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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력진압의 비극적결과를 끝내 피하지는 못했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지도자로서 주관적인 목소리를 일관성있게 유지하며 자신의 신념을 고수한다는 것. 민중의 올바른 삶을 위해 아낌없이 개인의 안위를 망설이지 않고 포기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힘없는 민중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가택연금된 자오쯔양의 사상은 시대중국인에게 큰 파장을 남긴다. 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지도자를 한 사람 지니고 있다는 것은 진정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들로 부터 그의 옳은 뜻을 지지받았던 바른 지도자. 진정 멋진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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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천안문, 톈안먼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해본다. 많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탱크에 저항하는 한 젊은 청년의 사진과 많은 인파 그리고 중국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기억을 담아 두고 있다. 최근 중국에 관한 서적을 뒤적이다 자오쯔양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천안문 광장에 홀로 뛰어들어 젊은이들과 함께 중국의 미래를 걱정하던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여 본다. 2005년 그의 장례식에 조용히 참배하던 많은 중국인들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중국을 바라보는 많은 해외의 시선들 속에서 그는 어떤 삶을 살다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국가의 죄수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의 회고록이다. 정말 텐안먼 광장에 모인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민주화를 외쳤을까하는 궁금함, 그리고 중국에서 발간되지 못한 이 책이 발간 즉시 매진되는 상황을 만들며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를 추모하고 있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 많은 생각이 책을 읽기 전에 떠오른다. 자오쯔양의 회고록인 이 책은 크게 텐안먼 광장의 그의 모습과, 텐안먼 사태이후 그의 연금 생활, 그리고 그의 개혁을 향한 개방정치, 정권의 수뇌부로 가게된 그의 행보, 그리고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과정으로 나뉘어져 있다. 쉽게 그는 민주화 운동의 기수라고 생각한 나의 생각을 뛰어넘어 그의 행보는 경제, 행정, 그리고 협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업적과 존경을 받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경제개혁의 시발점은 단순한 곳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인민들이 지불한 노동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출발점이다. -Page 184 인민들의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책을 만들고 그 들의 입장에서 정책을 만들어 가면서 그는 급진적인 정책을 펴기보다는 점진적인 정책의 변화와 경제 개방을 유도하는 것으로 그의 정책을 만들어 갔으며 그의 정책은 시장 경제와 계획체제의 공산주의 경제 방식을 적절하게 시장경제 정책으로 유도해 나가는 개방정치를 펼쳐나간다. 요컨대 당신엔 계획체제 밖의 시장경제와 계획체제 안의 계획경제라는 두 가지가 존재했다. 우리는 계획 밖의 시장경제를 확대하려는 한편, 계획경제의 비중을 점차 축소하고자 했다. -Page 203 그의 시장경제 정책은 흡사 자본주의의 성향을 띄게 되며, 농촌의 피폐한 삶을 바꿔 보고자 토지에 대한 개혁까지 추진하는 성향을 보인다. 결국 이런 정책의 기조는 공산당 집권부와 마찰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지만 그는 이런 정책을 펴나가는 기본 바탕에 인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정책은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를 부정하는 것에 기본을 두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조금도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나라는 이미 사회주의제도를 건립했고 사회주의사회로 진입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부인하는 어떠한 관점도 모두 잘못된 것이다. -Page 316 그의 말처럼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그의 기조 역시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톈안먼에 나타나 그의 기반을 흔들릴 만한 행동을 하였으며 그의 회고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지도부 즉 덩샤오핑의 반감을 사게 된 것일까? 