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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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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백충현(1939-2007). 그는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이다. 그는 동료들이 판검사로 인정받고 출세하려고 할 때 홀로 국제법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이 책에서는 <관판실측일본지도> 사료가 최초 공개된다.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하게 밝힌 사람이다.   독도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위안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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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백충현(1939-2007). 그는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이다. 그는 동료들이 판검사로 인정받고 출세하려고 할 때 홀로 국제법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이 책에서는 관판실측일본지도사료가 최초 공개된다.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하게 밝힌 사람이다.

 

독도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소멸되지 않았음을 등명, 재일 동포들의 지문 날인과 강제 퇴거에 저항하는 등 올곧은 양심으로 조국에 헌신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그 땀과 결과를 더 구체적으로 알고, 또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나 또한 그렇다. 이 책을 통해 한층 더 채워진 지식으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국제법을 배우는 게 우리나라를 위해 공헌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점이 들었다. 국제법이라는 학문은 우리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백충현은 국제법이야말로 국익과 직결된 학문이라고 판단했다. 외국과의 협상, 관계, 조약 등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국제법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 국제적 지위 성장에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적 가치관은 단순한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학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지에 있었다. 또한 그는 학자로서의 양심과 책무를 중요시했다.

 

백충현 교수가 여러 문제 중 특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부분은 바로 독도가 한국의 고유 영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국제법적 자료를 찾는 것이었다. 특히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이 표기된 일본의 고지도의 발굴에 힘썼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의 유명한 지도학자인 이노우 다다타카가 1800년부터 1827년까지 17년 동안 일본 전체를 실측해서 18700년에 발행한 관판실측일본지도에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관찬 지도인 관판실측일본지도는 총 4권으로 제작되어 있다. 의문스럽게도, 일본은 이 지도를 공개하는 것을 매우 꺼려 했다. 촬영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백충현 교수는 이 지도를 구하기 위해 도쿄에 있는 지도 전문 서점을 드나들었다. 결국 1998년 백충현 교수는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발견하게 되었고, 거액(1억 원)을 들여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개인의 노력이 만든 결과니 영예를 안을만도 한데,,,, 그는 나라의 각종 상황을 고려하여 관판실측일본지도를 고개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한동안 그는 관련된 논문 발표를 미루다가 지병이 악화되었다. 때문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지도는 아직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다! (2017년 책 출간)

    

 

위의 지도는 1870년에 정식 발행되어 `일본 지도 제작의 모본(母本)`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지도에 오키섬은 있지만 그 근처에 있어야 할 독도는 없다. 왜냐?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 우리의 땅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도를 보게 되어 매우 설렜고 벅찼다. <관판실측일본지도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어 유익했다. 그동안 왜 이런 걸 기억하지 못했을까 하는 부끄러움도 생겼다. 그리고 이를 넘어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 개인을 위해 사는 삶보다는 우리 조국을 위해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다.

 

실제로 학교나 어떤 캠프 등등에서 직업가치관 검사를 하면 나오는 항목 중에 하나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국가의 유익과 발전 등을 위해 살고자 하는가? 에 관한 물음이다. 그러나 이를 자신의 직업 가치관 1순위로 뽑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3순위 안에 들기도 힘들다. 그만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보다는 나를 더 우선시하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 또한 많이 고민하다가 그 가치관을 대게 4순위에 배치하는데,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상황에 정이 가지 않고 막막하고 답답하기 때문이다. 이 판국에 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 나 한 명이 나라를 위해 산다고 뭐가 바뀔까? 나라를 도우려다 나까지 망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아무튼 나 한 명이 세상을 바꾼다, 우리나라를 살린다는 건 조금 어렵게 들린다. 하지만 그 한 명이 수고한 땀과 발걸음을 누군가 본다면, 그 걸음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누군가 그 걸음을 따라 건고자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국제법이 중요한지, 그것을 배우는 것이 유익한지 알게 되었다. 나는 법을 전공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 ) 앞으로 관심을 두려고 한다.

