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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더 된듯 하다. 아이들과 함께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하는 『우동 한그릇』이라는 연극을 보기시작한것이 말이다. 매년 왜 그 연극을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이야기인데도, 난 아이들과 함께 그 연극을 본다. 북해정 주인이 우동그릇을 깨뜨릴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길 반복하면서 작년에도 두 번이나 봤었다. 따끈한 우동국물이 떠오르고, 그 와 함께 인간애가 떠오르는 공연. 공연을 보고나서는, 몇일동안 아이들 입에서 우동먹자는 이야기가 줄곧 흘러나온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제야 원작을 읽게 되었다.
『우동 한그릇』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이 배경이다. 일본은 매년 해가 바뀔때 우동을 먹는 풍습이 있단다. 해가 바뀌기 바로전 작은 아이와 큰 아이와 함께 들어와 우동 한그릇을 시키는 엄마가 있다. 우동집 여주인은 서비스를 더 주자고 하고, 남주인은 미안해 한다면서 반묶음의 우동을 더 끓여서 내준다. 우동 한그릇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가족.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배웅을 받으면서 다음해에 또 오고싶어하는 가족. 150엔하던 우동한그릇의 값을 올릴수 없는 북해정의 주인.
『우동 한그릇』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동 한 그릇 / 켄보우의 행진곡이 들려온다 / 부치지 않을 편지-그대들에게 / 네덜란드 감자 / 산타클로스가 된 소년 / 어머니의 눈물 -제1화 하얀 카네이션 -제2화 바다여 / 켄타와 아빠 까지, 구리 료헤이의 동화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족 간의 사랑, 이웃과의 인연을 그린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인생의 힘든 순간에 서로를 지탱해 준 사람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다.
구리 료헤이의 글들은 동화구연을 염두해 두고 쓴 동화구연용 글이다. 그래서 긴 설명은 없다. 바로 바로 장면이 넘어가는데, 그게 또 동화구연의 맛이 아닌가? 귀신경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수 없기에 애를 쓰는 캔의 아버지, 가슴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부치지 않을 편지, 믿음은 반드시 이루어 지는것을 보여주는, 딱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산타클로스가 된 소년과, 감자라고 해도 될것을 네델란드 감자라는 이름으로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네덜란드 감자,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1,2화와 켄타와 아빠까지. 그리 긴 글들은 절대 아닌데도, 울림이 있다. 다분히 일본적이리가 일본의 색채가 여기저기 묻어남에도 『우동 한그릇』이 장수하면서 공연을 하고 있고, 읽히고 있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나라를 넘어서 그 속에 담겨있는 서민들의 따스함 때문일 것이다.
길지 않은 글. 그럼에도 가슴 따뜻한 이 글들이 한 여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그런 하루다. 아이들의 아픔은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낸 상황들 이라는것을 알기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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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책이 도착했다. 예전부터 자주 보던 책, 우동 한 그릇 도착한 책을 살펴보니 겉표지가 금으로 도배를 한듯해 기분이 좋았다. 왠지 아주 귀한 선물을 받은것만 같았기에 한 그루의 나무가 주는 그늘은 넓고도 깊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날씨에 나무그늘을 자주 찾고 애용하게 된다. [우동 한 그릇]은 내게 무더운 여름 날의 나무그늘같은 책이다.사진보다 실물이 더 어여쁜 책^^.
