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孔子)가 순(舜) 임금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음악의 일종인 소(韶)를 듣고 석 달동안 음식 맛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반면 박지원의 열하일기 '망양록(忘羊錄)'에 의하면 박지원은 귀한 손님이 오신다기에 양 한 마리를 통째 쪄 준비해 놓고 그 손님과 진지하고도 재미 있는 음악 이야기를 하느라 양을 쪄놓은 사실을 잊었다고 한다.
송지원 교수는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에서 박지원이 그럴 정도로 나눈 이야기는 조선과 중국의 음악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제목에 나오는 장악원(掌樂院)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이다.
조선 성종대에는 1000여명의 음악인들이 장악원에 속해 음악을 연주했다. 조선시대에 왕실 행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 장악원 음악인들이 있었다. 조선의 악(樂)은 예(禮)와 함께 의례의 핵심이었다. 장악원은 숭정원, 사간원, 홍문원, 예문관, 성균관, 춘추관과 함께 정3품 관청이었다.
1년 중 장악원이 가장 많이 출연하는 행사는 제사 의례이다. 장악원의 최고 책임자는 제조(提調)였다. 당상관 두 명이 맡았는데 전문 음악인이 아니라 행정관리였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임금의 몸과 관련된 정보의 총책임자를 맡았던 것과 맥락이 같다.(어의들은 진맥 외의 방법으로 임금의 몸을 진찰할 수 없었다.)
성리학은 조선 시대의 여성 음악인들을 남성이 주축이 되는 외연에 출현하지 못하게 했다. 인조반정 이후의 일이다. 본문에는 차비(差備)란 말이 나온다. 자비(自備) 또는 척(尺)의 의미이고 우리 말로 잡이라 한다. 장구 잡이 등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조대의 화원을 자비대령화원이라 했다. 한문으로는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으로 썼다. 정조는 귀가 밝았다.
세종, 세조처럼 정조는 장악원 음악인들의 연주를 다그쳤다. 특히 정조는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의 선율을 잘 알고 있었다. 정조는 사직제에서 연주되는 제례악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음악을 소홀히 연주하는 것을 지적하고 엄히 다스렸다. 정조는 의례와 음악의 조화를 중시했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귀국할 때 함께 온 굴씨(屈氏) 또는 굴저(屈姐)라는 궁녀가 있었다. 명나라가 쓰러져 갈 무렵 숭정제 황후의 궁녀로 일하던 여자였다. 숭정 말년에 이자성이 황도를 함락시키자 황제와 황후가 자살했다.
굴씨는 민간으로 몸을 피했으나 청나라 군사에 발각되었다. 청의 실권자였듼 예친왕 다르곤은 굴씨를 심양에 볼모로 있었던 소현세자에게 넘겼다. 소현세자가 귀국할 때 함께 조선에 들어온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를 모시게 되었다. 굴씨는 비파를 잘 타 장악원 소속 음악인들에게 비파를 가르쳤다.
이때는 조선이 전란 후유증으로 종묘/ 사직 제례악도 연주하지 못하던 때였다. 음악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굴씨는 70세까지 살다가 숙종대에 생을 마감했다. 조선은 예악정치를 구현했다. 예는 인간의 차별적 질서를 강조했고 악은 인간의 조화와 공존을 강조했다. 종묘제례시의 춤은 제후국의 위격인 육일무였다. 일수 6, 열수 6으로 36명이 추는 춤이란 말이 있고 일수 6, 열수 8 즉 48명이 추는 춤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논어 '팔일(八佾)'편에 주자가 주석한 내용에 본인도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른다는 글이 있다. 조선 전기는 48명, 중기, 후기는 36명이 했다는 기록이 있다. 종묘 제례는 조상(선왕)의 혼을 만나는 기쁜 의례 즉 길례(吉禮)이다. 장례는 흉례(凶禮)이다. 이때는 진이부작(陳而不作)했다. 악대는 진설(陳設)하고 음악은 연주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3년 동안 연주를 하지 않으면 제례악을 다시 연주할 때 어려움이 생기거나 새로 만들어진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면 전승이 끊어지므로 그런 것을 우려해 악생들의 연습은 허용했다. 궁중 연향에서 연행되는 춤을 정재(呈才)라 한다. 재주를 드리다, 재예를 올리다란 뜻이다.
