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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자화상: 좌절의 에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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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전과 이후의 문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라인은 미디어 권력의 이동이다. 미디어 없이 사회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의 머리 속에는. 우리가 자신을 한국인이라 알고 바다 건너 일본이 있다고 아는 것은 TV에서 신문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근대 국민국가가 미디어와 함께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대사회에서 미디어를 지배한 것은 물론 신문과 방송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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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전과 이후의 문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라인은 미디어 권력의 이동이다.

미디어 없이 사회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의 머리 속에는. 우리가 자신을 한국인이라 알고 바다 건너 일본이 있다고 아는 것은 TV에서 신문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근대 국민국가가 미디어와 함께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대사회에서 미디어를 지배한 것은 물론 신문과 방송였고 사람들은 그런 매체가 공급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은 정보의 흐름을 양방향으로 바꾸어 놓았고 사람들은 미디어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었다.

저자들은 미디어 권력의 이동이 가능하게 한 200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을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이라 부르며 그 정신의 주체를 참여세대(또는 P세대)라 부른다.

저자들은 해방 이후 한국의 세대를 10년 단위로 끊어 전후세대, 4.19세대, 청년문화세대, 386세대, 신세대, 그리고 참여세대로 구분한다.

"P세대는 월드컵, 대선,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나타난 세대로 사회 전반에 걸친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는 세대이다." 제일기획의 참여세대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대학생이 주축이었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참여세대는 모호한 것이 특징이라 저자들은 지적한다. 이 세대는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걸쳐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참여세대를 규정하는 힘은 특정연령대의 공유된 경험이 아니라 인터넷이란 새로운 미디어가 열어 놓은 공간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제일기획이 이 세대가 만들어지는 계기로 지적하는 월드컵, 대선, 촛불시위는 구체적으로 붉은 악마와 광장의 응원, 노사모와 같이 인터넷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일어난 이벤트였다. 인터넷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 연령대가 모두 참여세대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참여세대는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다. 이들은 인터넷이란 미디어가 주는 힘을 이용해 권위에 도전했다. 그들의 도전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었다. 이 세대를 만든 계기가 된 월드컵 응원도 노사모도 촛불집회도 어떤 동원력 있는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게릴라적인 움직임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구 미디어가 대표하던 질서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터넷이란 공간은 놀이의 공간이었다.

"광우병 촛불집회는 게릴라 특성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진지한 놀이로서의 문화도 만들어냈다. 촛불집회에서 게릴라적 싸움만 있었다면 그것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의 저항은 투쟁이 아니라 놀이였다. 1987년 6월 항쟁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광화문과 시청거리를 메웠지만 모두 투쟁에만 몰두했지 놀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촛불집회는 게릴라로서의 놀이족, 놀이족으로서 게릴라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참여세대에게 인터넷은 장난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 게임, 블로그, 글 올리기와 댓글쓰기 모두 놀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러면 그들이 인터넷이란 장난감으로 갖고 논 것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그들이 갖고 논 것들을 5가지 코드로 읽어낸다. 유목민 코드, 참여 코드, 몸 코드, 섹슈얼러티 코드, 역사적 상상력 코드.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우울하다. 몸짱, 야오이, 위버섹슈얼, 도피로서의 민족주의, 된장녀, 신상녀 등과 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좌절의 에토스이다.

저자들은 고구려를 소재로 한 사극이 대대적으로 유행한 것을 특징적으로 말한다. 왜 하필 고구려인가? "우리 민족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우리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간" '주몽'의 제작의도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이 별볼일 없기에 잘 나가던 옛날을 소환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들은 촛불시위에서 표출된 반미감정도 역시 고구려 민족주의의 이면일 뿐이라 말한다. 2000년대의 반미는 약자로서의 반감이다.

현실의 '우리'에 대한 욕구불만, 또는 좌절은 '나'의 차원에서의 좌절 때문에 있는 것이다. 몸짱 얼짱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외모에 대한 집착이 왜 있었을까? 보상심리가 아니었을까? 야오이는 왜 유행했는가? 왜 그렇게 소녀 소년 팀이 많은가? 로리를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현실에선 되지 않는 것을 이미지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아닌가? 모두 현실에서 좌절된 욕망이 가상에서 충족되는 것들이 아닌가?

좌절은 분노를 낳는다. 그 분노는 미국을 향했고 기성정치질서로 향해 노사모가 되었다.