 

개인의 영예를 버리고 국가의 유익을 위해 가깝고도 먼 일본에서 지도 한 장을 찾아 헤매고, 다시 한 번 주어진 기회를 국가의 상황을 판단하여 기다리고 준비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고 백충현 교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서야 그 수고가 인정받고 나라의 자존심을 지켜준 것에 기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p*****6 2019.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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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자신의 길을 걸어 온 자의 길은 이토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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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을 읽어내려가며, 나도 모르는 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평생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숨 가쁘게 달려 온 자의 삶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정말 오랜만에 숨도 쉬지 않고 앉은 자리 그 자리에서 읽어내려간 책이다. 전기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 간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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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마지막을 읽어내려가며, 나도 모르는 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일평생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숨 가쁘게 달려 온 자의 삶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정말 오랜만에 숨도 쉬지 않고 앉은 자리 그 자리에서 읽어내려간 책이다. 전기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 간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백충현 교수의 지론이다. 이 지론 하나로, 작디 작은 서교동 마루에서 서울국제법연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 바로 백충현 교수의 아내, 이명숙이다. 그녀의 남편의 일을 도우려는 마음과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면, 서교동 마루에서의 토론도, 서울국제법연구원도 있을 수 없었다.



  백충현 교수는 평범한 법학자이면서, 평범하지 않은 법학자이기도 하다.

UN 대변인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가야 했을 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의궤 문제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는 벌컥 화를 내기도 하며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을 추진할 때 보여주는 강한 결단력과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자신을 믿고 오롯이 걸어가는 점, 그리고 나라의 진흥을 위해 사비를 털어 가며 노력한 점에서는 범인이 아닌, 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고, 중공 여객기 문제를 해결했으며, 재일 동포의 자유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법 논리로 목소리를 높이고, 내란 중인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집단 학살 현장을 찾아내 그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렸으며, 우리나라의 컴퓨터를 스위스 유엔 인권위에 지원하는 등, 수많은 일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도"가 우리 나라의 영토임을 확실히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백충현 교수의 국제법학자로서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독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영토이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그에 따라 독도는 국제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한국과 일본의 고서점을 뒤지고, 도서관에서 원전자료를 공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일본의 한 박물관에서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보게 되었다. 이 지도에는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오가사와라 제도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오가사와라 제도의 4분의 1 거리에 있는 독도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곧 독도를 일본 영토로 파악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로 사용 할 수 있다. 그가 오키섬과 그 서북쪽 부분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박물관의 지도 담당은 이 지도는 촬영하지 못하니 눈으로만 보라고 했다. 그는 박물관을 나오면서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반드시 입수해야겠다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나타난 <관찬실측일본지도>'


  이 소제목을 보자, 나는 큰 한숨을 토해내며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전쟁의 급박한 상황의 아프가니스탄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에서 온 안도감 때문인지, <관찬실측일본지도>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쾌감 때문인지 뭔지 모를 감정들이 뒤섞인 채 내뱉은 한숨이었다.


  먼저, <관찬실측일본지도>를 일본 정부에게 넘기지 않은 일본인 데츠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지도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그 지도가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백충현 교수를 선택한 그 마음가짐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억원이라는 큰 돈을 망설이지 않고 사비로 지불한 백충현 교수 또한 대단하다. 그리고 그의 아내 이명숙도 마찬가지이다.


  데츠오, 백충현, 이명숙 이 세 사람의 힘이 모이지 않았다면, <관찬실측일본지도>는 절대 한국으로 넘어 올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백충현 교수만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이 두 사람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찾아내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삶의 길을 걸어 온 법학자 백충현. 한 길을 우직하게 걸었던 그는 한국의 국제법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역사학과도 연계하여 나라의 진흥에 힘썼다.

