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르트르가 그런 말을 했죠. 창피하다는 느낌은 나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나를 대상화시켜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거죠. [1권 p93]
지금까지 아무도 그것을 일깨워 준 사람이 없었다. 성장기에 한 번도 친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이 없었던 일, 부모에게 투정하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던 일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 성폭행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제대로 된 대상을 향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기능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거절하는 기능, 부탁하는 기능, 내 것에 애착하는 기능 등이 발달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의 성향일 것이다. [1권 p206]
면담자는 더는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노이로제이고, 아무것도 아닌 말에 상처 입는게 콤플렉스이듯, 그 사람이 선택하는 단어가 그 당사자의 상처였다. 그러고 보니 몇가지 사례가 떠 올랐다. 늘 '귀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무료하다'는 단어를 많이 쓰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바로 그 단어가 상처이겠구나 싶었다. [1권 p213]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거야. 심리적인 공백감, 애정에 대한 허기, 보호받고 보살핌받고 싶다는 소망 같은 거. 물건을 사면서 나는 애정의 대용품을 구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사는 물건을 내 존재와 등가품으로 여기기도 했을 거야. 그랬으니까 동종 품목 중에서는 되도록 고가의 물건을 집어 들곤 했겠지. (···) 내가 지금 네게 음식을 덜어 주는 행위도, 좀 전에 선물을 준 행위도 다 같은 의미야. 내가 이만한 애정을 너에게 주니, 너도 나를 좀 사랑해 줄래? 그런 뜻이더라. 더 냉정하게 말하면 나는 선물을 할 때마다 상대방의 애정을 구걸하고 있었던 거야. [1권 p260-261]
밖으로 나서니 볼에 와 닿는 바람 끝이 매서웠다. 하늘은 더 차가워 보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보았다. 그동안 타인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고 비판했던 모든 일들이 우수워졌다. 결국 내 얘기를 했을 뿐이었구나.. 모성 부족, 자기중심적, 질투심, 그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내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앞으로는 누구에 대해서도 비판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이나, 분별심을 경계하는 불교적 가치관의 심리적 본질이 비로서 짚였다. [2권 p165]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대체로 콤플렉스와 콤플렉스의 만남일 경우가 많아요. 거짓말쟁이 아내와 의처증 남편이, 아니무스가 강한 여성이 아니마가 강한 남성이,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사람이, 가학증 아내와 피학증 남편이.. 그런 사람들이 서로 첫눈에 상대를 알아보죠. 아, 내가 비빌 언덕이 바로 저기구나. [2권 p226]
페르소나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로 페르소나는 인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과 타인의 요구에 맞추어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한다. (···)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그 역할자 자체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는 오직 페르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면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결국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팽창한 페르소나와 축소된 다른 성격의 국면들 사이에서 긴장을 초래하게 된다. 이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 (···) 융은 건강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는 것이 곧 자기라고 믿는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한 참을 살고 난 후에야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된 삶을 살았을을 인식하게 된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페르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역할이 다 속임수이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는 데 반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이다. [2권 p248-249]
이제야 몇몇 이타적인 사람들의 사생활 영역이 왜 비어 있는지 아해되었다. 두 가지 일을 병존시킬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기 두려워 끊임없이 타인의 문제, 세상의 문제를 보살피고 다는 것이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대신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그곳으로부터 돌아오는 사랑을 기대하기도 했을 것이다. [2권 p256]
주변을 둘러보면 인간성이 좋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의 삶은 왠지 한갓진 곳으로 퇴보하는 것 같고,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되는 사람들이 삶의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늘 그 점이 의아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도 알겠다. 무의식의 부정적인 영역이 억압되면서 삶의 생기도 억압되었던 것이다. [2권 p271]
