에 원수조차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대로 사랑부터 앞세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제도는 전통적인 것이 아님을 염두해 두었으면 한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자본주의에 물들기 이전의 기독교와 기독교가 저지른 많은 착오와 죄악의 역사도 인정하며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인들은 딴세상 사람들로 그들만 고립되어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비신자들을 진정 구원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 지기만 할것이다.

 

 

 저자는 말미에 자신은 신앙을 버리게 되었지만, 진실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신앙을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공감이 되는 말이다. 천동설을 밀어부칠때의 고집과 닮아있는 기독교인들의 고집을 버리고 인정할것은 인정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성경은 문학작품처럼 은유의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 해석방법에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으며 각 저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조금씩 다르게 쓰여져 있다. 복음서 간에 일치 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고집을 부리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따르지 않고 불신자를 증오하는듯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결국 교회의 쇄퇴를 불러오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독교인들이라면 꼭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t*********d 2010.07.0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성경 수평적 읽기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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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어만>님 유명하다는데 난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신약성경과 초   기 기독교회사 연구분야서 최고 권위자시란다. 올~~ 대단하신 분이구뇨~!   이름이 쉬워서 당분간은 기억할거 같다. 나의 협소한 기억용량으로도 말이다. ㅎㅎ   제목이 <예수 왜곡의 역사>이기 때문에 상당히 오해받기 쉬운 책이다. 그래서 사람   들의 시선을 더 끌었는지도 모르지만.. <예수
"성경 수평적 읽기 설명서." 내용보기

<바트어만>님 유명하다는데 난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신약성경과 초

 

기 기독교회사 연구분야서 최고 권위자시란다. 올~~ 대단하신 분이구뇨~!

 

이름이 쉬워서 당분간은 기억할거 같다. 나의 협소한 기억용량으로도 말이다. ㅎㅎ

 

제목이 <예수 왜곡의 역사>이기 때문에 상당히 오해받기 쉬운 책이다. 그래서 사람

 

들의 시선을 더 끌었는지도 모르지만.. <예수 왜곡의 역사>가 아니라 <성경 왜곡의

 

역사>가 맞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하나님과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책이아니다. 단지 인간에 의해 쓰여진 성경에 대한 오류들을 설명하는것뿐이지 종

 

교를 해하고자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 어릴때 부터 어른이 되기 직전까

 

지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다녔던거 같다. 순수한 믿음으로 예

 

수님을 닮으려 많은 눈물을 흘리고 때론 가슴이 찢겨질듯한 고통으로 노력했었다.

 

성경속에 있는말 하나하나 실천하려고 말이다.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끊임없이 기

 

도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었다. 그런 나에게 <성경>이란 책이 아니라 온전한 <하

 

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 어찌 오류가 있을 수 있단 말인

 

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한적이 없다. 성경을 안본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교회를 떠

 

난지도 오래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란 생각은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건 그동안 읽었던 그리고 배웠던 성경말씀을 다시 생각하

 

게 한다는것이다. 마치 영화를 뒤로 돌리는것처럼 그렇게 모든것이 뒤로 빠르게 스

 

쳐지나간다. 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로 이어진 성경을 읽었었는데 저자

 

의 말대로 성경을 나눠서 수평적으로 비교해서 읽어보면 누구나 쉽게 오류를 발견

 

할 수가있다. 충격적이었다. 나로선..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런 오류를 발견하

 

는 법은 신학교에서 다 배우는 내용이란다. 단지 그것을 일반신자에게 전하지 않는

 

거 뿐이지. 지도자들은 신자들이 그런 내용을 배우면 믿음을 잃고 혼란스러워할까

 

봐 걱정하나보다. 그런 생각들이 절대적으로 옳은것일까? 성경의 오류가 전해지면

 

모든 신자들이 하나 둘 다 떠날것인가.. 이 책을 번역하는 이는 이 책을 번역하면

 

서 오히려 믿음이 더 나진거 같다고한다. 이 책을 읽어도 믿는 사람들 마음은 그닥

 

변화가 없을것이라 생각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전 말을 많이 했든 적게 했

 

든 기적을 행했던 표적을 행했던 예수는 예수고 하나님은 하나님이니까.

