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란한 사회현실을 과학적으로 연구, 인간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오귀스트 콩트에 의해 처음으로 ‘사회학’ 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었다. 물론 콩트 자신은 ‘사회학’보다는 ‘사회생물학’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물론 현 사회의 기초 학문에 대한 등한시로 인하여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중요하다 여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여전히 사회학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로서 존재한다. 동시에 사회학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동한 사회복지학 등의 학문에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학을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앞에서 많은 이들은 주저하며, 이는 사회학의 발전 역사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인간 그리고 인간이 이룩한 사회는 자연과는 달리 엄정한 의미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학의 단점이면서 동시에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과학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은 또 다른 패러다임이 등장하기 전까지 의심을 받지 않으며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사회학은 어느 하나 절대적인 패러다임이 존재치 않는 것이다. 패러다임 간의 공존, 끊임없는 논쟁의 과정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학은 발전하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지, 더 정확한지의 여부는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논쟁은 사회학에 있어서 어찌 보면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논쟁을 중심으로 한 사회학사이다. 독특한 점(!)이라고 한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전개된 논쟁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사회학의 태동과정에서 이야기되는 루소나 콩트, 뒤르켐 등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게르만 특유의 사회학 발전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과정이다. 이는 당시의 독일 사회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즉,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많은 국가들이 자본주의의 태동을 느끼고 있던 그 시대에 독일은 후진국으로서의 면모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모든 것은 출발한다. 후진성의 극복은 독일 학자들로 하여금 정치와 경제, 현실 변혁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자신의 학문 전개의 전제로 삼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사회학 발전 초기에는 어느 국가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독일 사회학은 경제학과의 연결고리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즉, 역사학파 경제학, 독일사회정책학회 등이 독일 사회학 발달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지극히 가치 개입적인 방향에서 전개되던 사회학이 가치중립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데는 바로 막스 베버의 적지 않은 공헌이 있었다. 짐멜과의 논쟁 등을 통해서 그는 사회학에 보다 객관적인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는 방법론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었으며, 베버 자신은 자신의 연구 성과가 보다 현실적인 부분에 활용되는 것에 대해 그리 주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객관적 연구 결과를 통한 사회 개혁은 모든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이 지니고 있는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의무이기도 했다. 이어서 발생하는 나치에 의해 풍성한 논의로 발전하지 못했던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논쟁, 아도르노와 포퍼, 알버트와 하버마스 등에 의해 전개되는 실증주의 논쟁 역시도 사회학의 과학으로서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대한 견해 차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학문의 세밀화(?)를 위한 또 하나의 진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은 끊임없는 논쟁을 거치는 과정 속에서 과학으로서 보다 단단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사회학의 발전 과정은 하나를 부정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정(正)을 추구하는 변증법의 과정과도 흡사하다. 하나의 논쟁, 그것은 보다 견고한 학문을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産苦)였던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절대적인 것으로 다시금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학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다름 아닌 지배 질서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이는 다시금 사회학의 객관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와 완전히 똑같은 복사판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과거의 모든 논쟁을 그 기반에 깔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된 의미의 논쟁이며, 사회학을 한 발 더 진보시키기 위한 논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