  그가 떠나고 3년 반 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게 되었다. 아내 이명숙이 대신하여 받았다. 독도 영유권 수호 유공자로는 처음 수여되는 훈장이었다. 정부 주관의 공식 행사였지만,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훈장증에 '독도'라는 단어를 넣지 않았고, 행사도 비공개로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국제적 영향력이 커져서, 당당하게 훈장증에 '독도를 써 넣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사도 국가적으로 크게 진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다음에 '독도'훈장증을 받는 사람은 꼭 그렇게 훈장을 받았으면 한다.






k*******7 2017.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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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이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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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땅, 임은 저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인 근거를 대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 나 역시도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며, 훗날 역사분쟁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는 하지만 한 번에 떠올리기에는 망설여진다. 이미 정리된 자료들을 뒤적이며 그 근거를 찾곤 한다. 그렇다면 내가 참고하는 이 자료들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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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는 우리땅, 임은 저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인 근거를 대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 나 역시도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며, 훗날 역사분쟁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는 하지만 한 번에 떠올리기에는 망설여진다. 이미 정리된 자료들을 뒤적이며 그 근거를 찾곤 한다. 그렇다면 내가 참고하는 이 자료들은 과연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조사하고 연구하며 발견한 것일까? 특히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에서 처음 공개되는 '관판실측일본지도(官板實測日本地圖)'를 발견하고  대외에 알린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백충현 교수이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위상을 드높이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어 대한민국의 기상을 보여줄 수도 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여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백충현 교수는 지적 가치가 충분한 연구들을 통해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일찍이 국제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제법학자가 되어 한평생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국제법만큼 국가 이익과 직결되는 학문 분야가 없다(p.18)",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국제법을 해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p.20)"라는 소명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백충현 교수 한 명의 열정에서 시작한 연구는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고, 백 교수의 집에서 시작한 국제법 모임이 서울국제법연구원으로, 체계적인 형태를 갖춰갔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서 국제법의 필요성이 논의되게 된 것이다.

   국제법이란 국가 간 합의에 따라 국제 사회의 주체들이 따라야 할 규칙을 말한다. 그는 국제법이 독도 영토 분쟁,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문제, 위안부 문제의 해결, 아프가니스탄의 집단 학살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가끔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미 지난 일을 왜 배우는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백 교수가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밝혀냈다 하더라도 역사는 변하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나라는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외교문제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때마다 과거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우리나라의 입장을 견고히 하고 조금 더 성숙한 태도로 현재의 문제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백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국제법이 가진 가능성, 다른 학문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다. 그는 역사학자 이태진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에 대해 연구했다. 이를 통해 역사학과 국제법은 불가분한 관계이며 간학문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학 뿐 아니라 국제법은 인권, 정치, 외교 등 다양한 문제에서 활용이 가능한 학문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재 세태에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국제법은 필수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국제법의 다양한 활용방안을 백 교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읽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백충현의 아내 이명숙을 희생하고 내조하는 여성상으로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남성 뒤에는 더 훌륭한 여성이 있다는 말은 딱 백충현과 이명숙에게 맞는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남편을 위해 헌신하고 내조하는 것을 최고의 아내로 여겼다는 것은 알지만, 백충현이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힘들때마다 기다렸다는듯이 바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여성으로만 그려진 것 같아 아쉬웠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을 통해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국제법을 적용하여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백충현 교수의 일생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권력 질서 사이에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했던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이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권력 질서 사이에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했던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이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j*******1 2017.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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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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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어릴 때 부터 들어왔고, 그렇게 알고 있지만 이 사실에 대한 근거를 심도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무언가에 대해 주장하고, 말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백충현 선생님은 그 힘을 법적 근거에서 많이 찾으시려 노력하셨다.                  1. 독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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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어릴 때 부터 들어왔고, 그렇게 알고 있지만 이 사실에 대한 근거를 심도있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무언가에 대해 주장하고, 말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백충현 선생님은 그 힘을 법적 근거에서 많이 찾으시려 노력하셨다.

                

1. 독도는 우리 땅

백충현 선생님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증거로 일본에서 독도를 그들의 영토라고 표시하지 않은 고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가에서 발행한 관찬지도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관판실측일본지도라는 그 증거를 찾아내었다. 관판실측일본지도는 일본측에서 매우 권위있는 관찬지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이 지도를 공개하기 꺼려했다. 백충현 선생님이 이 지도에 대해 알아볼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백충현 선생님이 가장 먼저 이 지도를 발견한 곳은 메이지 대학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관계자는 이의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했다. 여러 서점에 이 지도를 구할 수 있나 알아보았지만, 서점 주인들은 이 지도가 워낙 귀해 아마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한다. 하지만 백충현 선생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서점 주인들에게 부탁하고 계속 이 지도를 찾아다닌다. 그 결과 그는 일본 도쿄 충경당이라는 고지도 전문점에서 1998년 약 1억이라는 거액을 내고 이 지도의 판본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외교적 상황때문에 그는 이 지도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는 생전에 그 지도를 공개하지 못하고, 이 책을 통해 관판실측일본지도가 최초로 공개된다.