 

나같은 경우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대한 불신이 어느정도 사그러졌고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무조건 이런책을 비난하는것 보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이 책을

 

읽고 그동안 궁금했던 마음들을 풀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k******2 2010.07.1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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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성경의 모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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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예수 왜곡의 역사는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를 권하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난 200년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가 대학원생만이 아니라 사역을 준비하며 신학에 다니는 장래의 목사들에게도 알려져있지만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신학교에서 새로운 사실을 배운 목회자들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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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비평학자 바트 어만이 추적한 예수 왜곡의 역사는 열린 마음으로 성경의 실체에 다가가기를 권하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난 200년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가 대학원생만이 아니라 사역을 준비하며 신학에 다니는 장래의 목사들에게도 알려져있지만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신학교에서 새로운 사실을 배운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자리를 잡은 후 교구의 신도들에게 그 사실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작가는 학계의 연구결과를 만천하에 공개할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렇담 신학교에서 새로운 사실을 배운 목회자들은 왜 교구의 신도들에게 그 사실을 가르치지 않은것일까? 나는 이 사실이 무척 궁굼하기도 했지만 거부감도 생겼다. 그것은 내가 카톨릭 신자이기 때문이다. 해서 이 책은 한동안 펼쳐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책을 읽어야만 무엇이 진실인지 알수 있기때문에 용기를 내어 읽어보았다.

 

이 책은 신양적 접근이 아닌 역사비평적 접근법으로 성경에 접근하여 성경의 모순을 밝혀내고 있다. 예로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사건을 접근하면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는 베드로에게" 닭이 두번 울기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할것이다. 라고 말한다. 대체 어느쪽이 맞은것일까? 닭이 한번 울기전일까, 두번 울기전일까?라는 식으로 성경이 일치 하지 않음을 밝혀내고 있다. 예수의 탄생, 예수의 부활, 야이로 딸의 치유,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설명하는 이야기에서도 똑같은 오류가 있다는것을 밝혀내고 있다.

 

작가는 먼저 출판한 <성경 왜곡의 역사>에서 말했듯이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의 원전이 전해지지않고 대부분 오랜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쓰였다는 사실로 성경이 신의 책인가, 인간의 책인가를 역사적인 관점에게 성경이 인간의 해석과 실수가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또한 신학성경에 담긴 모든 책을 스물일곱 권의 책이 아니라 한권의 책으로 고집스럽게 읽는다면, 성경을 잘못 해석할 위험이 크다는 것도 밝힌다.  신학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은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쟁점으로 다루기 위해 쓰여졌고, 다른 저자들에 의해 다른 관점과 다른 믿음에서, 또다른 가정과 다른 전통에서 다른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다른해석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다. 마가복음의 예수는 고뇌속에 죽어가고, 누가복음의 예수는 의연하게 죽어간다. 또한 하나남의 나라에 대한 해석은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종말론적 의미가 담겨져있음을 알려주고, 요한복음에서의 예수의 가르침은 자신이 누구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것이고 어떻게 영생을 줄수 있는지 말하며, 예수를 믿어야만  그곳에 갈수 있다고 차이점을 설명한다. 예수의 기적에 대한 관점의 차이도 알수 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언급되는 표적의 목적은 예수를 믿게하려는데 있고,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는 걸 거부했다는 차이점을 알수 있다.

 

 

마무리짓지 못해서 미안한 책..

s*********e 2010.07.12. 신고 공감 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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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전환한 저자의 성경관..'예수 왜곡의역사'
"보수주의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전환한 저자의 성경관..'예수 왜곡의역사'" 내용보기
바트 D. 어만(Bart D. Ehrman:1955 - )의‘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 왜곡의 역사‘ 다음에 나온 책이다. 신약 성경 텍스트 비평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 집중하는 그는“보수적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지만“무지하고 고집불통인 근본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자신을 표현한다.(248 페이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진보적 성경학자들이 무분별한 주장들을 쏟아내며 자신의 믿음을 공
"보수주의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전환한 저자의 성경관..'예수 왜곡의역사'" 내용보기

바트 D. 어만(Bart D. Ehrman:1955 - )의‘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 왜곡의 역사‘ 다음에 나온 책이다. 신약 성경 텍스트 비평과 초기 기독교 연구에 집중하는 그는“보수적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었지만“무지하고 고집불통인 근본주의자는 아니었다.”고 자신을 표현한다.(248 페이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진보적 성경학자들이 무분별한 주장들을 쏟아내며 자신의 믿음을 공격할 거라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어만은 보수적인 성장 배경을 가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전통적 저작 관계를 뒷받침 할 실질적인 증거는 거의 없고 전통적 저작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숱하게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150, 151 페이지)

