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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가'는 누구든지 듣기만 하면 죽는 주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죽음의 주문으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죽이게 된 어떤 남자의 이야기가 전부다. 20년동안을 초판으로 500권 남짓 찍힌 '세계 동시와 자장가'라는 책을 찾으러 다니고 그 책을 파기하여 불상사를 없애려 한다.
나에게 이런 힘이 생긴다면 데쓰노트처럼 현명하게 쓰지 못할 것 같다. 적어도 현명한 방법으로 쓰여졌다. 데쓰노트의 경우는.
그래서 '자장가'에 공감이 간다. 저 여자는 길을 가다가 '부주의하게도' 내 발을 밟았어. 저 아저씨는 분명 '고의로' 혼잡한 전철 속에서 내 엉덩이를 만진거야. 저 아기는 '개념없이' 달디단 내 토요일 오전의 늦잠을 방해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그런 이유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고 공감이 가다니.. 점점 인간성이 상실되는 듯 싶다.
나에게 그 주문이 주어졌다면 내 가족도 살아남지 못할 거다,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영민한 판단력도 가지지 못한 채 많은 능력을 갖고 싶어하는, 감당하지 못할 것을 늘 소유하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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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쯤은 상상했을 수도 있는 이야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회악, 인류악을 저지르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가깝게는 심야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얼굴모르는 이웃을 순식간에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작가는 고대 주문을 통해 이뤄냈다. 유아의 돌연사를 취재하던 중 현장마다 펼쳐져있는 책에서 죽음의 주문을 알게된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검은 힘을 가진 그가 찾아낸 이는 20년전 아들을 돌연사로 잃은 헬렌. 그녀는 이미 죽음의 주문을 이용해서 국제적인 살인청부업자가 되어 있었지만 그와 함께 죽음의 책을 모두 없애버리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단지, 주인공은 반복된 재앙을 없애기 위해, 헬렌은 이 세상을 지배한 뒤 영원한 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살리겠다는 다른 목적을 가진 채로. '악마의 서'와도 같은 책은 인피로 싸여져 수많은 주문들을 담고 있다. 하늘을 나는 주문, 다른 이의 몸에 들어갈수 있는 주문, 심지어 사랑에 빠지게 하는 주문까지(아. 이 주문은 진짜 탐난다.) 마치 신과도 같은 힘을 지녔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인물들이 무더기로 출연하며 이들이 엮어내는 스토리 또한 지극히 반사회적이며 맹목적이다. 환타지 소설로도 분류될 여지가 있을 정도로 허무맹랑하지만,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지 못한 수많은 현상들에 비추어 본다면 정색하며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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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그럴 겁니다. 데스노트 생각난다고. 물론 장르는 다르죠. 매개체도 다르구요. 내용도, 느낌도 정말 다를 겁니다. 하지만 두 책의 공통점은 누군가 타인을 죽이는 절대권력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일겁니다. 사실 사람은 죽음빼면 시체잖아요. 어쨌든 죽으니까요.사람만 그럽니까. 일단 태어난 생명은 다 그렇죠. 대신 어떤 생물도 신처럼 하위의 모든 종을 죽이는 생사여탈의 권력을 가지지 못했는데 오로지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를 자의대로 죽일 수 있습니다. 하위종을요. 동물 보호법은 일단 넘어가죠. 마음만 먹으면 우리개, 옆집 고양이, 동네 유기견, 전부 죽일 수 있는 게 인간뿐이란 걸 부인하진 못할테고. 인간끼리도 그렇죠. 양반이 종놈 때려죽여도 맞은 종놈 가족이 찍소리 못하는게 현실 아니었습니까. 귀족이, 왕이 사람 좀 죽여도 별 소리 못하구요. 현대 들어 법치국가로 넘어오면서 죽음의 결정권은 완전히 국가와 법률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세상 어느나라도 살인한 사람 손들어주는 경우는 없어요. 왜냐, 사람들이 서로 죽이기 시작하면 국가의 생사여탈권이라는 권력이 희미해지거든요. 나도너도 다들 죽여대면 국가가 뭘합니까. 척 팔라닉은 후기에서 자장가는 사형제도의 은유라고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법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죽음을 명령하지만, 사실 국가가 하는 짓이라는 것이 여기저기 죽음의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놈들하고 별 차이 없다는 거죠. 단지 법으로 포장되어 있을뿐. 법에 의한 죽음의 연쇄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고, 아주 억울한 희생자들을 발생시킵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자장가를 얻어들어서 죽는 사람들처럼요. 척 팔라닉은 죽음을 관장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심지어는 국가의 영역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봅니다. 죽음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영역이죠. 문자그대로 죽음의 영역이구요. 그리모어를 가지고 도망친 굴은 모든 주문을 손에 넣습니다. 마치 국가처럼. 그들은 기적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꾸어나가죠. 권력자로서. 하지만 하나만은 빼앗깁니다. 바로 죽음의 주문이에요. 국가가 죽음의 권력까지 가질 수 있나요? 죽음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영역으로 남겨 놓지요. 스트리터가 우연히 죽인 사람들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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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와 무엇을 원하도록 꾐에 빠졌는지도 알수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자유 의지다. 우리에게 그것이 있을까? 아니면 신이 그것을 구술하고 우리의 말과 행동과 갈망하는 모든 것의 대본을 써주는 걸까? 우리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 걸까? 아니면 매스 미디어와 우리의 문화가 우리를, 우리의 욕구를,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걸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게 그것이 있을가? 아니면 내 생각이 헬렌의 주문에 의해 죄지우지 되고 있는 걸까? - 본문 중에서
* 우리의 삶은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일까?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던 그것이 실은 그것을 선택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인생. 이 인생은 과연 내가 만들어온 것일까?
만약 당신이 우연한 기회에 죽음을 부르는 주문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까? 신문 기자 스트리터는 유아 돌연사를 취재하다가 우연히 죽음의 시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느새 주변인들을 죽여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시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들을 찾아 그 시가 적힌 책들을 없애나가려고 한다. 이 소설은 말이 주문이 되고 그 주문이 저주가 되는 이야기이다. 하긴 때로 말이란 그 어느 것보다 더한 고통을 낳기도 한다. 반대로 그 어떤 위로보다 그 어떤 사랑보다 따스하기도 하다. 무게도 없고 실체도 없는, 그러나 분명 힘을 가지고 있는 , 그것이 말이다. 이 세상은 온통 말로 가득하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고함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느껴질 정도다. 침묵할 줄 모르는 세상.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 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주인공 스트리터는 침묵할 줄 모르는 이 세상에 염증을 느끼며 스스로의 살인 충동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척 팔라닉의 소설 '자장가'는 분명 재미있는 소재와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만큼 재미있지는 않다는 것이 살짝 비극이다. 척 팔라닉의 '자장가'다. - 다락방에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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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불러주는 노래인 자장가. 저주의 주문이 실려 버린 죽음의 자장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미소띤 얼굴로 읽어주면 다음날 아침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척 팔라닉의 책 중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의 그것들은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자장가는 그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다. 그냥 허무맹랑한 그저 그런 얘기를 읽고 있는 느낌이다. 현대 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도 더 이상 가슴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귓전을 맴돌뿐이고. 그저 기계적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저 그렇다. 그의 글에 신선함을 느끼기엔 다섯권의 책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다른 시간에 다시 한번 읽어보면 어떤 새로운 느낌이 들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파이트 클럽이나 인비져블 몬스터를 권해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