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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어려운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 더군다나 자연과학을 배운 나로써는 지난하기만 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동양철학사라고 하면 교양시간에 충분히(?) 배운 것 같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다가오지만 서양철학사는 죽어라 외우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그러한 철학사도 아니고 역자서문을 읽는데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엉켜있는 것 같고, 계속 찜찜하다. 알고 보니 오타가 있다. 책은 계속 18세기라고 하는데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시기가 1879년으로 잘못 쓰여있다. (10페이지 4번째 단락) 그게 걸려서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처음 두 페이지를 다시 읽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18세기를 흔히 계몽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혹은 빛의 세기라고도 한단다. 이것은 당시에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니고, 지나고 나서 보니 계몽주의 시대의 상징적인 철학가들로는 칸트,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볼테르등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사상가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극단적, 보수주의 정통 로마 카톨릭교에 공감하고, 군주제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그들의 공권력과 조율하는 제도권의 주류 사상가들이다. 제도권은 그들의 공권력 남용에 이들 사상가들이 형이상학적 지지를 보내주는 것이 기쁠 뿐이다. 더군다나 막 태동하기 시작한 급진적인 사상들을 볼테르와 루소가 앞장서서 공격하고, 백과전서파는 그들을 사장시키려 드니, 그들이 예쁘기만 하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에 급진적 유물론자인 ‘장 멜리에’와 ‘라 메트리’, 프랑스적 공리주의 사상가인 ‘모페르튀이’, ‘엘베시우스’, ‘돌바크’ 그리고 사디즘으로 잘 알려진 ‘사드’등 6명의 철학자들이 펼치는 그들의 사상에 대하여, 그들의 저작을 기초로 하여 쓰여 있다. 아르덴이란 시골에서 40년간 주임신부로 보낸 장 멜리에는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종교는 기만에 속하며 기독교를 탈피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공언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 무신론은 그 자체로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의 첫 단계에 필요한 받침대이자 기반윤리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그가 사제직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멜리아는 그의 단 한권의 저작 [유언]에서 서구역사상 최초로 무신론적 사상을 제안하였으며, 유물론적 존재론, 행복의 도덕론 그리고 기독교 이후 철학의 건설 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서민들, 모욕당하는 사람들, 계급 없는 사람들, 이름없는 사람들을 옹호한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무신론자 신부, 그리고 급진적인 유물론자였다고 한다. 이런 그가 죽었을 때 교단은 당연히 그의 시신을 사라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제관의 정원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매장하는 것으로.. 철학을 하는 의사였던 라 메트리는 그의 저서 [인간 기계론]에서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보는 쾌락주의 유물론을 주장한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무신론자 이었으며, 그가 보는 스토아철학과 기독교는 삶을 혐오하게 만들고, 금욕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점에서 꼭 닮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살아서 온갖 수난을 다 당하고, 그들의 저작도 필사본으로 전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무신론, 유물론, 쾌락주의 그리고 혁명 등 급진적인 사상을 재료로 삼아 그들만의 건물을 구축함으로써 세기말 대혁명의 징조를 밝히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학교다닐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하면 곧 바로 벤담을 떠올리고, 이들은 공리주의자라고 배웠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계보는 모페르튀이에서 시작되어 엘베시우스와 돌바크를 거쳐 고드윈에 이르고, 마침내 벤담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고 한다. 최대다수의 가능한 한 최대행복에 대한 쾌락주의 원칙, 이 향락들의 계산에 들어있는 메커니즘의 진수를 뽑아낸 프랑스 철학자 이름이 모페르튀이라고 한다. 그는 공리주의를 구성하는 자료들의 개발에 기여 하였으며, 우리의 본성이 되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서 해야 할 모든 것, 그것은 아마, 쾌락이야말로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어 줄 그런 것 일거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칸트의 비판철학과 대립의 각을 세운 엘베시우스는 [정신론]에서 말하길 인간은 있는 그대로 쾌락에 이끌리며, 오직 이해타산의 동기에 의해 행동하고 예상한 이득들에 대한 향성에 의해 인도된다고 보았다. 