그러나 그 분노는 공적 대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저자들은 개똥녀 사건이나 강사녀 사건에서 드러난 폭력성이나, 된장녀, 신상녀와 같은 여성을 지칭하는 말들에서 개인을 향해 분출된 분노를 읽는다.

물론 참여세대가 2000년대에 만들어낸 문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란 구호로 광장에 모였던 월드컵 응원은 그 시절의 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돌아볼 때면 왜 그렇게 좌절과 분노가 지배적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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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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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culture)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문화(文化)라는 의미를 가진다.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다. 이후 교양·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으며 사회가 복잡화되면서 그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이런 이유로 문화는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정신적․예술적 표현의 총체를 의미한다거나, 인류의 가치적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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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culture)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문화(文化)라는 의미를 가진다.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다. 이후 교양·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으며 사회가 복잡화되면서 그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이런 이유로 문화는 한 민족이나 사회의 정신적․예술적 표현의 총체를 의미한다거나, 인류의 가치적 소산으로서 도덕, 법률, 관습, 종교, 예술, 과학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의미한다거나, 또는 인간에 의하여 이룩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라는 것으로 정의되는 등 일의적으로 정의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문화를 몇 가지의 코드(code)로 단순화하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적 현상이 생겨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거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전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최근에는 ‘한류(韓流)’ 가 동남아시아를 넘어서서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문화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한국 사회 내의 문화적인 흐름을 유형해볼 수 있을까. 지은이는 당대 문화가 어떤 특정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것을 ‘문화코드’라고 부를 수 있고, 문화코드는 당대 사회의 정치․사회․경제적 지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2000년대 우리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다섯 가지 문화코드로 ‘유목민 코드’, ‘참여 코드’, ‘몸 코드’, ‘섹슈얼리티 코드’, ‘역사적 상상력 코드’를 들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유목민 코드를 제외하면, 다른 코드는 이전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를 언급하는 것은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지형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가치 있는 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2000년대 중에서도 한국 사회의 진정한 출발점은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광장 응원이 보여준 축제와 놀이로서의 문화라고 한다. 이제까지 한국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었고 이는 참여 문화를 구성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생산적인 주체들의 부상’ 이라고 한다. 이전 시대의 주체들이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지배구조’에 편입된 것과 달리, 2000년대 주체들은 생산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다면서, 이 생산적인 주체들을 ‘게릴라’와 ‘놀이족’이라고 부르면서 한국 문화의 본질은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이라고 한다.

 

문화와 유행은 다르다. 그리고 문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저변에 깔린 각종 다양한 역학관계에 대한 고찰이 따라야 한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 한국 사회의 문화를 코드화할 수는 없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행 내지는 트렌드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참여와 놀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진정한 참여와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반값등록금, 미국산 소고기 수입 등 정치적인 쟁점이 관계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반해 북한의 인권문제, 일본 위안군 문제, 비정규직 문제, 장애우 문제, 납북주민 송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광장문화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인기 종목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있을 뿐이고 국가 대항전이 아니면 아예 축구장을 찾는 일이 없다. 진정한 참여와 놀이가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 라는 식으로 반짝하고 지나치는 유행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놀이 문화를 언급하기는 힘이 드는 측면이 있다. 여름 휴가 기간 동안 해수욕장이나 계곡 등을 찾아보면 온갖 쓰레기가 넘쳐나고 아무곳에서나 취사를 하고 고기를 구워 먹는 등 아직도 어떻게 놀아야 하는 지를 모르는 것 같다. 성숙한 놀이 문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몰려다니고 논다고 해서 이를 참여와 놀이라고 하기에는 논리의 비약이 있다. 정보의 공개와 공유라는 현대 사회의 특성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오히려 많은 정보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게 하고 트렌드를 추구하는 획일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이를 범주화하고 유형화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글쓰기가 아닐까 한다. 게릴라와 놀이족이라는 의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야기가 되었던 내용들이다. 이 책에서 새롭게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의 특징을 게릴라와 놀이족이라고 하는 데는 인터넷이 끼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 이제는 참여와 놀이 자체에 대서는 한 번쯤 되새김질 해볼 때다. 참여와 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코드가 아니라 인간의 코드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참여와 놀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이미 매스컴이나 다른 책들에서도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으로 많이 이야기된 내용들이다. 마치 여러 종류의 신문 기사와 잡지 기사를 종합한 듯한 느낌이 든다. 지은이가 전문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좀 더 깊이 있는 한국 사회의 문화 들여다보기 작업이 아쉽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글쓰기 행태가 지금 현재 우리 한국 사회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c*****1 2011.09.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