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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 높은 성경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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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로마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은 책이겠거니 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처럼 딱딱한 성경 원문을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로 풀어 놓은 새로운 번역 성경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소설가로서 뭔가 예전에 본 바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책을 썼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도착했을 때, 그러한 심정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소설책을 연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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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로마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은 책이겠거니 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처럼 딱딱한 성경 원문을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로 풀어 놓은 새로운 번역 성경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소설가로서 뭔가 예전에 본 바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책을 썼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도착했을 때, 그러한 심정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소설책을 연상하게 하는 표지와 제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예상과는 달리 아주 깊이 있는 성경 강해서였습니다. 야훼의 밤이라는 저자의 책을 읽어 본 바 있기 때문에 저자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평신도 설교자로 교회를 섬겨오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소설가가 설교집이라니, 무엇인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그 수준과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왠만큼 설교를 잘한다고 하는 분들과 비교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저자의 설교를 읽어가면서 가장 먼저 받았던 느낌은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와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어 온 다독가라서인지 본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료들이나 예화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무슨 예화집에서 베낀 예화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었고, 또한 단어나 개념의 명확한 설명을 위해 사용한 자료 역시 자신의 지식 수준을 자랑하기 위해서 억지로 끌어다 붙힌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논의의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원어의 의미를 소개해 가며 설명하는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꼭 필요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만 소개하고 있었기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가 한문에도 능통하여서인지 중국 고전과 고사성어도 가끔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 또한 과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연세가 많은 목사님들께서 설교 중에 지나칠 정도로 고전이나 고사성어를 끌어다 인용하시는 것으로 인해 많이 괴로웠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일에 대해 약간은 민감한 편인데, 이 책의 경우는 무난한 정도라서 그리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느낀 것은 저자가 '부르심'이라는 개념과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개념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통해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개념 역시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지만, 저로서는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앞의 두 개념에 대한 설명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8:28절을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이 구절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일들이 잘 풀리지 않고 있지만 나중에는 다 잘 풀리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8절에 기록된 부르심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면 이 구절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28절에 기록된 부르심은 29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부르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지금의 고난이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리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구절에 대한 설명을 책의 앞부분에서 한 번 다루고, 또 다시 책의 마지막 부분인 8장에 대한 설명에서 다시 한 번 다루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눈에 계속 들어오는 것이 제게 무슨 중요한 의미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또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는 구절을, '복음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제시되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야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 역시 마음에 깊이 공감이 되는 데다가, 책의 여러 곳에서 몇 차례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었기에 마음에 깊이 새겨 놓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학교교육과 마찬가지로 설교 역시 중요한 내용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아쉬움 한 가지는 8장에 기록된 승리의 비결에 대한 설명이 여타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와 다를 바 없이 약간은 막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 스스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여지없는 실패뿐입니다. 다시 결심을 하고 다짐을 하고 노력을 하지만 또 여지없이 실패하고 맙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친히 이루시도록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저자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이 대답이 약간은 뜬 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 아쉬운 설명이 로마서 8장에 대한 설명에 와서 조금은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일을 영을 따르는 삶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었고, 따라서 승리의 비결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해방시켜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이러한 설명 역시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노력하는 것과,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려고 노력하는 것, 영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해방시켜 드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영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모든 영역에 있어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저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보려고 노력해 본 결과는, '우리 스스로 노력한다는 것은 어떤 죄의 문제를 지엽적인 측면에서 하나 하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내 삶의 총체적인 영역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뿐 아니라 선을 행하는 일까지를 포함해서 모든 면에 있어서 성령께 순종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직접적인 정리가 없었기 때문에 저자가 실제로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또,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율법은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지키라고 주신 것이고, 문제는 지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바울 사도가 자신에 대하여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율법도 지키려고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결국 '율법은 처음부터 구원얻는 조건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정독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로마서에 관한 여타 설교집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문제로서, 각각의 본문에 관한 설명과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는 교리적 진술을 하나로 엮어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본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보는 데에 있어서 상당히 탁월한 면을 드러내고 있는 수준 높은 설교집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저처럼 교리적인 문제에 관한 고민을 가지고 로마서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많은 깨달음과 도전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설교집이라 생각됩니다. 



