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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만족한 시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아이들은 철이 없다고 걱정했고,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을 챙기느라 백성의 삶을 보살피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요순의 평화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서양에서는 유토피아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을 많은 철학자들이 해 왔던 것 같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각 계급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사회전체가 조화를 이룬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생산을 담당하는 서민계급은 절제의 미덕을, 국가수호자인 군인 계급은 용기의 미덕을, 최고계급인 통치자는 지혜의 미덕을 보전하여 맡은 일을 제대로 실천할 때 국가전체의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4가지 덕목으로 꼽고 있다. 결국 플라톤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선의 이데아'를 실천하는 통치자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가장 고귀하고 현명한 자들이며, 입법과 그의 실행, 교육의 감독 등을 담당하게 된다. 또한 순번대로 관직에 등용되며 쉬는 기간에는 철학적 고찰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들을 위해서는 계획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탈락되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생산자(서민)나 수호자(군인)의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플라톤이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에는 많은 논란거리와 함께 실현가능성 측면에서의 의문도 존재한다. 일종의 공산주의 성격을 띤 계획경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적성과 능력을 찾아 적당한 임무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뿐더러 재산의 공유, 심지어 부인과 자식의 공유한다는 개념은 논란의 소지와 함께 실현가능성 측면에서도 많은 헛점이 보인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그는 아내와 자식들의 공유를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직계존비속과는 동침과 자식의 생산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몇 세대가 지난다면 혈연관계의 파악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더스 헉스리의 <멋진 신세계>도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싶다. 사회에서 담당할 자신의 역할에 맞춰서 필요한 영양을 공급받고 계획적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플라톤이 그린 이상국가의 모습과 기본적 전제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일탈과 모순을 최소화하고 인간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자유주의 사회의 모습과는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생각에서 한 가지는 본받고 싶다. 바로 사회지도층인 통치자에 대한 엄격한 자기통제와 규율의 필요성이다. 동양의 사상을 빌자면 '신독(愼獨)'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할 것 같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진행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은 사회시스템상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서민들과는 다른 엄격한 자기관리의 방안이 강구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 정치학도로서 플라톤의 국가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더불어 양대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그 위대한 저서를 직접 접한다는 것에 벅찬 감동을 느꼈고 커다란 자부심을 가졌었다, 물론 다 읽기 전까지는. 플라톤이 희곡을 즐겨 썼다는 것과 문학을 통한 사상 피력이 지적 전통임을 몰랐던 이 무식함 때문에 마치 희곡처럼 대화와 독백이 있는 본문은 시작부터 어리둥절케 했다. 더욱이 정작 지은이 플라톤은 등장하지 않고 그 스승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형제들이 나오는 것에도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황당함의 극치는 바로 내용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제껏 생각하고 존경해 오던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다는 것이다. 칼 포퍼가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밝힌 것처럼 플라톤은 전체주의의 온상이었다. 히틀러가 미친 살인마였다면 플라톤은 도도하고 오만한 관리자였다. 당시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확신에 찬 플라톤의 열정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계획된 박제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에 있다. 그가 유전자를 몰라서 다행이지 만약 알고 이를 자신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면 영화 “가타카”의 비극은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소질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다. 허나 그것이 강제된다면 어떻게 될까? 요컨대 소질이 먼저냐 적성이 먼저냐는 것이다. 보통 둘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이며 인간의 유전적 우열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과학적 보고를 보아도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적성이다. 특히 한 때 머리가 좋으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틀어박힌 우리 교육계의 어두웠던(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시절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운명 속에서 낙오된 수많은 인재들을 생각한다면 해답은 뻔하다. 적성, 자신의 선택이 최우선이다. 플라톤의 말처럼 선택의 기회가 자율이 아닌 어린 시절 한때의 기록으로 못 박힌다면 그것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뜻은 있으나 충분한 기회를 잡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거나 차선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떤 분야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내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모색할 틈도 없이 정해진 운명을 단순히 국가의 공통된 이익을 위해서란 이름아래 따라야 한다면 그것은 기계의 부속품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기원전 400년경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400전이라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대 지성이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이라 할지라도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이길 수는 없다. 사고의 틀 자체가 엄청나게 틀리고 그 사회 환경이 우리와 몹시 다르다. 