그의 사상의 기본과 공산당 지도부와의 개혁에 대한 생각의 기본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덩이 주장한 것은 공산당 일당 독재를 견지한다는 전제 아래서의 개혁으로, 개혁은 공산당의 일당 지배를 한증 더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공산당 일당 지배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개혁에도 덩은 모두 단호하게 거절했다. -Page 375 그가 사랑한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가 그렇게 아끼던 인민들과는 달리 지도부라는 권력의 집단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떻게 보면 패자의 변명처럼 들리지만 그의 행적으로 보아 그는 권력 싸움의 어떤 명분에 의한 패배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삶이 20년이 지난 지금 그이 행적을 돌아보게 하고 그의 삶을 회고하는 책이 모두 팔려나가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었을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보호하고 자신의 삶을 조용히 거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은 국가의 차별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그가 남긴 텐안먼의 이야기는 잊지 못할 명언처럼 들린다. 죄송합니다. 학생 여러분, 우리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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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헌법 조항에서나 보았지 실제 실감은 못해봤다. 자유란 그 자유를 박탈당해야 느끼게 되고, 공기도 늘 곁에 있기에 우리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미래에 대한, 그리고 나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없이 평화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역시 역사 속 누군가의 용기있는 선택으로 인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것임을 한번더 확인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던 시절... 당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사람들을 호도한다는 명목으로 힘들게 살아온 중국 정치인의 롤러코스터 같던 인생의 후반부를 다루고 있다. 문화대혁명 때 존재했다는 가택연금... 아기들이 아파서 주말 이틀 외출이 금지되는 것만으로도 갑갑하고 답답해서 아이들도 부모인 나도 힘이 드는데 무려 15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던 자오쯔양의 삶이 얼마나 불우했을까... 솔직히 그 시간들이 내겐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중간중간 나오는 사진 속의 가족들 사진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비록 처벌을 받는다 해도 본인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에 납득이 간다면 그 상황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내내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아~ 라고 이야기해도 어~ 로 받아들여지면 나의 의도는 어~가 되는 그 시절...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절절히 써내려간 편지를 보고 있노라니 사면초가 상황이 무엇이며 정말 체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기약없이 속절없이 세월만 흘려보내야 했던 그 까맣게 타들어간 속은 누가 알겠는가... 다행히 손주의 장난감 주위(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위치라고 생각한다)에 육성으로 녹음해두었던 그의 이야기가 비서의 아들에 의해 밝혀지고 정리되어 중국이 아닌 타국에서 책은 발간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금서로 정해져 사람들로 하여금 눈과 귀를 막고 가렸지만 언론의 자유는 공산사회에서도 이제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점점 깨어가는데 체제와 이념만으로 사람들을 더이상 옭아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사후에 그의 이야기가 알려진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지금에서라도 사람들에게 조명을 받을 수 있음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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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과정은 힘들었으나 읽고 난 후의 보람과 뿌듯함은 어느 책보다 크다. 대학교 때 들었던 동양 현대사는 대부분이 험난하고 가시밭길이었던 중국의 이념갈등과 그로 인한 문제점, 정치투쟁사건들이었기에 그 때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고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물론 지금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1989년 6월 4일에 있었던 천안문 사건, 즉 후야오방의 사망 이후 천안문 광장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자 덩샤오핑에게 저항하다가 가택에 죽을때까지 연금된 자오쯔양의 자서전이다. 천안문 사건은 탱크와 장갑차 등을 동원하여 시민들을 해산시킴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 죽은 후에 더 위험한 인물로 분류된 자오쯔양은 경제개혁에만 주력하여 중국의 근대화를 이룩해냈지만 정치 개혁의 의사는 전혀 없었던 덩샤오핑에 대항하여 학생과 시민의 편에 섰던 인물이다. 책을 읽다보면 내용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가 권좌에서 물러난 후 국내외 정세의 변화와 실상을 새로이 인식하고 중국의 정치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게 된다. 정말 중국은 큰 가능성을 지닌 나라가 분명하지만 오늘날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빈부의 격차와 환경 파괴 등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 게다가 사회주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체제를 위협하는 모든 활동을 제압하고 분열을 촉진하는 움직임에 대해 강제로 핍박해 왔기 때문에 자오쯔양은 이 책에 담긴 목소리로 시대와 세계적 흐름을 역행하지 말고 사회와 인민에게 유리한 집정체제에 대해 고민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오쯔양은 최소한의 장례식을 치루었고 그를 추모하는 행위도 금지되었다고 하던데 실각, 가택 연금 등 말년이 고달펐던 그는 여전히 온건한 지도자로 중국의 가슴에 남아 강경파에겐 사회적 불안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비운의 개혁 지도자였지만 자오쯔양의 고백이 담긴 이 책으로 인해 역사와 인민을 선택한 그를 알게 되어서 어렵기도 했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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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죄수
