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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산, 「욕망의 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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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방금 헤어진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다가 타이어 펑크가 났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단다. 와서 좀 갈아 끼워 달란다. 그는 자동차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사람이다. 그것도 생산직에서.   그 공장에서 12년을 컨베이어 타고 볼트 조이기만 해온 한 친구는 저 혼자서는 알아서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져버렸다고 한다. 혼자서는 집안 정리도 제대로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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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방금 헤어진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다가 타이어 펑크가 났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단다. 와서 좀 갈아 끼워 달란다. 그는 자동차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해 온 사람이다. 그것도 생산직에서.

  그 공장에서 12년을 컨베이어 타고 볼트 조이기만 해온 한 친구는 저 혼자서는 알아서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져버렸다고 한다. 혼자서는 집안 정리도 제대로 못해 마누라에게 등신 소리 듣는단다.

 

  그곳에서 차 유리 끼우는 일과 문짝 다는 일로만 15년 일한 사람은 자신이 기계 속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단다. 언제나 모든 일이 컨베이어에 실려 왔으므로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닥치면 두렵기까지 하단다.

 

  1년 강제 휴직을 받았던 한 친구는 자살을 할 뻔했단다. 라인 반복 작업만 18년을 해왔는데 일시에 중단하고 보니 마치 자기 몸에 전원 스위치가 내려져버린 것 같고 머릿속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시커멓게 정전되더라고 한다.

 

  그 공장에서는 아직도 고전적 파업을 하고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더 많은 화염병이 나와야 한다고 나는 언제나 말한다. 대책 없이 변하라는 소리는 말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나는 걱정스럽게 말한다. 생존을 분배받기 위해 화염병으로 저항하고, 생활을 분배받는 일로 쇠파이프로 무장하는 일이 어쨌단 말인가. 그러나 욕망을 분배받는 일은 벼랑으로 가는 일, 노예 되기를 동의하는 일, 저 강물을 배반하는 일, 나무를 능멸하는 일, 저들과 공범이 되는 길. 이제 다시 물어야 한다, 왜 파업을 하느냐고, 다시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이제는 달라야 한다고.

  - 백무산, 「욕망의 분배」

 

 

백무산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노동자 시인이다. 불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뜨거운 정서로 수놓은 그의 시는 노동 혁명을 향한 순수한 의지로 빛을 발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그는 노동 세계를 넘어 인간의 욕망이라는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간다. 노동자가 꿈꾸는 세계는 자본가와는 분명 달라야 한다. 자본가의 욕망으로 노동자들이 혁명에 나서는 순간 노동 혁명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문제는 욕망이다. 어떤 욕망을 지니고 어떤 세계로 나아가느냐에 따라 혁명의 결과가 달라진다. 백무산은  욕망의 분배 에서 욕망에 들뜬 세계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자기가 하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를테면 자동차 공장에서 10년 넘게 생산직으로 일한 사람이 펑크 난 타이어 하나 갈 줄 모른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자동차를 아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시인은 12년 동안 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타고 볼트 조이기만 해온 친구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제 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자조한다. 집안 정리도 제대로 못해 마누라에게 등신 소리를 듣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한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차 유리 끼우는 일과 문짝 다는 일을 15년 동안 해온 사람은 자신이 기계 속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람과 기계가 구분되지 않는다. 기계는 일을 위한 도구일 뿐인데도, 이 사람은 자신을 기계와 일치시킨다. 누군가 시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닥치면 두렵기까지 하단다. 노동이 사람들을 일에 얽매이게 한 결과다. 오직 한 가지 일만 반복하다 보니 다른 일에는 도통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날지 않아 날개 기능을 상실한 타조와 같다고나 할까 

 

1년 동안 강제 휴직을 했던 한 사내는 노동을 중단하고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라인 반복 작업만 18년을 해왔던 사람이다. 자기 몸에 꽂은 전원 스위치가 내려가 머릿속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시커멓게 정전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일에 집중했으면 이럴까 싶다. 하긴 몸은 반복되는 일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습관이라는 말로 해도 좋겠다. 죽지 않으면 몸에 배긴 습관을 벗어나기 힘들다. 노동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 수 있다. 노동은 자기를 개발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존을 유지하는 필요악으로 변해버렸다. 필요악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없는 노동자는 노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필요한 노동으로 하여 노동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시간이 흐르면 노동에 적응된 몸만 남는다. 노동은 말 그대로 필요악인 셈이다.

 

자동차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해마다 고전적 파업을 벌인다.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사라지지 않은 파업을 두고 폭력이니 하는 여러 말들이 나온다. 시인은 더 많은 화염병이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대가 변했느니 하는 사람들을 향해 대책 없이 변하라는 소리는 말라고외치기까지 한다. ‘귀족노조니 하는 말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저열한 욕망으로 내모는 사람들을 보며 시인은 노동자들의 욕망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는 어떤 욕망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노동자들에게 그 말은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욕망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시인은 생존이나 생활을 분배받는 일과 욕망을 분배받는 일을 구분한다. 생존과 생활을 분배받기 위해 화염병으로 저항하고 쇠파이프로 무장하는 일은 가능하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의 생존을 거머쥐고 있는 세력에 맨몸으로 저항하기는 힘들다. 자본가는 공권력으로 노동자들을 밀어붙인다. 숱한 폭력에 휘둘린 경험을 한 사람들이니 자기 방어를 위해서도 최소한의 무장은 필요하다. 하지만 시인은 욕망을 분배하는 일은 벼랑으로 가는 일이라고 선언한다. 욕망은 생존과 생활을 넘어선 자리에 있다. 욕망은 노동자가 자본가 자리에 서려는 마음을 가리킨다. 자본가 마음을 지닌 노동자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 어떻게 될까?

 

노예 마음을 지닌 사람이 주인이 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자본가가 되어 강물을 배반하고 나무를 능멸하는 일을 계속 벌인다면 자본가보다 우위에 있던 노동자의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만다. 시인은 저들과 공범이 되는 길을 벗어나 모든 생명이 두루 잘 사는 세상을 소망한다. 욕망의 분배가 아니라 생존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다. 이런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우리가 시나브로 다가가야 할 세계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한 경쟁에 치여 제 살 길을 버리고 죽을 길로 들어선 현대판 노예들에게 시인은 자기 욕망과 당당히 맞서라고 주문한다. 생존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는 바로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o*****s 2019.10.27. 신고 공감 5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