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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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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우선 이런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운에 감사할 뿐이다.꼭!!!! 읽어보기를 바란다.우 리는 적절한 용어인지 생각지도 않고 파쇼, 나치즘 등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정작 파쇼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치즘에 대해서는 어디서 말도 꺼내기 힘들 정도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뻔하게 히틀러와 유태인 학살, 아우슈비츠, 나치문장, 가죽옷과 올빽머리 등등일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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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우선 이런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운에 감사할 뿐이다.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우 리는 적절한 용어인지 생각지도 않고 파쇼, 나치즘 등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정작 파쇼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치즘에 대해서는 어디서 말도 꺼내기 힘들 정도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뻔하게 히틀러와 유태인 학살, 아우슈비츠, 나치문장, 가죽옷과 올빽머리 등등일 것이다.

그런 단순하고 유치한 인식을 벗어나서 보다 분석적이고 나치즘의 대두와 1945년 종전이라는 단순성에서 벗어나서 아날학파같은 일상에 대한 세세함과 뛰어난 분석력, 푸코의 이론을 받아들여 순응과 저항 권력의 감시와 내면화 그리고 나치즘이 갖고 있는 근대성과 반근대성 그리고 끝없는 모순적 논리로 인한 선택으로 볼 수 있는 학살 등등등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기 때문에 보다 짜임새가 있으며 단순한 경제 논리만으로 말하는 입장이나, 그외에 독일의 특수성을 말하는 입장 등에 대한 반박과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말하고 있다(좌파나 우파나 이러한 다
각도의 분석은 하지 않고 상대방 흠집내기 식으로 분석하는 것은 정말로 짜증스러운 일이다 나는 점점 양쪽 모두가 갖고 있는 경직적 시각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만든다).


내 용을 읽다보면 과거 한국의 상황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박정희, 전두환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것들과 살아남기 위해서 순응해야 하고 저항하지 못했던 것들, 그렇지만 그것이 정권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는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괜찮은 책을 알게되었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적어보련다.