돌바크는 무신론의 선구자이다. 멜리에가 무신론적 주해에 준비작업을 제시했다면, 돌바크는 구체적인 문제들, 예수, 종교, 기독교에 체계적인 방법으로 주해를 전개하여 무신론적 유물론을 개발한다. 그는 [자연의 체계]에서 자연의 순수한 조각들인 인간은 쾌락을 원한다고 보았다. 즐기려는 욕망, 자신을 보존할 필요 이것이 인간이라는 기계의 원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에게 유효한 자연법칙, 즉 즐기려는 욕망으로써의 쾌락을 사회 전체로 옮겨올 때 최대다수의 가능한 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영국 공리주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들이 무신론과 유물론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금욕주의적 이데올로기 사회에서 모든 도덕과 행동의 기준은 기독교적 관념주의 일수밖에 없었던 환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사디즘이란 명사는 대부분이 알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드는 철학자로 얼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독특한 철학이 없다. 그가 말하는 무신론과 유물론은 그가 프랑스 무신론자나 유물론자에 관심을 가진 독자일 뿐이라는 얘기와 같다고 한다. 그가 유일하게 만들어낸 개념은 고립주의 인데, 이는 한 존재의 물질성이 육체성에 제한되어 있으며, 존재를 전체 가운데의 하나의 눈먼 조각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여 서민에 대한 귀족의 독재를 정당화 시키는 기제이기도 하다. 사드가 원한 것은 공동체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위한 가장 격렬한 쾌감 이었다고 한다. 사드는 문인이며 철학자이었지만 또한 성범죄자이며 기회주의자이고, 가장 완고한 봉건주의의 화신이며 반혁명분자이자 파시스트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1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당시의 철학사조와는 분명히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억압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저서는 필사본으로 전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시대를 이끌고 있는 기독교와 대척점에 섬으로써, 그들은 역사에서 철저하게 지워질수 밖에 없었다. 나도 모두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이지만, 그들의 유물론과 무신론이 당시 억압받는 하층민을 위한 것 이었기에 세기말 대혁명의 시대를 준비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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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철학은 모두 정치철학이거나 경찰철학이다.”란 니체의 말이 마음에 들려오는 아침이다. 참 많은 삶을 살아왔다는 느낌이 있다. 인생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사라진 시대, 철학의 범주마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공간에 그렇게 살고 있는 듯이다. 무엇을 위해 살고,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전혀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시대,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몸과 마음이 움직이고 근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만연한 시대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빛의 시대 개혁자들은 카톨릭 성직자들을 지탄하고, 카톨릭 교회의 권력 남용에 반발하고, “파렴치를 쳐부수자”고 선동하고,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조롱하는데, 그러나 조심스럽게 입술만 달싹거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가 민중을 조정하여 민중을 왕정 체제에 의해 강제된 예속 상태로 유지하는 데 매우 유용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자들이 세상에 다가가는 태도를 말하고 있다. 빛의 시대, 그들은 교회의 부패와 무능 위에 자생했다. 그들은 자유와 물질의 소중함을 강변했다. 그러나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또 계몽, 즉 빛들의 세계는 온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여자나 청소년들은 권리가 주어지지도 않았고, 기존의 남자들만 자신의 오성을 인정해 주는 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것이 중세 카톨릭 사회를 거쳐 내려온 습성으로 초기 빛의 세계에서의 한계적 요소다. 그리고 그들은 카톨릭 왕조의 용의주도한 아들로서 특정된 장소에서 은밀히 소란스러운 사상을 만든다. 길거리 사상에 반하는 보수적 빛의 사상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급진적인 빛의 세계가 등장한다. 이들은 종교적인 관념의 죄의식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관능을 찬양하고, 신의 죽음을 예고한다. 차 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그들을 스스로 쟁의의 무덤으로 이끌어가는 시초를 제시한다. 