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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금지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암컷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거든.” p40 고래를 잡는 것은 시기가 있고 특히 암컷은 잡지 않는다고 한다. 암컷이 번식을 해야 해서 말이다. 이 책 『지구 끝의 사람들』은 칠레의 파타고니아 지방에 <모비딕>을 동경하는 소년이 방학을 이용해 포경선을 탔고, 그 소년이 자라서 정치적으로 환경 때문에 유럽으로 망명했고 거기서 환경운동가들과 교류를 갖게 되면서 어느 날 칠레에서 날아온 긴급전문에서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호가 포획이 금지된 고래 사냥을 한다는 내용을 받고 조국으로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이 책은 환경소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환경소설은 처음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막 화가 났다. 일본은 여기서도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뉴스를 본 것 같다. 일본 포경선이 북극인가? 남극에서 벌어졌던 사건들 말이다. 고래를 포획하기 위해 그들의 야비함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다면 소설이지만 그 소설속의 그들이 포경선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나온다. 하나를 감추기 위해 다른 하나를 만들어 위장하는 실력이 대단했다. 나쁜 사람들도 아이를 가진 동물에게는 해를 하지 않고 어린 동물은 잡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포경선의 위력은 대단했다. ‘해상가공선’을 만들어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그들의 만행을 지켜보자니 화가 났다. 이 책의 주인공이나 그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닐센선장, 페트로 치코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은 여기자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노력한 그들이 있기에 ‘해상가공선’으로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그들의 만행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칠레 근방의 섬이나 그곳의 자연환경 바다의 모든 것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비록 지명은 생소하지만 왠지 그곳에서 나도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그곳의 자연 속에 위험한 암초를 피해 다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와 정 반대의 나라라고 믿겨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참 신기했다. 책을 읽기에 그 나라에 대해 조금 배우는 것 같다. 환경소설은 참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렇게 바다의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되니 고래라는 동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면 겁은 먹지 말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준다면 그들도 우리를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놈들은 본래 넓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교배종들로 지금은 사교성만큼은 잊지 않고 있는 거요. 어쩌면 우리가 적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했는지도 .... 나는 가끔 돌고래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감성적이며 지혜롭다고 생각하오. 적어도 이놈들은 계급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진정한 바다의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이거요.” p134 『지구 끝의 사람들』은 페이지가 적은 그런 책이다. 몇 페이지 아니지만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특히 이 책을 읽기 전에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이라는 저자의 책을 먼저 읽는다면 이 책에 더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조만간에 그 책도 꼭 읽어볼 생각이다. 아무래도 저자인 ‘루이스 세풀베다’에게 빠진 것 같다. 적은 페이지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우리 자연 우리 환경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이 책 에는 고래에 대한 것이 나온다. 바다 속 환경을 보전해야 앞으로 우리가 오래도록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차별 적인 환경파괴는 정말 아니다. 그건 인간이 할 수 없는 나쁜 짓이라 생각한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인간 이하인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여 우리 인간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모비딕>, <노인과 바다>라고 한다. 물론 대충 내용은 알지만 그래도 날 잡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연, 환경의 소중함을 알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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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사람들'은 생태계 환경에 대한 고민과 조국 칠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수작이다.
작가는 닐센선장이라는 바다 사나이를 통해 자연 그대로에 대한 토속신앙적인 '믿음'과 차갑고 험난한 땅을 가진 조국에 대한 '애증'을 화툿불가에서 이야기하듯 서술한다.
굳세보이면서도 다정한 닐센선장은 작가 곧 그 자신이다. 모비딕을 읽으면서 바다를 동경하고 모험에 뛰어들고 싶었던 동심은 닐센선장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하지만 모비딕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비딕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곧 모비딕은 뼈와 살을 발라내 산업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죽은 고래가 아니라, 교류하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생물로서의 고래이다.