 

당연하지만 현재 기독교에서 투쟁 끝에 정통의 자리에 오른 종파보다 정통에 의해 배제된 종파들이 더 많다. 기독교의 역사는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정경(正經)은 최종 승리를 거둔 교파에서 사용하던 책들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하룻밤 사이가 아닌 수백 년에 걸친 난산(難産)의 시간이었다. 예수 사후 150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예수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을 대변한다고 나선 종파는 무척 많았다. 그 종파들 중 대표적인 것이 에비온파, 마르키온파, 영지주의자, 원정통 기독교(훗날 정통이란 이름을 얻은 종파의 영적 조상으로 이들은 최종 승리 결정 이전부터 최종 승리를 거둔 관점을 고수했다.) 등이다. 정통파들이 승리를 거둔 이후 한 것은 자신들의 관점을 세련되게 다듬는 일이었다.

 

그런데 배제된 여러 종파의 다양한 관점에 반박하는 과정에서 정통의 교리는 모순적인 체계가 되었다. 주목할 것은 영지주의자들 가운데에는 기독교 영지주의자 뿐 아니라 비기독교적 영지주의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통은 승리한 후(정확하게 말하면‘승리했기 때문에 정통의 자리에 오른 세력들은’이라고 말해야 한다.) 성직자(clergy), 신경(creed), 정경(正經: canon) 등을 다른 기독교 교파를 물리치는 무기로 사용했다. 중요한 사실은 영지주의자들을 비롯한 다른 기독교 종파들은 중앙집권적 권력에 원 정통파만큼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대체로 평등주의자였다.(293 페이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는 신이 사역 활동을 위해 잠시 몸을 빌린 인간으로 보았다.

 

그들에 의하면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가 비둘기의 형상으로 예수에게 들어갔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 그리스도가 예수에게서 떠나가자 혼자 남은 예수는“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절규했다. 그런데 사실‘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란 뜻의“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탄식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대로 구원을 위한 죽음이 예정된 메시아 예수에게서 나왔다는 점은 뜬금없이 여겨진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다가 죽음 직전에 그 사실을 안 것처럼 예수가“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한 것은 너무 돌발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의문은 영지주의자들의 관점을 취할 경우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어만에 의하면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처절하게 부르짖는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오열하는 여자들을 보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하는가 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23장 34절)라고 했고 십자가에 매달린 다른 사람이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 부탁하자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기꺼이 대답한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와 달리 절규하지도 않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23장 46절)라고 말하고 숨을 거둔다.

 

더구나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숨을 거둔 후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다.(..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더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15장 37, 38절)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살아 있는 동안 어둠이 땅을 덮은 뒤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다.(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23장 44 - 46절) 어만은 마가복음이 전하는 둘로 찢어진 휘장은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말한다.(105 페이지) 반면 누가복음이 전하는 찢어진 휘장은 하나님이 성전으로 상징되는 유대인의 예배 방식을 거부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107 페이지)

 

성경에 쓰인 단어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숨결이 배었고(8 페이지) 어떤 오류도 없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9 페이지) 어만은 성경을 처음부터 시작해 끝까지 읽어가는 수직적 방법이 아닌 한 복음서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은 후 다른 복음서에서 전하는 같은 이야기를 찾아 읽는 수평적 방법으로 성경을 읽을 것을 제안한다.(43 페이지) 또한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나와 세상의 관계에 대해,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무엇을 말하며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는 데 어떤 도움을 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적 읽기가 아닌 성경의 실제 저자는 누구이며 성경의 저자들은 어느 시대에 살았으며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으며 당대의 문화적, 역사적 환경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성경의 저자들이 사용한 자료들은 어떤 것들이며 자료들은 언제 쓰였으며 그 자료들의 관점이 서로 모순되지는 않았으며 저자들의 관점과 해석이 다르지 않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성경 자료들 간에 내적 모순과 양립 불가능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성경 해석이 원 메시지를 왜곡하는 것은 아닌가 등에 집중하는 역사비평적 성경 읽기를 제안한다.(18, 19 페이지)

 

