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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왕 실패한 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드라마 연출자의 기록이었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읽었다. 딱딱한 시선보다는 익히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고증기록과 흥미요소가 들어있던 책으로 기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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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쪽눈으로 봐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파하는데 일등공신역활을 한 이덕일 선생의 새로운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가 출간되었다. 조선 27명의 군주중 태종,세조,성종,연산군,선조,광해군,인조,영조 8명의 군주를 각각 4가지 테마로 묶어 군주 자신들의 삶과 치세를 살펴보면서 후대에 많은 부분 왜곡되었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번 저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정사인 조선왕조실록과 그외의 역사적 사초를 근간으로 역사책은 글자를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의 정황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적 시각은 바로 이러한 역사서를 있는 그대로의 문자로만 앞뒤의 시대적 배경이나 정치적 배경을 싹둑 걷어낸 골자만으로 인식되길 강요 받아 오다보니 사실상의 역사적 진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그야말로 자신의 역사관이 아닌 주입되고 강요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측면에서 이번 저작 역시 새롭게 조선의 군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역사는 과거학이 아닌 미래학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 부족이 가져오는 정치의 파탄(이는 절대군주국가였던 조선의 경우 그 패해가 더 했음은 두말할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과 그로 인한 소용돌이가 군주를 비롯한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고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함을 넘어선 필연적인 선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지난날 조선에서 제왕학에 춘추나 자치통감등의 역사서가 필수과목이었던 이유 역시 과거의 사례를 반면교사삼아 현재를 상고하고 미래를 열어갈 수 있었기에 꾸준히 역사에 대한 관심과 성찰이 이었던 것이다, 비단 이러한 과정과 교육을 받고 보위에 올라서도 올바른 치세가 쉽지 않았던것이 바로 왕이라는 지존의 자리였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는 위정자들의 역사관과 그로 인해 파생되고 전파되어지는 담론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번 저서에서 주목해야할 군주는 다름 아닌 희대의 폐륜 군주로 각인된 연산군에 대한 평가이다. 그동안 TV사극이나 역사물 그리고 픽션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연산군은 폭군이라는 두 글자로 대변되었고 절대군주시대에 상상하기 조차 힘든 신하들의 반정으로 보위에서 쫒겨나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정당한 정치적 흐름이었다고 배워 왔고 그리고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흥청망청의 원조격으로 폐위되는 그 순간까지도 장녹수의 치마폭에서 해쳐나오지 못한 색마, 자신의 향락을 위해 민초들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은 폭군 그리고 선왕의 후궁들까지 스스럼 없이 살해한 살인마의 이미지로 연산군일기는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실록을 바탕으로 전파된 야사는 연산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함으로서 군주폐위에 대한 정당성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과 그리고 실록을 세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연산군의 이미지에 대해서 의구점이 발견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연산군 이외에 또 다른 반정의 대상이었던 광해군은 끝까지 천수를 누린 반면 연산군은 폐위와 동시에 목숨까지 요구했던 것은 반정에 대한 정당성에 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반정세력이 작성한 연산군일기에서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전부다 세탁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연산군의 비극의 원인은 세조의 찬시(왕위 찬탈과 단종의 죽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태종이 모든 악역을 자처하고 반석위에 올려놓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헌정질서를 송두리채 꺽어버린 세조의 등극과 그에 빌붙은 훈구공신들의 역사적 퇴행이 가져온 비극이었던 것이다. 이미 조선은 군왕의 나라가 아니였음을 연산군은 인지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자신의 편인 사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화라는 훈구대신이 파놓은 덫에 걸려서 몰락하게 된 것이지 그동안 왜곡된 연산군의 비행에 그 원인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시쳇말로 태종만큼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태종은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연산군은 그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했던 차이가 폐주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성종의 요절과 연산군의 폐위로 조선은 신하들의 나라 정확히 문신들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결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면서 민중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그들만의 국가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비단 소현세자나 이후에 정조라는 불세출의 개혁군주가 탄생했지만 이들 역시 신하의 나라에선 필요치 않는 눈에 가시였고 결국 그들의 뜻대로 제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태에 가장 근본적인 책임은 군주자신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끔 강요했다고 볼 수 도 있지만 결국 위정자의 잘못된 역사관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거울을 처다보듯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저서를 통해서 다시금 그동안 알아 왔고 자연스럽게 인지 되었던 조선왕들과 그들의 삶 그리고 치세 및 역사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역사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역사는 이를 보는 관점에서 正인 것이 反이 되고 反인 것이 正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냉철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이고, 새가 한쪽 개로 날 수 없듯이 역사 인식이야말로 왼쪽 오른쪽을 모두 다 정확하게 살펴봐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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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시선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미래를 향하고 있다. 역사란 현재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평가한 과거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의 가치관이나 정신과 함께 변화하고, 그래서 늘 재조명되고 다시 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왕을 말하다’ 에서 이덕일이 성리학적 관점과 당파적 관점을 최대한 배제한 채 사료를 보라고 주문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성리학과 당파성을 지우지 않고 시도하는 평가는 과거 지향적이고 승자와 강자의 역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조선 왕을 말하다’는 우선 구성 방식에 눈길이 갔다. 거론된 왕이 모두 8명. 네 가지 주제를 정하고 한 주제마다 비슷한 상황이나 평가를 받는 두 왕씩 평가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는데, 1.악역을 자처한 임금들-태종과 세조, 2.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연산군과 광해군,3.전란을 겪은 임금들-선조와 인조, 4.절반만 성공한 임금들-성종과 영조 여덟 임금 모두 사극에서나 책에서 자주 대하는 익숙한 인물들이었지만, 이렇게 뚜렷하게 비교, 대조가 되는 짜임으로 배치해 놓으니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주제에 대해 몰입할 수 있었고,두 왕의 시대적 상황과 평가 잣대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태종과 세조. 두 임금 모두 다 손에 피를 묻히며 보위에 올랐지만, 이덕일의 두 임금에 대한 평가는 크게 갈렸다. 태종이 자기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공신과 외척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조선의 기반을 다지는 시대적 소임을 수행한 반면에, 세조는 자신의 왕위 찬탈로 인한 취약한 정통성과 지지 기반을 공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해주는 것으로 권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태종은 권력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세종이 선정을 베풀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었다. 반면 세조는 훈구파들에게 어마어마한 기득권을 몰아주면서, 공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후대 왕들이 통치하는데 엄청난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일리 있어 보였다.
