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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명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가 명상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를 닦기 위해서도 아니고, 건강이나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을 뿐이다. 그 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아오면서 어쩌면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하루 중 잠시라도 짬을 내어 자신을 돌아본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명상을 할라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가 없다. 명상을
따로 배워본 적도 없고, 별도로 명상에 관한 책도 읽은 적도 없어서다.
그러던 차 이 책 [명상 인문학]을 발견하곤
망설임 없이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익숙해서이다.
저자는 명상이란 한마디로 영혼을 수련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런 명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표현하고 제대로
된 원리를 규명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언어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주역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쓴 주역에 관한 책을 이미 만난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을 읽으면서 나는 주역을 이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많은 주역 해설서들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들어 했던 것들을 저자는 그 책에서 정말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그래서 주역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그가 쓴 [주역원론]을 구입하기도 하였는지라,
그가 명상에 대해서 쓴 글이라 하니 읽기도 전에 기대가 컸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자는 명상의 목적을 깨달음을 위한 좌선과
불로장생의 신체술을 만드는 신선술에 있다고 말한다. 좌선은 영혼과 정신을 아우르는 수련이고 신선술은
신체를 단련하는 수련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음양의 원리가 명상의 목적과 방법을 아우르고 명상은 뇌가
아닌 영혼이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데 솔직히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는 또한 영혼은 영과 혼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혼은 혼을 지칭한다고 말한다. 혼은
영혼이 몸과 만남으로 인해 발현되는 것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해주는 존재로 일종의 기질과 같고, 영은
음양 중 양이며 우주를 통틀어 하나로 이어진 절대존재라고 설명한다. 명상은 이런 영혼을 수련하여 안정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명상을 하는 장소와 자세, 시간 등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가 설명하는 명상에 관한 원리와 실행법 들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서는 벌써 회의가 든다. 저자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이미 나의 뇌는 그것들을 수긍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사물들을 음양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 음과 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물의 작용을 음양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역이 그런 음양이론을
기본으로 한 책이다. 그렇지만 영혼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저자의 명상이론과
원리가 별로 탐탁지 않다.
그럼에도 명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내가 명상을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일정부분 있다. 명상에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는 또 명상의 세가지 목표는 잡념을 떠나고,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영혼이 안정된 장소인 황정으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드리려고 한다. 어찌되었던 깨달음과 불로장생이 아닌 나 자신이 목표로 한 것들을 위해서 명상을 해보고 싶다. 그가 설명한 것 중 이해가 가는 것은 시도해보려고 한다. 만약 내가 명상을 통하여 도인(?)이 된다면 그때에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서 명상을 활용하고 싶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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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인문학"은 우리들이 명상을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책입니다. 그 여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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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혼', 즉 '나'라는 것은 신체 중 어디에 머물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뇌의 기능을 살펴본다면, 영혼이 하는 일은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s)의 기능과 많이 닮아 있다. 거울신경세포에 영혼이 머물면서 뇌를 구석구석 관장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영혼이 신체에 붙어 있다면 그 장소로는 뇌가 적합할 것이다. 신체의 모든 부분은 뇌에서 조절하는 것이므로 영혼이 있으려면 뇌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니다. 영혼이라? 데카르트처럼 영혼의 존재를 찾고자 하는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영혼이 있다면 어느 한 지점에 있지 않고 뇌의 넓은 영역에 퍼져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계속 팽창하는 중이다. 이것은 일찍이 과학자들이 별을 관찰함으로써 얻은 결론인데 최근에는 더욱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 소위 암흑에너지라고 이름 붙여진 존재이다. 암흑에너지는 척력을 내는 것으으로 알려져 있다. 만유인력과 정확히 반대로 작용하는 힘이다. 영혼은 뇌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명령하는 존재이다. 이는 뇌를 흉내 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뇌가 영혼을 모방했을 것이다. 뇌는 진화에 의해 발생한 것이 틀림없지만 그 진화의 모델은 바로 영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자연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모든 과정은 그 이전에 진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선택되는 힘이다. 이 힘은 돌연변이에 은근히 관여하는바, 하늘의 뜻이라 해도 좋다. 진화의 세계에서 뇌가 발생한 것은 이미 그 모델이 자연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영혼이 저마다 '나'라고 하는 것을 갖게 된 연유이다. 우리가 '나'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록과 기억, 그리고 생각하는 개성. 이들로 인해 영혼은 '나'라고 하는 최종적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영혼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며 변화해갈 것이다. '나'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나'는 육체가 아니고 영혼이다. 뻔한 얘기지만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명상 이론을 공부하는데 혼선이 올 수 있다. 명상의 주제 또한 뇌가 아니고 바로 영혼 그 자체일 뿐이다. 이 순간 혜가는 깨달음을 얻었다. 본시 불안이란 영혼이 갖는 공연한 기분일 뿐이다. 마음의 상처를 명상으로 돌파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든 폐소공포, 광장공포, 근원적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태아의 탄생 과정을 다시 짚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 뇌에 있으면서도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는 황정을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상태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영혼의 내면 탐색(황정으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한)은 영원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고향(황정)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한없는 노력, 불굴의 투지, 이는 명상 수련자의 삶 그 자체이다. 음양이론은 결국 '평형론'으로 귀결된다. 평형이란 우주의 본 모습이다. 이데 대해서는 어째서라는 질문을 할 수가 없다. 평형 아닌 것에 대해서는 "왜 그러냐?" 하고 물을 수 있으나 평형에 대해서는 물을 수가 없다. 음양의 존재는 평형의 구체화일 뿐이다. 양이 있으면 음도 있다는 뜻이다. 삶이란 몸이 사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사는 것일진대 영혼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당초 몸 없는 상태에 있다가 잠깐 몸을 빌려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비록 우리가 몸속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나 자신, 즉 영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몸에 깃들어 있는 영혼도 현재 그러한 상태이다. 뇌에 깊이 빠져들어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머물러 있던 몸이 죽어서 없어지면 영혼은 그때부터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하낟. 또 다른 몸을 얻을 때까지. 지금은 몸을 입고 살더라도 잠시 후면 (무한의 관점에서) 우리는 다시 몸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그리고 자체 요동에 의해 정신없이 지내다가 어딘가 어떤 몸에 다시 붙잡힌다. 이런 식으로 영원히 계속된다. 그뿐이고, 자동이다. 우리는 이 상태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 자신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 즉 영혼을 내 마음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는 존재의 의미가 무엇이랴. 마침 현재에 몸을 얻었으니 이때를 틈타 영혼을 확인하고 자신을 장악해야 한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바로 명상이다. 그래서 옛날 수도인들은 명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오랜 세월을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마침내 명당을 발견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진동이 살아나는 그곳이 바로 황정 근방이다. 이로써 자신도 모르게 복식호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식호흡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명상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 세월 앉아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저절로 되는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명상의 자세, 즉 이느이 자세에서는 허리를 곧게 세워야 하고 앉는 자세는 평평하게 해야 하는바, 이를 좌공이라고도 한다. 며아을 좌공이라고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상당이 의미심장한 명상의 원리가 숨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