그들은 또 토지 공유화를 부르짖기도 하고, 귀족들의 목을 졸라매자고 하며, 철학적 방탕과 육체적 향연을 찬양하고 가난한 자들과 민중들을 위한 철학을 하자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기적인 정의에 희망을 건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헤겔 철학 비판 서설>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한다. 이 책은 빛의 세계에서의 급진주의적 성향의 시발점을 ‘장 멜리에’로부터 출발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사제이면서 무신론자고 철저한 유물론자, 확고한 쾌락주의자, 복수심이 강한 기독교 저주자였다. 그런 그를 이 글에서는 ‘사제복 밑에 18세기를 폭파시킬 모든 다이너마이트를 응축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신의 자리에 자연을 가져다 놓는 유물론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이 그의 이름은 도외시하지만 그의 생각을 통해서 그들의 사고를 펼쳐나가게 만든다. 또 한 명, 라메트리가 보여준 익살과 기지의 세계관은 뒤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의사로 철학자로 그의 삶은 자신의 자취를 은폐하고, 자신의 작품, 그리고 생각의 흐름 등을 외관상으로 혼미하게 만들어 놓는다. 허나 그는 단언한다. “철학자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유물론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라고. 그는 구철학의 비판과 신철학에 대한 찬사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 요컨대 유심론 현자들을 조롱하는가 하면 유물론 철학자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는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 ‘영혼의 자연사’와 함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쫓기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너무 급진적인 그의 성향을 시대가 수용하지 못한 결과다. 그는 <인간 기계론>에서 ‘전 우주에 다양하게 변모하는 단 하나의 실체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신이 존재한다면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의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이 물질로 간주되는 사상은 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된다. 모페르튀이의 변증법적인 사고, 신이 인간에게 이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라고 준 모든 삶을 금기 시 하는 것이 영혼의 세계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게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강변한다. 하여 현실에서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 그의 공리주의는 당시의 종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또 엘베시우스는 개념은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고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덕은 변증법적이고 행동적인 게임법칙으로 지속적 시간 가운데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초자연적이고 영원한 도덕을 주장하는 종교인들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그의 이런 생각들이 맹신주의, 독재, 미신에 대한 불신을 그려내고 그것이 종교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궁극적으로 기존의 도덕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간주된다. 하여 그가 낸 책이 찢겨지는 수난도 당한다. 그는 감각을 매우 중요 시 한다. 모든 것이 감각적 기능에 의해서 온전해 진다고 하며 쾌락의 중요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돌바크의 무신학도 제시되고 있다. 그는 성경을 다른 소설책 읽듯이 읽으면 된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이야기책, 허구화된 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면으로 종교에 대항하는 일이 될 것이고 유물론적 사고관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줄기가 된다. 즉 모든 행함들이 기술로 인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위대한 해방자로 찬사되고 있는 사드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의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면서 그가 방종을 행한 자였음을 직시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이들의 세계 속에서 자생하였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빛의 시대 급진적 철학자들은 시대 속에서 신ㅇ르 부정하는 쪽에 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계몽주의 이후의 자유주의, 공산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정통 철학의 변두리에 서서 시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철학자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상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어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늘 배워 왔던 사상가들의 얘기가 아니고, 그들 주변에서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인정의 대상에서는 멀리 있었던 찰학자들의 모습이다. 