시대적 소임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어느 시대건 지도자들이 반드시 인식하고 수행해야 할 과제가 바로 시대적 소임이라는 점에서, 조선왕을 평가하는 작업이 어째서 과거학이 아니고 미래학이 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신하들에게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 연산군에게는 훈구세력을 약화하는 시대적 소임이 주어졌음에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훈구세력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사림 또한 억압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그 결과 훈구파와 사림 모두가 그에게 등을 돌렸고, 그렇게 지지세력을 놓친 연산군은 극악무도한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됐다는 것이다. 반면 광해군은 대외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서는 발군이었지만 아쉽게도 국내 정치에서 신하를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 소수 강경파 세력에 의지하면서 몰락의 길을 자초하게 된 것이었다.
역사에 대한 공부와 세자로서의 준비가 부족했던 연산군은 사화를 통해 신하들을 무력으로 제압했다. 그 어느 세자보다 충실하고 세자수업을 받았던 광해군이었지만 그 두 임금들은 신하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실패하면서, 폐주가 되고 말았다. 신권이 강했던 조선에서 신하들을 설득하고 당론을 조정하고, 대내외 현실을 파악하는 정치력은 군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조선 왕을 말하다’ 에서 무엇보다 의외인 것은 연산군에 대한 평가였다. 사료에 기재된 대로 연산군이 폭군이거나, 색을 밝히는 임금이 아니었다는 이덕일의 해석은 연산군에 대해 재고할 여지를 남겨 주었다. 실록을 기록한 사림들이 연산군을 과도하게 폄하해 놓았기에, 연산에 대해서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서 역사 평가에 있어서 사실과 의견을 분명하게 가리고 구별하는 비판적 시각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다음으로 전란을 겪은 임금인 세조와 인조에 대한 평가. 나는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왕 가운데 이 두 임금에 대한 불호의 감정이 가장 크다. 서슴없이 가장 형편없는 임금이라고도 평하게 된다. 선조와 인조는 모두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전란의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데도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던 조정은 그 신호를 무시했다. 광해군을 퇴출시켰던 인조는 숭명반청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외정책으로 호란을 자초했을 뿐더러 전쟁의 상처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민심과는 동떨어진 정책을 펼쳤다. 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전란 중에 약속했던 면천법이나 작이법 등 병역과 조세 개혁을 포기함으로써 전후 혼란과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었던 기회를 무산시켰다. 그 결과 조선은 다시 권리만 있고 의무는 지지않는 양반의 나라로 복귀하게 됐다. 인조는 국제 정세를 외면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뤄야 했다. 청의 외침과 삼전도의 굴욕을 자초했다. 그럼에도 명분과 왕위 보전에 집착함으로써 소현세자의 비극을 초래하는가 하면 조선은 대외 정세의 변화와는 담을 쌓는 퇴행을 보여준다.
이 두 임금들은 위기 대처 능력의 중요성을 짚어보게 만든다. 특히나 보위를 보전하는 데에만 급급함으로써 민심을 수용하지 못했다. 기득권만 강화하고 변화를 거부함으로써, 조선의 모순은 더욱 심화됐다. 그 고통은 다시 백성들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었고, 조선 사회는 곪아갔다. 마지막으로 절반만 성공한 임금이라는 성종과 영조. 이 두 임금은 현실과 타협선을 찾은 임금이 아니었나 싶었다. 왕가와 공신들의 타협으로 보위에 오른 성종은 훈구세력을 견제할 집단으로 사림들을 키웠다. 홍문관을 신설하고, 사헌부, 사간원등 삼사에 사림들을 기용했다. 이들이 조정에서 점점 훈구대신들에게 맞서는 세력으로 성장하자 성종은 사림이 내세우는 대의와 의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왕권을 강화했다. 하지만 성종은 훈구세력을 몰아내지는 못했다.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붕괴시키지도 못했고, 그들과 공존할 수 밖에 없었다. 성종이 성리학적 가치를 적극 수용하면서, 대간들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관료들에 대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바람직한 풍조가 정착했다. 하지만 이런 문신 중심의 관리 기용이 장점만은 아니었다. 문약화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훗날 전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영조는 양반에게도 과세하는 등 과감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양반 세력의 부분적인 양보를 얻어내는 선에서 균역법을 실시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양반들의 결작미 부담을 소작인에게 떠넘기게 되면서, 농민들의 부담으로 가중됐다. 영조가 애초에 시도한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영조는 당쟁이 격화되자 탕평책을 펼치는 과감성을 보였다. 하지만 나주 벽서 사건이 일어나자, 소론 강경파를 제거했다. 영조는 자신을 왕위에 오르게 한 노론 기용하면서, 조정은 노론 일색이 돼 버렸다. 그리고 외척을 배격해야 할 왕의 입장에서 오히려 정순왕후와 혜경궁 홍씨 등 외척을 정국의 중심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외척들이 다시 발호하는 빌미를 주었다. 훗날 노론의 독재와 외척문제는 정국 운영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불씨가 됐다는 점에서 노회한 군주였던 영조의 정치력에 아쉬움을 남겼다.
