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과정을 보면 백제가 너무 강해서 신라가 통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자왕의 부친인 무왕 시절에는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왕 초기에 선제공격을 단행하고 있다.
그를 이은 의자왕도 초기에는 무왕에 버금가는 왕이었다. 사실 백제의 왕을 왕이라고 하지 않고 황제라고 해야 정확한 것인지 모른다. 폐하라는 말이
"알고 있는 역사를 잘 그려낸 소설, 하지만 승자의 기록에 치중한 것은 아닌지"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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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과정을 보면 백제가 너무 강해서 신라가 통일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자왕의 부친인 무왕 시절에는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왕 초기에 선제공격을 단행하고 있다.
그를 이은 의자왕도 초기에는 무왕에 버금가는 왕이었다. 사실 백제의 왕을 왕이라고 하지 않고 황제라고 해야 정확한 것인지 모른다. 폐하라는 말이 사라지고 전하라는 말을 쓰던 조선의 역사적 가르침이 나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합천의 싸움에서 딸과 사위를 처참하게 잃은 김춘추는 백제의 멸망을 목적으로 삼게 되고 원병을 얻으려고 고구려를 갔으나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오고 난 이후에는 당나라에 오직 한 희망을 걸게 된다. 오히려 약한 나라가 통일되는 것이 어떤 섭리가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는 김유신이 의자왕의 1천 궁녀설을 만들어서 퍼트렸는데 이것이 소문에 소문을 이루면서 3천 궁녀로 되었다는 이야기(8권 247쪽)가 나온다. 하긴 어떻게 한 나라의 궁에 3천명이나 되는 궁녀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이 이야기를 보면 수긍이 간다.
마음에 따라 온갖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으면 사당과 무덤이 한 가지(8권 256쪽의 원효의 깨달음에서)이다. 삼계엔 오직 마음뿐이요 만법엔 다만 식이 있을 따름이다. 마음 바깥에 대저 무엇이 있다고 따로 그것을 구할 것인가. 원효는 이런 깨달음을 남기면서 중국으로 가지 않고 경주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역사에 충실했다는 장점이 있다고는 하나 이 역사라는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난 고려시대에 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고려의 역사를 빛내는 작업이기도 했으니 승자의 기록에 치우치고 있다는 약점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밤 뜨는 별에서 천 년 전의 빛이 수직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아름드리 천년 고목과 울창한 숲에서 그 옛날 동풍에 떨어진 수목의 씨앗을 떠올리는(10권 330쪽 후기) 원대한 뜻을 알 수 있긴 하지만 삼한을 한 집으로 만들려 했던 옛사람의 숭고한 뜻을 헤아려서, 기왕 합쳐놓은 한집을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누지 못해 안달하는 지금(10권 331쪽 후기)이라는 표현은 좀 지나치다고 할 것이다. 이 역시 승자의 기록에 답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알고 있는 역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고구려 역사를 읽는 것처럼 밤잠을 못 이루면서 읽는 소설은 아닌 것 같다. 삼국의 크기나 100여년의 역사가 소설의 긴장성을 떨어뜨렸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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