2.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서

1866년 병인양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도 박해, 학살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우리나라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프랑스에게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당했다. 우리는 프랑스에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요구했지만, 프랑스측은 맞교환 형식으로만 의궤를 반환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즉,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문화재를 주는대신 외규장각 의궤를 받아오는 것이다. 2000년 실제로, 우리나라는 이러한 형식의 반환에 대해 합의했다. 백충현 선생님은 이에 분노했다. 프랑스가 외규장각 의궤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국제법 상으로 엄연히 위법임은 근거로 들며, 우리는 완전히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사후인 2011년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5년단위 대여 갱신이라는 조건 하에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올 수 있었다.

백충현 선생님께서는 생전에 그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일본에서부터 구해온 관판실측일본지도도 2017년 출판된 책으로 처음 공개가 되었고, 외규장각 의궤도 2011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사후에 우리나라 정부는 그의 업적에 대해 인정하고 훈장을 수여했다.

나는 이 책을 그저 한 인물의 일대기로 볼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와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백충현 선생님의 업적을 보며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이렇게 우리의 것에 관심이 없던 나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l*****7 2019.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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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삶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삶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내용보기
동료들이 판검사를 꿈꿀 때 홀로 국제법 연구하기를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그 사람 이름은 백충현.그는 젊은 시절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도 영유권의 결정적 증거를 얻고자 했으며,프랑스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반환을 이루어냈다.그가 국제법을 연구하게 된 것은, 그것이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국제법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삶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내용보기

동료들이 판검사를 꿈꿀 때 홀로 국제법 연구하기를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람 이름은 백충현.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도 영유권의 결정적 증거를 얻고자 했으며,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반환을 이루어냈다.


그가 국제법을 연구하게 된 것은, 그것이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제법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해석하는 것이 각국의 입장이란다.
마치 나라에 법이 있더라도 어떤 판례를 들어 어떤 주장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국제법은 태생적으로 상대가 인정을 하지 않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법이기 때문에,
명징한 논리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백충현 교수는 국내에서 그동안 미비했던 국제법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
외교 분쟁에 있어서 확실한 법적 이론을 세우고자 하였다.


또한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택에서 국제법 연구를 하다가 정식으로 연구회를 만들기도 하고, 학술지도 발간하였다.
이때 '한국적 국제법'의 정립을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세우는데,
1) 국제법에 관한 모든 주제가 아니라 한국과 관련을 갖는 주제로 한정한다는 것, 2) 한국에서 국제법과 관련된 활동 상황을 정리해 수록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 나름의 원칙과 논리가 있었기에 더욱 우리나라에 맞는 국제법이 잘 연구될 수 있었겠다 싶었다.
한편, 꾸준하게 어떤 일에 헌신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도움을 요청하면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인 최초로 유엔 고위직에 오르기도 하고, 서울대학교 학장을 지내기도 한다.
그런 그가 크게 이루어낸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독도 문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도 영유권의 결정적 증거를 얻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된 고지도를 발굴하려고 하였다.
결국은 일본의 고서적상으로부터 <관판실측일본지도>를 입수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흥미로웠다.
사실 이 지도는 그 가치도 가치이지만, 유출되면 일본으로서도 손해일 수밖에 없는 자료다.
그런데 일본의 사장은 '귀한 지도는 그 가치를 알고 꼭 필요로 하는 분에게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백충현 교수에게 기회를 주었다.
진심이 통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책에는 그때 그가 구했다는 <관판실측일본지도>가 공개되어 있다.
여러 사료와 사진과 함께 현재 시점으로 글을 써두어서, 과거의 사건이지만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다른 중요한 일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주장을 편 일이다.
한국과 일본의 몇몇은 청구권 협상 당시 모든 문제를 청산했으므로 이 일은 다시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백충현 교수는 말했다.
당시에는 종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이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조차 거부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모든 배상이 완결되었다고 규정짓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며,
국가기관이 '위안부'에 개입했다는 공식 문서가 발견된 이상 마땅히 추가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 반환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대여나 교환이 아니라 무조건 반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성급하게 처리하면 명분도 잃고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시일이 걸리더라도 계속 주장했던 것인데, 결국은 이루어냈다.
정당한 논리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 뒤에 아내의 지지와 도움이 있던 것도 기억하고 싶다.
s******2 2017.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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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지켜내고자 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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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지켜내고자 한 인물>    김영사에서 나오는 인물서 중에서 <간송 전형필>이니 <혜곡 최순우>를 인상깊게 읽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해마다 봄가을이면 간송 미술관에 가는 때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이 책을 목록에 담아두었던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지은이를 눈여겨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읽게 된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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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지켜내고자 한 인물>