성종과 영조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제거하거나, 혹은 정책으로 수용해서 해결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타협한 임금이었다. 이런 해결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했지 기득권인 훈구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은 훗날 사화를 불러왔다. 양반의 양보를 얻어내는 타협은 백성들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덜어주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을 절만만 성공한 임금, 다시 말하면 절반은 실패한 임금으로 만든 한계였다.
조선 왕에 대한 평가를 읽으면서 뜻밖이었던 점은 정통성 문제가 생각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세조나, 선조, 영조 등이 모두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린 나머지, 과도한 특혜를 주면서 지지세력을 확보하거나, 정상적인 후계 구도를 방해하거나, 특정 세력에 의지하게 되는 등 정국을 왜곡하고 여러 문제점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때로는 소통이나 당쟁이 아닌 물리적인 힘으로 신하들을 제압하고, 무리하게 정국을 운영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통성 부족이 왕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 됐던 것이다. 정통성 시비가 독재와 직결됐던 우리 현대사의 경험을 돌아볼 때, 조선시대나 현대에서나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권력을 확보하는 과정은 곧 민심을 얻고, 권력을 행사하는 도덕적 기반이 됐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다.
또한, 지배층들이 당대의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덮으려는 것을, 역사는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설사 당대는 넘긴다 하더라도 후대에 더 큰 문제로 예외없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광해군의 퇴출로 등장한 인조의 반청 정책은 호란을 불러왔고, 다시 조선을 변화와 단절시키며 문명적으로 답보상태로 만들었다. 영조가 끌어 들였던 외척 세력은 정조 사후에 세도 정치로 왕권을 무력화 시켰고, 시계바늘을 뒤로 퇴행시켜 조선의 몰락을 부추기는 역사로 돌아왔다.
대통령 선거를 두해 남짓 앞두고, 대선 열기가 서서히 조성되고 있다. 차기 대권후보자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정통성과 소통, 시대적 소임, 대내외 현실인식, 정치력, 정치적 소신과 철학 등 조선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21세기 지도자의 덕목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왕을 말하는 것은 곧 민주사회에서 지녀야 할 지도자의 덕목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역사의 역할이다. 과거에 대한 시시비비를 통해 미래를 전망해 준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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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역사서를 읽다보면 작금의 현실과 어찌나 유사한 지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문명이 발달하여 포장은 달라졌을지라도 인간의 삶 자체는 언제나 투쟁과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까? 흔히 과거를 통해 오늘을 가름해 볼 수 있다며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며 미래의 나침반'이라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런데 역사의 잣대에 대하여 우리는 찬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당대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특정인물을 평가하지만 모든 역사 자료에는 글쓴이의 가치관이 담겨있기에,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전후좌우를 살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의 경우 사료를 남긴 분들이 거의 예외없이 강한 목적지향성을 갖고 있었다고 하니 비판없이 읽다가는 현재의 역사인식이 조선 사관들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과 사료를 남긴분들의 가치관을 분리해서 인식해야만 과거 사람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이덕일의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는 조선 왕을 바라볼 때 사대부의 시각인 성리학적 관점과 당파적 관점의 영향을 제대로 걸려내지 않으면 과거의 틀에 얽매여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조선 왕조 27명의 왕 중 핵심 쟁점에 따라 여덟 분의 왕에 대하여 재조명하고 있다.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 (태종과 세조),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 등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의 실상과 여러 의문을 문헌과 실증사료를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두번째 테마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편은 연산군과 광해군의 진면목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에 왜곡된 두 군주의 실상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관심과 흥미를이끈다. 쫓아낸 자들의 일방적이고 악의에 찬 기록의 이면을 알아본다는 것은 진실의 그림자를 찾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연산군이 리더로서는 지적 능력 조금 부족했나보다. 공신세력을 제거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으나 아군이 될 사림마저 제거하여 스스로 고립되고 결국 쫓겨난다. 집권자들은 도덕적으로 연산군을 매장하기 위해 폭정을 부풀리고 조선 최고 음란한 왕으로 묘사해 버린다. 흥청망청의 유래가 연산군에서 나온다. 그런데 실상 흥청이 연산군보다 사대부들의 색탐色貪 대상이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무인 군주의 꿈이 꺾이면서 숭무정책이 좌절되자 조선의 국방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임진왜란의 비극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점에 잠시 유의해 본다. 준비된 왕으로 통하는 광해군은 시대를 앞서갔지만 신하를 설득하지 못한 군주이다. 대외 문제에서는 탁월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었으나 대내 문제에서는 소수 강경파에 휘둘려 당론 조절과 사회 통합을 포기했던 대북 군주의 허무한 종말은, 소통과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근래의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와 오버랩되어지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번째 테마 '전란을 겪은 임금들' 편은 정통성과 당쟁이 주는 백성의 아픔을 생각하게 한다. 왕위계승의 정통성이 불투명한 선조는 당파에 휘둘리게 되고, 수많은 전란 징후에도 무능한 정권은 눈을 감아버린다. 