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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란 말이 너무 속되게 오용되는 현실이라서 사실 진짜 명품으로 치켜 주고 제 대접을 베풀어야 할 상황에서 이 말이 정작 입 밖에 안 나오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개탄스러운 세태 속에서, 만약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로부터 "명품 인간, 명품 사원, 명품 파트너, 명품 상사" 같은 평판을 받아내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영위한다고 충분히 여겨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지위, 재산, 권력을 통해 억지로 호평과 아부, 찬사를 이끌어낼 수는 있어도, 순전히 관계의 효과적인 형성, 업무 능력의 탁월함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죠. 명품 어패럴은 돈 좀 모아 투자하면(투자라고 생각하고 - 단, "그게 무슨 투자야? 내가 좋아서 걸치는 거지." 정도가 안 되면 그게 처량한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패용, 착용이 가능합니다만(명품이 사람 격과 분수를 알아 보고 지가 튕겨나온다든가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정신과 격조, 인품 따위가 다른 배경의 후광 없이 명품 소리를 듣는 건 정말 힘든 게 사실입니다.
저자 홍광수 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DISC 연구소의 최고위(最高位) 책임자입니다. DISC는 제가 며칠 전에 쓴 어느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의 성격, 개성, 적성 등을 테스트하는 기준으로 널리 쓰이는 도구입니다. 꼭 홍 소장님의 시설이 아니라도, 웬만한 중고교에서 상담 전문 교사를 찾아가면 초급 진단 정도는 받을 수 있습니다. D(주도형), I(사교형), S(안정형), C(신중형)으로 보통 분류하는 이 측정 도구는, 잘 알려진 것처럼 대략 60년 전 미국 작가 윌리엄 M 마스턴(하버드 대 졸업)이 개발한 심리학 기반 패러다임입니다. 마스턴의 기본 모형을 (당연히) 기반으로 삼지만, 이 책도 그렇고 대략 13년 전에 출간된 <나를 찾아 떠나는 심층 여행> 같은 저서는, 홍 소장님 특유의 한국인(청소년)에 최적화한 여러 심층적 연구 결과라든가 응용 기법이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 무엇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우리들 개개인이 자신과 이웃에게 적용한 후, 뭔가 실감나게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명품 인간 기준 첫째에 꼽혔습니다. "남들에게 사랑을 널리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을 사랑하는 게 가능한 인간"이 명품이랍니다. 홍 소장은 이 첫째 장에서, 특히 "서로의 아픔에 아파하고 슬퍼하고 진심으로 위로하던 것을 당연히 여기는" 능력, 혹은 그런 천품 같은 것을 이 첫째 기준의 주요 판단 잣대로 제시합니다. 이건 뭐 맹자가 설파한 측은지심으로 봐도 되고, 부처님이 말한 "대자대비"의 한 강령으로 파악해도 되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잊곤 하는데, "대자대비"에서 비(悲)라는 글자는 슬피 여긴다는 뜻이죠. 인생의 요체를 사고(四苦), 즉 네 가지의 고통으로 대뜸 젊은 시절부터 직관(이건 그의 득도 전입니다만)했다는 그의 놀라운 혜안이 잘 드러나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잠시 세월호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도 하네요. 이 기준은 책의 다섯번째 장, "공감할 수 있는 사람"에서도 다시 되풀이됩니다.
