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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을 알게 된건 중학교때 어울리지 않게 체육샘께서 강추하셨기에 읽어본 책이다. 일본책을 접한게 그때가 처음이었을게다. 미우라 아야꼬의 책을 기회되면 또 보리라 생각을 했었다. 그후로 대단한 애국자는 아닐지언정 반일감정때문에 일본책을 가까이하는 기회는 가급적 물리쳤었다. 그런 내게 얼마전부터 일본의 서정적인 책들이 다가왔다. 코끼리의 등을 통해 감성도발이 되었고 가스미쵸 이야기를 선물받고 급기야는 환상의 빛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이 책은 죽음을 둘러싼 중단편 4편이 실렸다.
환상의 빛 어느날 갑자기 기차가 가는 방향으로 걸어가 전차에 치여 자살한 남편 얘기다. 징글징글하게도 가난한 유년 시절을 지낸 유미꼬에게 눈에 들어온 소년이 있었다. 동네사람의 후처가 데리고 들어온 아이로 엄마가 먼저 죽자 자신의 의지로 중학교만 마친다. 청혼을 받고 25살의 새댁은 아들을 낳아 3개월이 되었을뿐이다. 유서도 없었고 아무런 자살할 이유가 없는 죽음이었기에 그 모든 상황을 잊고자 재혼을 한다. 남편이 필요해서 재혼한게 아닌 죽은 남편과의 삶이 오롯이 살아 있는 그 지방을 떠나고자 바닷가 마을로 간다.
남편에겐 8살된 전처딸이 있었으니 이 아이가 살갑게 굴고 반신불수인 시아버지에게 전남편 아들인 아이가 기꺼이 안기며 좋아해 정착하는 이유가 된다. 그런대로 단란한 가정에서 웃음꽃이 피어나지만 늘상 유미꼬에게 전남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이고 궁금증이다. 그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옆사람에게 대화하듯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한다. 마치 편지를 쓰듯 다정다감하게 예의를 갖춰 속삭이듯 말한다.
전남편에게 묻는다. 왜? 그랬느냐고. 결국 바닷가의 명멸하는 환상의 빛을 보면서 유미꼬는 자신이 혼자서 결론을 내린다. 그 빛이 착각을 일으키게 한거라고. 전남편도 비슷한 그 무엇을 보고는 기차가는 방향을 걸어간 것이라고. 남편이 말한다. "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 전남편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던 유미꼬에게 이보다 더 명쾌한 남편의 대답은 없었다. 유미꼬는 그후론 혼잣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에겐 혼을 빼가는 병이 이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밤 벚꽃 아야꼬는 젊은날 시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 시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남편과 이혼을 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광경을 기억하며 살 순 없다는 거였고 전남편은 불륜의 댓가로 순순히 이혼했으며 다시 재혼을 했다. 아야꼬는 아이를 데리고 벚꽃이 멋지게 피는 이 집에서 오랫동안 둘이 살았다. 다른 집 벚꽃보다 크기가 크고 아름다운 벚꽃이 이제는 어여쁘다 느끼지 못하는건 인생의 전부였던 아들이 담배 사러 가다가 사고사했기 때문이다.
드넓은 저택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집에 아들이 없는 빈 공간이 너무 커서 문에 하숙생구함을 부친다. 연락해 오는 이가 없다가 전남편이 발견하곤 제지한 담날 인상 좋은 젊은이가 문의를 한다. 없던 일로 한다니 딱 하룻밤만 머물 것을 요구한다. 갈등하는 아야꼬에게 집안의 전기 관련일을 서비스 하기로 하고 응낙한다. 이불까지 가져와 하루 요한다는게 새신부와 신혼첫날이라니...것도 아들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밤 벚꽃을 보겠다니...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들른 전남편의 아내가 수술을 할거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한다. 그 옛날에 못본걸로 하고 단 한 번만 용서해 주겠어요/라고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야꼬는 안다. 그 당시의 자신은 절대 이해못하는 성격이었음을. 그게 최선이었음을.지금와 이런 생각이 듦은 세월의 힘인것을. 한때의 부부였던 연으로 이제는 노년의 삶이 되어버린 동지같은 입장에서 전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이 몹시도 애처롭다. 낙화하는 밤 벚꽃같은 인생의 막바지에서 감정은 초월 그 자체다.