여기서 스승을 잃고 정의를 부르짖었던 한 열정의 사내를 우린 발견할 수 있고 그의 사상적 개연성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이나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여주는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서양 지성사는 단순히 플라톤의 찬성과 반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우린 아직도 플라톤의 실험실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더욱 발전된 과학기술과 무한 경쟁시대에 발맞춰 더욱 섬뜩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우울한 상상은 떨쳐버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제 아무리 효율성이 중요하더라도 우리는 가치 있는 인간이며 그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 원칙은 자유선택이라는 것이다. 물론 살아가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가야할 때가 있고 때론 꿈을 잠시 접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홍세화님의 말을 빌리자면 “생존이 자아실현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때는 반드시 온다. 그러나 양보는 있을지언정 포기란 없다. 잠시 양보하였다가 훗날 다시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자유선택의 대 원칙 아래 사회적으로 가능한 한 최대한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플라톤이 진정 원했던 이상세계를 실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
| 플라톤의 <국가론>은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 논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대화법(문답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국가론>은 플라톤이 쓴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그가 후에 이것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기가 다소 벅차지만 그 흐름에는 상당한 논리적인 사고가 들어 있으며, 오늘날의 정치, 국가, 경제, 교육에 관한 폭넓은 기반 지식 또한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그 동안 미처 몰랐던 기본적인 사실들-이를테면 정의란 무엇이며, 국가란 왜 생겨난 것인가 등등에 관한 것-에 대해 우리의 고대 현인들은 놀라우리만치 명쾌한 해답을 던져 주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이상 국가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설명한다. 그 이상 국가는 사회 전체를 최고의 도덕으로까지 고양시키는 교육기관이고, 그의 이상에 따라 현실 국가와 사회 질서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나 플라톤은 교육에 있어서 공동체의 의식을 강조한다. 준법정신이야말로 국민들을 화합하게 하고, 각자가 공동체에 이롭도록 해 줄 수 있는 이익을 서로 나누어 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동중심의 교육을 강조한다. 조기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강제로 하도록 하지 말고 놀이로 공부하게 할 것을 강조하고 자신의 재능을 일찍 발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교육사조와 유사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플라톤의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기회의 균등이라 생각된다. 여성이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플라톤은 남녀 평등의 교육관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통치자가 되는 사람들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여자들 중에서도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태어난다면 지도자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사상에도 한계는 있다. 대다수의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규정하고 통치자의 역할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또한 그 통치자는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만 한다. 자질에 더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주체적인 것이다. 플라톤의 사상은 마치 우수한 품종을 생산하듯이 사람들을 가려내고 있다. 그것은 종족을 가장 잘 보존하기 위한 고안이 될 수는 있으나 구성원을 존중하는 것일 수는 없다. 개개인에게는 행복한 삶을 스스로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교육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플라톤이 고민했던 것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 정치의 전복, 참주 정치 또는 독재 정치의 등장 등과 같은 것들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고 실재로 우리 역사에도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실성을 지니게 된다. 우리는 그의 고민들을 '과거'라는 틀에 묶기보다는 계속해서 이어나가며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국가론>국가론> |
| 국가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어 어떤 모티브로 구동이 되고 있는가 또는 스스로 꾸려져 나가는 것인가에 대한 답변서.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이나 군왕으로서 존재하려는 경향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기능으로서의 위정자들에 대한 국가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단순히 이끌림을 당하는 국민들이 되었든지 아니면 또 다른 리더쉽의 주체들에 의한 객체와 그 객체가 지향하는 집단의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로 국가라는 것이 말이다. 본인 바로 그런 관점에서 기업가의 관점을 놓칠 수가 없다. "기업가들에게는 사치와 방종을 허하라"- 플라톤 기업가들은 위와 같은 두 가지의 동기부여에 의해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데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침체가 자꾸 되돌려 지는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서 기업가들에게 부여되는 사치와 방종은 언떤 종류가 있는지 곱씹어봐야 할 문제이다. |
| 플라톤 그 자신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를 내려야 되는가?이 책을 읽고 난뒤 나의 뇌리속에 자리잡은것은 '플라톤'이라는 인간 자신의 평가이다.'國家論'! 그가 내리는 국가의 실체를 우리는 받아들여야 되는가도 우리는 한번 되짚고 넘어 가야 될것이다.그렇다.거두절미하여 결론을 내리자면 위대한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이기와 부패속에 허덕이는 현 나라를 볼때면 안타까움마저 들기도 한다. 플라톤은 젊을 때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우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소크라테스의 연장이며 발전으로서, 그의 저서는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된 변증론에 의한 {대화편}이어서 그와 스승과의 학설을 구별하기 힘들다. 스승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 동료들과 메가라에 도피하여 있다가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키레네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고 피타고라스학파에 접하여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은 뒤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상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본성이 교육을 받았을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상태와 견주어 생각해 보게. 즉 동굴과 같은 지하의 거처에 사람들이 있다고 치세. 그 동굴 은 태양의; 빛을 향해 열려 있는 길다란 입구를 가지고 있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손발과 목까지도 묶여 있네. 그 때문에 그들은 같은 곳에 머물면서 앞만 내다볼 수밖에 없네. 목이 묶여 있기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또 이런 것을 상상해 보게. 