어만은 역사비평적 접근법을 접하고 충격을 받고 믿음에 의문을 품었지만 자신을 불가지론자로 끌어내린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전능 및 전선과 양립 불가능한) 고통(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한다.(37 페이지) 나는 물론 어만의 글을 접하기 오래 전부터 성경이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만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모순을 해결하려면 온갖 추측과 상상을 동원한 기발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만이 말했듯 온갖 추측과 상상을 동원한 기발한 해석을 하는 것은 학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것(21 페이지)이다. 나 역시 주변에서 그런 억지에 가까운 논리를 동원해 성경을 해석하고 더 나아가 변호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동은 맹목적이다. 그들은“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누가복음 23장 34절)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교회를 연결해 생각하기 때문에 역사비평적 성경 독해와 수평적 성경 독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금까지 지켜온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회를 연결해 생각하는 것은 정통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임재하고 구원은 오직 정통 교회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어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나님은 교회라는 틀에 갇힐 분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쓰인 책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다운 책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쓰인 책이라는 논리는 원 정통파가 자신들의 신학적 결정이 옳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채택한 것이다.(294 페이지)

 

성경 저자들이 쓴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주요 부분들이 인간의 손으로 변경된 필사본들 뿐이며 지금 정전으로 인정받는 성경은 작성 이후 수백년이 지난 후 정전으로 인정받았고 그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지도 않았다.(300, 301 페이지) 저자는 역사비평 방법론이 반드시 믿음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37 페이지) 그러면 성경을 수평적으로, 그리고 역사비평적으로 읽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예수의 죽음을 각각 고통스러운 과정과 의연한 과정으로 기록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예로 들었거니와 저자에 의하면 누가복음 역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쓰였음에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무대 뒤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보다 그리스도인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를 보여준 텍스트이다.(108 페이지)

 

누가복음 저자가 문제 삼는 고통과 어만이 문제 삼는 고통은 격(格)과 위상(位相)이 다른 듯 하지만 고통스런 죽음과 의연한 죽음의 분리, 각각 예수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운명한 이후 찢어진 성서 휘장의 예에서 보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 저자들의 의도 특히 세상의 고통 및 악(惡)과 관련한 저자의 의도를 헤아리는 것이라는 점은 말하고 싶다. 성경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는 양립불가능한 조항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정통이 여러(여럿이라 했지만 주요 세력들 몇몇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반대파들의 입장을 모두 상대해 반박해야 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 예의 하나가 정통파가 에비온파에 반대해 예수는 완전한 신이라는 주장을 견지한 한편 마르키온파에 반대해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열적 논리이다.(293 페이지) 사도신경이 영지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산출된 도그마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거니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한“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란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정통 세력이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었기에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분열적 논리를 갖추게 된 것이다. 정통이 보인 분열의 정점은 영지주의자들에게 반대해 예수가 둘이 아닌 한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지만 예수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데서 드러난다.(293 페이지) 저자가 고통이라는 문제가 자신이 불가지론자로 떨어진 계기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고통은 종말의 지연과 밀접한 관계로 맺어진 사안이다.

 

종말론자들에게 정의(正義)는 이 시대나 이 땅에서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미래에 있었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와 바울을 비롯한 초기 기독교인에게 영원한 삶은 하늘나라가 아닌 이곳에서 육신으로 사는 삶이었다.(353 페이지) 물론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삶이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냐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냐가 아니다. 어떤 것이든 관건(關鍵)은 그것이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기독교 사상가들이 종말을 이 땅의 현재 시대와 다가올 시대 사이의 수평적 이원론이 아니라 수직적 이원론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종말이 고통으로 가득한 지상 세계와 환희로 가득한 하늘나라라는 공간의 관계로 옮겨간 것이다.(355 페이지)

 

저자는 예수의 죽음은 신화가 아니지만 그 죽음이 구원을 안겨준다는 생각은 신화라고 말한다.(36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쓰이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시각으로 쓰인 책이다.(370 페이지) 저자는 성경이 인간이 만들어낸 책이기에 기독교도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365 페이지)‘성경 왜곡의 역사’는 여러 면에서 두루 통찰을 주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보수주의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전환한 저자의 면모가 제목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 성경을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 규정(375 페이지)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책의 대부분이 성경 왜곡의 배경을 밝히는 데 할애 되었고 저자가 사상을 전환한 이후 성경을 통해 어떻게 삶의 문제들을 해결했는지를 서술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기에‘성경 왜곡의 역사’란 제목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성경 왜곡의 역사’가 지닌 장점 중 하나는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비평적 성경 읽기에 대해 가르치지만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을 때 신도들에게 그런 내용들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31, 32 페이지)한 점이다. 신학대학교가 역사비평적 성경 읽기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해당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저자의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어만의 책은 복음서들간의 모순, 복음서들과 바울 서신간의 모순 등을 지적하는 것에서 나아가 성경에 있지 않는 사실들이 교리로 정착된 배경들에 대해서 까지 상세히 거론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예수가 고통 받는 메시아라는 생각이 초기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지적(317 페이지), 육신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이라는 개념이 초기 기독교 문헌에 없었다는 지적(355, 356 페이지), 예수를 신이라 생각한 요한복음도 세 위격(位格)이 본질적으로 하나라 말하지 않았다는 지적(348 페이지) 등은 돋보인다.