급진주의 철학자,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 모양새가 되는 듯하다.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 등이 이들과 사고의 괘를 같이 하면서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들을 생각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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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옹프레가 기획한 6권의 반(反)철학사중 4번째 책에 해당한다. 왜 4권부터 출간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6권의 반철학사 중에 4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이 가장 도발적이고 파괴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1권부터 차례대로 읽으면 미셀 옹프레가 기획한 반(反)철학사가 주류 철학사를 보완해주는 미지의 철학이라는 것을 더욱 잘 이해했을텐데 가장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이 책부터 읽으려니 읽을때마다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고 때로는 읽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읽어내기 어렵다는 것이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파괴적이고 전통을 극도로 조롱하는 사상의 표현 수위로 인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는 뜻이다. 철학은 철학자의 삶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철학은 언제나 ‘누구누구의 철학’이라는 고유명사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모든 시대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철학이란 있을 수 없고 언제나 한사람의 삶의 역사에 제한되어 있는 한시적인 철학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칸트의 철학, 데카르트의 철학, 들뢰즈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6명의 급진적 철학자도 저자 미셀 옹프레의 프리즘을 통과한 사상적 색깔이 맞아떨어진 철학자들이다. 책을 통해서 저자의 이력과 살아온 삶을 보니 반골과 비딱이 기질이 있는 반항적 철학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의 삶과 맞물린 사상의 색깔이 결국 이 책에서 언급하는 6명의 급진철학자들의 사상과 맞어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언급하고 있는 6명의 철학자들은 미셀 옹프레의 사상적 프리즘에 의해 해석된 것이다. 저자와 6명의 급진철학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통을 극도로 혐오하고 상당히 파괴적이고 노골적인 반골 철학자라는 것이다. 모든 책이 유익한 책이 아니고 모든 책이 좋은 책은 아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책을 쓴 저자의 이력과 책이라는 지적 권위에 눌려서 아무런 비판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음식도 웰빙음식이 있고 피해야 할 음식이 있듯이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반드시 분별력을 가지고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분별력을 가지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상당히 좌쪽으로 치우친 책이다. 영화로 따지면 19금 하드코어 영화이고 음식으로 따지면 원숭이 골 요리, 곰 발바닥 요리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저자 미셀 옹프레가 언급하는 급진철학자들은 그 시대의 시대상이나 시대정신을 보완해주는 소장파 철학자라기 보다는 상당히 뒤틀린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 시대의 아웃사이더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명의 급진 철학자들이 존재했던 시대는 빛과 이성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계몽주의 시대였다. 로마 카톨릭과 왕정 체계가 그 시대의 주류사상과 정치체제였다. 이 때 활동했던 잘알려진 철학자들로는 칸트,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볼테르가 있고 이들은 로마 카톨릭과 왕정체제를 지지해준 제도권안에 머물렀던 주류 사상가들이였다. 이들이 때로는 이러한 주류적 사상과 체제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제도권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계몽주의 시대에 미셀 옹프레는 전혀 다른 사상적 색깔을 가진 6명의 철학자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장 멜리에, 라 메트리, 모페르튀이, 엘베시우스, 돌바크 그리고 사디즘으로 알려진 사드이다. 장 멜리에는 철저하게 기독교적 교리와 사상을 부인하고 혐오한 신부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가장 주류 기독교를 혐오하거 신은 확실히 없다고 부정하며 높은 수위로 그러한 신부들을 조롱했던 그가 40년 동안이나 주류 종교인으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작인 <유언>은 서구역사상 최초로 무신론 사상을 드러낸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철저하게 무신론자로 살아간 신부였다. 