비로서 내가 지금까지 무슨 힘으로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유년의 아이처럼 어머니와 어머니적인 것의 사랑과, 아버지와 아버지적인 것의 승인을 얻기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일에서 좋은 결과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훌륭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도 결국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해도 만족감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므로. 그 깨달음은 쓸쓸하고 허탈했다. [2권 p274] |
|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무심코 산 책이였는데,, 1권을 읽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2권을 빨리 구입했습니다. 인간의 대인관계가 답답하고 나에게 서운하게 한 사람이 미워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피해의식과 같은 감정이 느껴질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구나!! 복잡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게 만드는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낯설고 단지 이름만 알았던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 , 융과 같은 사람들의 정신분석이론이 소설의 내용과 잘 융합되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또한 프로이드나, 융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고 더 알고 싶은 충동도 느껴집니다. 2 권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장편소설 10권정도의 책을 읽은 느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내용 자체가 치밀하게 구성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김형경씨의 소설은 여운이 강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정선 아리랑"이 혼자 길을 걸을때나 차를 탈고 갈때 계속 생각이 나더군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분에게 이 책을 선물을 하였습니다. 결혼하신 분이여서 그런지 저와는 또 다른 느낌이 이였나 봅니다.!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며 아쉬워 하시기도 하구요!! 이 책은 결혼 전 과 후의 사람에게 각각 다른 느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에서 오는 인생의 진한 무게감을 꼬옥 느껴보세요!! |
| 책장을 덮고나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두 주인공, 세진과 인혜의 살아가는 방식은 판이했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가지고 있던 결핍은 비슷했다는 것. 누구의 삶도 무의식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연애소설 치고는 뭔가 그럴 듯한게 있겠다 싶어 선택한 책이었다. 물론 작가 김형경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아차 싶었다. 간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리고 쉽게 웃을 수도, 백분 공감하기도 힘든 내용이었다. 두 주인공 세진과 인혜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이들은 한동안 왕래가 없다 오여사라는 모임을 통해 재회하면서, 서로가 살아왔던 방식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서 한 명은 정신분석 상담을 통해서, 또 다른 한 명은 친구의 경험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터득하고 되돌아보다가, 결국은 서로를 지금까지 지탱해주고 만들어 준 것이 결핍,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욕망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이후 그들은 자신의 무의식에 갇혀있던 눌려있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휴식기 및 치료기를 갖는다는 내용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 관한 책을 사전에 많이 읽었다면 책 읽기가 더 수월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인 세진이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자신이 본인의 상태를 가늠하고 판단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사진지식 없이는 그러한 작업을 따라가기가 수월치 않다. 그리고 정신분석이라는 작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보가 그 시절의 부족한 결핍을 채워주고 수정한 후에야, 현재의 삶이 더 만족스러워지는 점을 보면서, 어렸을 때 특히 6세 이전까지는 자녀에게 절대적인 존재인 부모가 자녀에게 결핍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그 때 그 때의 욕구를 적절히 채워줘야한 다는 것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성적인 만족이 생의 만족과 연결된다는 것을 여타의 책을 통해서 대충 그렇구나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인혜의 파트너인 진웅이 갖는 좌절과 자신감을 보면서 남자의 성적 에너지가 꺾이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다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을 만족스러울만큼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읽는 것과 5-10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의 느낌 역시 많이 다를 것이란 생각도 든다. 아직은 20대이므로 책의 주인공들이 겪는 그런 문제를 그들만큼 심도있게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다시 말하지만 쉽게 단정내리기 힘든 책이다.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내 무의식이 어떤 걸 원하는지 알고 싶게 만든 책이며, 결핍이 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 수 있게 해 준 책이므로, 쉽게 잊혀지진 않을 것 같다. |