작가는 두 단체(혹은 국가)에 큰 신세를 지고있다. 하나는 그린피스라는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환경단체이고, 하나는 고래포획을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일본당국과 자본이다. 그린피스에게는 선의의 신세를, 일본에게는 원인제공이라는 신세를 진 셈이다. 특히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호는 최근까지 실제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악명높은 포경선으로 소설속에서도 극히 잔혹하게 묘사된다.
즉, 작가의 글은 일견 정적이고 수려하면서도 포경선과 일본당국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운동을 내세우고 생태계파괴자들에게 비판적이라고 해서 그의 문장을 딱딱할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금물이다. 짧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어휘보다 메시지가 강한 그의 글을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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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소년이 있었다. 14살에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고 그 감흥에 이끌려 16살에 포경선을 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현재 그는 환경보호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24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유는 일본의 고래 가공선 <니신마루 호>의 침몰에 대한 진상 조사를 위해서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소설(?)은 그가 어린시절 방학을 이용해 고래잡이 배를 타는 경험, <니신마루 호> 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들려주는 여러가지 전설들, 그리고 소설의 전체적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사건의 진상 이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이 책 소설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기행문(사실)이라고 해야 되는지 의문이 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부분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 우선 작가의 삶을 한번 보자. 루이스 세풀베다는 칠레 북부 오바예 출신으로 피노체트 군사정권 하에서 반독재 투쟁으로 수감됐다가 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석방된 후 망명길에 올랐다. 그 후 유네스코기자, 작가, 여행가로 삶을 살아가며 아마존, 남극의 오지, 그린피스의 해상 감시선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는데... 이쯤되면 그 소년이 누구를 이야기 하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울러 책에는 그가 왜 24년동안이나(뭐 기간을 사실과 다를 수도 있겠지) 고국에 가지 못했는지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러나 솔찍히 말하자면 위의 이유보다는 그의 책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를 읽었다는 것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어떤 책인고 하면 그가 파타고니아 지방을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점을 담고 있는데, 지역에 대한 수많은 전설과 에피소드들이 담겨있는 기행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남극의 오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의 일부로써 살아가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라 그들이 실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듯한 동화같은 느낌을 받았데 그 느낌이 이 책(지구끝의 사람들)를 읽으면서 다시 되살아 나는 것이 문체도 비슷할 뿐만이 아니라 (역자가 같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기까지 동안 그가 쏟아내는 무수한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그 기행문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묘한 사실적인 느낌에 의해 마지막 결론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이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엄청난 허구(그래! 이건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 해봐도 허구가 확실한 것이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실 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나는 완전히 취해버린 것이다. 보르헤스나 마르케스의 몽환적인 마법적 사실주의가 아닌 세풀베다의 독특한 마력에 취한것이다. 정말 이번엔 제대로 걸린 듯하다. 작가는 그의 다른 어느 작품 보다도 소위 잘나가는 나라의 횡포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특히 일본의 불법적인 고래잡이 등을 접하면 괜히 과거 치욕의 역사까지 소급하여 그들을 응징하고 싶어지는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음... 진정하고...닥치는 대로 고래를 포획하는 <니신마루 호>는 백악기 공룡을 연상시킨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를것 같지 않은 거대한 공룡들, 한편 가져도 가져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은 어떠한가. 인간도 쥬라기 시대 덩치들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리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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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do del Fin del Mundo route map
1부. 청소년(학생)때의 포경선 체험 항해루트
「이봐, 여행은 마음에 들었나 」 「그럼요, 늘 배를 타고 싶었거든요. 그동안 두 분이 마음에 들었고, 칠로에 분들과 아르헨티나 분도 잊지 못할 겁니다. 사실 전 바다를 좋아했고 지금 이순간도 좋아하지만 앞으로 고래잡이 선원은 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두 분의 기대를 저버렸다면 용서하세요. 그러나 제 얘기는 진실입니다.」 「이봐, 소설에서 읽은 것과는 다르지 」 (1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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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씨, 고래들이 왜 당신을 도왔는지, 고래들이 왜 자신들을 방어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 「.... 그 고래들이 나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거요.」 「남아 있던 고래들은 어떻게 될까요 」 「다들 떠날 겁니다. 방금 여기까지 우리와 동행했던 고래는 수놈인데 무리의 선발대인 셈이지요. 고래들은 이제 다른 협곡이나 침식해안을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떠날거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말입니다.」 (2부中 <피니스테레 호>선상에서...)