의사였던 철학자 라 메트리는 자신의 저서 <인간 기계론>에서 인간을 기계로 보는 유물론적 쾌락주의자였다. 유물론자는 무신론자가 될수 밖에 없고 무신론자는 결국 쾌락주의로 귀결된다. 라 메트리는 기독교적 삶을 부인한 유물론적 쾌락주의자였다. 모페르튀는 공리주의를 이끌어내는 모티브를 제공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본성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엘베시우스 또한 인간은 쾌락에 끌리며 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돌바크는 무신론자이며 유물론자 그리고 쾌락주의자였다. 사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디즘의 기원이 되는 사람으로 상당히 급진적인 사람이였으며 극도의 쾌락주의자, 극도의 도덕 혐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후세에 뒤틀린 가학적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용어인 사디즘의 기원이 되었다. 이상 6명의 공통점은 무신론자이며 유물론자이며 쾌락주의자이며 공리주의자였다. 이 네가지 사상은 원인과 결과로서 서로 연결된다. 즉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는 유물론자가 될수 밖에 없으며 모든 것이 물질뿐인 유물론자들에겐 인생의 의미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쾌락이 가장 큰 의미이며 이러한 쾌락이 극대화 되는 것이 바로 선이며 공익이라고 주장하므로서 공리주의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역사속에서 내려온 전통을 부인할 뿐 아니라 그것을 극도로 혐오하며 도덕을 파괴하여 인간의 욕망안에 쓰여진 대로 새로운 도덕과 역사의 기준을 쓰려고 형이상학을 조정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그들이 부인하는 전통을 새로운 기초위에 세울 새로운 기준과 도덕을 만들어야 할 엄청난 과제가 부과되는 시도이며 완전히 새로운 철학적 기초위에 전혀 새로운 인간의 삶의 규범을 만들어야 할 엄청난 과제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언급하는 6명의 철학자들은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을 보완해주는 감추어진 사상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파괴적으로 가학적이다. 그들의 사상은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이성과 주체로 쌓아올린 철학을 모두 해체하고 새롭게 건설하려는 방법적 파괴를 지향하는 해체주의 사상이 아니라 그야말고 쳐부수고 무너뜨리는 파괴적이며 가학적인 사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철학은 뒤틀린 영혼과 욕망을 포장하는 도피처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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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8세기 프랑스 사회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사상 위에 구축된 사회로서 교회와 소수 귀족들은 특권층을 이루어 일반인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예외적인 권리를 누리며 일반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 옹프레는 기독교를 부인 혹은 거부함으로서 특권층 편에서 사유하지 않고 그들을 옹호하지 않으며 일반인 편에서 일반인을 위한 사회제도가 설립되고 운영되기를 소원하는 18세기 급진주의 사상가들 6명 장메리에, 라메트리, 모테르투이, 엘베시우스, 돌바크, 사드를 소개하고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몇몇 주요 상징적 대표 사상가들인 칸트,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볼테르등은 노예제도나 흑인노예 매매의 옹호자들 편이며,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사상들과 반동적이거나 보수적인 사상가들이다. 그들은 극단적, 보수적인 정통 로마 카톨릭교에 공감하고, 군주제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그들의 공권력과 조율하며, 공권력의 남용을 지지한다.
예로 흑인들의 노예제도에 대한 고찰에서 노예제도를 지탄하지만 노예 소유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게 80년의 유예기간을 두자고 한다. 소위 빛들이고 지성들이라고 불리는 빛들의 귀감이라 할 칸트조차도 말이다. 칸트는 보통선거에 대해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능동적 시민들에게만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고 보고 수동적 시민들, 요컨대 고용인들에게만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고 보고 수동적 시민들, 고용인들, 근로자들, 봉급자들은 흑인노예들이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비누로 씻는 지주 백인과 동일한 양식으로 세상에 존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시기에 기독교를 공격하는 급진적인 빛들이 존재한다. 이 급진적 지성들은 신도, 주인도, 교황도, 왕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토지의 공유화를 주장하며, 귀족들의 목을 사제들의 창자로 졸라매자고 부르짖고, 철학적 방탕과 육체적 향연을 찬양하고, 가난한 자들과 민중을 위한 철학을 하자고 고취하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는가하면 쾌락주의까지는 아닐지라도 행복주의 도덕을 가르치고 인간의 정의에 희망을 건다. 그들은 급진적 사상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계몽시대 급진주의라들이라한다.