박쥐 불륜녀를 만나러 가던 중 우연히 만난 친구가 전해준 소식은 란도가 죽었단다. 학교적 란도는 우울한 분위기고 짱이었지만 의리가 있었다. 약한 친구들은 괴롭히지 않았지만 한 번 일을 벌리면 아주 잔인하게 마무리했다. 친한 일이 없던 란도였는데 란도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왜 그런줄도 모르던 어느날 아주 멀리 여행을 제안받는데...친해서가 아닌 사춘기 객기로 함께 동행한다. 란도가 보여준 미모의 여학생과 육체의 맛을 보기 위함.자신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말은 거절하고 동행. 란도가 일을 치루는 동안 란도의 날카로운 칼로 란도의 가방을 찢다가 혼자 돌아온다. 그 하늘에 박쥐가 날고 있었다. 그후로 란도는 학교에 안왔는데...그 란도가 죽었다네. 갑자기 그날처럼 박쥐가 날고 불륜녀의 얼굴이 란도의 그녀 얼굴처럼 보인다. 그날처럼.
침대차 어렵사리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노력때문이 아니다. 영 맘에 들지 않는 상사와의 합작품인데 그렇게 밉던 상사의 그늘진 뒷모습(어깨)에서 왠지 알 것도 같은 모를 것도 같은 깊은 비애를 맛본 순간 상사가 가여워진다. 그 마무리를 위해 저녁 시간 침대차를 예약한다. 조용한 자리를 잘 잡았다 생각했는데 옆칸의 세련되고 부유하게 늙은 노인이 속울음을 겨워낸다. 애간장을 끊어내는 듯한 울음은 비어져 나온다. 장소탓도 있지만 술기운으로도 잠을 청할 수 없고, 더더구나 노인에게 우는 연유를 물을 수는 없다. 그런 와중에 문득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난다. 부모도 없이 의사인 할아버지가 키웠는데 자신의 집에 놀러 왔다가 물에 빠져 죽을뻔한 이후로는 데면데면해졌다.그러다 의과 대학3학년이던 친구는 산악부였는데 어느날 기차서 떨어져 죽었기에 문상을 갔었다. 그 할아버지와 침대차 맞은편 할아버지가 묘하게 오버랩된다.
묘하게도 다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무척이나 비참하고 구슬프게 씌여졌다기보다는 담담하고 회상하는 일들이라서 엄청 아픈 깊이로 다가오지 않았기에 눈물 찔찔 짜는 상황은 없었다. 감정이 배제된 상태, 아니 맘속 바닥에 깔려진 감정이 다 소진되어 담담해진 상태같은 글들이다. 슬픔도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단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던지간에 죽음을 앞에 놓고는 묘한 기분이 될 것이다. 하물며 그게 부르심이 아닌 어떤 선택이거나 사고사일 경우 그 충격은 가히 클 수 밖에 없다. 그사람과의 이어진 연관된 모든 일상과 기억을 접하게 될때마다 그 고통은 폐부를 끊어내는 처절한 울부짖음이리라. 납득할 수 없는 이유일때는 미치지 않음이 다행이리라. 남겨진 자의 고통은 그렇게 묻히거나 치유되지 않음은 살 수 없음이리라. 주어진 날들에 감사하며 몸도 맘도 건강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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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헷갈리는 날이 있다. 그 감정이 싫어서 오랜 시간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요즘 일본 소설 2권을 읽고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 때문에 힘들다. 꼭 내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은 착 가라 앉고 “책을 뭐 하러 읽을까”라는 생각만 든다. 누구든 만나 우울함을 하소연 하고 싶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 할수록 외로움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약과 같은 순간의 기쁨은 있지 않은가? 이상한 것은 영화는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할지라도 순간의 감정이입 때문에 눈물은 흘릴 만정 그렇게 마음이 아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그런데 왜 소설은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고 나아가 아프게 만들까? 소설은 언제든지 등장인물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 번 더 질문할 수도 있고,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알기 위해서 장시간 데이트도 할 수 있고 또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마음을 털어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은 감정이입에 빠져들 수가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많은 청년들이 자살을 한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환상의 빛’을 잃고 감동을 받았다면 감정이입이 된 결과일 것이다. 이 소설의 공간적인 배경인 소소기 바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파도소리는 시끄럽고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이곳을 떠나는 곳이다. 즉 삶의 아픔이 배어있는 곳이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낭만적인 바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소소기 바다에 남편과 사별하지 7년이 되었고 재혼한지 3년이 된 32살의 유미꼬가 살고 있다. 그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살한 전남편을 잊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은 남편으로부터 도망하기 위하여 현재의 남편인 다미오와 살고 있다. 유미꼬는 현 남편인 다미오와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철길을 따라 걷다가 전차에 치어 자살한 남편의 뒷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왜 유미코는 남편과 사별한지 7년이 되었고, 현 남편과 별문제가 없이 잘 살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선택한 전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을까? 사랑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떠난 사랑을 못 있어 하는 것이다. 