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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Pi (published by Canongate, 428 pages)
Written by Yann Martel, winner of the Man Booker Prize 2002
당신이 만일 뱅갈 호랑이, 오랑우탄, 하이에나, 얼룩말 각각 한마리와 함께 태평양 한가운데 구명보트위에서 누군가에게 구조되기를 바라고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게다가, 며칠후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하이에나가 차례로 죽고, 200 킬로그램의 뱅갈 호랑이가 227일간의 표류동안 당신의 유일한 동반자라고 한다면?
노인과 바다, 파리대왕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 등의 생존을 위한 모험 소설과 마찬가지로 Life of Pi는 불굴의 인간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독창적인 서사구조와 에피소드로 왜 우리가 때로는 이가 갈리는 이 치욕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고찰의 기회를 갖게해줍니다.
소설은 작가가 여행 중 우연히 듣게 된 원주율 기호 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 소년의 이야기로, 신에 대한 의지와 믿음을 전제로 시작하여 상상력없이는 이 절박한 현실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부질없는 꿈일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간디가 말한대로 "All religions are true" 라는 신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믿는 파이는 힌두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동시에 믿게 되지만, 편견에 가득찬 어른들에게는 걱정거리가 될 뿐이죠. 하지만 이런 다양한 종교로 무장된 파이가 맞닿뜨린 시련은 인간의 삶에 무심한 식욕만이 왕성한 뱅갈 호랑이 Richard Parker입니다.
멕시코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파이가 겪은 일들은 한계상황에 놓인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입니다. 난파선에서 가족을 한꺼번에 읽어버린 16세 소년이 감내하기엔 역부족이지요. 하지만 회의하는 것은 전진할 수 없다는 철학을 가진 파이에겐 아버지의 가르침과 생존 지식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켜내는데 성공하고 맙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파이에게 육체적인 욕구는 벵갈 호랑이 만큼이나 잔인하게 옥죄어오고, 우연히 발견한 신비한 해조류로 가득찬 섬에서의 생활은 외롭지만 풍족한 생활을 보장해줍니다. 그곳에서 호랑이와 단둘이서 산들 어떠리? 이런 나약한 질문은 풍요로운 물질보다는 온전한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파이에게 벼락같은 깨달음을 던지고, 배는 고프지만 희망이 있는 망망대해로 의연히 나아가게 됩니다.
철학적인 삶의 이야기를 쉬운 문체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 나가고 있지만 자칫 행간의 숨은 의미를 음미하지 못하면 표류기 소설이 주는 희망이라는 단순한 메세지만 건질 우려가 있습니다. 헤밍웨이식 하드보일드 문체가 처절하고 암담한 현실묘사에 제격임을 입증하는 구절들이 많이 눈에 띄입니다.
일본인 조사관들의 의심에 대해 파이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는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춰 수사일지와 같은 삭막하고 빈곤한 내용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냅니다. 둘 중 어느 이야기를 믿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할 때 냉소적인 어른들에 대한 파이의 세심한 배려는 불필요해보입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라는 결연한 인간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면, 파이의 인생에서는 "To choose doubt as a philosophy of life is akin to choosing immobility as a means of transportation." 라는 삶의 의지를 약하게 만드는 회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 책 덕분에 파이의 고향인 인도 남부 포틴체리에서는 그를 위한 동물원을 다시 만들 계획이라고 하니 책 속의 상상력이 인간의 말에 갇힌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위안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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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구절] To choose doubt as a philosophy of life is akin to choosing immobility as a means of transport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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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이것도 사놓은지 꽤 된거 같은데 정작 마친 건 어제네요.. 지하철서 들고다니면서 읽어서 책이 가방속에서 구른지라 좀 손상이.. 페이퍼백이라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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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픽션이다. 바다 위에서 가장 긴 기간을 표류하며 살아남은 소년의 이야기. 소설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파이에게 긴밀하게 다가온다. 힌두, 이슬람, 카톨릭, 기독교.. 그들의 신은 다 소년의 신이 된다. 