"자유란 언제나 새로이 그 실현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천에서 싸우는 것일 터이다."
y*******o 2007.08.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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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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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상인가? ‘작은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나치즘을 분석하고 이해할 때 전체주의적 해석에 경도되곤 한다. 이는 나치즘의 지배체제, 지배집단, 억압 메커니즘을 분석하되, 그 현장에 있던 억압된 사람들과 대중의 경험을 도외시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 포이케르트는 거대한 변환의 관점에서 역사적 현상을 분석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일상적 행동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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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상인가? ‘작은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나치즘을 분석하고 이해할 때 전체주의적 해석에 경도되곤 한다. 이는 나치즘의 지배체제, 지배집단, 억압 메커니즘을 분석하되, 그 현장에 있던 억압된 사람들과 대중의 경험을 도외시하곤 한다. 그러나 저자 포이케르트는 거대한 변환의 관점에서 역사적 현상을 분석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일상적 행동양식들을 두텁게 묘사하면서 작은 사람들의 모순적이고 불투명했던 경험들을 치열하게 살피고 있다. 물론 일상에 대한 연구가 기존의 이론과 시각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님을 전제하고 있다. 즉 일상에 대한 고찰은 총체적 복잡성 속에서 일상의 어떤 경험이 정치적이었는지 또는 비정치적이었는지를 되짚어 가는 것이다. 즉 일원론적 해석을 타파하면서 일상 경험의 순응, 비순응, 거부, 항의, 저항 등을 면밀히 파헤친다. 이와 관련하여 포이케르트가 보여준 다양한 예와 진술들은 연구자의 치밀한 노력과 문제의식 그리고 초지일관하는 목적 지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다른 연구와 눈에 띠게 다른 점은 포이케르트는 나치즘을 독일의 특수성으로 보는 기존 시각을 비판하면서 나치즘을 서양 근대문명의 병리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근대성을 정상성으로만 놓는 틀을 넘어서 또한 근대성 vs 야만성이라는 배타적 인식의 딜레마를 해소하고 그 관계를 해체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나치즘을 근대적 일탈 현상이라고 분석한다면, <나치시대의 일상사>에서는 나치즘과 관련한 독일 특수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치가 유태인들에게 생필품을 판매하는 것을 막아서자, 유태인 주부들을 대신해 장을 보는 주부도 있다...베를린 시민들은 나치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태인에게 가한 추악한 행위와 강탈과 방화에 분명하게 항의했다. 그것은 경멸하는 듯이 쳐다보거나 구역질난다는 듯한 몸짓으로부터 공공연하게 욕을 하거나 가차 없이 비판하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하다(81쪽)
c****n 2006.05.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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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문화가 히틀러를 낳았다고 ???????
"게르만 문화가 히틀러를 낳았다고 ???????" 내용보기
동아일보 기자님은 아마도 이 책을 너무 속독하시다보니 제대로 읽지 못한게 아닌 듯하네요. 독일사의 특수성이라고 해야지요... 이 책은 나치즘, 그리고 파시즘에 대한 배경과 성장을 일상사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나치즘은 단순히 게르만적인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치즘, 또는 파시즘은 우리 사회에서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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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자님은 아마도 이 책을 너무 속독하시다보니 제대로 읽지 못한게 아닌 듯하네요. 독일사의 특수성이라고 해야지요... 이 책은 나치즘, 그리고 파시즘에 대한 배경과 성장을 일상사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나치즘은 단순히 게르만적인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치즘, 또는 파시즘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한국사회와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섬뜩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게르만신화 대신, 다른 이데올로기가 있지요. 박정희와 경제발전의 신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들. 그 목적은 역시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치가 강조한 것은 국민들의 희생이었고, 밝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현실에 대한 구호적 설명 "모든 것은 다 너 때문이야..." 이성에 대한 비판, 근대와 합리성에 대한 부정. 이것이 바로 나치의 시작이었죠. 그리고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섬뜩해지는 책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데 좋은 지침이 되는 책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자유란 언제나 새로이 그 실현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천에서 싸우는 것일 터이다."
g******l 2004.09.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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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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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위인의 일생 또는 그들이 만들어 놓았다고 통용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가 배웠던 역사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그런 ‘사건’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역사는 그런 것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인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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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위인의 일생 또는 그들이 만들어 놓았다고 통용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우리가 배웠던 역사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그런 ‘사건’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역사는 그런 것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인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중들의 삶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실 위인들의 사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도 그것이 이름 모를 민중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그동안 역사의 무대에 올라서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이다. 이러한 경향을 역사학에서는 ‘일상사 연구’라고 부른다. 포이케르트의 이 책은 나치즘 체제와 관련된 독일 민중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나치 시대 일상사 연구의 장점에 대해 나치의 테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밝힐 수 있으며, 또한 저항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 졌는지, 지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제3제국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 확산되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더해 일상사를 연구함으로써 나치를 경험하지 못한 1945년 이후의 세대에게 상심과 그에 따르는 민주적 참여를 유도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역사학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것의 장점을 피력한다는 면에서도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나치의 제3제국을 바라보는 가장 전형적인 시각은 근대의 단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치가, 근대의 병폐를 해결한다는 슬로건, 선동에 있어서 ‘피와 흙’으로의 복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아리아인에 대한 찬양 등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것이 근대는 민주주의, 자유,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풍요 등을 가져오는 역사의 진보라는 환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결국 나치는 그런 요소들을 결핍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의 단절이라는 것인데, 미셸 푸코의 논의를 빌려 근대를 인간을 순응시키고 억압하는 구조를 가진 폭력적이고 규율적인 사회로 제규정한다면 나치는 바로 근대의 병리를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낸 사회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정의를 사용한다면 우리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나치 정책과 그에 대한 독일 민중의 반응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된다.