어리 섞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삶은 고통스럽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미꼬의 사랑에 공감하는 이유는 내 품을 떠난 사람에 대한 지고지순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유미꼬는 어린 나이에 큰 상처가 될 사건들을 경험한다. 가난한 목조 아파트에 살고 있는 유미코의 아버지는 포장마차로 라면을 팔며 생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젊은 부부가 보이지 않아 걱정 끝에 그 집을 찾아 갔다가 온 식구가 자살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유서에 장례비용으로 써 달라고 약간의 돈을 책상위에 올려놓았는데 그 돈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은 유미꼬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오랜 시간동안 고통을 당하게 된다. 또 어머니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건축현장에서 밀차를 몰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뒤에서 어머니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아무리 여자라도 농땡이 피우면 돈 못 줘“라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이때 유미꼬는 그 자리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다가 초경을 맞는다. 이때 유미꼬는 초경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가난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원망한다. 더군다나 할머니의 실종사건은 유미꼬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는데 할머니를 죽이고 그 사체를 집에 묻어 두었을 것이라는 경찰의 추측으로 인해 온 집안을 파헤치고 만다. 이렇게 힘든 시간에 그 동네 홀아비에게 후처로 들어온 여자가 데리고 들어온 남편을 만나게 된다. 이때 어린 유미꼬는 별 특징이 없었던 전남편을 멀리서 몇 번씩이나 훔쳐본다. 이 첫사랑 때문에 유미꼬는 자살한 전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을까? 이제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 된 유미꼬지만 그녀에게도 누군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을 것 같고 자연스럽게 그 대상이 전남편이 되지 않았을 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환상의 빛에서 중요한 배경은 가난이다. 책에는 남편이 왜 자살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난 자살배경으로 가난을 꼽고 싶다. 왜냐하면 남편은 자살하기 열흘 전에 자전거를 도둑맞았는데 그 자전거는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 산 것이다. 그때 유미꼬의 형편은 유이치가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고 출산비용이나 아이를 키우기 위한 준비로 돈이 필요한 시기였지만 돈은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 남편은 자전거를 살 여유가 없으니까 자전거를 훔치기로 결심을 한다. 이왕 훔칠 거면 부자 것을 훔쳐야겠다며 정말 자전거를 훔쳐 왔다. 이렇게 가난했지만 유미꼬는 남편을 만나 훨씬 더 행복하다고 남편에게 말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열흘 뒤에 남편은 철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자살을 했다. 유미꼬는 죽은 남편을 추억할 때마다 항상 남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왜 유미꼬는 항상 자살한 남편의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형기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떠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났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떠나는 사람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유미꼬가 남편을 사별한지 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향한 애절함과 안타까움,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남편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왜 떠나야만 했는지 그 절실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떠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남아있는 사람의 고통은 얼마나 큰가? 유미꼬처럼 비 오는 날, 해가 맑은 날, 아니면 눈이 내리는 날, 아니면 파도가 잔 날등 모든 기후조건도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된다면 어떻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또 하나 떠나는 사람은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떠난다고 하지만 그 떠남을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말 가운데 가장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말은 “떠날 때가 되었다”고 하는 말이다. 떠나는 사람은 때를 알고 있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하다. 그리고 그 때를 인정하기 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하나? 가난하지만 3개월 된 유이치를 키우며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꿈꾸던 유미꼬에게 남편은 아무런 언질도 없이 또 어떤 이유도 없이 자신이 정한 때가 되니까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 남겨진 자의 고통은 애절함과 안타까움, 쓸쓸함이다. 그 고통을 떠나는 사람이 알고 있다면 그는 사랑을 한번 코풀고 버리는 휴지와 같이 취급하는 사람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떠나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은 사랑의 아픔을 이기게 하는 힘이 있다. 유미꼬가 점점 더 현 남편인 다미오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전 아내에 대하여 질투하는 이유는 세월이 지나기도 하지만 육체적인 사랑에 눈뜨기 때문이다. 