 

복음서들과 바울 서신간의 모순은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차이이다.“사울(사울은 바울의 개명 前 이름이다.)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들을 잔해(잔해殘害: 殘人害物으 준 말: 사람에게 인정이 없이 아주 모질게 굴고 물건을 해침)하던 자가 아니냐...”(사도행전 9장 19절, 20절, 21절)란 구절과,“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라디아서 1장 17절)란 구절을 비교해 보라.

 

그리고“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데살로니가 전서 3장 2절)란 구절과, “형제들아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사도행전 17장 14절)란 구절을 비교해 보라. 이 비교의 핵심은 바울 서신(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 전서)과 바울이 아닌 사람의 글에 드러난 차이이다. 바울은“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갈라디아서 1장 20절)란 맹세를 하기까지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맹세가 성경에 실린 것은 어이 없지만 그것은 바울이 상충되는 의견에 시달렸음을 증거한다. 복음서들간에 예수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가 다르게 기술되었다는 지적(141 페이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과 주님, 그리고 메시아가 된 시점이 다르다는 지적(143 페이지) 등은 특히 그렇다.

 

한편“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마가복음 10장 45절)는 구절에서 보듯 예수는 대속(代贖)을 위해 죽음을 당한 것으로 그려진 반면 사도행전(누가복음의 저자가 쓴 다른 책)은 예수의 죽음을 대속의 죽음이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배척하며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라고 거듭 말할 뿐이다.(142 페이지)“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2장 26절)란 구절과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누가복음 2장 11절)란 구절에서 드러나는 차이도 중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성전 휘장건과 예수가 죽음을 맞이한 자세에 대한 차이에서 드러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저자)의 입장 차이는 선명하다. 저자는 누가복음을 마가복음을 저본(底本)으로 기록된 경전이라 말한다.(142 페이지) 중요한 것은 마가복음이 누가복음 저자에 의해 첨삭(添削)되거나 바뀌었다는 점이다.(142 페이지) 물론 누가복음의 저자는 누가가 아니고 마가복음 역시 그렇다. 신약 성경 27권 중 여덟 권만이 알려진 저자와 실제 저자가 일치한다. 바울이 쓴 일곱 권(로마서, 고린도 전/ 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 전서, 빌레몬서)과 요한계시록이다.(165 페이지) 사실 고대(古代)는 위작(僞作)이 난무한 시대였다. 위작은 적을 공격하고, 특정 의견에 반박하고, 신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전설을 옹호하려고,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쓰였다.

 

당시에는 사칭(詐稱)도 많았고 의도적 개작(改作)도 많았다. 위작은 산업이었다. 물론 잘못 옮겨 적힌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관점이 다른 경우도 무시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요한복음과 세 공관복음간의 차이, 복음서들간의 차이, 바울서신과 복음서들간의 차이 등이 이해되기도 한다. 성경 텍스트들간의 모순은 성경 저자들간의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 주는 반면 성경에 없는 내용들이 교리로 정착된 과정은 말 그대로 알력과 다툼, 왜곡과 궁여지책의 과정을 드러내 준다. 이는 성경을 저자들간에 드러나는 관점의 차이에 주목해 의도를 헤아려 읽어야 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읽을 필요가 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바울을 급진 정치철학자로 읽는 아감벤, 바디우, 지젝 등의 작업이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지향점을 얻는 것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내 경우 다가와 겐조(田川建三)의‘예수라는 사나이’, 홍정수 교수의‘베짜는 하나님’이후 더 이상의 충격은 없었다.‘예수라는 사나이’의 주된 요지는 예수는 조작된 인물이라는 것이고‘베짜는 하나님’의 그것은 기독교인들은 후기 유태교의 육체의 부활과 고대 그리스의 영혼 불멸 사상을 함께(어중간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베짜는 하나님’의 경우 부활신앙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죽음을 극복하거나 죽음 이후의 저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 데서 충격은 절정을 이룬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성경은 여전히 풍부한 연구 자료이고 문학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담론이다. 성경이 연구 자료인 것은 성경이 급진 정치철학자로 읽히는 바울을 알기 위해 읽어야 할 텍스트라는 데에서 드러난다. 물론 바울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 하고 영지주의 관련 책도 읽어야 하고 기독교를 정초(定礎)한 철학도 읽어야 한다. 이 깊은 연관성을 지닌 텍스트를 어찌 버리겠는가.