조선은 무너진 예를 악으로 일으키려 했다. 유교를 국시로 한 조선은 <세종실록> '오례'로 국가례의 기틀을 마련했고 성종대의 <국조오례의>로 전모를 정리했다. 맹사성은 악인이기도 했다. 장악원의 전신인 관습도감의 제조로서 맹사성의 업적은 눈부셨다. 조선 초기 궁중 음악은 그로부터 정비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맹사성은 세종대의 박연과 함께 지악지신(知樂之臣) 즉 악을 잘 아는 신하로 불렸다. 박연은 세종의 뛰어난 음악 비서였다. 성종대의 장악원 제조였던 성현을 빼놓을 수 없다. 성현은 '악학궤범'의 저자이다.
김용겸(金用謙)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의 기대주였다. 김용겸은 악서인 '율려신서(律呂新書)'를 읽었느냐는 정조의 물음에 그 책을 보았고 종과 석경 소리를 들으면 높고 낮음 정도는 분별할 수 있다고 답했다.
예와 악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긴 정조는 음률과 예학에 두루 깊은 인재 김용겸을 장악원 제조로 임명했다. 김용겸은 박지원, 홍대용, 이서구, 정철조 같은 연암 그룹 구성원들과 자주 어울렸다. 정조 대의 학자 출신 관료들은 조선의 어느 시기보다도 음악 교육에 비중을 두었다.
정조가 집권 초반 규장각을 설치하면서 아악기인 종, 경, 금, 슬을 규장각에 하사한 것은 악을 중시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예와 악을 함께 갖추기 위한 정조의 노력 덕에 정조 시대는 문화융성기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정조 자신의 음악 실력과 무관하지 않다.
정조는 1776년 즉위하자마자 생부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으로 올리고 사도세자를 모셨던 수은묘를 경모궁(오늘날 서울대 의대 자리)으로 승격시켰다. 경모궁의 제례를 정하고 경모궁제례악도 만들었다. 고종황제가 장헌세자를 장종으로 추존하며 경모궁의 신주를 종묘로 옮긴 이후부터 경모궁 제례는 열리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풍류를 아는 선비들은 누구나 왠만큼 거문고를 연주했다. 옛 선비들은 거문고를 삿된 마음을 금하여 인심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거문고는 단순히 악기가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성정(性情)을 기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거문고 음악이 예술성을 추구하거나 기교를 자랑하는 음악으로 나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줄의 악기이지만 표현 영역은 거의 무한대인 해금은 현악기 중심인 음악에도 관악기 중심인 음악에도 두루<周> 어울려 비사비죽(非絲非竹)의 악기 즉 현악기도 아니고 관악기도 아닌 악기로 불렸다.(비사비죽은 18세기 유명 해금 악사 유우춘의 표현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현악기는 현을 뜯거나 튕기고 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음이 끊어지지만 해금은 줄을 마찰시키는 한 계속 소리가 나기에 관악기로도 볼 여지가 있어 관악기이면서 현악기라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듯 하다고 말한다.
예전에 왕이 죽으면 명기(明器) 악기라 해서 소형 악기를 만들어 왕의 무덤에 묻었다. 조선 전기부터 경종의 무덤까지 아쟁을 묻었는데 정조대 이후에는 아악기만을 묻었다. 비파(批把)라는 이름은 악기 연주법에서 유래했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 타는 것을 비, 안으로 끌어 당기며 연주하는 것을 파라 한다. 오늘날 비파는 비파(琵琶)로 쓴다.