명품 인간으로 불려 마땅한 두번째 기준은, 남의 말을 "지혜롭게 잘 경청하는 인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저자의 설명을 듣고(읽고), 지혜로운 경청은 곧 옛 성현들이 설파한 "화이부동"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이부동이란 무엇입니까? 남들과 잘 융화하되, 자신의 줏대와 주관을 굽히지 않고 확고한 중심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남의 말에서 취하고 가릴 점을 잘 살펴 그 유익한 지혜를 나의 것으로 섭취하는 과정입니다. 이 부분 저자의 말씀을 잘 살피면서, 남의 말을 잘 들으려면 먼저 내 자신의 중심이 잡힌 후라야 이 경지가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무슨 장학금 수여식처럼, 내가 수고할 바는 조금도 없고 오로지 이득만 보는 자리에 참여해서도, 그저 몸이 뒤틀리고 지루함에 치를 떠는 학생도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인네들이 말하는 지루한 넋두리라고 해도 저게 다 살아온 지혜의 반영이겠거니 생각해서 뭐 하나 작은 거라도 배울 게 없나 싶어 귀를 쫑긋 기울이는 학생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남의 말을 잘 듣는 이는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바탕이 그 정신에 깔여 있는 겁니다. 자신을 소중히 가꾸고 살아 왔으니 작은 이로움, 깨달음이라도 냉큼 수용할 자세가 만반에 구비된 것 아니겠습니까.
감정 조절 능력이 자유자재로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 능력은 첫째와 다섯째에서도 충분히 강조된, "공감 능력"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감정이 자신의 생존과 건강성 유지를 위해 마음껏 조절 가능한 사람은, 슬퍼할 때 슬퍼할 줄 알고 아낌없이 쾌감을 발산해야 할 때 그럴 줄 압니다. 그게 안 되는 사람도 있냐고 반문한다면, 대개 그런 사람은 오히려 정반대로 감정을 추스릴 줄 오히려 몰라서, 부적절한 상황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하면 안 됩니까?" 자기 주장을 정당히 내세우는 일까지 자제하라는 게 아니라, 사회에는 건전히 축적되어 온 규범과 정의 관념에 대한 합의, 컨센서스가 있으니 그를 준수(물론 밑바닥, 뜨내기, 무자격자들이 임의로, 자의로, 패거리를 모아 어설픈 협잡을 벌이는 촌구석에서 횡행하는 어거지와는 또 크게 다르죠)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지" 그 나이를 먹도록 스스로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 바 없고, 미친 청소년마냥 제 못난 감정, 제멋대로 날뛰는 기분에만 충실하다면 솔직히 그런 걸 사람의 범주에나 넣을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감정이 자유자재로 조절되는 사람은, 일곱 번째 기준에서 제시된 "초과 수하물을 잘 버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이걸 jettison이라고 하죠.
이 책에서 제시된 여러 기준을 두루 충족하는 인간은, 참된 자존감을 품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자존의 기준도 없이 미친 감정의 폭주와 소용돌이만 내면에 날뛰는 인간이, 어느 순간 "부끄러울 것도 없고 자제할 것도 없으며 나는 나 외의 숭고한 명분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고 착각하자"를 결의한 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의 분수를 넘는 망동을 부린다면, 이게 "자존감"의 발로가 아니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그래서 배워야 한다는 건데, 이런 사람은 또한 "명품 의식이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배움과 자존의 근거가 객관적 기반을 이미 든든히 마련하고 있기에, 혹 일시적 위기에 몰려서도 언제나 태연하고 의연합니다. 반면 밑바닥의 비천한 인격은 사소한 일에도 흥분이 되고 다른 사람 반응을 살피고 어디 촐싹거리며 말참견하고 미친 듯 분위기에 휩쓸릴 건덕지가 없는지에나 눈빛을 번득거리죠. 저자는 명품 인간의 최종 기준을 "명품 부부"로 꼽는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가정이 올바로 다스려지지 못한 실패자의 말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으며, 본인 개인인들 어떻게 행복한 삶을 누리겠습니까.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존경받는 사람들은 부자도, 잘생긴 사람도, 지식인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내어주고 베풀며 살다 갔고 지금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우리 마음 속에서 그들의 말씀과 행동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명품들이다. 인생의 목적은 명품이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처럼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 간 이들이라면 육신의 불꽃이 다 이운 그 시점에도 이미 죽은 게 아니며, 정녕 인류의 마음 속에서 불멸을 얻었다 하겠습니다. 저자의 다음 말에도 귀 기울여 보십시오. "나는 70억분의 일이 아니라 70억의 시작이다." 그래서 결론이 뭐라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명품이 된, 열린 마음 깨인 의식 간의 소통,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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