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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주인공인 주호와 준영, 태훈이 고향인 화순에서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그 셋은 고향을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가해자를 대표했던 준영, 지식인을 대표했던 태훈, 소시민을 상징했던 주호, 이 세 사람의 선택을 통해 작가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체로 생각했던 것이 누구냐가 더욱 분명해진다(광주민주항쟁을 이끈 주체가 누구인가와 관련해서는 홍희담의 ‘깃발’을 읽어볼 것). 5월 학살이 자행된 이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군사정권은 시위자들을 간첩 내지는 불순분자로 몰아 수감한 후 갖은 고문을 일삼았다. 유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협박, 회유, 탄압도 계속되었다. 시위자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삼청교육대로 끌려 갔다. 그런 암흑의 시절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군부독재는 계속되었으나 광주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한 도시를 제물 삼아 권력을 잡았던 군부독재는 종식되었다. 그러나 학살의 진상은 여전히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화해와 용서'라는 미명 하에 가려졌다. 정치놀음에 놀아난 그러한 행태들은 1980년 5월의 총탄과 대검만큼이나 잔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광주민주화운동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뜨거웠던 1980년 봄처럼 지금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민주주의는 전진한다. 작가는 5권에서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김남주 시인의 입을 빌려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것이 5권의 메시지이자 이 작품 전체의 메시지라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라는 자신의 시를 읋으며 김남주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오늘날에 갖는 의의이자 산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종천아, 이젠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다. 이제 형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면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상원이가 말했던 것처럼 내일의 역사가 5월 항쟁에 동참했던 사람들을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점에 대해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다. 5월 정신을 제대로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면 수많은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중략) “내가 이 시에 썼듯이 그날의 5월은 비수를 품은 밤으로 야수의 무자비한 발톱과 함께 왔지만, 미래의 5월은 가면을 쓴 자들과 함께 올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어렵네요. 좀더 쉽게 설명해주세요.” 김남주가 검은 뿔테안경을 벗으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먼 훗날에 5월 항쟁의 진실이 밝혀지고 승리자의 위치에 서게 될 때면 간교한 인간들이 제일 먼저 나서서 희생자들의 무덤을 밟고 사리사욕 챙기기에 급급할 것이다. 이건 틀림없는 예견이다. 지금은 어두운 시대라서 저마다 두려워 몸을 움츠리고 있지만 때가 되면 가짜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날 것이다. 그럴싸한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5월을 등에 업은 영웅주의와 상업주의가 판을 칠 날이 올 테니까 말이다.” 김남주가 또박또박 힘주어 이야기했다(5권, 5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