소년은 보이지 않는 신의 의미를 곳곳에서 되새기며 세상의 이치를 읽어내려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종교와 철학을 얘기하며 끝나진 않는다. 소년은 인도에서 동물원을 하던 아버지, 어머니와 형과 함께 유복하게 자랐지만 정치적인 상황에 휘말려 캐나다로 이주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배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침몰한다. 참 기구하게도 소년의 가족을 포함한 전 승객이 그 과정에서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파이는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캐나다로 갔어야 했을 오랑우탄, 하이에나, 얼룩말 그리고 벵갈 호랑이 한 마리와 함께 구명보트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 환경 속에서라면 서로를 맞닥뜨릴 확률이 극히 적겠지만 보트 위에서도 약육강식의 법칙이란 존재하는 법이어서, 얼룩말은 하이에나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고 나머지 동물들 또한 호랑이에게 살육당한다. 작가가 너무 열심히 내장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묘사를 해버려서.. 읽는 도중에 거부감이 살짝 살짝 묻어났다. 하기사 동물의 룰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인간적인 건 최대한 배제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과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는데 그에게 떠맞겨진 과제는 구명보트 위에서 호랑이와 살아남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소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동시에 살려고 하는 소년의 의지 또한 지속되게 했다. 가장 큰 소년의 난과제는 호랑이를 길들이는 것이었는데 소년은 동물원을 경영하던 아버지와 직원들에게 보고 배운 것을 경험으로 영역표시 방법과 먹이, 호루라기 소리를 이용해 최소한의 자기 공간을 확보한다. 구명보트에 비축된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서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고 채식주의자였던 파이는 생선과 바다거북의 장기까지도 먹게 된다. 일순위는 배고픈 호랑이를 먹이는 것이었다. 배부를 때는 매우 배불렀지만 배고플 때의 배고픔이란 끝이 없었다.영양 부족과 피로함으로 일순간 눈이 멀기도 했고 그와 같은 처지의 표류자를 만나기도 했었다. 그 표류자가 파이의 보트에 올라서서 호랑이 - 리차드 파커 - 의 영역에 발을 들이자마자 잡아먹혀 버리긴 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역시나 파이와 리차드 파커가 표류하다 닿은 바닷말 위에 나무가 자라는 섬이었는데 바닷말이 해수를 흡수하고 먹는 샘물을 내뿜으며 식물과 수많은 미어캣 (몽구스 류의 작은 육식 동물) 을 제외하고는 벌레조차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샘물 표면에 수많은 바다 물고기가 죽어 떠올라 있기도 하는 미스테리가 종종 발생하곤 했는데 사실은 이 섬이 곤충류를 잡아 먹는 파리지옥처럼 물에서 유독한 기운이 나와 물고기들을 분해하고 흡수하는 거대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지도 상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식물도감에도 없는 섬의 초목들은 사람이 안다고 자부하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다.
나중에 침몰된 일본 선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이를 보러 두 명의 일본인이 찾아오는데 그들 또한 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세계 -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 새로운 것은 원래의 인식 체계에 위협을 가하고 인간의 편협한 두뇌에 자리를 내어 달라고 협박한다. 아마 세상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믿기 힘든 것은 믿지 않으며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는 것이다. 어쨌든 파이와 리차드 파커는 멕시코의 육지에 도달하게 되고 리차드 파커는 그동안 보살펴준 파이에게 일말의 아쉬움조차 보이지 않고 바로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가 버린다. 파이의 생각대로라면 그들은 최소한 작별의 의미로 시선이라도 마주쳐야 옳았던 거였는데 - 사람은 예의나 관습이라는 것을 '의식'한다. 어떠한 것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그것에 걸맞는 '의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무도 휑하게 뛰어나가버린 리차드 파커에게는 그러한 의식이 따로 필요치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리차드 파커가 동물원 우리에 같혀 사람이 준 자유를 누리는 삶에 지긋지긋함을 느껴서일 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저 동물이기 때문에 본능에 몸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이것은 세계에는 모두의 각각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야기 초반부에 소년 파이가 보이지 않는 신을 곳곳에서 찾으며 자신이 접하는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그러하다.
세상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만큼 그 가능성에 접근하는 방법론 또한 무한한 것이며 어느 하나무시당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경험하지 못했으며 보고 듣지 못한 것 조차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성을 저자인 얀 마텔은 역설한다. difference라는 개념을 항상 마음에 심어 둘 필요가 있다. 무언가 나의 인지를 뛰어넘는 것은 항상 존재하며 그것이 나와 다를지라도 최소한 그것을 '인정'할 줄 안다는 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