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근대는 일제 강점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고, 국권을 상실한 상황이라는 당대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식민지 문제와 근대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학술적 진단이라고 이해된다. 저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당대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식민지성과 근대성을 이분법적 대립으로 파악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식민지 체제 속에서 강요된 근대의 경험’을 파악하고, 총독부를 앞세워 ‘주민들을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질서 속에서 스스로를 규율해가도록 요구’했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라고 하겠다.
한편에서는 ‘일제 강점의 경험이 현재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자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각은 학술적 연구를 빙자한 이른바 ‘신친일파’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러한 주장의 허점은 이미 충분히 논파되었기에, 여기에서 상세하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의 ‘총동원 체제 하에서 작동했던 규율적 원리들은 친일파의 청산과 관계없이 분단 체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한 측면’을 밝히기 위한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이러한 방법론을 취하여 연구한 결과 ‘식민지 체제 속에서 강요된 근대의 경험이 온전하게 파악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할 수 있었다.
국권을 상실하여 ‘주체’로 서지 못하고 그저 식민지 체제의 ‘타자(他者)’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상황에서, 일제에 적극 협력하여 친일의 길에 나섰던 자들의 행태 또한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저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이러한 작업은 ‘친일파 청산’과 별도로 당대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서장에서는 ‘식민지 체제와 근대적 규율’의 의미를 정의하고, 1장에서는 ‘근대적 주체의 역사이론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연구 방법론을 정립하기 위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특히 1장은 ‘한국적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는 사회이론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현대 사회이론’의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러한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저자들은 일제 강점기의 ‘보통학교 체제와 학교 규율’(2장)과 ‘공장 체제와 노동 규율’(3장), '식민지 체제와 의료적 규율화'(4장)와 '일제 하 자녀양육과 어린이기의 형성'(5장) 등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식민지 체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주체 형성의 장이 ‘가족에서 학교로’(6장) 변화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일제 강점기 하에서 ‘근대적 사회사업과 권력의 시선’(7장)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처럼 일상의 세세한 분야에까지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식민지 권력의 면모를 제대로 포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식민지 체제와 일상의 군사화’(8장)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해방 이후의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논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저자들은 당대의 상황에서 ‘작동한 식민지 권력의 의도’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최근 이른바 ‘신친일파’들의 주장처럼 그저 현상만을 놓고 그 의미를 평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제 강점의 상황에서 ‘근대주체’로 서지 못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식민지 규율 권력’을 따라야만 했던 면모를 확인하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자료를 우리의 역사 맥락에서 독해해내는 안목과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20세기 우리 역사는 일제 식민지를 거쳐 미소에 의한 남북분단과 내전, 그리고 눈이 팽팽 돌 듯 빠르게 진행된 폭압적인 경제 근대화와 분단 고착화과정, 냉전해체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말 그대로 격동의 한 세기였다.
현재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근대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의 근대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는가? 이 때 가장 중요한 두 계기가 바로 일제 식민지와 분단체제일 것이다. 각 체제에 대한 연구는 진전이 있었으나 두 체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즉 식민지는 근대화 문제와 연결되어 쟁점을 형성하고(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탈론) 분단체제는 미소 외세의 문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파트너로 편입, 근대 민족국가 좌절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두 시기 사이에 일정한 단절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일제 식민지의 영향은 친일청산이라는 규정에서 볼 수 있듯이 잔재의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 게다가 근대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이 가세하면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수탈론은 내용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자체를 긍정적 목표로 평가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식민지가 플러스였느냐 마이너스였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근대의 이중성, 자유와 규율의 양가성이 부각되면서 논의의 쟁점도 달라진다. 식민지성과 근대성의 관계, 근대성 자체가 식민지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 근대의 지향이 아니라 극복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근대성과 식민지성의 불가분성에 주목할 경우 식민지 유산은 청산이나 잔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를 재생산하는 실질적 원리로 파악될 수 있다. 이 책은 권력과 규율이라는 푸코의 문제의식을 기본으로 습속과 일상과 신체에 각인된 규율과 그를 자발적으로 내면화한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다루고 있다. 보통학교, 공장, 근대의료, 사회사업 등을 통해 일제가 주조하고자 했던 근대적 주체는 노동하는 인간, 순종적 육체, 황국신민, 일본군인이었다. 근대화 후발주자들의 복잡성, 서구의 보편성에 비춰보면 언제나 특수성으로 규정되는 현실이 다시 드러난다. 예컨대 식민지라는 강압체제는 자발적인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 규율의 자발적 내면화는 목적이 아니라 강압적, 물리적, 가시적 지배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전근대가 잔재가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로 기능하는 근대와 전근대의 공존, 결코 자본주의 사회라 부를 수 없고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식민지 근대의 특수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구축된 보통학교의 풍경은 내 어린 시절 국민학교(이름 또한 얼마나 탁월한가? 국민됨의 도리를 가르친다는 의미에서 국민학교라니)의 모습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쪼개진 시간표에 따른 규칙적 생활, 권위와 명령으로 진행되는 교육, 그를 강화하는 교실배치, 전면에 일장기 대신 태극기가, 그 밑에 교훈과 급훈이, 천황 대신 대통령의 사진이, 황국신민의 서 대신 국민교육헌장 암기가, 학생들을 내려다보는 높은 단상위에 떡 버티고 있는 선생님 책상, 일주일에 한번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끝없이 이어지던 교장의 일장훈시 등등. 과연 일제의 유산은 잔재에 불과한 것일까? 나의 신체에 각인되고 나아가 자발적으로 내면화한 규율은 무엇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