 

먼저 나치당의 가장 큰 지지기반이었던 중간계급의 지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나치가 선전했던 민족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초계급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강령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나치를 지지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나치가 바로 중간계급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시켜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나치는 실제로 중간계급의 요구대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을 부흥시켰으며 자본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노동조합을 파괴했다. 그 방법과 수단은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었다. 중간계급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을 나치가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했으며, 제3제국 시절 경제지표를 보면 실제로도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치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던 많은 중간계급에게 당의 간부직 등을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나치의 정책에 대해 중간계급은 좌파에 대한 테러, 유태인 학살 등을 묵인해주었고 지지하기도 하였다. 물질적 풍요를 향한 중간계급의 욕망은 나치체제의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다.

 

노동자 집단은 나치의 가장 지속적인 박해를 받은 집단이었다고 서술한다. 그들은 다른 계급들과는 달리 나치에 대해 적극적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독일의 좌파가 오랜 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치는 근본적으로 노동운동을 불허하는 등의 중간 계급적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나치에 대해 조직적인 저항을 계속하지는 못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치체제에 적응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나치가 주도했던 산업의 육성, 노동에 대한 찬양 등의 효과로 실질적인 노동자의 임금인상, 복지혜택 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것을 노동자들은 나치 체제의 긍정적 효과로 이해하였다. 그 결과 제3제국 초기에 존재했던 조직적인 저항은 사라지게 되었고 단지 근무를 태만히 한다거나 비판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등의 소극적인 저항행위만을 하게 되었다. 연대는 파괴되었고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 되었다. 그것은 나치가 의도했던 바였고, 근대 산업사회의 대 자본이 원하는 바였다.

 

저자는 나치체제하의 청소년을 통해 나치 체제의 근대적인 성격-근대가 규율화 된 인간의 탄생이라는 억압적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것과 나름대로 인간의 진보에 기여했다는 주장-과 전통적 성격의 복합성을 가장 잘 분석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 스스로도 이중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집단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을 규율화하고 군사화 하여 나치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가정생활과 학교에 억매여 있었던 그들에게 나치가 제공하는 청소년 활동은 근대적이고 해방적인 성격을 갖는 활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히틀러청소년 단은 일종의 대항적 권위로 작용 했으며 해방의 동력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특히 소년들의 경우 자신들에게 한정되어 있던 가사나 육아의 의무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었다. 나치의 청소년 정책은 정반대의 방향에서도 영향을 주었다. 나치의 청소년 정책에 반항했던 일군의 청소년 들은 자신들의 사조직을 만들었다. 에델바이스 해적은 주로 자유 시간을 가지며 소일했고 자유를 갈망했다. 그들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반항이라는 자신들의 일탈을 나치라는 체제에 대한 반항으로 연결시켰다, 비록 정교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규율화 된 인간을 목표로 했던 나치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이었다. 모이텐은 주로 젊은 노동자 집단이 주축이 되었으며 다른 청소년 단체와는 달리 계급의식에 기초한 정치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노동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치에 저항하였고 게슈타포는 이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스윙재즈 단은 다른 청소년 조직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그들은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지극히 비정치적 이고 문화적인 일탈을 주도하였다. 그들은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나치에 도전하였으며 나치는 그것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저자는 다양한 비 나치적인 청소년 활동에 대해 나치가 강력하게 청소년들의 일상을 규율하려고 하였지만 결코 완전한 규율은 할 수 없었으며, 제3제국이 패전으로 몰락하기 이전에 이미 나치의 공식적인 두 목표가 실패하였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근대적인 여가활동의 기반을 닦은 것은 나치즘이었다고 지적하며 나치가 근대의 연속이라는 주장을 강화한다.