류성룡이 제정한 면천법(신분제도)과 작미법(조세제도)으로 민심이 돌아오면서 민초들이 전쟁에 나서고, 전쟁이 끝나자 다시 양반 천국이 되어버린 선조의 시대. 지배층이 군역을 합법적으로 면제받고 군대에 가지않는 사회! 이순신 장군의 전사를 애석해하지 않는 왕! 만신창이 조선의 속살을 헤집는 저자의 분석력에 감탄을 한다. 광해군을 축출하고 왕이 되어진 인조. 과도한 정치보복은 혼란을 야기하고 그 여파로 청(후금)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소현세자의 죽음도 가슴 아프지만 내우외환의 시대가 어떤 상처를 남기는 지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네번째 테마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편은 명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성종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경종 독살설 속에 즉위해 검소하게 생활하며 탕평책을 펼친 영조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성종은 권력을 진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지방의 공부하던 선비들을 중앙 정치에 참여시켜 탄핵·언론권 주며 시대의 금기와 맞선다. 이들은 조정의 도덕성을 높이는 대신 국가의 문약화文弱化가 진행되는 문제를 가져온다.저자는 성종이 재위 기간 동안 남긴 구체적 업적이 별로 없음에도 성군의 칭호를 받았던 것은 그 앞의 세조, 예종이나 그 뒤의 연산군과 비교된 데 따른 반사이익에 불과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세종,세조가 이룩한 치적을 바탕으로 빛나는 문화정책을 펼치고 조선전기의 문물제도는 성종 때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알고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배움이다. 영조는 근검절약하는 실천 군주였으나 백성들은 물론 시대도 그런 개인적 실천보다는 잘못된 제도개혁을 요구했다. 탕평책을 표방했으나 사도세자를 희생시키고도 끝내 노론 일당독재 체제를 만들고 만 그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렇게 책은 끝이 난다. 조선왕조시대에 임금과 사대부의 실체에 대하여 제대로 짚어볼 수 있는 책읽기였다. 연산군 편을 읽다보면 "연산군은 국왕과 사대부가 공동 통치한다는 신흥 사대부들의 건국이념을 부정했다. 연산군이 사대부 계급의 공동의 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86쪽)"라는 귀절이 있다. 조선의 정치와 문화의 바탕은 성리학이다. 군왕이 도를 행할때는 군신의 협력하에 이루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신하가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성리학의 왕도이념은 조선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왕권과 신권 간의 다툼으로 역사의 전면을 차지한다. 태종에서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는 '왕권국가'의 면모를 유지하지만, 중종 반정이후 훈구(공신) 세력이 득세하더니 선조 대에 이르러 왕권유지를 위해 붕당간의 갈등을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신권이 왕권을 넘어서는 '신권 국가'로 치닫는다. 급기야 세도정치가 등장하면서 조선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된다.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일의 기록'일까? 저자는 "주희를 만세의 스승으로 여겼던 과거의 가치관이 아니라 21세기를 지향하는 현재의 가치관, 나아가서 미래지향적 가치관으로 조선 왕들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말 명쾌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선 왕 바로보기!를 이끄는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작금의 어려운 여러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의 번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키워드를 찾을 수 있을까? 적 앞에서 늘상 다툼만 하는 국회와 소통없고 포용력없는, 미래를 보는 안목마저 없었던 근래의 지도자들이 보여준 행보와 어찌 그리도 닮은 모습인지... 왜 지도자가 되면 겸손보다는 오만을, 소통보다는 독선으로 서서히 변해가는걸까? 역사의 들보에 쌓인 더깨를 잘 더듬어 털어내기를 바라면서 책을 덮는다. 출판사의 성의가 돋보이는 깔끔한 편집, 수준높고 괜찮은 책을 느낌으로 접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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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역사인식이 주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상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책으로 이덕일 소장만큼 베스트셀러를 갖고 있는 재야사학자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과 근대, 상고사까지 다양한 범위를 넘나들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호응하는 이유를 생각해볼만 한 일이다. 사견이지만 이 책도 60년전쯤에 나왔으면 불온서적의 딱지가 붙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된다. 그의 전작을 떠나, 간략하게나만 한권짜리 조선왕조실록을 먼저 읽어보고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사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원문을 본적이 없다는 자책(물론 낱권짜리실록도 원문은 아니다), 두번째는 비록 낱권이지만 교과서같은 책을 읽고 또 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를(조금 예상이 됨으로) 다시 보고자했던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1권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많은 생각에 또다른 생각을 더하게된다. 가장 궁금한것은 조선사를 공부하는 사람중에 실록전체를 완독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을 무심코하게된다. 그리 많지 않을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오만한것일까도 추측해본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역사학자의 기술을 통한 인식하는 것이 정보습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사실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패자의 역사중심기술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만이 정도인지는 생각해볼만한 일이며, 고증이 진실되게 되었는지를 고증하는 것도 생각해볼만한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는 실록에서도 나오지만 사관들이 화를 모면하기 위해 사초를 숨기는 일도 있고, 그런 화가 발생하기도 하고, 고치는 일도, 빼버리는 일도 있고, 승자가 맘데로 기술한 듯한 부분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퍼즐을 찾아내는 과정은 놓친것을 찾아내는것과 숨겨진것을 찾아내는 것인것 같다. 마치 중국이 장개석이 갖고간 문화유산의 빈자리를 지칠줄 모르는 삽질로 극복한것처럼. 