k***r 2010.06.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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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건져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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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서 1~8장을 강해하고 있다. 사실 강해서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처음 들기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특히 나 같은 신앙서적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저자 조성기의 편안한 문장들은 나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바울 서신 중의 최고의 역작이라는 로마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내가 이제껏 깨닫지 못해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게 했던 ‘하나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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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마서 1~8장을 강해하고 있다. 사실 강해서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처음 들기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특히 나 같은 신앙서적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저자 조성기의 편안한 문장들은 나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바울 서신 중의 최고의 역작이라는 로마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내가 이제껏 깨닫지 못해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게 했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운 삶, 하나님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로마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수년에 걸친 조성기의 역작이라 할 수 있다. 3년 동안의 목회 내용과 신앙공동체와의 고민 속에서 얻어냈던 소중한 그의 깨달음을 일상에 지치고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운 삶, 축복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안내한다. 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그 안의 진리를 명확히 설명하기란 항상 난해하게 느껴지는 로마서이기에,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쓴 그의 서신 중 백미이기에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꼭 읽기를 강권하게 된다. 읽고 나면 잔잔히 전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게 될 테니까.

 

로마서는 1장에서 8장까지와 9장부터 16장까지, 두 부분으로 나누어도 무방할 만큼 내용이 명확하게 나뉜다. 9장부터 16장까지는 바울의 조국인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 구체적인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 바울의 개인적인 전도 계획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1장에서 8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도리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로마서 강해서를 1장에서 8장까지만 다루었던 것이다. 이를 총 6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데 서론과 후기까지 붙어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처음 서론만 읽었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로마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특별히 로마서를 묵상한다거나 강해서를 따로 챙겨보진 않았던 나였기에 서론에서 말하는 로마서의 특징만으로도 내 안의 약함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오면서 특별한 이변을 겪지 않고 나름 축복을 받으며 잔잔한 인생을 영위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나에 대한 기대를 접었었다. 한없이 훌륭하게만 보이던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인생에는 이런 영화로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짓을 했던 것조차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로마서가 어거스틴과 마틴 루터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그와 똑같은 일이 지금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저자의 말에 큰 도전을 받았다.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감을 품고 읽을 수 있었다.

 

처음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려준다. 이 부분에선 자아인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자아인식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어떤 가문, 어떤 교육을 받은 자로 생각하지 않고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명확히 서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낮게 생각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흔히 자기계발서에서 나오는 자존감에 대해서 똑같지만 생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못난이라고 생각하면 못난이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자신의 얼굴과 태도와 인생을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지만, 이 부분을 읽을 땐 누군가 뒷통수를 치는 것처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하나님이 부르신 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감당하기엔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이 쏙쏙 떠오르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종속되기 마련인데, 정말 그렇다면 이왕 노예가 되는 것 하나님께 종 노릇하는 것이 수지맞는 일이 아닐런지.

 

2장에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란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순 없지만 무언가로 인해 하나님을 알 수 있기에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무척 공감되었다. 나는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믿도록 교육받았기에 불신자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누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이상한 모양새를 많이 느낀다. 절대적인 주권자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부인하려고 하는 것 같이 말이다. 불신자 중에서도 선한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 사람 속에 숨겨진 선한 양심이 바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다. 인간이 벌이는 모든 죄악들을 생각하면 인간에게선 도저히 그런 선함이 나오지 못할 것도 같은데, 세상은 오묘하게도 그렇게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묘하게 수긍이 되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은혜로웠던 것은 3장의 「당신의 의로움 속으로 데려가소서」편이었다. 마틴 루터가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깨달았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나도 새롭게 깨달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껏 나를 괴롭히고 있던 죄책감이란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행위의 결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행위 이전에 먼저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나서

그 다음 행위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 p. 208

 

그리스도인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선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항상 실패하고, 왜 나는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까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의로운 행동을 하지 못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내가 의인이기에 의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내 의로운 행위로써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연히 구원을 받았고 내가 의인이기에, 앞으로 지을 모든 죄도 또한 죄사함을 받았기에 앞으로 의로운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면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오해를 또 할 수도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5장 「누가 나를 건저내랴」에서 규명해주셨다.