 

나치가 저질렀던 가장 대표적인 만행으로 기억되는 유태인 등에 대한 홀로코스트도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근대의 병리를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나치는 모든 인간을 규범화하고 분류하기 위한 평가기준을 제공했다. 유태인은 ‘최종적 해결’의 대상이었고, 자신들의 행위가 유럽의 인종주의적 해결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모든 인종적 문제의 ‘해결’에 있어 과학적이고 근대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행동은 정확히 계산되고 예측 가능한 합리적인 행위였다. 인종을 구분하는 것은 사회적인 규범의 완성이었다. 모든 인간을 교육 가능, 불가능한 인간으로 분류하여 범주화하였으며 그러한 범주화는 일상생활의 관찰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관찰의 결과는 유전학적기준을 개인에게 과학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회적 선택의 개념과 연결되었다. 심리학과 인류학 연구의 오랜 전통은 그것을 뒷받침 해주었다. 따라서 그들은 인종정책에 있어서의 “과학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광범위한 대중의 열광으로 이루어진 나치체제는 일상적인 동원과 이데올로기의 선전으로 유지되는 체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공동체’라는 선전은 외관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운동, 대중행사와 조직을 통해 체제의 동력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것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점점 시들어져갔고 그 빈 공간을 나치는 대중적이고 비정치적인 문화로 채웠다. 예술가들은 나치의 요구에 맞는 소비적이고 정치적이지 않은 대중문화를 생산하였다. 대중들은 점점 그러한 소비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갔다. 그러한 대중의 모습은 나치가 원했던 정상상태였으며, 근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표준화된 인간이었다. 이것이 저자가 지적하는 나치 근대성의 또 다른 단면이다.『우리안의 히틀러』에서 막스 피카르트는 바로 이렇게 사회적인 맥락을 상실하고 물질적인 문화에 물든 인간의 내면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가 출현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물질적인 결과에 집착해 수단의 적절성을 망각해버리고 국가가 제공하는 비 정치화된 오락에 탐닉하는 대중은 바로 나치의 기반이자 결과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나치체제가 드러내는 근대성에 주목해서 제3제국을 분석하고 있지만 나치체제의 본질은 저자도 적시하고 있듯이 전통과 근대, 저항과 순응, 질서와 혼란, 정치와 비정치가 섞인 복합성이었다. 이것은 나치체제를 회색지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정교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나치는 대중들에게 피와 흙의 복권, ‘죄악’의 아스팔트 정글의 파괴를 약속했지만 공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수공업을 무시했다. 나치즘은 그들이 지향하는 목적에서 반동적인 성격을 갖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있어서는 근대적인 혁명을 수행하였다. 자신들의 혁명에 방해가 되는 인간은 질서의 유지라는 이름으로 무참하게 테러를 가했다. 유태인, 집시, 동성애자 등은 그렇게 질서의 유지라는 목적으로 학살되었고 독일의 대중은 나치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집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이라는 기억으로 나치에 대한 소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일상사가 바로 그동안의 연구와는 다르게 체제가 대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목하고 연구하는 것도 이렇게 모든 사람이 저항 아니면, 순응을 했을 것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일의 대중들은 마음속으로는 강도 높은 노동과 일상적인 나치테러기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민족적 감성으로 나치의 대외정책과 전쟁에 대해서 지지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대중은 독일이 패전에 다다를 때까지 단순한 불평불만은 가지고 있었지만 나치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해서 신뢰하고 있었다. 특히 히틀러라는 지도자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회적인 불만도 연결시키지 않고 총통이 알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또는 총통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하며 총통신화를 만들었다. 그것은 결국 나치라는 체제에 대한 동의를 밑바탕을 형성했다.