불빛이 그들의 등 뒤 높고 먼 곳에서 비추고 있네. 그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뒤쪽에 하나의 길이 있고, 이 길에 이어 벽이 있다고 치 세. 벽은 마치 인형극을 조정하는 사람이 자기 앞에 올려놓은 대와 같이 쌓여 있네." 라고 말한다.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설명하고 있다.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은 그림자를 실재 존재하는 형상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이 위의 현상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 다. 플라톤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idea가 있다고 보았으며, 이것은 현실계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초월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이성적인 것에 상응하는 최고 계급, 즉 '통치자' 또는 '철학자'는 국민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현명한 자이다. 그들의 사명은 입법과 그 실시, 특히 교육의 감독이다. 그들은 순번대로 최고의 관직에 취 임하고 나머지 시간은 철학적 고찰에 소모한다. 즉, 학문과 선의 이데아에 받치는 것이다. 선의 이데아 는 플라톤 윤리학의 정상이다. 그 본질적인 특성에서 보면, 플라톤의 국가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에의 인 간 사회의 교육 기관이다. 물론, 이 교육은 상류층에만 요구되며, 하류층에도 예문이나 체육은 실시한다. 통치자 계급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혜이다.이 계급에서 요구되는 절제와 용기, 지혜는 정의에서 출발하고, 정의는 이 능력들을 보존해 준다. 여기에서 정의란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올바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정의에 대한 관념은 우리들의 일반적 관념과는 다르다. 플라톤은 계급 특권을 정의라 부르는 반면, 우리는 보통 그런 특권이 없는 것을 정의라 부른다. 우리는 정의를 개인을 취급할 때의 어떤 종류의 평등을 의미하는 반면, 그는 정의를 개인들 사이의 관계로써가 아니라 계급 사이의 관계에 근거한 전체국가의 한 성질로 간주한다. 즉, 지배자는 지배하고, 노동자는 노동하고, 노예가 노예일 수 있다면 국가는 정의로운 것이다. 이렇게, 플라톤은 일반 서민들의 신분 상승에는 기회를 주지 않고, 통치 계급의 통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수직적 신분 이동이 불가능 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자유롭게 발휘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분의 이동이 자유로운 상태를 전제로 한 사회에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는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에 있어서의 정욕의 부분이 농·공·상업의 서민, 기개 부분은 군인·관리, 이성 부분은 통치자라고 하고, 이는 당연히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여야 하므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하는 유명한 철인정치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통치자의 교육제도와 방법에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 있다. 이어 통치자의 사유재산 금지, 처자의 공유 등을 주장하고 전제정치·과두정치·민주정치 등 정체의 성립과 발전·결함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주목할 만한 탁견이 담겨 있다. 그의 철학은 서양 관념론적 이상론의 비조로,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와 함께 철학사에서 쌍벽을 이루고, 아카데미아학파 신플라톤주의를 거쳐 철학사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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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차별, 인종 차별, 종교 차별 등 차별이란 단어가 붙은 용어는 바로 그 앞의 요소가 '관련되지 않은 요소'인데 그것을 기준으로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성 차별이란 단순히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말하며, 인종 차별이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말하고, 종교 차별이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한 예로서, 고용을 함에 있어 고용의 기회는 실력에 따라 주어져야 하는데 실력이 아닌 성별을 이유로 여성을 차별하기 때문에 성 차별이라고 페미니스트들은 주장한다.
대학 입학의 기회는 성적에 따라 주어져야 하는데 베키는 성적 이외의 요소, 즉 인종적인 이유로 합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여성 고용 할당제나 농어촌 학생을 위한 특별 전형 제도 등의 역차별 대우 역시, 차별이란 단어가 붙었듯이 차별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여성 고용 할당제는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일정 비율의 취업을 보장하는 제도이며, 농어촌 학생을 위한 특별 전형 제도는 단지 농어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정 수의 농어촌 학생을 우대 입학시키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온전하게 이해하자면 역차별에서 '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소크라테스 선생, 나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름' 내지 '올바른 것'이란 실은 남에게 좋은 것, 즉 강자 내지 지배자의 편익인 반면에, 복종하며 섬기는 자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의 손해입니다. '올바르지 못함'은 그 반대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강한 자의 편익이 되는 것을 행하며, 또한 그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지 결코 자기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천진난만하신 소크라테스 선생이시여! 이처럼 올바른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보다 어디서건 밑지고 있다는 사실을 선생께선 주시하셔야 합니다. 첫째로, 상호간의 계약 관계에 있어서 보더라도, 그런 사람들끼리 거래를 하게 될 경우, 계약의 해제시에는 올바른 사람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을 볼 경우는 전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덜 차지하는 경우나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재산세를 낼 때에도 올바른 사람은 같은 재산을 지녔으면서도 보다 많은 세금을 내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보다 더 적은 세금을 내고, 또한 나라로부터 수령할 것들이 있을 때에도 전자는 아무 이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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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들은 가장 황당하면서 멋진 말. 국가는 허상이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멋진 말을 설명하려면 제가 좀더 머리속에 든 것이 있어야 겠더라구요. 예를 들어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되게 쉬운 말이잖아요. 그래도 이 말을 설명해주세요. 하면 막혀요, 아주 제대로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현재의 강대국이 역사를 장악해버리닌 과거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과거에 강대국이 미래를 장악한다라. 그럼 과거 강대국임에도 지금 포루투갈이나 스페인이나 그리스나 이탈리아는? 지금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가? 독일은 현재도 강국인데 중국은 언제나 세계 강국 이것을 일관되게 설명하려면 무엇을 가지고 설명해야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 말 한마디가 천금의 무게를 가지더라구요.