| 후반의 두 여성의 사랑편력이 큰 기둥을 이룬다. 인혜는 성 불능 남성과의 첫 결혼을 실패한 뒤, 수 많은 남성들과 정신적인 사랑보다는 육체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는 냉소적인 사랑을 나누며 지내다가 진정한 사랑을 믿고 있는 기혼남을 만나 심리적인 혼란에 빠진다. 한편 세진은 지독한 정신분열을 겪고 있는데, 이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가정적ㆍ사회적 억압 탓이다. 생후 18개월만에 외할머니댁으로의 유기, 성폭력 등. 이 모두가 세진을 짓누르고, 그녀의 인격을 둘로 분열시킨 원흉들이다. 세진이 정신과의사의 치료를 받는 장면이 바로 소설의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성의 이중분열''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장치이다. 소설은 정신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 속에 쌓인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혜는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세진은 과거의 분노와 억압을 훌훌 털고 유럽으로 길을 떠난다. 이 작품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대립 구도 안에 가두지 않는다. 즉, 남자와 여자는 운명적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명의 여자의 극단적인 차이점에 대해서 혼돈이 있었으나 작가가 주장하는 여성의 정체성 회복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이 세상이 남성 중심으로 편성되지 않았다면 어디 가서 깡통도 못 차고 있었을 것들이……” 정신분석의가 “남성 여러분께 한 말씀”하라고 권하자 세진이 뱉어내는 이 분노에 찬 대사처럼, 5천년 묵은 체증이 확 풀리는 듯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곳곳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는 어느 서평자처럼 여성들의 카타르시스를 가져오는 책이다. 2,600매에 달하는 원고를 쓴 치열한 작가 정신과 책 전반에 흐르는 정신심리학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 등은 놀라울 뿐이다. |
|
소설책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이력을 자꾸 되새겨 보게 된다. 저자가 심리학이나 정신상담 분야를 전공하셨나? 싶을 정도로 그 분야에 깊이 있는 지식이 엿보인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본 경험은 없지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속을 지배한다. |
| 이 책은 어머니의 권유로 읽게 되었습니다. 늘 뭔가가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그것 때문에 자신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 그것이 모두 어린 시절에 부모가 잘못 양육해서 그런 것 같다며 마음 한구석에 원망이 많았습니다. 설사 그것이 사실 일지라도 이미 30년이 지났고, 부모님은 나이드시고, 늙었는데 원망만 한 들 무엇하겠습니까. 책의 중간중간에 주인공이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겪는 내면의 변화나 치료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 이었습니다. 과거의 잘못-그게 부모님이든 나든 이제는 털어버리고 나아가야 할 때라고... |
인상깊은 구절아버지는 이제 삶이 안정되고 수렵되는 시기에 접어든 것 같았다. 윗방에는 아버지가 농사지었다는 쌀 가마니가 대여섯 개쯤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이복동생들이 놀고 있었다. 아버지의 여자는 외출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월급을 타서 산 선물들을 방구석에 놓아두고 조금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묵은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회사일은 어떤지 물었다. 짧은 대화 후 이야기가 끊겼고, 침묵 속에서 약 30분쯤 어색하게 앉아 있었고, 그러다가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인사한 후 방을 나섰다. 아버지는 뒤따라 일어나며 저것을 가져가라고 했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것은 쌀 가마니였다. 아버지는 자전거로 그것을 버스 터미널까지 실어다주고 돌아갔다. 나는 쌀 가마니 위에 걸터앉아 황망한 기분을 수습한 다음 미곡상을 찾아가 주인인을 데리고 왔다. 쌀가게 주인은 쌀 가마니를 짊어지고 미곡상까지 옮긴 후 내게 지폐를 건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면담자는 그것을 ‘쌀 가마니 사건’이라 칭하겠다고 했다. “쌀 가마니 사건은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들은 얘기 중 명장면 베스트 텐에 들 만해요.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어떤 상징성이죠?” “사랑을 주기는 주는데, 그것도 무지 큰 사랑을 주는데, 도무지 합당하지 못한 사랑이죠.” -9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01 살다보면 여러 사람들이 한 가지를 두고 각각의 시기 때마다 내게 얘기한 적이 있다. 특히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유별났다.
#02 책을 좋아하는 그 언니는 늘 자신의 감동을 고스란히 내게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알게 된 책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고 <통역사>이고, 또 여럿이 있다. 그들 중 몇권은 읽었고, 아직 몇권은 소복히 먼지 쌓여진 채 책꽂이에만 남겨져 있다.
그 언니의 추천 방식도 독특했다. 이 책은 사랑에 빠진 순간 읽어야 해. 나는 그래서 세 번이나 읽었어. 그 책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고, 나는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읽지 않고 빌려주기만 했다.
그런 식으로 그 언니는 조금 유별나게 책을 추천했다. 꼭 사고 싶거나 읽고 싶도록.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언니가 몇 번이나 읽은 책으로, 읽고 난 후에 자신의 마음 속 깊은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고, 책을 덮고는 그 먹먹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책을 빌려놓고서 초반 부분만 읽고 그냥 돌려주었다. 분명 잘쓴 문장과 내면 깊은 곳의 무언가를 어루만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것은, 마음이 아프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더 이상 여성적인 시점으로 바라보는 소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03 그리고 어느 날 함께 사는 친구가 "우리 이사님이 소설을 쓰려면 김원일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음)나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같이 써야한다고, 그 소설들이 최고라고 그러시더라" 하고 말했다.