 

로마서는 논증적이기에 실제로 성경만 가지고 이해하려면 무척이나 힘이 든다. 이 책을 보기 전에 재미있게 로마서를 읽었을 때도 한쪽에는 주석 성경,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현대인의 성경까지 구비를 한 상태에서 읽었다. 그랬더니 그나마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깊이있는 이해는 역부족이었단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로마서가 편찬되게 된 것부터가 많은 죄악 속에서 더한 은혜를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을 실현시켜 주신 하나님의 재치에 놀라면서 이 책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j*****3 2010.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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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건져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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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책입니다. 어느 유명한 학자의 용어를 빌린다면 '위대한 위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위험'은 <로마서>일 것입니다. (초대하는 글 中에서)     책을 받아보았을 때 첫 느낌은 소설책인가 했습니다. 아마도 저자 조성기 작가를 소설가로 먼저 만난 탓일 것입니다. 책의 판형이나, 표지나, 구성이 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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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위대하면서도 위험한 책입니다.

어느 유명한 학자의 용어를 빌린다면 '위대한 위험'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위험'은 <로마서>일 것입니다.

(초대하는 글 中에서)

 

 

책을 받아보았을 때 첫 느낌은 소설책인가 했습니다. 아마도 저자 조성기 작가를 소설가로 먼저 만난 탓일 것입니다. 책의 판형이나, 표지나, 구성이 소설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인데, 이 책은 로마서 설교집이면서 동시에 로마서 강해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문학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바울의 독백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설교집이면서 동시에 로마서를 쉽게 풀이해주는 주석에 가깝습니다. 문체는 독특하게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평존칭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지성인의 날카로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성경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동서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현대 신학에서 로마서 최근 연구 동향까지 폭넓은 시야에서 <로마서>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미국의 법학 대학들 중에서는 법적인 논증 훈련을 위하여 로마서를 교과서로 택하는 대학도 있다고 합니다"(18). 그만큼 <로마서>가 조직적이고 이론적인 논증서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헬라어 원어를 중심으로 한 정확한 개념 정리였습니다. 저자는 매 장마다 헬라어 원어로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수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6장 1-11절에 반복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는 표현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2절과 10절의 '죽은'이라는 동사의 시제를 따져보면 직설 능동 과거입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어버린 자라는 뜻입니다. 11절의 '죽은'은 동사형이 아니고 시체를 말할 때 사용하는 헬라어 형용사 '네크로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여는 시체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해여 죽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완전히 죽었다는 것입니다"(336).

 

