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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인류가 결국 행복을 찾았을까
"글쎄, 인류가 결국 행복을 찾았을까" 내용보기
한때 모든 글에 '쇼펜하워'를 인용한 적이 있었다. 아마 대입 논술 때까지 쇼펜하워를 우리집 개 이름만큼이나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재, 쇼펜하워 외엔 딱히 아는 사상가가 없었다. 둘째, 쇼펜하워가 얘기한 자아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쇼펜하워가 논하는 자아론은 명쾌하다. 인간은 크게 3가지 자아를 가진다. 물질적 자아, 사회적 자아, 정신적 자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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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모든 글에 '쇼펜하워'를 인용한 적이 있었다. 아마 대입 논술 때까지 쇼펜하워를 우리집 개 이름만큼이나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재, 쇼펜하워 외엔 딱히 아는 사상가가 없었다. 둘째, 쇼펜하워가 얘기한 자아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쇼펜하워가 논하는 자아론은 명쾌하다. 인간은 크게 3가지 자아를 가진다. 물질적 자아, 사회적 자아, 정신적 자아가 그것이다. 화폐, 이게 바로 물질적 자아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 사회적 자아는 베버가 논한 계층과 관계 있다. 얼마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는가. 쇼펜하워는 물질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모두 허무하다고 말한다. 왜? 언젠가는 사라지니까. 특히 사회적 자아의 경우,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꼭! 당신에 대한 뒷담화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정신적 자아만이 진정한 자아라는 사실을 알고 관조와 성찰에 임해야 한다.

 

정말 명쾌하다. 내가 쇼펜하워의 글만 안 읽었다면 상대를 갔을 테고, 주류 마인드를 엔진 삼아 부와 명예를 위해 열심히 달려갔을 테다. 하지만 난 쇼펜하워를 믿었다. 지금도 대충은 믿는 듯하다.

 

서문이 길었다. 『행복에 대한 거의 모든 것들』은 『행복의 발견』의 개정판으로,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담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기적 유전자로 산다. 이기적 유전자는 왜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려 할까? 그게 행복한 길이니까.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많은 세계관이 만들어졌다. 각종 종교와 철학, 윤리, 자연과학은 따지고 보면 '진리를 추구'하는 도정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생겼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을 찾았나......

 

책의 부제는 '3천년의 탐구, 마침내 찾은 행복의 연금술'이다. 책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절반은 맞는 부제이고 절반은 틀렸다. 3천년에 걸쳐 진행된 행복에 관한 담론을 다루는 건 맞지만 과연 찾았을까. 못 찾았다. 여전히 인간은 찾고 찾고 또 찾는다. 잘 안 보인다.

 

답은 안 보이지만 독자에게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기회는 제공한다. 현대인은 바쁘다. 자기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삶의 의미에 대해 재고해 봤다. 도대체 왜 난 사는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지.

 

책은 인도 전통, 그리스 전통, 그리스도교 전통, 이슬람 전통 등 세계 종교의 세계관을 두루 다룬 뒤 근대와 현대에서 논해진 행복 담론을 다룬다. 어떻게 보면 공교육 과정에서 모두 학습한 내용인데,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불교의 해탈, 기독교의 구원관, 자본주의가 강조하는 욕망의 긍정, 심리학이 제시하는 행복을 향한 길. 이 중에서 어떤 게 내가 가야 할 길일까.

 

불교의 세계관과 일신교 세계관이 명백히 다르지만 세계종교 전통과 근대 이후의 행복론은 확연히 다르다. 욕망을 긍정하느냐, 통제하느냐. 전자가 근대 이후의 세게관이고 후자는 고전종교의 행복론이다. 고전종교가 욕망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가르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행복은 물질적 쾌락과 큰 상관관계는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심리학이 강조하듯, 행복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은 배우자로부터 느끼는 사랑, 막역한 사이에서 얻는 우정, 자신의 직업에서 성취한 업적 등이다.

 

딜레마는 그러한 요소를 얻기 위해서 최소한의 물질적 자원과 사회적 명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막상 행복을 향한 필요조건을 갖춘다고 행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니.

 

이 때문에 고대 현인들은 다 포기하고 토굴로 들어가 정신적 자아와 대면한 것일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0.09.10. 신고 공감 2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