급진적 사상이라함은 쉽게 마르크스가 그의 헤겔 철학 비판서설에서 내놓은 정의를 차용해서 급진적이란 사물을 뿌리에서부터 보는것이다. 어디에 뿌리들은 있는가함은 볼테르의 세기에 뿌리들은 여럿이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와 왕정이 그 핵심으로 보인다. 사실상 급진주의자들은 새로운 지성적. 철학적 풍경을 형성한다. 물론 각자는 이 새로운 새계의 한 조각 또는 두조각, 그 모두를 내포하는 장 메리에와 함께 그보다 많은 조각들을 대표한다. 요컨대 무신론, 유물론, 쾌락주의, 혁명으로 선례들은 사상의 역사 가운데 존재하며, 이 관념적 세력들은 무로부터 출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세력들의 현대성은 그것들이 여기서 최초로 문장의 형식을 취하는 점에 있다. 첫째로 무신론, 급진주의자들은 신의 이름들을 정제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종교를 끌어들이지도 않는다. 급진주의자들은 명료하게 의견을 밝힌다. 종교? 미신이다. 신? 허구다. 기독교? 전설이다. 두번째 유물론. 현실계에서 모든 것은 입자들의 역학에 환원된다. 세계에 대한 관찰을 과학적으로 경험하고자 한다. 백과사전는 자연에 대한 학문들에 속하는 지식들.화학, 지질학, 식물학, 의학, 우주형상지, 광물학, 수리학, 광학 등에 번호를 매기고 그것들을 세분화한다. 죄에 대한 책임? 허구다. 세번째 쾌락주의. 신이 계율을 만드는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은 자연에 순응한다. 해서 기독교의 금욕적 이상은 미친것이다. 현재 세계에서의 행복의 도덕관이 출현하는데서 비롯된것이 혁명이다. 네번째 혁명. 혁명은 신을 부정하는것과 내재적 세계, 물질적 세계의 기치를 들고 순수한 관념들을 부정하는것, 쾌락적 세계를 지향하며 금욕적 이상을 부정하는것..이와 같은 것들만도 충분히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지성석. 이데올로기적. 철학적인 면에서 진정한 혁명들에 귀착한 소재들이지만 혁명해야 할 다른 세계가 남아 잇으니 곧 정치의 세계-정의로운 세계를 위하여이다.
무신론자이며 아나키스트인 장멜리에 신부, 철학자 의사이자 즐기는 기술의 비극적 지지자인 라메트리, 사회적 정의에 심취한 징세청부인 엘베시우스, 도덕정치의 옹호자인 유물론자 남작 돌바크, 후안무치의 후작 사드는 쾌락주의, 공적재산, 공동체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즉 혁명, 이러한것을 자료로 삼아 계몽시대 급진철학자들은 그들의 사상을 건축한다.
이 책의 급진철학자들의 제시하는 사상들이 사실 카톨릭 신자인 내가 좀 거북한 내용도 많았었다. 고해성사나 종부성사를 부정하고, 예수를 예수쟁이라 부르며 예수는 유대의 사기꾼으로 표현되었고, 성수, 세례, 부활, 성찬식 등등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것이고 기독교는 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역사로부터 이루어졌다고 표현을 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들말처럼 신의 존재여부를 과학적인 근거로 제시할 수 없기때문에 그들을 비난할수는 없없다.
다만, 철학이라는것이 사상이라는것을 잘못 옮겨진다면 굉장히 비극적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드는 철학자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는 공동체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위한 가장 격렬한 쾌감이였다고 한다. 그는 성범죄자이기도 하다. 세번이 성범죄행위는 가히 엽기적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리고 그의 망상들을 기술하고 있는 책 <소돔에서의 120일>에 있는 내용이 비시의 민병대, 독일의 게슈타포, 나치의 야만적인 군, 그리고 모든 파시스트 체제에 의해 실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우리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가장 인생깊었던 구절은 파리 소르본 대학 주변의 벽들위에서 위세를 떨친 문장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느라 변경되긴 했어도 장멜리에신부의 <유언>에서 발췌한 어느 민중이 차용한 말이다. 마지막 사회학자가 마지막 관료의 창자에 목 졸려 죽어도 인생은 여전히 문제투성일까? 지상의 모든 권력층과 귀족들은 사제들의 창자로 목을 메달아 교수형에 처해지길 P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