자신을 떠난 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지만 현실 속에는 나와 함께 살을 섞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남자가 있다. 이제는 이 사람이 진정한 나의 사랑임을 유미꼬도 알고 있다. “전 부인과 저 중에 누가 더 좋아요” 이 한마디의 말속에 다미오를 향한 유미꼬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래서 내 삶의 의미가 되었던 사람이 내 곁에서 홀연히 사라졌을 때 남아있는 사람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까? 이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환상의 빛을 통하여 사랑의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픔은 내 육체에서 혼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상처를 도려내기도 하고 자신을 성찰해 보는 과정 속에서 삶은 더 나은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을 한다. ‘유미꼬는 이제 전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가 비쳤습니다. 아아, 이것이 불행이라는 것이구나. 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80쪽 인용) 유미꼬는 이제 레일 위를 힘겹게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멀리 밀쳐 두고 안도감 속에 누워있을만큼 깊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래 영원한 사랑은 없어 사랑은 버스가 떠나 뒤에 또 다른 버스가 오는 것처럼 가고 오는 거야“ 왜 이런 생각이 들까? 그것은 영원이라고 믿었던 사랑이 한 순간에 사라졌을 때 오는 아픔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자연히 치유가 되는 것이다. 환상의 빛은 없다. 있다 할지라도 한순간 머물다 사라지고 만다. 빛은 아쉽게도 오늘을 비추는 현실의 빛만이 있다. 애절함과, 쓸씀함, 그리움은 이 현실의 빛 앞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마 그런 감정들은 소소기 바다가 풍랑을 일으키는 것처럼 때로 내 마음을 강타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풍랑에 무너진다면 진정한 사랑은 아니지……. 환상의 빛은 4개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식의 소설이다. 4개의 작품의 주제는 꼭 같다. 단편이 시작되는 곳의 표지는 다 검정색이다. 검정색은 죽음을 상징한다. 즉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주고 영원히 살아있을 것 같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갔을 때의 상실감과 고통,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을 아무리 부정한다 할지라도 그 현실을 인정하고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인정하고 그 삶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서정적인 문체를 통해서 속삭이는 것처럼 우리 곁에서 애절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삶은 부조리 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부조리한 삶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이란 깨달음이 있다. 영화 시사회도 응모를 했으니까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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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은 바다를 배경으로, 남편, 자식,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삶의 중심 가운데 존재하는 죽음을 맞딱뜨린 4명의 주인공을 소재로 한 4편의 중편, 단편 소설집이다.
<환상의 빛>의 주인공 유미코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3개월 된 갓난아이를 남기고 떠난 남편을 향해 편지를 쓴다. 남편은 소박하지만 단란했던 가정을 버리고 술에 취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선로를 터벅터벅 걷다가 죽는다. 경적소리에도 브레이크 소리에도 꿈적하지 않고 자신의 뒤를 쫒는 기차에 그대로 몸을 맡긴 남편의 자살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유미코. 7년의 세월동안 그 날을 떠 올리며 그 사건이 일어나기 더 오래전의 과거와 그 사건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넘나들며 그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너버린 남편에게 말을 건네보지만, 그렇게 독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의 끈을 내려놓은 그 가슴아픈 이유를 유미코도 나도 찾아 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죽음에 관해 파헤치며 답을 알아가려는 그녀의 고백 속에서 그녀는 삶에 대한 답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삶 주변에서 억척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생명력으로 삶의 고귀함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요한 바다에 고기잡으러 떠났던 이웃이 큰 풍랑에 돌아오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다 파도의 고요함 속에 숨어있는 바다의 본성을 깨닫고 뱃머리를 돌려 살아 돌아온 이웃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바라보며, 잔잔한 바다의 환상적인 빛은 곧 심해의 입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문득 봄햇살에 반짝이는 초록바다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남편도 선로 위에서 이런 빛을 바라보다 이 빛이 심해의 입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혼을 놓아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결론짓게 된다.