 

저자는 일상사의 방법으로 나치체제하의 독일 대중을 분석하고 있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먼저 아직도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근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망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자연을 개발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되는 것, 근대적 교육을 받는 것은 인간의 진보라는 직선적인 역사관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많은 폭력을 포함하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는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근대의 긍정적인 성과를 인정하되 근대가 가지는 여러 가지 폐해를 차분히 성찰하는 것이다. 나치가 표면적으로는 근대의 폐해를 전통으로의 회귀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한 것은 과연 우리가 근대가 가지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피지배 대중의 양상을 저항과 순응이라는 이분법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상사 연구가 첨예한 대립이 존재했던 시대를 회색지대로 만들어 그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게 한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떠한 역사학 방법론도 비판점은 있을 수 있다. 일상사의 방법은 우리가 가지는 역사적 경험에 대한 분석을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 일상사 연구가 발생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식민지 연구에 있어서는 피 식민지의 주체성을 읽어내고, 지배자의 정당성과 연결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신체적 폭력의 구체적 작동과 폭력으로 인한 지배관계 형성에 관한 연구, 한국의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c******3 2007.10.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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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 순응, 저항, 인종주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 - 순응, 저항, 인종주의" 내용보기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무척 흥미롭게 읽혀졌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뛰어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어쩌다 나치 시대에 관한 영화들을 자주 보게 되어 생각나서 다시 읽기도 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도 나중에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서 다시 펼치게 됐다.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독일 나치 시대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즉, "작은 사람들(k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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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무척 흥미롭게 읽혀졌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뛰어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어쩌다 나치 시대에 관한 영화들을 자주 보게 되어 생각나서 다시 읽기도 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도 나중에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서 다시 펼치게 됐다.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독일 나치 시대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즉, "작은 사람들(kleine Leute)"의 일상에 주목하고 있는 역사서이다. 지은이는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나치즘을 근대의 병리사(病理史)로 '경험'하려는 것"이라는 말로 집약한다.

그가 말하는 일상, 혹 일상사의 영역은 '체제와 연관되는 일상'이며, 여기에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방향성이 추가된다. "아래"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되는 사람들을 말하며, 따라서 지은이가 말하는 일상사란 '작은 사람들'이 체제를 어떻게 경험했는가의 역사인 것이다.

그는 '작은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당대 독일인들이 나치즘에 보낸 지지와 기대가 무엇이었으며, 그 기대의 충족도에 따라 어떠한 저항들이 있었는지, 나치즘은 그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그 반응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국 인종주의적 학살로 귀결되었는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이러한 나치의 인종주의가 전근대적인 산물로 받아들여졌던 것과는 달리, 특정한 사회적 규범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해석하면서 이는 서양 근대문명의 병리적 표현이라 주장하고 있다.”



나치 시대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일상을 최대한 살펴보고 "작은 사람들 kleine Leut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일반인들이 어떤 식으로 나치 시대를 살았는지를 다루며 단순히 지배받는 이들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삶에서 어떤 식으로 나치를 받아들였거나 대응을 했는지 알려주고 있다.

“미셸 푸코의 철학”을 많이 이어받아 나치 시대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단순하게 보았던 것들을 혹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자세히 뜯어보고 분석하고 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광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 저자의 시선을 지금 시대에 적용해보고 바라보고 싶기도 하고.



#나치시대의일상사 #순응 #저항 #인종주의 #데틀레프포이케르트

y*******o 2024.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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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시대의 일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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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민족의 동지와 공동체의 이방인, 나치 치하에서의 순응,제거 저항] 이책이 나온지 10년인데 처음 제목을 보자마자 관심이 무척 가서 서점에서 안을 들춰보니 좀 이상했다. 10여년 만에 읽게되어 숙제를 한 기분이다. 대중 역사서 보다 학구적인 내용이다. 근대성 어쩌고....규율....이런 분석은 나는 별로 취미가없다. 뒷장 역자의 해설을 잘 읽고 보면 도움이 된다. 저자가 이 책
"나치시대의 일상사" 내용보기

원제[민족의 동지와 공동체의 이방인, 나치 치하에서의 순응,제거 저항]

이책이 나온지 10년인데 처음 제목을 보자마자 관심이 무척 가서 서점에서 안을 들춰보니 좀 이상했다. 10여년 만에 읽게되어 숙제를 한 기분이다. 대중 역사서 보다 학구적인 내용이다. 근대성 어쩌고....규율....이런 분석은 나는 별로 취미가없다.