우엣든 황모씨가 이야기한 논어와 국가론을 원문으로 읽으면 인문학에서 일정한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는 말. 해내고 싶네요. 정말로...... 물론 지금 해내면 좋겠지만 저는 게을러서 ......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 |
| 전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론]은 국가, Politeia는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존재론과 가치론을 하나의 체계안에서 생각하는 플라톤은 정의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도시국가 전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도시국가를 뜻하는 Polis에서 파생된 시민의 어원학적 발생이 암시하고 있듯이 그리스인들의 개념체계에 있어서 개인은 국가안에서만 그 의미를, 더나아가서 그 안에서만 자신의 존재가 완성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개인차원에서의 정의는 머리부분의 탁월성인 사려깊음과 가슴부분의 탁월성인 용기, 그리고 배부분의 탁월성인 절제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성립한다. 유의적으로 국가적차원에서의 정의는 국가를 이루고 있는 세계급에 속한 집단들이 각각 그 탁월성(통치계급-사려깊음,전사계급-용기,생산계급-절제)을 조화시킬 때 성립할 수 있다. 그의 세계급설이 뒤메질이 주장한 인도,유럽어 문화권의 정치 철학적 이데올로기인 국가의 세기능설-통치계급,수호계급,생산계급-과 일치함은 전쟁이 빈번하였던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개인의 자기 동일성 유지가 국가의 자기 동일성 유지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러 나타내준다. 이같은 문맥에서 그의 국가론은 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각각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방법에 관한 탐구에 집중되고, 더나아가 그러한 탐구와의 연관성 속에서 시민 전체의 교육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철인통치자에 대한 교육은 이데아의 인식에 필수적인 방법론으로서의 변증술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플라톤 사상의 이러한 국가 중심의 정치 철학적 줄기는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맑스에로 이어 내려져 오는 바, 만약에 그러한 사상가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포퍼와 같이 그들 사상을 전체주의적이라고 쉽게 낙인 찍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개혁이라는 대전제 위에서 개인의 문제를 국가라는 전체와의 유기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에서 그의 국가를 읽어내고자 할 때, 현재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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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론은 대화형식으로 지어진 작품이다. 정의란 무엇인지. 지배자들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하는지. 종족번성(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굴이론은 어떤 것인지..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용기. 절제. 덕. 지혜를 정의의 4단계로 나누고 우성인자들만 모아서 결혼해야하고. 2세를 만들어야 하며 시인은 허상의 세계를 구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추방해야한다는 시인추방론을 주장했다.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선주는 선주답게....자기다운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쉬운듯 하면서도 어려웠고. 심오한 철학 이야기라 읽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고 한다. 근본을 밝혀내는 작업. 정의를 내리려는 노력. 학자기리 앉아서 돈도 안나올 얘기들만 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모든 학문, 모든 생활의 기본이 된다는데에는 동의한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만일 호기심이 철학자를 만든다면 여러 이상한 것들이 그 이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구경을 좋아하는 모든 자들은 배우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자들이겠고, 따라서 여기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음악 애호가만 하더라도 철학자 사이에서는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철학적 토론과 같은것을 아예 외면하고 마치 모든 합창대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기 귀를 내놓은 듯이 디오니소스 축제에는 빠짐없이 쫓아다닙니다. |
| 고교생이 되는 아이 주려고 구입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습니다''로 표기해야 되는 글자를 ''읍니다''로 표기했더군요. 모두 그런 건 아니고 .그렇습니다,않습니다,믿습니다 등 ㅎ,ㄷ으로 끝난 글자는 ''습니다''로 표기하고 나머지 ''없읍니다,말씀하셨읍니다,오셨읍니다,있읍니다''등 ㅄ,ㅆ으로 끝난 글자는 모두 ''읍니다''로 표기 되어 있더군요. 아마 ㅅ으로 끝난 글자는 연음으로 인해 스로 발음이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1988년에 개정된 맞춤법인데 2005년에 발행한 책에 이렇게 표기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편집이라는 생각입니다. 좋은 평을 얻고 있는 책에 맞춤법 오류가 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반품하려고 보니 적당한 책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읽기로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