이달의 사락 m******1 2013.02.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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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모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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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종교에 속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는 기독교의 신인 예수에 대하여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정리한 책인것 같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책의 저자가 살고있는 미국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모습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라 성경에 없고 역사적으로 확인이 안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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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종교에 속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는 기독교의 신인 예수에 대하여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정리한 책인것 같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책의 저자가 살고있는 미국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모습만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라 성경에 없고 역사적으로 확인이 안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고 신학대학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내용도 교인들에게 전파를 안 하는 모습을 보고 책을 출간을 하였다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예수의 참된 모습을 신도들에게 알려주고 성경에 나오는 오류를 알려 주어도 교인들의 신앙심에는 지장이 없을것 으로 확신을 하고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이유로는 이러한 사실들이 새로운것이 아니라 미국의 신학대학에서 정규과정으로 배우는 내용 인데도 학습을 하고 나서도 사회로 나가서 교회를 이끄는 목사로 사목 활동을 잘 하고 있고 그들의 신앙심에는 어떠한 의문도 없는 점을 들수가 있을것 같다.


신약을 이루는 부분의 대부분이 제목에 적혀있는 사도들이 지은것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과 견해를 다른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을 한 위작 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이유로는 예수의 죽음이후 70년 정도가 흐르고 복음들이 지어졌고 쓰인 글이 사도들이 사용을 하는 아람어가 아니라 그당시 학문에 많이 사용을 하던 그리스어로 쓰인점을 들수가 있는데 사도들의 신분을 보면 그들이 한가하게 그리스어를 배울 정도의 부를 누리지는 못하였고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글을 쓰는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서 선교 여행을 다닌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러면 왜 복음의 저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지 않고 사도의 이름으로 편찬을 하였을까 ? 복음의 저자들이 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기독교가 지금과 같이 자리를 잡고 형성이 되어있는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교중에서 약소한 위치를 차지하는 유대인들만의 종교였는데 그러한 위치를 벗어나서 종교의 힘을 키우고 많은 신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구조를 가진 책이 필요 하였고 자신의 믿음과는 다른 믿음을 가지고 같은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과의 전쟁을 위해서도 사도들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복음의 필요성이 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제목으로 돌아가서 왜 예수가 왜곡이 되었다는 말을 하는것 일까 그러한 이유로는 사대복음들이 서로의 내용을 합쳐서 보면 같은 상황을 놓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관점으로 예수의 모습을 묘사를 하는것을 알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힘을 얻으면서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여 지는데 자신들의 교전인 성경에 없는 말과 행동을 만들어 내어서 자신들의 위치를 높이고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는 행위가 만연을 하였다고 할수가 있겠다.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의 모습이 실제로는 역사적인 내용과 틀리고 성경속의 내용들도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을 하지만 자신이 믿는 종교의 지도자가 나에게 거짓을 알려 준다는 사실은 마음이 상할것 같다. 비 종교인도 한번즘 읽어 볼만한 책인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0.11.17.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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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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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                     바트 어만 지음 강주헌 옮김 청림출판 刊   예수가 신인지 호모 사피엔스인지는 논란 거리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다만, 그가 진짜 2010년 전에 태워나서 인간의 원죄를 탕감해 줄려고 희생 대타로 그렇게 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걸 왜 우리가 믿을 것인지 배척할 것인지에 대해서아직도 싸우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회의가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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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                    

바트 어만 지음 강주헌 옮김 청림출판 刊

 

예수가 신인지 호모 사피엔스인지는 논란 거리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가 진짜 2010년 전에 태워나서 인간의 원죄를 탕감해 줄려고 희생 대타로
그렇게 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걸 왜 우리가 믿을 것인지 배척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싸우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회의가 문제일 뿐이다.

찰스다윈이 제기한 진화론 이후에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의 논쟁은 여전히 유효한
화젯거리다. 여기서의 종교는 협의로 예수를 가르키면서 이야기 하자면 신의 존재와
부존재에 대해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이 일으킨 반향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도킨스는 종교의 해악에 대해 낱낱히 열거하며 아예 종교를 인류 사회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할 정도였다.