이러한 개념 정리 외에도 잘못 번역된 부분을 지적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8장 12-13절에서 '빚진 자로되' 하는 구절은 잘못 번역된 구절이라고 합니다. 표준새번역이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빚을 진 사람처럼 육신의 요구에 이리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394). 이렇게 이해를 하면 이해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헬라어를 통한 본문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등한히 다루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471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로마서 8장까지의 강해를 싣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세밀하게 로마서를 읽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본문도 가볍게 다루는 법 없이 같은 무게감으로 로마서를 읽어내려옵니다. 저자는 로마서의 가치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바울이 다른 서신들을 쓰지 않고 로마서 하나만 썼다고 하여도 그는 신약 성경 저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저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17-18). 이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로마서 8장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이 안에 복음의 핵심 중의 핵심이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제목이 주는 뉘앙스 때문인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누가 나를 건져내랴" 절규하는 바울의 독백이 재구성 되어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죄의 세력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 낀 '인간 바울', 복음의 능력을 덧입고 죄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사도 바울'의 몸부림과 인간적인 체취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그 건조함이 지나칠 정도로 개관적인 해석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작가적 상상력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조성기 '작가'에 대한 순전히 개인적인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로마서 연구의 의의를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곳에서는 개인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고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공부하는 목적이요 이유이기도 합니다"(20). 구원은 공짜이기 때문에 구원받기가 참 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는 깊고도 깊으며 높고도 높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그 구속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이 조성기 작가는 날카로운 비판력을 가진 분입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그 날카로운 비판력이 돋보입니다. 성경(복음)을 해석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아니하고,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 속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로마서>를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쪼록 이러한 수고가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고, 이 땅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c***1 2010.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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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건져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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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신앙생활해오면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기독교의 모든 교리가 로마서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원리도 가르쳐 주는 책이 바로 로마서이다. 그래서 인지 로마서는 매우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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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신앙생활해오면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기독교의 모든 교리가 로마서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원리도 가르쳐 주는 책이 바로 로마서이다. 그래서 인지 로마서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아마도 율법학자출신인 바울이 쓴 서신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이 책은 어렵게 다가오는 이러한 로마서를 쉽게 쓰려고 접근한 책이다. 저자는 로마교회에 보내진 이 서신서가 당시 로마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시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떠한 것인지 알고, 그 문제와 같은 현대 교회의 문제들을 짚어내고 있다. 물론 교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꼬집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로마서에서 찾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심정으로 서신을 띄우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로마서를 본문으로 하는 설교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성경을 해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짚어주고 있으며, 딱딱하고 지루한 기독교의 원리를 저자가 삶속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예들을 들어서 독자로 하여금 로마서를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바로 이 책이 흥미로운 것과 쉽게 쓰였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신학적인 책과는 달리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멀게만 느껴지고 우리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약 2천 년 전의 편지가 우리의 삶으로 확 다가오는 것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느끼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를 향한 저자의 사랑과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불신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만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질 정도이지만, 무엇보다 교회에 새롭게 등록되어 처음 성경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는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j****y 2010.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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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보고 책이 예뻐서 만지작 거리던 책인데, 읽어보니 목사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편안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로마서>를 현대인에게 맞게 풀어 설명해주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 삶의 방향, 고민들이 훌훌 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끼리 성경공부를 하는 아주 아주 작은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서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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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보고 책이 예뻐서 만지작 거리던 책인데,

읽어보니 목사님이 직접 설명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편안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로마서>를 현대인에게 맞게 풀어 설명해주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 삶의 방향, 고민들이 훌훌 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끼리 성경공부를 하는 아주 아주 작은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서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g*****n 2010.05.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누가 나를 건져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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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 중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바울’을 말한다. 그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빠져 들게 했다. 그는 누구나 알듯이 그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다른 사람보다 못할게 없었다. 그런 그가 변화되어 일평생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갔다. 물론 그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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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 중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바울’을 말한다. 그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를 빠져 들게 했다. 그는 누구나 알듯이 그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다른 사람보다 못할게 없었다. 그런 그가 변화되어 일평생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갔다. 물론 그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힘이 그를 변화시켰지만 과연 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그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신약의 많은 부분을 쓴 바울. 사도행전에서부터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는 나의 눈과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로마서. 여기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후기를 통해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는 1장에서부터 8장까지 쓰여 있다. 이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의 도리가 있기 때문이다. 9장부터 16장까지는 구원문제라든지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 개인적인 전도 계획 등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14장에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나의 행동으로 인한 다른 믿음의 사람들이 시험 들게 하지 말라는 내용의 구절인데 이 구절로 인해서 바울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무엇이 나를 건져내랴’와 ‘누가 나를 건져내랴’에 대해 설명한다. 무엇과 누가. 그리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누가 나를 건져내랴가 더 깊은 의미로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 믿음에 있다고 하지만 그 믿음 또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무엇이 아닌 누가가 맞는 것이다.

 

사도 요법.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일이여서 그런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나의 어려움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봐주는 것. 지금의 나는 믿음생활에서 보자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삶을 살고 있다. 고치려고 해도 자꾸 넘어지고 만다. 그러나 한 가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도요법이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이 똑같이 힘들어 할 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의 아픔,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인지 알고 있기에 나는 그것을 잘 기억해 두려 한다.

 

이 책은 단숨에 읽기에는 너무 힘들다. 아니 벅차다고 해도 될 것 같고 곱씹어 봐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한 번에 읽고 넘기기에는 너무 쉽게 넘겨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로마서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면 더 알아가고 싶다면 몇 번이고 봐야 할 책이다.

m*******v 2010.06.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