2부. 소설속 니신마루호/피니스테레 항해루트 및 주인공의 취재루트... Mundo del Fin del Mundo rou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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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왜 골랐을까?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걸 보니 아마 높은 할인율에 혹했겠지만 무엇보다 루이스 세풀베다 이름을 보고 골랐을 것이다. 그의 작품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감상적 킬러의 고백'-제목이 어찌나 낭만적인지!-과 더불어 아직도 책장을 볼 때마다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이번 주 휴가로 제주를 가면서 가방에 어떤 책을 집어넣을까 하다가 예스24 택배상자에 들어있던 책들 중 이책을 골랐다. 얇아서 휴가기간 중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놀며쉬며 다니다 틈틈이, 밤에 호텔에서 침대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 읽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 칠레를 떠나 독일에서 살고있는 작가가 그린피스로부터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호의 마구잡이 고래잡이와 그로 인한 폐해를 전해듣고 비행기를 타고 칠레로 가던 중 그의 어린시절 바다로 향하던 마음과 견습사원으로 고래잡이배를 탄 경험을 떠올리고 마침내 칠레에 도착해선 칠레의 막바지 남극 부근에서 뱃사람 닐센 선장과 그의 동료들을 만나 피니스테레 호를 타고 일본 포경선의 사고 현장을 가며 닐센 선장의 살아온 이야기와 그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원주민들의 이야기, 피니스테레 호의 포경선 고래잡이 저지에 얽힌 이야기 등을 엮는다.
담담한 어조로 남극바다에서 배를 타고 생선을 잡지만 결코 자연을 해치지는 않는 사람들의 자연발생적인 포경선 저지 활동은 이념이나 목적이 우선인 환경운동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서 목숨을 걸고 거대한 배와 정부에 맞서는 모습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거대한 니신마루 호가 고래를 마구 잡아들이고 해체작업을 한 후 고래살과 껍질 등을 피로 범벅인 바다로 내다버리는 장면을 지켜보다 작은 배로 거기에 맞서는 원주민과 그를 돕기위해 큰 포경선에 자기몸을 부딪히고 원주민이 탄 배를 보호하는 고래의 모습은 장엄하다.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특성 중의 하나인 마술적 서술을 가미'한 장면이라서일까,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신비한 일들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럴듯하게 다가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상이 사실과 결합하는 순간이었다.
이 지구의 끝에, 그 차가운 바다를 끼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지식과 학문으로 배울 수 없는 아름다운 감명을 얻었다.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조근조근 말하는 루이스 세풀베다, 이게 서사의 힘이다.
134쪽 "언젠가 한 영국인이 그곳을 지나갔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이렇게 썼다. <우울한 고독들, 삶보다는 죽음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이라고. 그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영국인들처럼 거짓말을 했던 것인데, 그가 바로 찰스 다윈이었다. 「평소엔 이렇지 않았소.」 닐센 선장이 배 주위를 떠나지 않는 돌고래 떼를 바라보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놈들은 본래 넓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교배종들로 지금은 이렇게 피오르드 해안에 몸을 숨기고 있지만 타고난 사교성만큼은 잊지 않고 았는 거요. 어쩌면 우리가 적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했는지도....... 나는 가끔 돌고래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감성적이며 지혜롭다고 생각하오. 적어도 이놈들은 계제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 진정한 바다의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이거요.」 152쪽의 이 말도 멋지다. "모험의 맛을 아는 배들은 잉크 물이 출렁이는 바다를 연모한 나머지 이따금은 종이 위에서도 항해하고 싶어하니까."