이 책에서 왕이란 권력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리학, 사색당파의 관계, 명/청/왜의 시대적 배경과 외교관계, 왕과 훈구대신, 사림과의 관계를 통해서 왕이 걸어야했던 길을 조명하는 다양한 접근은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맥락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인이 이덕일소장이 너무 당쟁만으로 조선을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하지만, 나는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과 그 학문적 이해를 실천하려는 사색당파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또 괜실히 딴지를 건다면 통치철학의 높은 뜻은 왕권이 이양될수록 삭감되는것같다. 사회의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와 계급의 불만과 권력의 욕구가 성리학이란 시스템과 되려 격렬하게 부딪친다고 생각하는것은 어쩌면 태조의 역성혁명때문인가? 그런데 새로운 왕조의 시작중에 역성혁명이 아닌것도 드물다. 그와중에 버려진 민중들의 삶이 가련한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 역사학자가 한국의 근대가 시민혁명이 없었던것이 사회를 새롭게 세우지 못한 원인이라 지적하듯, 몇일전 책에서 서얼이 인구의 절반이 되었는데 새로운 사회시스템으로 전환되지 못한 조선의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긴 이럴 겨를도 없이 무너진듯도 해보인다. 실록에서 아쉬움이라면, 이 책에의 시각은 깊은 한숨과 현재를 바라보게도된다. 성리학과 재조지은같은 사대의 사상속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란 욕망으로, 끊임없이 지우려했던 욕망의 역사를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을 남길것인가를 왕들이 더 생각했다면, 현재가 좀더 좋아졌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잘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옳고 그름이 아닌 진실이 더 많이 기록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1-4부까지의 내용에서 출연하는 각각의 왕들이 그 안에서 서로 다르다. 악역의 태종속에서 신념과 부정을 느끼지만, 세조를 보면서 조금 정치적인 개인의견일지 모르지만 박정희가 생각나는건 어쩌면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라고도 생각된다. 폐서인된 왕들을 보면서 연산군에 대한 의견은 저자가 실록의 기술주체, 사초의 부족, 사관의 신빙성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좀더 고증해 볼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장되게 기술된 가능성이 매우 높고, 저자의 퍼즐풀이가 연산군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폄하된 부분에 대한 복원이란 부분에 한정하면 근거의 조합을 통해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수긍이 간다고 생각한다. 또 광해군을 읽고 다시 선조로 가는 배치는 교묘하다. 선조에 대한 실록을 근거로 왕이 통치의 권력만 알고, 의무는 져버리고, 그 사회통치기반인 사대부의 보신주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다시 광해군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속에 있는 인조를 통해서 무너진 이상주의 사회의 현실을 조명함으로 다시 또 광해군을 보게하는듯 하다. 그래서 광해군을 보면 노무현대통령이 조금 생각나는듯하다. 4부는 재임기간이 매우긴 왕들을 통해서 당파의 정쟁을 환국이란 타협으로 풀어가는 한계, 탕평을 논하면 스스로 한곳에 발붙어 있길 원해던 영조의 한계를 본다. 교과서에서 탕평책과 51년의 치세에 대한 업적평가와 이 책의 평가가 너무 차이가 나니 무엇이 옳은지 참 걱정이된다. 책을 읽고 다시한번 현재 우리가 과거 사실을 지우고자 했던 선인의 뜻을 받아, 또 우리들의 생각만으로 취사선택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또 과거의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배움이 없는 공부를 한다면 한낱 유희에 불과한데 그러기엔 우리의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라 생각한다. 이왕이면 교과서라도 보며, 시각차이를 갖고 봤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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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를 읽으며...
1. 세조와 그의 시대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을 보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시대를 읽는 능력이다. 시대를 읽는 능력이 있어야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반대로 시대를 읽지 못하면 사회를 과거지향적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사회 통합은 좌절되고 각종 소모적 논쟁으로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시대를 읽지 못하는 인물이 권자에 오른 사회는 여러 부분에서 불행에 처하게 마련이다.
신생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첫 과제인 일제 식민지 시절의 친일부역행위자를 단죄하지 못한채, 도리어 친일파를 옹호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 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한 이승만. 그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친일논쟁, 좌우파 논쟁 등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이슈와 논쟁의 근원적 시발점인 것이다. 시대를 잘못 읽어 잉태된 국가의 비극이다.
1960년 4월 19일의 민주혁명으로 발아된 새로운 희망의 싹을 짓밟은 5월 16일의 군사반란, 박정희. 18년 장기집권이 한 발의 총성으로 끝난 후,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한 기대감과 남녘의 도시 하나를 짓밟고 피로 물들이며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 아무리 그들이 '혁명'이라고, '구국의 결단'이라고 말해도 당시 헌법에 비춰봐도 엄연한 '군사반란'이다. 민주주의가 결코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명분 없는 쿠데타에 불과한 것이다.
1997년 대한민국 50년만의 첫 정권교체 이후, 점진적이고 제도적 민주주의의 이행과 적대적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와 상생의 남북관계를 지향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집회와 시위에 대한 헌법적 권리의 보장을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들의 평화적인 촛불행사 참여를 곤봉과 살수차를 동원해 짓밟은 이명박. 토목과 건설 중심의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가 아닌 자연과 사람의 공존으로 지속가능한 삶의 꿈을 외면한 이명박. 이런 정권의 패륜을 본 인재들, 목숨은 줘도 마음은 안줄 것이니...
1945년 해방 이후 적산(敵産)불하(拂下)의 이승만. 4대 의혹사건(새나라 자동차, 워커힐, 빠찡코, 증권파동)과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그리고 부일장학회 강탈 등의 박정희. 국제그룹 해체 사건과 1984년 새마을총재 전경환의 소파동, 1987년 평화의 댐 성금모금, 일해재단 비리, 1991년 수서택지 비리사건 등의 전두환과 노태우.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 축출과 부유층을 위한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하 등의 이명박. 특권층 1만명의 천국, 백성들에게는 지옥임을 확인한다.
2. 쫒겨난 두 임금, 연산군과 광해군의 시대를 살다간 노무현을 보다.