이 책은 중국의 금서로 출간이 금지 되었던 책이어서 그런지 미국에서 처음 출간 되었다. 현 중국은 전 세계의 경제를 이끌어 갈 만큼 큰 나라가 되었다. 그런 나라를 이끌어 갔던 중국 공산당 자오프양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공산국가의 대부분이 없어졌고, 그 공산국가는 어쩔수 없이 자유 민주주의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오늘날 세계 경제 대국이 되 버린 중국의 사상과 정치의 모습에 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중국의 오래된 정치의 한 면을 장식한 자오쯔양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다. 그는 1919년 11월 중국에서 태어나 1988 군사위원회 부주석 1987 총서기를 거쳐 1981 당중앙위원회 부주석 1973 제10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텐안먼 운동 때 광장에 모인 학생들을 독겨하고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덩샤오핑에게 숙청 된 당 총서기다. 1989년 6.4 사건으로 인해 당내외 모든 직무가 최소 되고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이었다. 자오쯔양은 중국 경제의 선진화를 이끌었으며, 텐안먼 광장의 사건 이후 무려 16년 동안이나 가택에 연금된 상태로 2005년 85세로 사망했다. 가택연금 중 그는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솔직하게 회고한다. 중국의 개혁. 개방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는 정치적은 세력과의 갈등에서 억울하고 서운했던 것을 녹취로 남겼다. 이것을 미국으로 가져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다.
텐안먼 사건에서 당내 갈등 그리고 80년대 개혁, 개방, 경제, 정치에 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 인민들의 삶이 고통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겼으며 이것을 개혁하기를 원했다. 그의 정책은 자유 시장 경제 방침을 사회주의 체제에 맞는 경제 방식으로 전환해 시장경제를 유도해 나가는 개혁을 원했다. 무엇보다 공산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입장이 아닌 고수하면서 거기에 맞는 새로운 개혁을 추진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지존 정책이나 정치사상을 개혁 한다는 것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위험과 노력이 뒤따른 다는 사실은 굳이 인정하려 들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놓은 한 인물의 사상과 노력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좋았으며,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말처럼 새로운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의 것을 먼저 되돌아 봐야 함을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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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정상을 다투는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공산당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작은 거인’ 덩 샤오핑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이를 경제발전의 동인으로 삼고 지금까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미국과는 ‘전략경제대화’라는 협상을 통해 머리를 맞대고 세계경제를 논하는 G2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모습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텐안먼 민주화운동’... 내가 대입을 앞두고 있던 1989년 6월 초여름 어느날...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자료화면에서는 공산당의 표현대로라면 국가를 위태롭게하고 체제안정에 위협(?)이 되는 폭도들을 진압하기위해 텐안먼 광장에 나타난 탱크앞에 비무장을 한 젊은이가 양복 웃옷을 벗어제끼고 가로막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공산당체제하에서도 저렇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구나?’ 그리고 얼마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신에서서는 텐안먼사태가 진정되었고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전력투구만 남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때의 충격으로 남았었던 그 텐안먼사건이 중국에 미친 영향은 지금의 중국이 가진 명암을 그대로 내포했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국가의 죄수>는 바로 이 텐안먼 민주화 운동에서 정치적 패자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야했던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살아생전에 남긴 회고록이다. 