언젠가 말로만 듣던 모비딕을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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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봤던 영화 중에 'La Puta Y La Ballena'가 있었는데,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파타고니아이다. (개인적으로 3-40대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고래와 창녀(The Whore And The Whale)')
2. 루이스 세풀베다는 2001년에 읽었던『연애 소설 읽는 노인』에 이어 두 번째이다. 기본적인 정서나 분위기는 『연애 소설 읽는 노인』과 흡사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났던 작품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위에서 거론한 『고래와 창녀』라는 영화이고 또 하나는 피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다.
만약 이 작품에 매력적인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고,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했다면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독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감각적인 문체까지 가미했다면 더더욱. 작품의 분위기라든가 기저에 흐르는 것들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일정 부분 유사한데 이런 측면에서 상당히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혹은 『고래와 창녀』처럼 아름다운 대자연(고래를 포함한)을 전면에 부각시킨다거나 상처난 고래와 상처난 여성이라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효과적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이스 세풀베다는 정공법으로 돌파한다. 그래서 '읽는 재미'로만 본다면 그렇게 썩 재미난 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가지는 힘이라면, '진실' 혹은 '사실'에 기인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실, 혹은 알지만 여러모로 불편해서 침묵하는 진실, 혹은 불편해질까봐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러니깐 이 작품은 순수한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다소 소프트한 '르포'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이 작품은 불법적으로 고래를 잡는 일본 포경선과 이를 고발하기 위해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한 칠레인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꼭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소기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했다. 물론 과연 이러한 방법 타당한가, 혹은 이것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분분할 수 있겠으나,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의 다양한 역할을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까?
환경보호론자도 기자나 칼럼니스트도 이와 비슷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작가이기에 일반 대중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래서 좀더 효과적으로 환경 운동의 필요성을 설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백 편의 논문보다 이런 소설 한 편이 훨씬 효과적으로 환경 운동의 필요성을 각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4. 이 작품은 탐욕스러운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어지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전면에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유럽의 침략자들에 의해 파괴된 남미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일한 얼개에서 이해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5. '읽는 재미'는 덜 하지만 읽어볼 만한 매력은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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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에게 작가로서 세계적인 성공을 안겨다 준 <연애 소설 읽는 노인>과 같은 해인 1989년에 발표된 <지구 끝의 사람들>은 환경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글이라는 점에서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피해, 독일 함부르크에 정착한 작가는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보호하자는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시기의 일을 이 책의 소재로 삼았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 먼저 16살의 어린 나이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은 청소년 루이스 세풀베다의 지구 끝 탐험기가 소개된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부근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대신, 고래잡이 어선에 타보겠다는 남쪽 바다의 부름을 받고 결연한 마음으로 모험에 나선다. 주변의 도움으로 고래잡이를 직접 체험한 작가는 고래잡이 선원의 길을 포기한다. 과거의 플래시백에서 현재로 돌아온 작가는 지구의 끝에서 일본 선적의 니신마루가 불법적으로 고래 포획을 시도한다는 제보를 받고, 24년 만에 조국 칠레로의 귀향을 서두른다. 기자의 바닷가재 같은 촉각으로 니신마루 호가 위조폐선증으로 위장한 채, 고래사냥에 나섰을 거라는 추론에 도달한다. 