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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껍질만 가득차 있고 본질을 지키지 않는, 그래서 성경속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요, 회칠한 무덤이라고 혹평을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는 독기를 품은 것처럼 악담을 퍼부으셨다. 성경속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언제가 가르치는자 백성들의 지도자로 나온다. 그러나 존경받기를 좋아하고, 입으로만 가르치고 실천하지는 않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의 대명사로 나온다. 그들은 사사건건 예수님과 부딪히고 가장 극단의 대척점에 서있는 자들로 묘사된다. 성경을 읽다가 순간 예수님께서 혹평하신 그들이 궁금해 졌다. 도대체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오래전 수업시간에 교수님으로 부터 바리새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말씀, 오히려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교를 이끌어왔다는 말씀이 순간 떠올랐다. 그 순간 바로 바리새인들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 책 <유대교의 역사적 과정>이 검색되었다. 저자를 보니 정연호 교수님이시다.
정연호 교수님이 내가 이스라엘 성지 연구소에 있었을때 함께 생활하면서 간간히 대화를 나눈 분이시다. 그 당시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학위논문을 마치셨던 분으로 히브리어와 영어 그리고 유대문화와 역사에 능하신 분이셨다. 오래동안 이스라엘에서 유학을 하시며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신 분이다. 그래서 유대교에 대한 책을 쓰시기에 적합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유대교가 어떠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유대교로 이어져 왔는지 큰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문장 한문장이 밀도높지만 어렵지 않게 쉽게 읽히고 저자가 직접 오래동안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경험한 흔적들이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났다. 서술 방식은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오래된 역사의 과정을 매우 섬세하고 논리적으로 그리고 설득력있게 써내려 간다. 자세한 부분을 모두 다루지 않고 커다란 역사적 맥락만을 터치하기에 그 내용의 깊이가 얕을 수 있지만 몇천년에 걸친 유대교의 발전 과정을 30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으로 모두 그리는 것은 분명 굉장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바래새파에 대해서 학문적 내용과 유대문화와 역사의 경험이 녹아내려 매우 좋은 자료로서 역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은 먼저 유대교에 대해서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대교는 좁게는 종교적인 관심, 그중에서도 히브리 성경과 랍비문헌-미쉬나, 탈무드 등-에 관한 측면에 집중되지만 넓게는 유대인들의 종교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세속적인 삶과 관계된 개념이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아브라함에서 부터 시작되었지만 유대교는 보통 제2성전 시대라고 불리는 주전515년 이후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성전중심이였던 유대교가 그 성전이 파괴됨으로 율법은 성전이라고 여기는 바리새파들이 등장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의 12지파중 10지파가 사라지면서 유대지파만 남게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토라중심의 새로운 유대교가 생기는데 여기서 부터 유대교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주후 70년 로마에의해 제2성전이 파괴되고 난후 랍비들에 의해 주도되게된 유대교를 랍비 유대교라고 하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바리새파들이 등장하게 된다. 랍비 유대교, 즉 바리새파들의 의해 주도된 유대교는 성문율법 뿐 아니라 구전율법 또한 법적 권위를 인정하며 이것을 '할라카'라고 하고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에 언급된 '장로들의 유전'이다. 이렇게 성경의 배경이 되는 유대교는 바로 바리새파들이 형성한 유대교의 틀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예수님에 의해 심하게 비판당하긴 했지만 유대교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보면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게된 장본인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당시 종교적 사회적 지도층이였다.
이 바리새파들은 고대를 거쳐 중세를 지나면서 유럽사회의 배척을 받게되고 공식적으로 게토(ghetto)라는 유대인 격리구역에 격리수용되게된다.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종교와 관습으로 유럽사회에서 자신들만의 문화와 종교를 지켜가게된다. 이때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유대교적 관습이였습니다. 유럽사회 전역에 계몽주의 물결이 휩쓸게되고 유대인 격리구역인 게토(gheto)가 폐지되고 유대인들은 유럽사회의 주류로 편입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사조로인해 유대인들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한다는 새로운 바람이 불게되고 이로인해 랍비 유대교는 계몽주의적 문화에 반해 전통적은 유대교를 지켜야 한다는 정통파와 그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개혁파로 나뉘게 된다. 나중에 이 개혁파도 진보적인 개혁파와 보수적인 개혁파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세가지 종파는 오늘날 까지 현대 이스라엘 안에 있는 종파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의 뿌리가 되는 것이 바로 랍비 유대교, 즉 바리새파의 전통의 연결이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볼때 바리새파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종교와 문화, 즉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이 성경에서 외식하는 자요, 독사의 자식이라는 불명예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들로 인해 지금의 이스라엘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경의 문자갯수를 하나하나 세고, 음식과 조미료의 십일조까지 철저하게 토라의 말씀을 지켰던 그들은 당대에 존경받는 지도자였으나 결과적으로 토라의 정신이 아니라 그 껍데기만을 철저히 지키므로 원래 사람을 살리는 율법의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 오히려 율법으로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죽이는 그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율법의 반대 극점에 서있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바리새파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들이 토라에 목숨을 걸고 할라카와 미드라쉬, 그리고 탈무드로 이어지는 유대교의 경전을 물려주고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형성시켰지만 율법의 힝식만을 지나치게 강조할때 원래의 정신에서 멀어지는 비극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가장 예수님과 가까와야 될 사람들이 가장 예수님의 반대점에서 독사의 자식이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던 바리새파들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원래 토라을 정신을 구현하지 못하고 외적인 종교적 관습만을 남겼던 것이다.
탈무드를 낳은 힘, 그것은 시대정신을 좇아 말씀을 새롭게 발견해 나간 에스라의 하나님 사랑과 백성 사랑의 마음이 었다고 본다. 성문경전안에 하나님이 오는 모든 세대들을 위해 모든 필요한 말씀들을 넣어 두셨다고 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지혜 가득한 믿음이었다고 본다. 오늘날우리가 유대교에서 배우는 지혜는 이것이다. p.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