텐안먼 민주화 운동은 지금의 중국이 있기까지 덩샤오핑과 공산당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한편의 ‘인생극장’이었다. 정치적 식물인간이 된 자오쯔양은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한 외로운 인물이었고.. 이 책에서 저자가 담담히 돌아보는 텐안먼 민주화 운동을 즈음한 긴박했던, 하지만 신념에 찼던 저자의 선택은 지금 중국이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덧 한계상황에 한발두발 다다르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 선택적이고 지역편차가 큰 경제발전에 따른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불만... 도시와 농촌간의 부의 엄청난 차이로 인한 빈곤계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점차 확인되고 있는 불안요인...공산당 1당 체제하에서의 부작용 등이 그것이다. ‘흑묘백묘’로 대변되는 덩샤오핑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의 정당치 못함에 대한 용인은 의도하지 않았았겠지만 부패로 직결되기 시작했고 친인민적이고 부패에 대해 청렴하며 개혁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후야오방의 사망이후 내재해 있던 불안감과 공산당의 정치에 대한 불만이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텐안먼 민주화 운동을 낳게 된 것이다. <국가의 죄수>는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긴박했던 그날의 순간을 중국정치의 중심부에서 이를 수습하려 했던 자오쯔양 개인의 시각이라해도 거침없이 읽어나가게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볼땐 <국가의 죄수>는 패자의 기록이다. 중국 핵심권력층에서 배제된채 16년이라는 가택연금에서 사면되지 않은 채 숨을 거둔 자오쯔양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 회고록이 언제까지 패자의 기록으로 남을지는 미지수이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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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야기하면 다소 민감한 소재로 발전(?)하는 경향이 꽤 많은 듯 하다. 가방줄이 짧은(?) 사람들 특징이 무조건 자기가 아는쪽으로 틀어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보니 다소 주관적인 해석이 심하게(!) 가해지곤 한다.
자오쯔양 (Zhao Ziyang)을 내가 아는 사람에 비교하자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란 사람은 전형적인 공대체질에 역사라는 특정 과목때문에 6차 교육과정에서 7차 교육과정의 수능으로 갈아탄 사람이기 때문에 이쪽, 역사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약하다. 중국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우리나라보다 심했던가?) 엄청난 변혁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런 변혁과 지금의 현재의 중국의 모습을 가져다준 사람 중에는 여럿이 있겠지만, 분명 자오쯔양도 그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되먹지 못한 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이 옳은 말하는 사람 잡아서 탄압하는 건데... 그래, 반드시 이런 과정을 겪을 수밖에는 없나보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편한 진실을 입다물어야 할 인물이자, 세계를 바로잡고자 했던 사람. 'you know who'에게 반대되는 세력, 당연히 '그들'은 탄압을 가하고 평생을 가택에 가둬 그 어떠한 영향력도 펼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다. 중국에게 있어서는 자오쯔양이 바로 그런사람이없고, 내가 볼 때 우리나라 정부에게 있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 이건 분명히 중국의 이야기인데, 나는 그 속에서 우리나라의 모습이 보이더라. 그 어느 뜨거운 계절의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살수차를 동원한 정부의 모습이 오버랩 되더라. 당시 이 연설은 그들에게 단식 중단을 설득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들이 아직 젊기 때문에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은 비록 국내외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일부 원로 지도자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 라는 것을 명확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책 :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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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 그 배경과 전개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 테지만 이름 정도는 대부분 들어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 천안문 사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설레임과 낯섦을 느끼게 된다. 우리 역사 속의 몇몇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기 때문이 아닐지.. 이러한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좌절의 역사도 아름답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리라. 이 책 '국가의 죄수'는 천안문 사태로 인해 역사의 한페이지에 이름을 남기게 될 한 정치가의 회고록이다.