이미 여러번 읽었음에도 또 다시 주문하게 된것은 딸 유진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서다. 6월20일 김유진의 11번째 생일, 벌써부터 하루 하루를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에 나도 미리 책을 주문하게 된것이다. 한번 읽고 제켜두는 그런 책이 아닌 가까이 두고 자주 애용할만한 책이라 자부한다. 유진이의 꿈은 동화작가다. 한쪽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넣고 글을 써 넣어 아이들이 읽기 쉬운 그런 글을 쓰고 싶단다. 꿈이 있는 자는 아름답다. 유진이가 도서관에서 빌려본 [우동 한 그릇]을 읽고는 자신도 이 책을 소유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깜짝 선물로 주문했던 것, 우동 한 그릇, 우리가 새해에 떡국을 먹듯 일본은 새해를 맞아 우동을 먹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이 1년중에 가장 바쁜 날이기도 하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 이곳에는 연말 저녁이면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다. 여섯살, 열살의 남자아이 둘,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인듯한 여인, 그들은 매번 1인분의 우동을 조심스레 주문했고 행복한 표정으로 맛나게 먹고 가곤 했다. 가난했지만 행복해 보이는 모자들, 주인은 1인분 반의 우동을 정성스레 끓여서 내준다. "올해도 북해정 우동을 먹네."(p.13) 그들이 나누는 이 한마디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그들은 알까? 어린 시절 읽었을때는 그들의 가난이 싫었고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세상을 살다보니 그것 또한 행복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마다 연말이면 북해정은 그들을 기다렸고 그들 모자도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곤했다. 북해정에는 그들의 예약석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란다. 다음해에 찾아온 두 형제는 중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여진히 체크무뉘 반코트 차림이었다. "저기, 우동 2인분 되나요?" "우동 둘!" 그 가족들은 북해정에서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한해를 마무리 했던 것, 이제 고생은 끝났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빛을 가족들이 힘을 합해 다 갚을수 있었던 것, 동생 준은 "우동 한 그릇"란 글을 써서 상을 받았단다. 나는 동생 준의 글솜씨에 그가 나중에 작가가 될수 있을거라 여겼다. 북해정 주인부부의 숨겨진 미덕이나 우애 깊은 그들 형제를 보며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느끼곤 했던 시간이다. 연말이면 찾아오던 그들이 안오기를 몇해, 북해정 주인은 연말이면 그들의 자리를 예약석으로 비워두고 그들을 기다렸다. 몇년간 소식이 없던 그들은 그 뒤에도 부지런히 노력했고 이제 형은 의사가 되었고 동생 준은 작가가 아닌 은행원이 되어 있단다. 이제서야 찾아와 그동안의 인사를 그들, "잘 오셨어요. 자 어서,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셋!" 우동 한그릇에 행복해 질수 있다는것, 행복은 물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달렸다는것을 새삼 느낀 날이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동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구리 료헤이를 유명하게 만든 우동 한 그릇외 켄보우늬 행진곡이 들려온다, 부치지 않을 편지 -그대들에게, 네덜란드 감자, 산타클로스가 된 소년, 어머니의 눈물, 케타와 바다여 등 총 일곱편의 동화가 있다. 잘 만들어진 동화 한편이 아이들의 동심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유진에게 많은 책을 읽어줬고 지금은 스스로 하루에 한권의 책을 읽으려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가 많아질수록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진다고 말하면 너무 오버센스일까? 그렇지만 난 그렇게 믿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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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료헤이의 단편집이다. 구리 료헤이라는 이름은 들어봤다. 하지만 그가 [우동 한 그릇]의 작가인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었다. 나한테 [우동 한 그릇]이라는 소설은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학창시절의 추억의 한 장이었다. 예전에 고등학교때 무슨 교육인가…해서 반에서 몇 명을 뽑아서 보내는 곳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행군도 하고 벼라별 것들을 다 시켰었는데… 저녁이면 프린트된 몇몇 이야기들을 나누어주고 그 이야기에 대해서 토론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사실 별로 재미있어하던 시간은 아니었지만 몇번째 날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토록의 주제로 프린트되어 나누어줬던 소설이 바로 [우동 한 그릇] 이었다. 너무나도 감동스런 이야기라 찡한 마음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눈물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 소설이 프린트된 종이를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물론 잊어버렸기에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였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을 해보니 그 책이 맞더랬다. 아, 나는 좋아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사 작가가 누군지를 알게 된 무식쟁이였다. 아니면 게으름을 좋아하는 불량 독서가… 조금만 부지런했어도 더 일찍 알고 찾아서 읽을 수도 있었을 것을… 어찌되었든간에 나는 이 책을 찾아내었고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읽게 되어서 굉장히 행복한 상태이다. 