객관적인 사실fact과 주관적 의견opinion은 다르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의견을 사실로 만들려는 세력이 존재해 왔다. 의견을 생산해 사실처럼 유통시키려면 권력과 기구가 필요하다.
조중동은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보유세에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휘갈겼다.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세금'이란 말에 제대로 따져보려 하지 못한채 감응했다. 자신들의 적을 백성의 적으로 기록하려는 붓의 권력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정부는 press friendly를 강조하며 '방송 장악'의 사령탑으로 서서 '마사지'를 즐기는 듯 하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세력관계이며 모든 권력은 독점추구의 속성이 있다. 소통과 통합에 실패한 군주는 뜻이 옳아도 고립된 권력으로 아무리 좋은 정책도 주위의 뒷받침이 없어 성공할 수 없다. 시대를 앞서간 군주의 비극이다.
60년 한국 정당 정치史 야당의 대명사 민주당. 전라도(호남)가 정치적 기반인 민주당에서도 경상도(영남) 출신. 강력한 야당 대표도, 사무총장도, 원내 대표도 해보지 못한, 두번(13, 15대-보궐)의 국회의원과 약 8개월간의 해양수산부 장관이 전부였던 사람. 국민참여경선으로 집권 여당(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지만 그 집권 여당의 실세들에 의해 월드컵 바람을 타고 등장한 재벌과 후보단일화를 요구받았던 사람.
'개혁의 시대, 통합의 시대',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물려주자'고 '반미 좀 하면 어때?'라며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자주적 입장을 이야기 했던 사람.
그러나... 이라크 파병 결정과 한미FTA 추진으로 진보 세력들과 결별하고 한나라당에게 연립정부 구상을 제안함으로 호남의 전통적 지지 세력과도 이별했던 사람.
17대 총선에서 그를 위해 든 촛불덕분에 152석을 얻은 집권 여당, 열린우리당. 17대 대선에서 그를 부담스러워하며 거리두기 했던 열린우리당.
비주류에서도 비주류였던 사람, 노무현.
정적에 대한 탄압은 거꾸로 그를 도와주는 결과로 나타나기 쉽다. 정적에게 타격을 가하려면 도덕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권력은 도덕적 타락을 스스로 막지 못했으니 김대중도, 노무현도 비껴서지 못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전두환은 통장에 29만원밖에 없다고 '배째라'했지만 노무현은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 했다.
그렇게 노무현은 갔다.
3. 선조와 그의 시대에서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을 보다.
절차의 투명성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대통大統처럼 최고 권력을 잇는 절차는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 절차가 불투명하면 정국에 혼란이 온다. 당사자는 정당성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이는 정국 운용에 큰 부담이 된다. 이런 최고 지도자의 콤플렉스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한 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콤플렉스에 허우적대다 실대한 정치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미 군정 3년과 그 이후로 정치적 반대파들을 소외시키고 탄압하며 제거했던 이승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 탄압해 친일파를 옹호했던 그가 국민적 반일 감정을 바탕으로 '이승만 라인'을 선포하니, 식민지 조선과 만주대륙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투사들에 대한 콤플렉스는 아니었을까.
1988년 13대 총선으로 나타난 국민의 요구를 1990년 3당 합당으로 깨버렸으나 대통령에 취임해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실시로 한때는 민주투사였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김영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했던 그가 국민적 여론에 밀려 '5.18특별법'제정을 지시했던 모습과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더니 북미핵위기속에서는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는 등의 남북관계에서 보여줬던 그의 갈지자 행보는 김대중에 대한 콤플렉스는 아니었을까.
유능한 지배층과 무능한 지배층을 가르는 기준 중의 하나가 현실인식 문제이다. 유능한 지배층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지만 무능한 지배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1996년 10월 OECD에 가입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축했지만 1997년초부터 라디오 '여성시대'에서는 경제적 삶의 각박함을 호소하는 글들이 읽혀졌다.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까지도 김영삼과 지배권력층은 한국 경제 상황의 현실을 호도했었다. 묵묵히 제 삶을 열심히 살아가던 서민들의 피울음 소리가 그들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2008년 5월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을 끄기 위해 '경제위기설'을 흘리던 이명박과 지배권력층은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를 추진했다. 그러다가 리먼이 파산하고 미국發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한국 경제는 탄탄하다고, 금융위기를 잘 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속에 한국 경제의 진실은 살아있다.
무능한 지배층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그렇게 머릿속의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동안 나라는 깊숙이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신뢰를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1949년 1월부터 발생한 웅진, 개성, 의정부 지구 국지전 때는 "아침은 서울, 점심은 평양, 저녁은 신의주"라며 북진을 주장하더니 1950년 6월 25일 전면전이 발발하자 '점심은 대전, 저녁은 부산'이었던 한국전쟁. 녹음된 서울 사수 라디오 연설방송으로 호도한 것도 모자라 한강다리를 폭파해놓고는 후에 서울 시민을 인민군 부역자로 학살했던 이승만과 지배권력층.
2010년. '강력한 응징' '전쟁불사'의 이명박과 지배권력층를 목도하지만 전쟁터로 끌려가고픈 마음이 개미 똥구녕만큼도 없다.
로마의 파비우스 가문처럼 어린 후계자만을 남기고 모두 목숨을 바치는 가문을 어찌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겠는가? 지배층이 군대에 가지 않는 나라의 피지배층이 전쟁 때 종군할 이유가 없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지만 과거에만 머무르는 과거학이 아니다.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역사는 현재학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미래학이다.