뒷장 역자의 해설을 잘 읽고 보면 도움이 된다. 저자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요절해서 안타깝다. 책 내용은 요즘엔 책의 해설이 좋다. 그리고 아래 리뷰어들도 잘 썼다.

 

 이책이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읽을수 있다. 좀 잔인한 이야기이고 아주 밀리터리지만 정권을 잡고 초기 부터 게슈타포 역사 순서대로 잘 나와있어서 나치의 가장 어두운 면을 잘 보게되어있다.


 

나치즘을 근대성 내지 근대화와 연관지을 때 역사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근대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규범적, 해방적 측면이다. 근대성에 선을 대는 나치즘 해석은 바로 그 때무에 나치즘이 해방적이었다는 이상한 함축을 갖게 된다. 포이케르트는 해방의 근대 이면에 규율과 억압의 근대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푸코의 논리를 이용함으로써 나치즘의 해방적 측면과 억압적 측면을 동시에 드러내고, 더 나아가서 나치즘의 야만성을 근대성의 본질적 측면으로 해석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치즘이 근대의 소산이라면 나치즘 이후의 근대에 대해 어떠한 비판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의문과 더불어, 서양 근대 일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재삼재사 가다듬는 계기를 갖게 된다.

 


 

 '계서'는 '계급서열제'의 줄임 말입니다.

즉, '계서(階序)'란 일정한 조직이나 체계 내에서 지위 따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이루어진 질서. 또는 그 안에서의 서열.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서열제도로 이해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예시문조선의 역관은 양반, 상민, 노비로 구분된 신분제에서 별도의 계서를 형성하고 있었다.

 

조직에서 '계급서열제(階級序列制)'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직의 목적이 뚜렷하고 업무가 일관성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계서제 원리가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예로써 군대나 경찰 조직 등

2. 계서제(hierarchy)는 조직 간에 혹은 각 조직 내에서 종적인 지휘 체계와 분업 관계를 강조한다.

3. 계서제는 업무 분담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사전에 설정된 명확하고도 공식적인 관례에 근거하여 작동된다.

4. 계서제를 강조하는 경우는 수직적이고 지속적이며 제도적 경계가 분명한 피라미드형 조직이 선호된다.

Kitsch-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 이르는 .

아비투스(habitus)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제창한 개념으로 일정하게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를 말한다. 아비투스는 무의식에 속하며 상속이 가능하다...

아비투스(habitus)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제창한 개념으로 일정하게 구조화된 개인의 성향체계를 말한다. 아비투스는 무의식에 속하며 상속이 가능하다. 아비투스는 구조주의의 구조와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개인의 행동의 통계적 규칙성을 예측 가능케 해준다. 쉽게 말해 개인의 문화적인 취향과 소비의 근간이 되는 '성향'을 의미하는 말이며, 타고난 천성과 기질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아비투스는 사회적 위치, 교육 환경, 계급 위상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진 성향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문화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화적 취향을 사실 자신이 속한 계급의 문화적 취향일 뿐이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아비투스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고 계급이 높은 사람들의 문화를 고급문화로, 그렇지 못한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저급 문화로 분류하는 이분법에도 오류가 있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k***9 2014.01.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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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의 일환으로 읽기로 했던 책이었는데 빠르게 읽히지는 않아서 이제야 다 읽은 책. 그러나 더딘 독해 속도와는 별도로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물론 제목만 보고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식의 서술을 기대해선 안된다.   저자는 나치 시대에 살았던 '작은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 밑에서부터의 역사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접근으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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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의 일환으로 읽기로 했던 책이었는데 빠르게 읽히지는 않아서 이제야 다 읽은 책.