저자 바트 어만bart D. Ehrman의 책은 처음 읽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트 관계의 저서
는 상당수 발간했으며 인기 토크쇼와 방송에도 다수 출연하는 스타급 신학박사 이다.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회사 연구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부리고 있어 만시지감
이지만 매우 중독성있게 슬슬 읽히운다.

우리의 세계 기록문화유산의 하나인 조선왕조실록도 현장 기록으로서 독보적이지만
승자의 기록이니 뭐니 해서 객관성 부여 측면에서는 인색한 학문의 세계의 냉정함은
과학성을 요구 한다. 하물며 신약성경에 포함된 책들의 원전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며 저자는 적시하고 있다.  나중에 쓰여진 필사본에는 필사자의 단순한 실수도 있지
만 의도적인 변개 과정도 있을 수 있다는 등, 논쟁의 여지도 없이 성경은 왜곡이란다.
물론 보수적 기독교 탈레반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는 것이야 대수롭지 않다며 기개가
대단하다.  

21세기에도 종교와 과학, 창조론과 진화론은 수레의 양바퀴로 인류 사회를 지탱하며
끌고 나갈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거대한 시나리오를 중세 시대부터 권력의 수단으로
왜곡돼 줄창 내려온 게 바로 신약성경이 아닐까 하는 개연성을 파고드는 저자의 다음
저서를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자도 크리스찬이지만 불구하고 말이다.

d****o 2010.06.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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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인간의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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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성경무오설이다.   성경은 신의 성령으로 써내려간 책이니, 한 점 한 획도 잘못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성경무오설은 아직까지 수백만 한국 개신교도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한 나라인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자였던 바트 어만은 처음에 자신도 성경무오설을 믿었지만,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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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주류는 성경무오설이다.

 

성경은 신의 성령으로 써내려간 책이니, 한 점 한 획도 잘못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성경무오설은 아직까지 수백만 한국 개신교도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한 나라인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자였던 바트 어만은 처음에 자신도 성경무오설을 믿었지만,

 

성경 필사본들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런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성경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우리가 보는 수많은 성경들은 모두 누가 배끼고 배꼈는지도 모르는 필사본 투성이이며, 그나마도 수천 개 이상의 오자와 탈자가 있으며, 심지어는 필사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원본에도 없는 내용들을 마구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책, 예수 왜곡의 역사는 그런 바트 어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생애를 담은 네 복음서의 저자도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며, 서로 대조해보면 모순되는 내용들 투성이라고 말이다.

 

물론 한국의 독실한 개신교도들은 그런 학술적 추론조차 거부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읽기 바란다.

x***2 2015.06.2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트 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 비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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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교회를 다닐 때, 이런 책들은 절대로 읽지 말라는 어른들과 형누나들의 무언의 압박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국 나의 그 무한한 의문들과 질문들과 호기심은 교회밖으로 뛰쳐나가게 했고 온갖 세상 모든 학문들을 접하고 완전히 내 몸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렇게 오랜세월 철저한 무신론자로, 유물론자로, 구조주의자 포스트모던의 괴물이라고 스스로 자처하
"바트 어만 '예수 왜곡의 역사' 비평 (1)" 내용보기

 

 어린시절 교회를 다닐 때, 이런 책들은 절대로 읽지 말라는 어른들과 형누나들의 무언의 압박속에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결국 나의 그 무한한 의문들과 질문들과 호기심은 교회밖으로 뛰쳐나가게 했고 온갖 세상 모든 학문들을 접하고 완전히 내 몸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렇게 오랜세월 철저한 무신론자로, 유물론자로, 구조주의자 포스트모던의 괴물이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살다가, 그들조차 아무런 해답을 가지지 않은 공허한 외침이라는 것을 깨달고 결국 다시 기독교에 귀의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후 신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고 나선, 정말로 이렇게 성경이나 예수 비판 혹은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며 온갖 별의별 자신만의 상(象)을 만들어내는 이런 현대 기독교 비판 책들의 주제들은, 이미 오래전 심지어 몇백년전에 이미 온갖 치열한 신학적 논쟁으로서 이미 끝난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신학은 너무나 방대하여 일반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에 이런 책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대중을 오도하게도 혹은 선동하게도 하는 것도 물론이다)

 