구리 료헤이의 대표작인 첫번째 이야기 [우동 한 그릇]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혼자서 놀기를 더 좋아하던 나에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면서 그 관계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이야기로 섣달 그믐날 밤, 막 문을 닫으려고 하는 북해정이라는 우동집에 두아들과 함께 초라한 듯한 엄마가 들어와 우동 한 그릇을 시킨다. 사람 좋은 주인 부부는 우동 사리를 몰래 좀더 넣어주었고… 그런 인연으로 해마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그 가족이 항상 북해정을 찾게 된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그 가족들은 더 이상 북해정을 찾지 않았지만 주인 부부는 그들을 잊지 않고 섣달 그믐날이면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예약석”으로 항상 비워놓게 된다. 가슴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아무렇지도 않을 표정 하나 말 하나 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있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필두로 교통사고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오동 아들을 잃었지만 묵묵히 정년이 되어 퇴임하는 그날까지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한 경찰 지서장의 이야기인 [켄보우의 행진곡이 들려온다], 일찍 부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워온 아버지가 딸과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로 쓰여진 [부치지 않을 편지] 등 잔잔한 총 7편의 단편이 책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동 한 그릇]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모두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읽을수 있는 책이였다. 물론 양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크게 기억에 남았던 이 소설을 소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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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처음 읽었던 건 아주 오래 전이다. 짧은 몇 장 안 되는 글이었지만 큰 감동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지금까지 진한 향기를 남기고 있었다. 섣달 그믐 날 밤 그 우동 한 그릇. 가난한 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의 나눔은 진정한 나눔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 우동 한 그릇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싶어 예쁘고 자그마한 북타임의 우동 한 그릇을 다시 펼쳤다. 읽은지 오래되어 큰 줄기만 남아 있던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솟으며 구절 하나 하나 마음에 아로새기듯 읽었다. 점점 자라면서 몸집이 커 가는 아이들, 변함 없이 체크무니 반코트의 낡은 옷을 입은 엄마.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지만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곱빼기로 담아 주는 주인의 마음. 한 그릇 주문한 그들이지만 와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깍듯이 하는 주인 내외. 물가가 오르고 낡은 테이블을 바꾸는 시기가 와도 해마다 밤 열 시 이후면 다시 예전 가격으로의 메뉴판을 돌리고 낡은 테이블의 2번 예약석은 끝까지 바꾸지 않고 그들을 기다린 주인 내외. 그 2번 예약석의 이야기가 점점 퍼지고, 훗날 외과 의사가 되었다는 아들을 데리고 온 엄마와 두 아들의 우동 한 그릇 이야기는 아... 정말이지 눈물 한 방울 감추지 않고는 그냥 읽을 수 없었다. 우동 한 그릇 속에 담긴 사랑과 배려, 용기와 희망은 우리들 살아가는 세상이 이래서 따뜻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어 나오는 마흔 넘은 늦둥이로 어렵사리 얻은 아들을 졸음 운전으로 잃고 나서 귀신 경찰이라는 오해를 사고도 끝까지 교통 안전 지도를 준수하며 마음의 마을로 안전한 마을로 지켜낸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치지 않은 편지에서는 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멋진 명언과 함께 아이에 대한 사랑, 먼저 떠나간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담겨있기도 했다. 짤막한 이야기들이 모두 제각각의 색깔로 말을 건네오는데 어쩜 그리도 예쁘고 감동적인지 모른다. 표지만큼이나 예쁜 이야기들이 각박한 우리 현실이 더 아름다울 수 있도록 멀리 퍼져가는 향기가 되어 사람들의 눈에 입에 마음 속으로 퍼져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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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의 이야기는 예전에 들어 알고있었다. 그런데 왜 책으로 읽었냐 하면 그 이야기의 감동을 활자로 다시한번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우동 한 그릇의 내용은 길지 않다. 처음에 작가가 글을 썼을때는 지금보다는 더 긴 내용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내용이 되기까지 작가가 군더더기 없이 계속 조금씩 고쳐서라고 한다. 나는 우동 한 그릇의 이야기를 오로지 모자간의 끈끈한 사랑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가족애만 보았다. 하지만 작가의 뒷이야기를 읽다가 깜짝 놀랬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왜 하필 그날 우동을 먹어야하냐부터 자식들이 상처입게 한그릇만 시켰냐 그돈이면 집에서 우동을 만들어 먹겠다. 등등의 수만은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읽고 왜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읽고 저런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의 질문들을 보면서 민족성이 달라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은 남에게 피해입히는 것과 남에게 나의 치부를 보이는것 터부시 한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을위한 동화를 읽고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것에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수 었다.