삶의 중심에는 살아가는 이야기만 있지않다. 삶의 끝이라 생각되는 죽음이 항상 삶 주위에 있다. 남편의 죽음, 자식의 죽음, 친구의 죽음...이 모든 상실의 아픔을 누구나 가슴 깊이 묻어두고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계기들을 통해 그 아픔이 새록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머지 3편의 글들 또한 그러한 삶의 한 가운데서 맞이하는 죽음의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남편의 배신과 아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50년의 인생이 후회스럽던 어느 날 밤벚꽃을 보며 새로운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가난한 부부의 대화를 들으며 새로이 여인으로 다시 살아내려는 <밤벚꽃>의 주인공. 불량친구의 죽음을 통해 기억해 낸 과거 징그러운 박쥐를 보는 듯한 자신의 불륜의 모습을 직시하게 되는 <박쥐>의 주인공. 중요한 계약건으로 침대차를 타고 여행 중 만나게 된 어느 노신사의 울음을 통해 떠올린 친구의 죽음과 주변인의 고통을 대면한 <침대차>의 주인공. 이들 모두 어느 날 문득 맞딱뜨린 죽음이라는 상실의 문제가 한 번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가운데서 소리없이 찾아와 인생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됨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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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정성이 짙은 글을 하나 읽어본 듯하다. 가슴 아리게 다가드는 선율이 아득한 바다를 떠올리게 하고, 안개 자욱한 철길을 기억케 한다. 내밀한 가슴이 따뜻함을 밀어내고 그 공간에 그리움만 담아, 먼 허공에 자꾸만 눈길이 향하게 한다. 주인공의 그리움의 실체는 아이의 영상을 통해 그에게 다가온 안개일 듯하다. 신기루처럼 왔다가 아이라는 하나의 흔적만 남기고 가버린,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의 또 다른 모습일 듯하다. 글 속의 인물은 32살의 생일을 맞는다. 그녀는 소소기라는 가난한 해변 마을로 재혼해 온 지 3년이 되었다. 그런데 전철의 길로 사라져 가버린 전 남편에게 편지를 쓰듯 말을 건다. 이야기는 시작되면서 소소기의 해변 마을을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그 그림은 언어로 그려진 영상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해명이 있는 어촌 마을, 강과 모래가 절묘하게 어울려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내는 바닷가, 그녀는 그 속에 있다. 그곳에서 당신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신은 그의 첫 번째 남편이다. 그는 그에게 아릿하게 다가왔다가 갑작스럽게 아득하게 사라져 간다. 아이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오사카 전철 선로를 걸어서 그렇게 가버린 것이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그렇게 가버렸으니, 남겨진 이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후 그녀는 멍한 상태로 그렇게 생활이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역순행적인 이야기는 계속되어 간다. 그녀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떻게 당신을 만나고, 당신이 죽은 후 어떻게 생활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주인의 소개로 새로운 선을 보게 되고, 망서림 끝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서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까지 이야기가 이루어져 간다. 현재의 남편과의 만남과 그의 아이와의 교감 그리고 현재의 일까지 두루 당신에 대한 기억들 틈사이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간다. 그녀는 그의 첫 남편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걸음 속에 당신이 옆에서 말을 걸고 함께 한다. 그 따스했던 자리가 역으로 독자들에겐 가슴 서늘한 자리로 다가온다. 독자들은 주어진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에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현 남편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 보듬어 주는 남편이 더욱 멋스럽게 보여지기도 한다. 그녀는 현 남편도 자신보다는 먼저 간 옛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 대용으로 자신을 데리고 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옛 남편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자위하는 일로 삼기도 한다. 이야기는 결국 옛 남편의 죽음 이유를 찾아나서는 내용이다. 남편은 아내의 전 남편을 향한 기억을 알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람은 혼이 빠져 나가면 죽고 싶은 거야.” 그 이야기가 그녀의 뇌리에 깊숙이 박힌다. 