장장 30여 시간 2만 킬로미터에 걸친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산티아고에 도착한 세풀베다는 귀향의 노스탤지아를 느낄 새도 없이, 니신마루 호를 직접 목격했다는 피니스테레호의 선장 호르헤 닐센과 그의 동지 페드로 치코와 함께 생소한 지명을 접하면서 지구 끝에 있다는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남극 바다의 수호자 닐센 선장과 페드로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는 한때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로 자리 잡은 주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술 같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글은 책에서 도무지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도대체 작가로서 그처럼 다채로운 삶의 체험을 한 이가 얼마나 될까. 칠레의 민주주의를 짓밟은 쿠데타의 현장에 있었으며, 그 후 이십 년에 걸친 ‘장학생’ 같은 망명생활 그리고 환경보호운동에 이르기까지 화수분처럼 부족하지 않을 자신만의 글쓰기 소재를 오롯이 가진 그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작은 범선의 선장의 말로부터 모험의 맛을 들인 배는 종이와 잉크의 바다에서 역시 항해하고 싶어한다는 그런 멋진 대사를 뽑아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울러 1987년 7월 당시 프랑스의 핵실험 지역 뮈뤼로아 환초에서 항의를 벌이던 그린피스 소속 레인보 워리어 호가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비밀 지시로 폭파된 사실도 <지구 끝의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가적 능력을 맛볼 수 있고, 소설의 재미까지 느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긴 모험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임시 서식처인 함부르크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문학적 영감을 안겨줬던 <모비 딕>을 읽고 있는 소년을 만나는 것으로 매조지하는 장면 역시 일품이었다. 로베르토 볼라뇨와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언젠가 살바도르 아옌데 박사가 목숨을 바쳐 사랑한 그의 조국 칠레에 가고 싶어진다. 루이스 세풀베다가 그의 소설에서 그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지구의 끝에도. |
| 이 책으로 완전히 세풀베다가 좋아져버렸다. 이야기의 단순함과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되풀이되는 메세지에도 불구하고 강요나 설득이 아닌 이해와 공감이라는 데에 세풀베다의 매력이 있는듯. 연애소설읽는 노인을 처음 친구에게 소개받았을 때 환경운동을 하는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해서, 내심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내셔널 지오그라피도 아닌것이 공익광고도 아닌것이ㅋㅋ 이렇게 매력있는 자연이라니, 쓸만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게 된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에선 밀림이 좋아지고, 지구끝의 사람들에선 바다가 좋아져 버렸다. '지구끝의 사람들'을 읽고나니 이제 완전히 세풀베다의 팬이 되버린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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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읽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처럼 분량이 무척 짧다. 이런 짧은 책까지 양장으로 만드는 건 불필요하지 않을까? 뭐, 출판사 마음이지만, 가격이 9000원 가까이 되면 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러 장편들을 한 권으로 묶어 내어도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깔끔하고 간단한 문체와 선명한 주제 의식. 많은 작품들에서 작가는 자연과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장을 다룬다. '지구 끝의 사람들'은 남미 대륙 최남단 인근 바다에서 고래를 학살하는 현장을 그리고 있고,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 아마존 밀림을 배경으로 한다. 세풀베다는 전혀 교훈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 현장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아픔을 목격하도록 만든다. 또한 자연, 혹은 생태계를 구체적인 남아메리카의 풍경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다른 대륙의 독자들은 아름다우면서 환상적인 느낌마저 받게 된다.
짧아서 책을 펴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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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게 느낀 점:
지구 끝 남극 가까이. 별이 수정처럼 맑아, 손을 뻗치면 딸 수도 있을것만 같은, 까만 밤하늘이 펼쳐져있어야 함. 남극해 주변의 어느 이름이 길고 어려운 해협에 떠있는 작고 운치 있는 배의 갑판에서 저멀리 떠있는 빙하의 얼음산을 바라보며, 나 같은 인간은 그 사연이 아무리 복잡하고 너저리하게 많다 할지라도,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 앞에선, 그저 무기력한 작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싶어. 허나, 이건 진짜 닥쳐 봐야 아는 느낌일것 같네.
고래 잡는 것과 관련된 얘기여서 그런가. 허먼 멜빌의 백경을 너무 소설 앞 뒤로 한번씩 들썩인다만, 도대체 멜빌의 백경과 어느덧 중년(?)의 환경파수꾼이 되어서 고래잡이 해적선 추적하러 십수년만에 고국으로 귀향하는 주인공의 행적과 개연성이 별로 없지않나 싶어. 백경에서 끌어와 시작하여 백경으로 매듭짓다만 만들어진 매듭의 고리속엔 백경이 별로 보이지 않던데.
그저 그렇게 느낀 점:
빤히 보이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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