우동 한 그릇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섣달 그믐날이면 일본의 가정에서는 우동을 먹는 풍습이 있어나 보다 북해정이란 우동집에 바쁜 섣달 그믐날 영업을 마무리할 시간에 어린 남자아이둘과 엄마가 들어선다 우동한그릇을 조심스럽게 주문하는 모자와 그들의 행색을 모른척하는 주인은 보통 일인분보다 많은 곱빼기 우동한그릇을 주고 모자는 행복한 모습으로 감사인사를하고 돌아간다. 이렇게 매년 섣달 그믐날이면 이들 모자가 북해정을 찾아온고 우동값이 올라도 메뉴판을 바꿔 그들 모자에게는 처음과 같은 우동값을 받는다. 어느해부터 오지 않는 그들 모자를 북해정의 주인은 예약석을 만들어 기다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또다시 찾아온 섣달 그믐날 영업이 끝날 시간에 문이 스르륵 열린다.
우동 한 그릇의 책을 받고 몇번을 읽었다. 그때만다 울컥하는 감정과 오소소 소름이 돋는 감동에 목이메인다. 구구절절한 슬픈 사연이나 애절한 눈물의 이야기도 아니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아들과 초로의 노부인이되어 찾아온 그들이 2번테이블에 앉아 전하는 사연보다 가정과 가족애에 그 어떤 미사여구 보다 마음 찡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동 한 그릇의 책에는 다른 여섯편의 이야기가 더 담겨있다. 나머지 글들은 독자가 되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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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한그릇>은 유명한데 작가 이름은 이번에 처음 본 것 같다. 그가 쓴 동화가 이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고. 어느새 이다지도 삭막해졌었는지, 별 것 아닌것 같은 이야기들에 태양 작렬했던 사막같던 내 마음이 별헤는밤 오아시스를 만난 청량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어디서 꿔다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것 조금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데 뭐가 그리 어려워서 못하는지. 베푸는 것도 바이러스같이 퍼져서 받아본 이가 나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동화란 것이 참 신기하고 묘하게도 아이들을 위한 글인 것 같아도 어른이 되어 읽으면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니 어른들의 동화읽는 멈추지 말아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감동적이었고 누군가의 선행에 또 다른 누군가가 기쁘고 행복해졌다는 이야기에 불과했던 어릴적 <우동 한그릇>이 이제는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니 말이다.
오래 기다렸던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귀신경찰관이라고 불리우게 된 어느 아빠의 이야기 <켄보우의 행진곡이 들려온다>는 '비참한 교통사고가 한 건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소망대로 가슴아픈 메세지로 던져져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밖에도 <부치지 않을 편지>, <네덜란드 감자>, <산타클로스가 된 소년> , <어머니의 눈물>, <켄타와 아빠> 등 주옥같은 동화와 짧은 희곡도 실려 있다. 하나같이 배꼽 아래서부터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잔잔한 평화로움이 느껴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아들을 바다에게 빼앗긴 어머니의 참았던 눈물에 관한 이야기마저도 나도 저런 강하고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아프고 시린 감상을 넘어서 안주하기를 원하는 나태하기 짝이 없는 내 가슴에 자꾸만 무언가를 던져준다. 돌은 돌인데 아프지 않은 돌, 짧지만 그런 묵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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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 섣달 그믐날 밤 10시.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가게문을 닫을 무렵 한 여자가 사내 아이 둘을 데리고 가게로 들어옵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여인은.. 수줍게 우동 1인분을 시키구여.
겉으로 보기에 무뚝뚝해 보이는 우동집 사장님은 여인과 두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우동 1.5인분을 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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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들어보셨을 이야기. 한때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고 알려져 매스컴을 오르락 내리던 이야기.
정갈하고 화사한 책 표지와 따뜻한 삽화, 그리고 뭉클한 얘기가 들어 있는 책입니다.