그리고 소소기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 바다에 떠 있는 빛이 온 몸으로 밀려들고,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 남편의 죽음을 전철 선로를 통해서 빛들이 쏟아져 남편에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것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환희의 빛으로 채색된다. 내용이 서정성과 환상적인 내용들로 가득 찼다. 글을 읽으면 이미지들이 풀풀 날아서 떠돌아다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이미지는 시각이 되었다가 청각이 되기도 하고 촉각이 되기도 한다. 이미지들의 향연이라고 해도 좋을 듯한 언어, 이것이 그림으로 화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상으로 되어 세인들 앞에 나왔고 절찬리에 상영되었다고 한다. 내용보다는 언어의 색깔이 아름다운, 그윽한 글.......아무리 영상으로 담아내려고 해도 독자의 눈요기는 충족시켜줄 수 없을 듯하기도 하다. 아련한, 이어도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 공간을 그려 내고 있다. 오랜만에 언어의, 이미지의 잔치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이 외에도 3편의 단편이 더 들어 있다. 밤 벚꽃, 박쥐, 침대차가 그들이다. 분위기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미야모토 테루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글들을 읽으면서 인간 존재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다 읽고 참으로 감각미를 잘 살린 멋스러운 표현의 글을 읽었다는 느낌에 사로 잡혀 한참이나 비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어를 통한 미를 즐기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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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이 소설 괜찮네! 최근 읽은 일본 소설이 사회파나 신본격 추리소설 아니면 칙릿소설인지라 식상하고 느끼한 것이 구토 일보 직전이었다. 설국이나 빙점 같은 서정성 있는 작품은 요즘 안나오는지...의문이 들 때쯤 이 책 '환상의 빛'을 손에 잡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미야모토 테루가 선보이는 부서질 듯 덧없으면서도 아름다운 한편의 산문시"라는 카피나 " 베네치아, 밴쿠버, 시카고 국제 영화제 등에서 수상작 원작소설"이란 띠지의 문구에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으랴. 내용이 밋밋한 상술의 카피라면 다시는 일본 책 손에 잡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환상의 빛' 표지를 넘긴다. 아 참! 흑백의 표지는 별로 감동을 주지않는다. 영화를 찾아보니 흑백의 깊이가 살아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스틸사진이 많더만 왜 책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평범하고 밋밋한 사진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책을 펼치고 읽어가니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중편과 세 단편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이다. 중편 '환상의 빛'을 단숨에 읽어갔으니 문장의 흡인력이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화자인 유미코는 어느 날 저녁 남편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3개월 된 아들을 두고 문제없이 알콩달콩 살고있었는데 느닷없는 남편의 자살은 유미코의 머리 속을 흔들어놓는다. 5년 후 유미코는 작은 어촌에 사는 다미오와 재혼하여 새 삶을 살아가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전남편의 기억을 어찌할 수 없어한다. "왜 죽었을까, 왜 당신은 치이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선로의 한가운데를 걸어갔던 것일까, 대체 당신은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는 죽을려고 하는 사람의 그 마음 정체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는다.
경제대국 일본에도 이렇게 빈곤하게 살아가는 지역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면서 이 책의 제목 '환상의 빛'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바닷가에서 자랐고 지금도 광안리 해변가에 살고있으니 바다가 주는 환상의 빛이 어떤 건지는 알겠다. 어느 고요한 날 바다는 잔잔해지고 햇빛이던 달빛이던 그 빛으로 품어내는, 마치 물고기 떼가 비늘을 드러내며 팔딱이듯 반짝이는 그 광경을 보노라면 그저 마음이 텅비워진다. 인간의 애욕과 좌절마저 사라지게 하는 그 빛. 조금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바다가 주는 비움의 평온함은 복잡한 삶에 활력이 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너무 비워져 극단적 감흥에 젖어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환상의 빛 속에 숨어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작가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으로 풀어낸다.