때로는 이념이 총칼보다 강하다. 역사는 모든 시대적 금기가 언젠가 깨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시대의 금기를 혼자만의 행동으로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금기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과 이를 실천할 조직이 등장해야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부정과 부패, 비리의 주류 집단을 공격하는 세력은 중간파의 지지를 획득해야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
2010년 오늘의 대한민국이 성종의 시대인지, 정조 사후 순조의 시대인지... "대통령 못해먹겠다"의 원조(元祖), 250년 전(1753년)의 영조를 보고 좀 웃었다.
그래도 조선시대엔 왕을 선택할 권리가 일부 지배권력층에게만 있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얼마든지 있다.
2010년을 살아내는 수많은 '업복이'와 '초복이'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위해 다가오는 6월 2일, 꼭 투표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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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 뭐냐구 ㅎㅎ 국사시간에 조선의 왕들을 외울때 했던 암기법이다. 태조-정종-태종 -세종 등등 , 나라를 세웠거나 정통이아니거나 왜란을 만날을때는 조로 예를 들어 태조, 세조, 선조 이고, 폐위되면 군,광해군 연산군 처럼 이런식으로 공식을 적용해 외웠던 기억이 난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조선조의 왕들이기에 왕숫자도 많고 사화,전쟁, 당정 등등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역사에 관심없는 사람들조차도 장희빈, 인현왕후, 세종은 다들 알 정도로 드라마, 영화등이 소재로 많이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역사드라마와 역사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미친 연산군으로 많이 그려졌던 역사드라마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미친왕쯤으로 취급하는 연산군이나, 인수대비가 몰았냈다고 생각하는 연산군의 어머니, 사도세자가 정신병으로 인해 뒤주속에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나또한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에서 가끔혼동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착각했다.
인간의 개인사가 단순한 선과 악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자신의 생활환경을 통해 알게되지만 막상 다른사람, 또는 역사적 인물에 이것을 대입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오해와 진실 또는 역사적 사관, 자료들을 통해 우리가 오해하고 조선의 왕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최근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비쳐진 세종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조명되고 있는 태종의 이야기 , 세종의 굳건한 왕권 강화를 위해 악역을 자처한 태종, 외척과 왕의 자리에 앉게 해준 공신들을 아들 세종을 위해 자신이 모두 처리한 피의 역사를 선택한 아버지 임금 태종
미친 왕, 폭군으로만 묘사되는 연산군은 사실 성군은 아니었지만 폭군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사료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산군 일기와 중종실록를 빗대면서 똑같은 이야기이지만 보는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적고 있다. 한예로 흥청이란 단어는 흥에 겨워 재물을 마구 쓰며 즐기는 것을 가리키는데 어원에서 시작되었으나 사실 흥청은 국가 소속의 전문 음악인들이었다. 춤과 노래,악기,등을 사랑한 연산군의 이야기가 중종실록을 통해 나쁜쪽으로 전달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보통의 사대부 보다 못한 비겁함을 보인 선조, 또한 자신의 아들을 경쟁상대로 여겨 독살설이 나도는 소현세자
낮과 밤의 두얼굴을 가진 성종의 이야기 또한 새롭다 왕비의 투기로 인해 폐비가 된 연산군의 어머니 이야기는 사실 성종의 여성편력으로 인한 단순한 애정다툼으로 인한 것이라는 이야기
경종독살설로 재위내내 시달려야 했던 영조 그로 인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혜경궁홍씨의 아버지 홍봉한이 노론이고 사도세자는 소론으로써 당정이 다르므로 어쩌면 "한중록"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혜경궁홍씨의 몰락한 친정을 복권하기 위한 자기변명서일수 있다는 사관들이 가득하다.
단순히 한글을 만든 세종, 미친왕 연산군, 사도세자등등 단편 일률적으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역사적 사실과 자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이야기와 소문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직접 보지못한 이야기들을 우리가 해석하고 싶은대로 결정짓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적 사실들 앞에서도 그사람들의 상황, 정치적 현실등을 바라보지 않고 호도하거나 단정지었던 나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또한 임금의 자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들여다 봐야하는지를 .... , 단순히 핏줄로 인해 쥐어지는 자리가 아님을 많은 죽임, 죽음, 눈치, 지혜가 필요한 자리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당대의 임금의 한 발자취가 조선왕조 500년의 미래를 그려가게 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당신들이 만들고 그나라를 이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을 피를 흘리게 만든 조선이 끝내는 그혈통을 잊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얼마나 원통해 할까 ! ! 결국 나라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많이 내세웠던 개인주의로 인해 조선이 사라졌음을 우리 정치인들이 잊지 말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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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는 역사의 기록이 없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도 어렵지만 그 역사를 누가 기록했고 어떤 것을 중점으로 기록했는지에 따라 그것이 진실된 역사인지 개인의 기록인지 구분이 달라질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그냥 전해져오는 의견인지도 정확히 알지도 못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때 배웠던 국사속 역사는 바뀌지 않는 거라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어른이 되고 난뒤에 알게된 역사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바뀔수도 있고 기록되어 있는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었다.