살아가며 서로 나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것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나눔인지.. 요란하지 않게 얘기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생색내지 않아도, 아는 척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은 목줄기로 따끈한 우동국물 넘어가듯 전달된다는거.. 책은 그렇게 조용히 그걸 얘기하고 있습니다.
배려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세상. 우리 아이들에게 한번쯤은 읽게 할 만한 책입니다. 친 형제가 아니라도 일가 친척이 아니라도 배려는 가능한 것이며 또, 배려라는 행위의 결과물이 어떻게 사회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알려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입니다.
우동 한 그릇 외에도 저자의 따뜻한 단편이 몇편 더 실려 있습니다. 소장하셔도 괜찮을만큼 예쁜 책이라서.. 더운날에도 불구하고 우동 한 그릇 강추합니다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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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삿포로 우동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제는 저에게 한가지 늘어나겠군요. 학창시절 다니던 독서실 상가건물 1층에 삿포로 우동이라는 간판의 우동가게가 있었어요. 워낙 우동을 좋아하던 제가 밤참으로 자주 가곤했었지요. 자주 가다보니 그곳에서 우동을 만들던 대학생 오빠와도 친해졌다죠..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던 우동과 대학에 대한 동경심이 더해져서 저의 풋사랑이 되었던것 같아요. 이렇게 같은 우동 한 그릇이라도 저에게는 풋사랑의 기억이 되고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는 용기가 되는군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힘겹게 삶을 헤쳐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두들 설레는 연말연시를 어린 아이들에게 우동 한 그릇 시켜놓고 나누어 먹게하는 그 심정을 누가 헤아릴수 있을까요.. 그나마도 사치인지 일년에 단 한번씩만 가게에 들르는 그 손님들을 바라보는 우동가게 주인 부부의 마음도 느껴지네요. 엄마의 그 용기를 아이들은 느꼈을겁니다. 그래서 다시 그 우동집을 찾은 그들은 행복했을거구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한 가족을 바라보되 상처가 되지 않도록 응원하는 이웃, 그리고 그런 응원의 메세지를 알아채고 또 힘을 얻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또다시 힘을 얻는 주변 사람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고 열심히 살아야하는것이 아닐런지요.
가슴까지 따스해지고 먹먹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이렇게 고급스럽고 멋진 표지까지 갖추었으니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 그만인것같습니다. 저도 주변에 선물하고 싶어지는 얼굴이 떠오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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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12월 31일 우동 1인분을 주문해서 세 사람이 나누어 먹는 모습과 눈치 채지 못하게 이들에게 곱빼기를 주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주인 내외의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다. 모든 것에는 꼼꼼히 따져 보면 다 의미가 있지만 특별한 사연을 감지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다.
저자는 특별히 교통사고를 줄이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문명의 이기에 묻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많은 이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이 교통사고다. 한 순간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는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켄보우의 행진곡이 들려온다.’를 통해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눈물겨운 모습이 잘 드러난다. 한 경찰관의 아픔과 끈질긴 노력을 통해 교통문화를 바꾸어 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특히 노년에 얻은 독자를 잃은 슬픔을 아름답게 승화시켜가는 교통경찰부부의 삶이 인상적이다. 마치 저자의 모습이 이와 같으리라 생각된다.
세상의 짐이 되지 않고자 열심히 심신을 수련하는 저자를 보며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죽음’이라는 ‘이별’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몸부림치는 그의 인사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건강하세요.’ ‘또 만나요.’ ‘다음에 만날 때에는 더 건강한 얼굴로 만나요.’
거대한 문명의 흐름 앞에 홀로 서서 막아보고자 혹은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고자 온 몸으로 몸부림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이들에 의해 그래도 우리가 숨을 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도 연필과 노트와 동화책 한 권을 들고 집을 나서 여행을 떠났을 까? 이런 저런 사연으로 부모를 잃게 된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고 달랠 수 있을까? 많은 사회 문제들 속에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가정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불행을 극복하고 하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게 되어 가슴이 뿌듯하다. 이것이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를 희망한다. 우리 동네, 우리 옆집, 그리고 우리 집이기를 소망한다. 우동 한 그릇을 통해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꿈을 키워가며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