그러고 보면 다른 단편들도 '죽음'의 서늘함이 플롯의 인프라 처럼 깔려있다. 밤 벚꽃! 이 작품도 참 일본풍 서정이 물씬거린다. 아들의 죽음과 전남편, 막 결혼한 새내기 부부의 아름다운 출발이 묘하게 어울리는 밤 벚꽃의 정취와 아야코 깨달음은 사뭇 철학적 사색으로 다가온다. 친구의 죽음에 얽혀있는 '박쥐'는 그 서걱거림이 소설 속에 나오는 잘 갈린 칼날 그대로다. '침대차'에 흐르는 친구의 죽음까지, 작가의 내면에서 발산되는 간단치않은 상실의 감각은 마치 이 책을 읽고 감응할 수 있는 독자의 공감력을 테스트하는 듯하다. 삶의 연륜 만큼 느낌의 공명이 다를 것이기에 각자의 울림통의 크기에 따라 다른 소리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 누구나 한번씩 홍역을 앓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지 않았는가. 죽음에 숨어있는 코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참 괜찮은 책이다. 죽음의 메타포는 무얼까? 그것은 삶의 의지가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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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소설이라서 변변치 않은 리뷰를 하나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스치듯 지나간, 등장인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에피소드를 요약하면 이렇다. 남편의 죽음 후, 주인공은 재혼하기로 결심하고 재혼남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린다. 온갖 상념들로 복잡한 심경. 재혼을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는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된다. 조선 출신의 한 여인.이 대목은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주제와도 거리가 있는 에피소드임에도 각별히 와 닿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의 성격을 가진 이에게는 더 잦은 빈도로 일어 날 수 있다. 타인의 의도하지 않는 선의에 의해 내 삶의 여정이 바뀌거나 최소한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되는 경험. 또는 해야하는데 미루게 되는 일들. 인간의 삶은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겉으로는 누가 떠밀어서 행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 알 수 밖에 없는 일들이라서 그렇다. 삶은 단단해지는 과정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남편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마음 속의 응어리로 남겨 놓을 것이 아니라 빛이 되어 흩어지도록. 삶이 단단해 질수록 환상의 빛은 빨리 사그라질 것이다. #미야모토테루 #환상의빛 #일본소설 . 환상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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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연있어 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표지였다. 이 표지덕분에 내용도, 작가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많지 않은 페이지 속에 길지 않은 네 개의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각각의 아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만나 본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환상의 빛"이란 이야기였다. 사실 이 책의 이야기 중에 이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내용인즉슨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여인이 재혼을 한 후에도 전남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고 묻고 또 묻는 이야기이다. 다른날과 같이 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남편은 전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여인은 그런 남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냥 슬퍼할 수도 없다.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죽음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슬퍼할 수 있을까? 이후에 이어진 이야기 속에도 '죽음'이 등장한다. 때론 아들이, 때론 친구가.. 바로 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의 이야기도 있고, 사라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스쳐가듯이 그 죽음에 대해서 알게 된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울부짖으며 슬퍼하기도, 때로는 그 사람과 있었던 지난일을 회상하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 경우가 다르다고는 해도 '죽음'으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허전함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경우라고해도 곁에 있던 사람을 잃게 되는건 마찬가지니까.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마음이 글로써 잘 표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섬세하게, 요란하지 않게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사실 일본 문학이라고 하면 추리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로 인한 잔인함과 기발함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읽어온 책들 중에 추리 소설이 물론 많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지금까지 보아온 일본 영화의 경우 식후에 보면 좀 위험할 것 같은 잔잔한 내용의 영화들이 많았다. 글과는 달리 영상으로 표현된 잔인함을 보길 싫어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더 그런지는 몰라도. 결론은 이 책은 책보다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인한 사람들의 겪는 고통과 아픔등을 표현한 영화. 