 

 

김영사에서 나오는 인물서 중에서 <간송 전형필>이니 <혜곡 최순우>를 인상깊게 읽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해마다 봄가을이면 간송 미술관에 가는 때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이 책을 목록에 담아두었던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지은이를 눈여겨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읽게 된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의 저자 이충렬이 모두 지은 책이라고 한다. 이를 왜 몰랐을까?

 

저자는 근현대인물을 조명한 책이 부족하다는 것을 즉시하고 문화발전에 공헌한 간송 전형필, 수화 김환기, 혜곡 최순우의 삶을 다룬 책과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다룬 책을 쓰고 이번에 학문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서 공헌한 인물로 백충현에 대해서 쓴 것이라고 한다.

 

 

백충현이라는 인물도 낯설지만 사실 국제법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법대를 가면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 사법고시 아닌가. 법관이 되던가 돈을 잘 버는 변호사가 되는게 보통이라고 하던 당시에 백충현은 공부하는 이가 드문 국제법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전쟁 후 보잘 것 없이 떨어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법을 통한 인정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하버드 동아시아연구소에서 1년으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자료를 모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귀국 후에 집에서 국제법 모임을 만들고 1984년에 서울국제법연구원을 만들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국제정세에 대해서 발빠른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 애쓰고 우리나라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료를 다른 나라에서 구해오기도 했단다.

 

 

그렇게 국제법을 공부하고 연구한 그의 소망은 국제법을 통해서 국익을 손해보지 않고 대우받는 것을 바랐다고 했다 그래서 국립대교수인 공무원 자리에 있으면서도 1965년 한일회담을 통해 일본이 종국위안부에서 모든 책임을 없다고 하는 것은 국제법상 타당하지 않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시기에 이러한 주장이 국가 입장에서는 껄끄럽지는 않았을 듯 싶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독도영유권에 대한 문제도 간과하지 않았다. 국제법으로 독도를 한국땅으로 할만한 증거를 모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아무리 안에서 우리끼리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해도 일본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외국의 세력을 모아 주장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공개되는 일본의 <관판실측일본지도>가 바로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당시에는 일본과 한국이 신한일어업협정을 하던 중이라 비밀을 유지하고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스스로 관측한 지도에 독도를 일본 표기에서 빠뜨린 것은 자신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국가적인 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종군위안부들에게 미안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외국 광고를 내는 이들에게 감사해야 하겠다. 이러한 자료를 등한시 하지 않고 우리의 것을 지키는데 똑똑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개인의 이러한 노력이 하나둘 쌓여서 국가의 힘에 보태고자 한 과정을 보면, 안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잘 해서 잘먹고 잘 살려는 사람들이 판치는 때에 이러한 생각을 한 인물의 삶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c******u 2017.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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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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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막연하게 법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전의 중고등학교 수업에서는 배우지 못한 부분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세계화와 법의 이해’라는 국제법 강의를 수강했다. 공부할 양이 정말 방대했지만 그래도 국제 분쟁과 독도 등 여러 갈등에 대한 국제적 법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랬기에 이 책의 제목에 더 눈이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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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막연하게 법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전의 중고등학교 수업에서는 배우지 못한 부분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세계화와 법의 이해라는 국제법 강의를 수강했다. 공부할 양이 정말 방대했지만 그래도 국제 분쟁과 독도 등 여러 갈등에 대한 국제적 법규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랬기에 이 책의 제목에 더 눈이 갔고 읽게 된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국제법학자 백충현 교수의 이야기를 다룬다. 육영수 여사의 피살사건부터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외규장각 문제 등 다양하고 뜨거운 이슈들에 대해 국제법적으로 조언을 하고 앞장서서 일을 처리해나간 인물이다. 백 교수가 처음 국제법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국제법 불모지였다. 자료도 턱없이 부족했고 제대로 된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백 교수는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열어 매주 국제법에 대한 학술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점점 확대되었고 마침내 서울국제법연구원을 만들기에 이른다. 본인의 사비를 털어 한번 더 해낸 일이다. 그의 국제법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양한 외교 분야에서 자문을 구하러 오는 일이 잦아진다. 백 교수는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중공기 납치 사건 등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함께 연구하면서 점점 우리나라의 국제법 연구를 발전시켜나간다.