 나 같아도 내가 무신론자라면 이러한 '예수는 없었다', '예수는 똥을 쌌다', '사실 예수는 신화다',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했다', '예수는 짜집기이다' 등등과 같은 주제로 수 많은 책을 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증명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말 같다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것들이 세간에 자극적이고 충격을 주기에 책도 이슈화시키기 그만큼 쉬우며 대중이 나의 책을 소비하게 하는 것도 매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사실 이 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인 나조차도) 이런 책들이 더욱더 많이 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면 믿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독교신앙과 신학은 공부하면 할 수록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요즘 나는 신이 진실로 '너네들이 이 성경이라는 신의 계시가 진리인지 아닌지 따져 볼 만큼 따져보라!'라고 던져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정녕 성경이 진리라면 어떠한 철학과 사상적 매스에도 꿋꿋히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살아남았기에 현재도 믿는 것이다. 이슬람은 그것이 두려워 철저히 코란을 번역도 금지하고 감시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런 책이 이슈가 되는 걸 한편으로 굉장히 즐거워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예수는 신화다', 오교수의 '예수는 없다' 혹은 러셀의 모든 책들, 그리고 고전으로는 해석학의 슐라이어마허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같은 위대한 책들을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기독교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모든 사상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니체인 것이다) 차라리 기독교가 믿기 어려울정도로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아예 무신론으로 돌아서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신의 뜻에도 별로 합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쩡쩡하게 믿는 사람들이 왜 믿어야 하는 지도 모른채 현재 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또한 반대로 이번엔 무신론을 맹목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제발 (그들 스스로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책이 나오면 마치 자신이 비판하는 기독교인처럼 맹목적으로 아무 필터링도 없이 믿어버린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즉, 자신들도 똑같이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을 믿으려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가능한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는 진실성에 입각하여 뭐든지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책의 주요 논점을 천천히 살펴보며 비평적 관점에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이만~ㅋ 

 

http://blog.naver.com/917ph/220207372041

 

 

9***h 2014.1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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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왜곡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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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예수는 훗날의 해석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 즉 천국과 지옥,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은 모두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성서비평학자인 바트 어만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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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예수는 훗날의 해석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복음서의 예수는 실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아니라 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훗날의 해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기독교의 전통 교리, 즉 천국과 지옥,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은 모두 기독교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성서비평학자인 바트 어만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성경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비평적 방법을 통해 사복음서를 연구하며,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과 불일치를 파헤쳤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가계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요일도 서로 다르다. 역사비평에 의하면,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가 아니고, 요한복음의 저자도 요한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제기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신학을 전공한 내게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다만, "신학교에서 배우고, 교회에서 잊히다"라는 말처럼, 신학교에서 배운 사실을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교회는 '성금요일'이라 부르며, 성일로 기념한다. 그러나 사복음서를 연구해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신 요일이 일치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폭로(!)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하고자 함이 아니다. 학문에도 단계가 있고, 배움에도 순서가 있듯이 그러한 사실을 논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이해와 지식적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 왜곡의 역사>는 성경의 모순을 '오류'라고 지적하는데, 나는 성경 안에 모순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오류라고 보지는 않는다. 성경의 모순을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일 기독교가 성경을 짜집기 하며 교리를 만들어내면서 '역사적 예수'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고 왜곡하고자 했다면, "왜 성경 안에 존재하는 그러한 모순을 그대로 놓아두었을까?" 신학이 아닌 신앙적인 견지에서 나는 성경에 나타는 모순을 영적인 신비, 또는 하나님의 수수께끼라고 보고 싶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주님의 가르침은 오직 거듭난 제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괴테가 <파우스트>를 썼을 가능성을 컴퓨터로 분석했더니 그 가능성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분명 <파우스트>의 저자는 괴테가 맞지만, <파우스트>에 녹아 있는 사상과 철학과 묘사와 표현은 오로지 괴테 자신에게서 나온 그 무엇이 아니라, 괴테가 받은 '영향'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하나의 문서로만 접근하는 것은 인간을 물질로만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역동성이 필요하다.

 

<예수 왜곡의 역사>가 주장하는 내용은 역사비평, 즉 과학적 비평의 결과물이다. 이 책을 특별히 신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성경 안에 나타나는 모순과 교회의 전통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 도전과 과제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바이다. 학문(신학)의 즐거움이 믿음의 토대를 다지고, 그 뿌리를 더 든든히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c***1 2010.06.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