"아- 사랑 선택 그 소설, 예전에 그 언니가 나한테 적극 추천했었는데. 왜 다 읽고 나서 너무 먹먹해서 펑펑 울었다던, 그 소설이잖아. 나도 좀 읽었었는데."
이렇게 지나가는 말로 함께 이야기했던 그 소설을 어느 날 친구가 사서 밤낮으로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더라.
마침 읽고 있는 소설을 마무리짓고서 그 책을 친구로부터 다시 빌렸다. 이번에는 단숨에 박차를 가해 읽었다.
#04 역시 마음을 후벼파는, 아픈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관심있게 생각했던 심리치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세진과 아버지의 쌀 가마니 사건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그 사람에게 부당한 사랑을 표현할까 봐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오히려 표현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한 달에 한 번 집에서 밥먹기 힘든 시절에 부모님이 보내오는 반찬들을 고스란히 음식물 찌꺼기로 버려야 할 때 왠지 모르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슬픔.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싶은 기분. 그런데 딱히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상대는 표현하지만 다른 상대는 그것을 받기에 버거울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모를 뿐이다. 또 그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를 우리는 이따금 모를 뿐이다.
사람의 마음처럼 명징하지만 불투명한 것도 없을 것이다.
2권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by pEPe+
|
| 이 책은 전 2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소설로 읽기에는 가슴에 남는 구절들이 많으리라 예상됩니다. 이 소설은 인혜와 세진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둘은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세진은 극도한 방어로, 인혜는 이혼 후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살아갑니다. 저는 이 두 주인공 중에서 세진의 이야기가 더 와 닿았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누르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정신치료에서 자신의 유년기에 겪었던 애정의 결핍이 자신을 방어자로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어머니와 자신 내면과의 갈등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당사자에게 필요없는 방식의 사랑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사랑을 주고 받는 일도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와의 애정관계가 후에 자녀의 성격발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등장하는 세진의 치료과정들은 너무나 상세해서 작가가 직접겪은 일은 아닐까 할 정도였답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둘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읽으면 그 때마다 새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저의 경험내에서 이 책을 읽고 공감을 하지만, 다른 나이대나 경험의 정도에 따라 다들 느끼시는 부분이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십년 후, 다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그 때는 인혜의 사랑방식이 더 와 닿을지도 모르지요.^^ |
|
한 권의 소설이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다. 세진과 인혜를 따라가 보면 어느새 나와 맞닥뜨린다. 세진의 목구멍에 돌멩이가 얹혀져 있으면 내 목에도 돌멩이가 들어와 있고 명치 끝이 딱 막혀 있으면 내 명치 끝도 아팠다. 무엇이 이토록 세진과 나를 동일시하는지... 표 4에 보면 아나운서 황정민도 내 속에 '세진'이 들어 있다고 했다.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 책을 내게 권한 이는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그녀도 나처럼 세진과 똑같이 먹먹함과 아픔을 느꼈을까. 30대 후반의 여자들에게는 모두다 어느 정도 세진이 들어 있는 것일까.
기억에도 없는 아기 때의 환경이 이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유년의 기억이 이렇게 집요하단 말인가. 무의식의 지층은 이다지도 깊고도 다양하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친구나 형제 관계보다 부모의 관계가 무의식 전체를 지배한다는 건가. 그냥 심리학 책을 읽었다면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진과 같이 나도 심리분석을 해 봤더니 정말로 엄마와 아버지 관계가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 넷에 아들 하나인 우리 집. 엄마는 늘 아들의 인생에 자신을 올인했다. 넷째 딸인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믿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난 엄마에게 무척 많이 서운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의식하기론 엄마는 힘든 농사일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그런 엄마를 비난할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했고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진 않았다. 근데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많이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이다. 내 안에는 이런 심리가 있다. 아이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구나 털끝만큼도 서운하지 않다. 이런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건 분명 내 유아기의 반영이다.
어릴 적 부모와의 유착관계가 무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 싶어 아이를 정말 잘 키워야 겠다는 뜬금없는 다짐도 해 본다. 30대 여성들에게, 그리고 남성들에게,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은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고 같은 시간을 살았다면 공감을 너머 전이현상까지 일어날 것이다. 정신분석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점도 좋았다. |
|
p.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