사극속에서 많이 다뤄지는 숙종이나 광해군, 중종, 세종대왕등을 제외하곤 우리는 왕들이 어떤 치적을 세웠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막연히 사도세자와 같이 비운의 인물로 그려져있는 사람이나 향락에 찌들었고 폭군으로 알고있는 광해군도 실제로는 많이 달랐던 인물이라는 사실도 이책을 보고서야 알았는데 이렇듯 역사는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실이 달리 보일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선시대는 대표적으로 당파싸움과 유교, 성리학, 실학등의 학문으로 인해 여러 파로 나뉘었고 소론, 대론, 서인, 남인등 당파싸움으로 인해 나라의 권력이 좌지우지되는 일을 많이 겪엇다. 조선시대가 쇠락한 것을 당파싸움으로 모는 경우도 많은 것은 이런 일을 두고 말하는것인데 요즘 정치를 보면 조선시대의 당파싸움과 비슷하지 않나 싶을때도 너무 많다. 역사가 무조건 과거의 역사로 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잘못된것을 알고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결과가 나왔는지를 살펴서 지금의 현실을 잘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역사는 책속의 역사로만 인식하는 경우도 많아 역사를 왜 잘 보존하고 파악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책에 나와있는 왕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왕들이 많은데 이들의 공적이나 삶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많이 달라서 처음엔 좀 의아해하며 읽었는데 이들의 삶이 실제 사극이나 여타의 책들과 다르게 쓰여진 것은 단순히 흥미위주의 사실과 달리 학문이나 당파싸움의 시선을 제외하고 인간적이고 왕의 자질을 위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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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덕일 씨가 기획을 했는지, 출판사에서 기획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기획했든지 간에 정말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덕일 씨가 역사학계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어쨌든 작은 오류나 실수들이 있다 치더라도 이덕일의 주장과 견해는 충분히 경청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역사학계가 친일파 계열이 잡고 있는 것은 상식 아닌가. 이 썩은내가 진동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이덕일 같은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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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저서를 즐겨 읽는 이유는 기존의 반복되던 역사적인 학설에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사실들과 논리적인 증거들을 서술한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책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세조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조선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개의 커다란 양난을 기점으로 점점 왕권이 미약해져 결국에는 세도정치까지 이르게 되는 조선역사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왕권을 강화했던 왕들을 좋아햇다. 그 대표적인 왕이 태종과 세조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사실중의 하나는 붕당정치의 시작이 세조때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권을 찬탈한 세조, 그가 왕이 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한명회와 신숙주와 같은 공신들은 세조가 왕위에 오른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 파벌을 생성하게 된다. 이들이 우리가 훗날 훈구파라 불리는 사림파와 대립되는 붕당의 시초다.
태종이 자기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공신과 외척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조선의 기반을 다지는 시대적 소임을 수행한 반면에, 세조는 자신의 왕위 찬탈로 인한 취약한 정통성과 지지 기반을 공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해주는 것으로 권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태종은 권력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세종이 선정을 베풀 수 있는 기반을 다져주었다. 반면 세조는 훈구파들에게 어마어마한 기득권을 몰아주면서, 공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후대 왕들이 통치하는데 엄청난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할 군주는 다름 아닌 희대의 폐륜 군주로 각인된 연산군에 대한 평가이다. 그동안 TV사극이나 역사물 그리고 픽션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연산군은 폭군이라는 두 글자로 대변되었고 절대군주시대에 상상하기 조차 힘든 신하들의 반정으로 보위에서 쫒겨나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정당한 정치적 흐름이었다고 배워 왔고 그리고 믿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흥청망청의 원조격으로 폐위되는 그 순간까지도 장녹수의 치마폭에서 해쳐나오지 못한 색마, 자신의 향락을 위해 민초들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은 폭군 그리고 선왕의 후궁들까지 스스럼 없이 살해한 살인마의 이미지로 연산군일기는 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실록을 바탕으로 전파된 야사는 연산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함으로서 군주폐위에 대한 정당성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과 그리고 실록을 세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연산군의 이미지에 대해서 의구점이 발견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연산군 이외에 또 다른 반정의 대상이었던 광해군은 끝까지 천수를 누린 반면 연산군은 폐위와 동시에 목숨까지 요구했던 것은 반정에 대한 정당성에 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반정세력이 작성한 연산군일기에서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전부다 세탁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찌보면 연산군의 비극의 원인은 세조의 왕위찬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태종이 모든 악역을 자처하고 반석위에 올려놓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헌정질서를 송두리채 꺽어버린 세조의 등극과 그에 빌붙은 훈구공신들의 역사적 퇴행이 가져온 비극이었던 것이다. 이미 조선은 군왕의 나라가 아니였음을 연산군은 인지하지 못하였고 그나마 자신의 편인 사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화라는 훈구대신이 파놓은 덫에 걸려서 몰락하게 된 것이지 그동안 왜곡된 연산군의 비행에 그 원인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세조가 팽창시켜 놓은 공신들의 세력을 연산군이 제어하다가 결국 실패하였고, 그를 몰아낸 세력들은 실록을 통해 그를 영원한 폭군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버렸다. 실록의 기록으로만 보면 그는 폭군이지만 세조때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해한다면 연산군이 왜 그런 통치를 했는지, 그의 모습이 신하들에게 얼마나 거부감이 있었었는지를 알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역사적인 사건 전후를 연계하여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그저 책 표면에 보이는 글만 이해하려 하지 말고,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왕과 신하들의 심리까지 이해하려 한다면 역사가 더욱더 또렷하게 보일것이다.
역사는 기록에 의존하여 쓰여지기 때문에 사실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해석은 다양하게 나올수 있다. 기존의 역사학계가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학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책은 기존의 학설과는 상반된 학설들을 과감하게 내놓고 있다. 또한 그를 증명할 다양한 기록들을 열거하고 있다. 저자가 그 간 다른 저서에서 주장하던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집대성 해놓은 책이라고 보면 좋을것 같다. 단순히 드라마를 통해 막연하게 알고 싶던 왕들의 이야기를 좀 더 세세하고 다양한 시각을 통해 조명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사실과 진실은 엄연히 틀린 것이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