그러던 백 교수에게 이태진 역사학자가 자문을 얻기 위해 찾아온다. 외규장각 의궤와 관련된 문제였다. 외규장각 도서는 병인양요 때 약탈되어 여전히 프랑스에서 반환되지 않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국제법 위반사항을 검토하고 반환을 요구하는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며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위해 힘쓴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러 업적 중에서 가장 조명해야 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데 바로 독도와 관련된 부분이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모으고, 직접 사비를 털어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일본 고지도를 구매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정의를 향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백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최초로 UN고위직을 맡은 분이다. 국제법적 관점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인권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국제법과 관련이 있는 분야라면 인권부터 역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가리지 않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한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백 교수가 국제법 연구에 힘쓰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여전히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되지 않고,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이 명백함에도 일본의 주장에 휘말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백충현 교수의 국제법에 대한 열정과 그의 업적을 조명하여 전기를 써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꼼꼼히 설명되어 있어 전혀 어렵거나 막히는 부분이 없다. 또한 일화도 충분히 들어가 있어 지루할 틈도 없다. 책도 두껍지 않아 읽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전기를 읽으며 자란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 인물들에 대한 전기는 접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백충현 교수와 같은 분의 전기를 읽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제법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행동에 옮긴 인물이다. 오늘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숨겨진 위인을 한 명 더 알게 되었고 조금 더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p******g 2017.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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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 학자 , 그 사람 백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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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통해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공헌한 국제법 학자로서 , 하버드 로스쿨 석사학위를 마치고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저자는 1972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후배들과 국제법 연구 모임을 했다  국제법 연관 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이론적 대응책을 조언했는데 , 연구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릴 필요성을 절감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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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을 통해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공헌한 국제법 학자로서 , 하버드 로스쿨 석사학위를 마치고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저자는 1972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후배들과 국제법 연구 모임을 했다

 국제법 연관 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이론적 대응책을 조언했는데 , 연구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릴 필요성을 절감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서 피격사건이 일어 났을때  범인이 재일동포 문세광 이라는 것이 밝혀 졌고(그 권총이 일본의 한 파출소에서 분실하것) ,일본 정부에 책임이 있으니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이 때에도 공식 사과는 없었고, 질타가 이어졌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영토 안에서 외국을 향한 정치적 테러를 방지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 이에 국가적 책임이 있다고 보았고 "국가 책임법"을 1955년부터 준비했지만 진전을 보지 옷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판례를 찾아본끝에, 일본 외무성으로 보냈고 그러나 국제법은 태생적으로 상대가 인정을 하지 않으면 효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법이라며 주장했다.

 성과라면 일본이 더 이상 "일본 정부의 부작위 행위"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고, 특사 파견 협상도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이후 반일시위가 이어졌고, 지금 까지도, 때만 되면 독도 영유권 문제, 위안부 문제 배상, 을사조약, 정미7조약 국왕의 비준이 없는 무효조약 , 외규장곽 의궤 반환 문제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를 안타까이 여겨 <서울 국제법연구원>을 개소했고, 후배들에게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자료를 구비하고, 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도록 지식과 정보를 갖추도록 국익을 도모하도록 개척하였다.