살짝 마음을 가라앉히는 경향이 있긴해도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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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 6월의 마지막 날, 모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또 한번 사람들을 충격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하곤 문득 떠오르는 한 구절이 있다. '사람의 혼이 빠져나가면 죽고 싶어지는 법이야'하는... <환상의 빛> 속에 담겨졌던 이 구절이 입가를 멤돈다. 그도 혼이 빠져나갔던 것일까? 아마... 그랬겠지. 하지만 아무리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게 삶 아닌가? 혼이 빠져나갔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이런저런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 한편에 자리한 <환상의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서른 두 살의 유미코, 한 여인의 독백이랄까, 편지글이랄까... 그녀의 음성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이어진다. 지금은 재혼을 해 현남편의 아이 도모코와 전남편의 아이 유이치와 함께 사는 그녀. 칠년전 자살한 남편에게 말을 걸 듯, 이야기하듯 나누는 대화는 더없이 편안하기도 하고 서정적인 묘사로 눈앞에 그려지듯 다양한 풍경을,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낸다. 아무 이유도 없이 전철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걷다 죽음을 맞이한 남편이 죽은 그날에서부터, 그녀가 처음 남편을 만난 초등학교 6학년의 추억, 재혼을 위해 소소기 해변마을로 가는 그녀의 여정 등을 남편에게 털어놓듯 이야기한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속이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그러고 보면 저도 어쩌다 그 빛나는 잔물결을 넋을 잃고 바라볼 때가 있습다.' - P. 10 -
길들여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일본 문학하면 많은 이들이 그렇듯 미스터리 추리소설에 목메는 버릇이 언제부터인가 생겼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미여사, 온다리쿠...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그들의 이름 뒤에 숨어서 조금더 자극적이고, 예상치 못한 반전과 트릭에 경악하고 즐거워하던 것에 너무도 익숙해 있었던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환상의 빛>은 오랫만에 '문학'에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편지글처럼 대화하듯 들려주는 한 여인의 잔잔하고 서정적인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죽음을 두고 떠올리는 삶의 수많은 그늘과 빛속에서 잊지 못하는 남편을 그리는 그녀의 이야기가 참 애절하면서도 따뜻하다. 표제작인 [환상의 빛] 이외에 [밤 벚꽃], [박쥐], [침대차] 등 모두 네편을 담아낸 이 작은 책을 통해 서정 문학의 정수를 이어가는 작가 '미야모토 테루' 라는 이름과 마주하게 된다.
'빗속에 잠깐 들른 서점에서 모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을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 했다는 미야모토 테루! 그가 읽었던 단편소설이 어떤 작품이었을지 무척 궁금하다. '현대 일본 서정 문학의 진수' 라고 불린다는 그의 이번 작품 <환상의 빛>은 그렇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어찌보면 요즘 사람들이 찾는 색다른 재미도 갖추지 않았지만 진정한 '이야기'만으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을것 같다.
사고로 외아들을 잃고 남편과도 이혼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밤 벚꽃], 오년전 죽었다는 학창시절 짧은 인연을 가진 친구의 소식, 그리고 어지러이 날던 박쥐의 모습과 현재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박쥐], 침대차에서 떠올리는 어린 시절 가깝던 한 친구와의 추억과 그의 죽음을 그린 [침대차]... 하나같이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차분하고 조금은 무겁게 이끈다.
'나는 소름이 끼쳤고, 언제까지고 박쥐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둔하고 까만 눈을 가진, 새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물의 추악한 춤이며, 땀과 허무로 처발라진 관능의 무수한 비밀이며, 기괴한 표정에 조종되는 그 영혼들의 어쩔 수 없는 술렁거림이었다.' - P. 135 -
'죽음'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편들속에 그려진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특별한 사건에 집중한다기보다 오래된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그 시간을 한 폭의 화폭에 모두 담아 놓으려는듯 섬세하게 디테일을 살려 놓는다. 단편 [박쥐] 에서 박쥐들이 어지러이 나는 모습을 표현한 위의 짧은 글이 이야기의 분위기와 두드러진 심리 묘사를 잘 표현해준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말이다. 삶 또한 죽음과 작은 선 하나를 마주하고 서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비쳐지는 '환상의 빛'이 죽음을 부르는 빛이 아니라 삶을 더 환하게 비춰줄 희망의 빛이 되길...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네편이 뿜어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애절하고 잔잔한 서정적인 문장 문장이 가슴을 편안하고 따스하게 만든다. '익숙한' 기존의 일본문학과는 조금 달랐던, 그래서 더 느낌이 좋았던 '색다른' 환상적인 빛을 바라본다. 그리고 미야모토 테루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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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속에 고통의 기억이나 억눌렸던 감정이 하나쯤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그런 감정들은 마치 잔잔한 바다처럼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대로 몸 속에 감춰져 있다가 어느날 폭풍이 휘몰아치면 그 거센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바다처럼 흔들리고 울부짖게 된다. 한 차례 그러고 나면 몸 속에 담겨져 있던 감정의 찌꺼기는 해소가 되고 감정은 사라진 채 기억만을 간직하게 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