자오쯔양.. 덩샤오핑의 오른팔로 활약하던 그는 천안문 사태 당시 덩샤오핑의 과격한 시위 진압을 반대하였다가, 이후 16년간 가택연금상태로 지낸 끝에 지난 2005년에 사망했다. 이 회고록은 연금 상태의 그가 비서와 인터뷰한 내용을 몰래 녹음해두었다가 펴낸 것으로, 출간 당시 홍콩 등지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당연히) 중국 정부는 크게 반발하였다고 한다. 적잖이 두툼한 이 책은 천안문 사태 당시의 정황, 연금 상황에 대한 심경고백,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개인적 심정을 담고 있다. 연금 상태라 자료를 찾는 것도 어려웠을 테고 많은 부분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을텐데, 그런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밀한 기록들은 그의 지성과 성격을 드러내는 듯하다. 사실 급진파에 속한다지만 상대적으로 온화한 성격인데다 원리원칙에 따르고자 했기 때문에 등샤오핑의 뜻과 어긋났을 뿐, 그의 정치적 성향은 등샤오핑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덩샤오핑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점으로 볼 때도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그랬던 그가 16년의 연금생활 동안 덩샤오핑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었을지.. 회고집치고는 자신의 감정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고 있는 책이기에 이런저런 추정만 해볼 뿐이다.
개인적으로 천안문 사태에 대한 호기심에서 읽게 된 책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오히려 근래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이해와 해석 쪽에 있다고 보인다. 덩사오핑의 개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으며 실제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적도 있는 그이기에, 개혁개방의 필요성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부동해보인다. 그러다보니 중국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중국 현대사, 특히 정치나 경제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면 보다 얻어낼 것이 많은 책이라 생각되지만, 상식 순의 지식만 가진 나에게는 읽기 까다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회고록 형식이 상대적으로 읽기 편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법 인내심을 가지고 도전해야 될 책이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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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가? 이 책은 자오쯔양, 6,4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던 한 개인의 기록이자 역사의 한획을 긑는 기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아닌 중국의 정치가 자오쯔양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죽을때까지 잊혀진채로 16년이란 세월을 연금상태로 살아갔을 그의 생각과 신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중국은 천안문사태를 ‘6ㆍ4 톈안먼 반란과 학생과 시민들의 폭동’으로 부르고 있다. 하긴 대한민국의 민주화라 부르는 5.18광주 학생 운동이 민주화란 이름을 얻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니 중국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럼에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통해 중국은 개방되었고 국민들은 제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잊혀진듯 했던 그는 결코 국민들에게 잊혀지지 않았다. 2005년 그가 사망했을때 그를 위해 조용히 울어주던 국민들이 있어 그의 생은 행복했을 것이다. 국가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 정치적인 입장이 아닌 학생들의 편에서서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로 인해 모든 책임을 지고 권력에서 물러나야 했던 자오쯔양, 지속적인 회유에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꺽지 않았고 그 결과 그는죽을때까지 연금 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했다.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 그것이면 그가 좌천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덩샤오핑의 지지하에 총서기가 되고 덩과 동반자적인 길을 걸었던 그가 결별하면서까지 버리지 않았던 신념이 책 곳곳에 묻어났다. 이책을 통해 당시의 중국 상황과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을 알수 있었다. 지금의 중국은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라 할수 있다. 그 밑거름이 된것이 1989년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라고 본다. 일년후, 심년후 중국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 변화가 두렵게 다가온다. 가난한 중국이 아닌 부자의 나라 중국이 되어 세계를 움직이는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989년 자리에서 물러난 뒤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나는 중국정치체제개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과거에는 서구 선진국들이 실시하는 의회민주제에 대해 인민이 주인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련식의, 사회주의국가가 실행한 대표대회제도라야 인민이 주인 됨을 실현할 수 있고 이는 서구의 의회제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한층 더 민주를 실현할 수 있는 형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우리 사회주의국가에서 실행한 민주제도는 완전히 형식에 치우쳐 있고 인민이 주인 되지 못하며 소수, 심지어 개인이 통치하는 것이다.” (p. 42) 올해로 천안문사태가 발발한지 21년, 자오쯔양은 천안문 사태과 관련 가택연금을 당했고 16년이라는 기간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만약 그가 당이 내민 손을 잡고 협력을 했다면 지금처럼 알려질수 있었을까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신념에 목숨걸줄 아는 사람이기에 역사와 인민들이 그를 선택한 것이리라.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발간해야 했고 반간후에도 금서가 되어야 했던 [국가의 죄수], 권력이 아니라 인민을 선택한 사람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살아남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