독도 영유권 문제에 결정적 증거가 될만한, <관판실측일본지도> 를 압수하려는 노력, <서울 국제법연구>잡지 발간,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  (- 각국 인권 침해 ,아동,여성문제 들을 다루는 직 )제의에 깊은 고민 끝에 가족과 회의후 "아프가니스탄 인권 문제 특별 보고관"에서 전반적인 인권실태 조사해 유엔 총회에 보고하는 것인 주요한 임무를 잘 할수 있을지 여러 자료와 조언을 받은 끝에 수락하고 , 인식전환가 법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국 컴퓨터를 유엔 전산화 계획에 지원하고, 프랑스 의궤반환 문제에서도 등가교환형식은 명백히 불법행위를 인정하는것일 뿐 아니라, 앞으로 다른 해외 한국 문화재의 반환 협상에서도 나쁜 전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따라서  문화재 보호법 20조 위반을 들어 반론했다.

 또한 일제의 한국 병합 불법성을 세게에 알리고, 미완의 저서인 <독도와 국제법>을 남기고 타계하였지만, 그 노력이 소중하다.

 

  일반인 들은 이런 문제를 그리 깊거나 상세히 살펴보지는 않지만 법조항 하나로 사람이 죽고 살고, 범죄자가 되며 , 해외어서는 더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상식은 있기에, 이러한 노력일 얼마나 많은 파급효과를 만들지는 알것이다.

  마땅히 지켜야 할것에 손을 놓는다면 (인용이 껄끄럽지만 '권리위에 잠자는 자의 권리는 지켜주지 않는다' Vs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편안히 쉬는것이다'.) - 이 평화를 위해는 오리가  조용한 호수위에서 떠있기 위해서 끊임없이 물길질을 하듯이 , 수호할것을

판단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없다면,

국가의 존재이유와 인권은 땅에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 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 될 수 있다.  -백충현-

 

 

 

 

 

 

 

 

 

 

 

 

YES마니아 : 골드 e******z 2020.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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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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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는 사회와 역사에 의미 있는 성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한 인물을 통해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면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전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인 동시에 현재와 연결되는 역사의 통로 역할을 한다. – P. 4 ​ ​ 어두운 과거 역사로 인해 잃어버린 국가 재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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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사회와 역사에 의미 있는 성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한 인물을 통해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면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전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인 동시에 현재와 연결되는 역사의 통로 역할을 한다. P. 4

어두운 과거 역사로 인해 잃어버린 국가 재산들을 되찾기 위한 과정, 독도 영유권이 한국에 귀속된다는 국제법적 입증 자료 준비를 하시는 과정, 재일 동포의 지위와 종군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국제법 논리로 지원하는 모습 등 다양한 분야의 국제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법 학자로서 한 평생을 다 바쳐오신 백충현 교수의 주요 행적을 짚은 전기다.

영토 문제뿐만 아니라 주변국인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에 관한 국제법적 조명과 함께 해양법, 인권 문제, 과거사 문제,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 원자력 협정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안목과 식격으로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큰 행적을 남기셨다.

유엔 아프카니스탄 인권 특별보고관으로 내란중인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집단 학살 현장을 찾아내 국제사회에 알린 일, 우리나라의 컴퓨터를 스위스 유엔인권위에 지원한 일 등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발판을 마련하고, 유엔에서 한국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등 외교와 국제적 역할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역할도 하셨다.

국제법 학자로서 침묵하는 것은 학자의 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P. 87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 P. 140

정의와 부정의의 관점에서 시작부터 잘못된 문제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법률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한일 양국 간 현안들에 관한 접근이나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올바른 관계 재정립을 위해서 한일 양국의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제3국의 역사학자들과 국제법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제 간 교류를 통해 넓은 관점을 포괄하는 연구를 하고, 그 결과가 한일 양국의 정부에 전달되어 정책을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되게 하려는 거지. P. 256

우리나라 국제법이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기에, 외국과의 협상이나 조약에서 국익을 확보해야 국력이 향상되고 국민들의 삶도 좋아질 수 있다는 일념으로 우리나라의 국제법 분야의 초석을 다지시며, 학계와 외교부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신 선각자였다.

 

#국제법학자 #백충현 #이충렬 # 김영사

w*****0 2017.04.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