그러나 더딘 독해 속도와는 별도로 이 책은 개인적으로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물론 제목만 보고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식의 서술을 기대해선 안된다.

 

저자는 나치 시대에 살았던 '작은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 밑에서부터의 역사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접근으로 그는 우리가 거시적으로 볼 때 명확해보이는 많은 부분이 사실은 너무나도 복잡한 양상을 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사에 접근할수록 연구자의 이론적 방법론적 확실성이 흔들릴 뿐만 아니라, 개별자의 경험과 행위를 이해하고 복원하는 과정 속에서 도덕적 가치 기준마저도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책이 발간될 당시(1982년) 꽤나 논란을 빚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근대화'의 개념을 제시한다.

왜 한국의 경우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근대화'.

 

"근대화"는 낡은 권력 관계를 유지한 채 사회가 재조직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때 근대화는 사회주의적인 의미에서 가장 "반동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는 '나치혁명'은 오버센스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근대의 발전사가 자유를 향한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결국 나치의 등장은 서구 근대의 중간에 뜬금 없이 등장한 '괴물'이 아니라 서구가(혹은 우리가) 맹신하고 있었던

근대가 발전(?)할 수 있는 병리학적인 현상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청소년의 동원과 거부'라는 부분인데

저자는 이 부분에서 작은 사람들이 소요할 수 있었던 미시적인 전략 공간을 흥미롭게 제시한다.

 

학교와 청소년단이라는 두 권위 조직의 관계는 결코 근원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따라서 양자 사이의 경쟁은 갈등의 공간을 낳았고, 청소년들은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학교를 핑게로 히틀러 청소년단 모임에 빠지기도 하고, 거꾸로 나치당과 청소년단이라는 "보다 높은" 대의를 들이대며 교사들을 괴롭히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사료를 읽는 방법 혹은 관점에서도 저자의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치의 공식적인 보고서들은 스윙 청소년들의 혼숙, 그룹 섹스, 미성년 섹스, 특히 나치가 황폐화로 간주하던 성애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고 이를 자유롭게 추구하는 현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치 보고서가 선택한 단어와 강조점을 보면, 보고서는 통상 청소년들의 행태보다 오히려 보고서를 쓰고 읽는 자들의 관점을 드러낸다. 작성자는 자신의 불안과 억눌린 소망을 청소년들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채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허풍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어쩌다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을 일반화했다.

 

그와는 별개로, 독일 점령 기간 동안 약 21만 9천명의 집시가 살해되었고 그들의 '재생산'을 막기 위하여

강제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은 1945년까지 20만 내지 35만 명에 달한다는 부분에서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논리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그 좋다는 (신)자유주의를 겹쳐보게 된다.

 

나치들은 사회적 현상을 병리적 관점으로, 즉 전염병처럼 바라보면서 확산을 두려워하며 근절을 외쳤고

결국은 사회적인 일탈을 인종주의의 시각(선천적인 유전획득)에서 파악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삐뚤어진 관점은 과학이라는 화려한 탈을 쓰고 유래 없는 대규모 학살을 낳았던 것이다.

여기서 왜 나치를 그 아름다운 자유주의와 겹쳐서 바라보느냐하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의 두 질문을 비교해보라.

 

"환경은 완벽한데 대체 왜 저런 족속들이 나타나는 것인가? 역시 저 놈들은 태생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있다."

"자유가 만연한 평등 사회에서 대체 왜 저렇게 낙오하는 것인가? 저들은 미숙아이거나 게으름이 병처럼 몸에 박혀있을 뿐이다."

 

결론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도태되어도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이든 도덕적 관점이든, 그것은 모두 개인이 초래한 것이며 잘못은 그들의 유전자에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왜 저들은 이 사회의 조건이 무균질한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유주의'가 현상을 왜곡하여 제시하고 결론을 이끌어 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쨌거나 무척이나 많은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책. 그리고 분명 한 번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1******n 2007.05.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