맹사성, 박연, 정약대, 김계선 등이 대금의 명인이었다. 특히 정약대는 '정약대의 대금'(조용미 시인의 시)이란 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마지막 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청아하고 신묘하고 장쾌한 소리를 향해 대금을 지고/ 사막을 건너야 할 운명을 火印처럼 몸에 새기고 태어난/ 사람, 그의 귀는 10리 밖에서도 대금 소리를 잡아냈을까// 정약대는 낙타였다"
저자의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옛 조상들은 예(禮)와 악(樂)을 함께 추구했다는 점이다. 특히 무너진 예를 악으로 바로 세우려 했다. 늘 연마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장악원 악인들을 통해 연습의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 특히 의례와 음악의 조화를 중시했던 정조를 다시 보게 되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
우주의 정신을 담은 우리음악 |
|
조선 시대에 왕실의 행사가 있는 것이라면 어디든 장악원의 음악인들이 있었다.(p.27) 많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장악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것이 극히 적었다는사실이 놀라웠다. 사극을 볼때면 의례것 등장했던 음악이기에 당연시 했던 것인가보다. 조선의 악은 예와 함께 의례의 핵심이었고, 그만큼 조선의 대표적인 음악기관이었던 장악원의 역활은 아주 컸다.(p.27) 그것에 비하여 대우는 너무 빈약했다. 또한 악공과 악생이 이른바 3D업종의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음악이 좋아 자원해서 하는것이 아닌 신역으로 뽑혀 의무적으로 하는것인데 나라에서 예를 중히 여기는것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어 최하극빈자의 생활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활을 하기위한 방편을 따로 마련하면서 국가를 위한 음악을 해야 했다는 말이다. |
|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사극을 연출해오고 있는 이병훈 PD는 그 이름만으로도 믿음을 주는 연출가로 손꼽히고 있는 분이다. 특히 그는 사극을 통해 선조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드라마 '허준'에서는 의원을, '상도'에서는 상인, '대장금'에서는 수랏간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얻었다. 이병훈 PD가 이번에 선택한 사극은 '장악원'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장악원'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장악원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을 말한다.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우리나라 민족의 특성이 바로 이 장악원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는 지금까지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모든것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조선시대 음악가의 삶은 어떠했는지, 우리의 춤과 음악에는 어떤 진리가 숨어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책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의 저자 송지원씨는 조선 시대 국가전례와 음악사상사, 음악문화사, 음악사회사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국악의 대중화에 관심이 커서 KBS와 국악방송에서 국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장악원을 중심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한 발 한 발 따라가다 보면, 조선시대 궁중음악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저자는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에서 장악원이란 기관, 조직, 구성원, 그들이 연주한 음악, 음악인 그리고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특히 난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한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조선 성종 대의 경우, 1000여 명에 달하는 음악인이 장악원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궁중의 온갖 행사에 참여하여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장악원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은 책 곳곳에 다양한 그림과 사진, 자료들을 수록하여 장악원에 대한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재미까지 선사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음악가들의 희로애락, 알고 보면 재밌는 궁중음악 상식, 조선의 대표 뮤지션 10인의 고군분투기, 기로 완성하는 예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어서 책을 읽기가 편함과 동시에 궁중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4장 '기로 완성하는 예'에서 소개해주고 있는 다양한 악기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양금, 비파, 대금, 피리, 생황을 통해서 전통 악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을 통해 지금이라도 장악원이 어떤 곳인지, 궁중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고 위대한지 알게 되어서 행복하다.
|
|
조선 음악의 궁중음악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국악 분야를 소소한 것 까지 역사적 근거를 찾아서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풀어서 쓴 책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우선,책 표지에 나와 있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시선을 끄는데, 이 외에도 책 속 곳곳에 나와 있는 그림들까지 곁들임은 책 읽는 독자로 하여금 눈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책 내용들은 그동안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우리 선조들의 음악적 생활모습과 지혜를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음악적 활동에 놀라움과 긍지심 및 찬사를 보내게 한다.또한, 비록 몇 백년 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선조들의 모습이 현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상하게 가까움과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공부했고,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국악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남들보다 많이 공부했고 더 알고있는다는 자부심을 가졌었는데,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착각과 자만심이었던 걸 발견하면서 또한 부끄러움을 느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바이다. 사실, 조선궁중음악 이야기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겨서 책을 보게 되었지만, 책 내용이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이야기이고, 전문서적처럼 다소 딱딱하지 않을까? 읽다가 책을 덮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염려와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금방 몰입하여 읽게 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국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비전공자인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지루해 할 수 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문용어나 전문고서들의 이름이 비교적 많이 낯선 편인데, 그에 따른 부연설명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난해한 내용들은 아니기에 가볍게 읽는 정도라면 좋을 듯하다. 서양음악사 책 중에 그나마 일반인들에게 다소 쉽게 접하기위한 목적으로 출판된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재미있는 서양음악사 이야기>정도의 느낌이라면 전달이 될까?
조선시대 궁중음악을 대표하던 기관인 장악원은 '예와 악'을 중시하던 당시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행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각종 의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일까지 담당하는 곳으로써 당시 조선시대의 예악정치를 구현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기관이었다. 문묘제례나 종묘제례 등의 제사를 지낸다거나, 각종 명목의 잔치를 벌일 때, 왕이 활쏘기를 할 때등등 반드시 음악이 동원되었는데.....그만큼 장악원의 역할은 매우 컸으며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야했고, 각종 행사에서 다양한 음악을 소화해내기 위해 평소 꾸준한 연습을 해야했으며, 인력양성을 위해 음악인을 교육해야하며 음악작업의 정비 등 음악기관으로써 역할이 상당히 컸다.
초창기 설립되었을 당시에는 장악원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이나 악생들은 이른바 3D 직종으로 천한 출신에 신분이 낮은 양인이거나 첩의 자녀들,노비들로 주를 이루었으며 월급도 1723년(경종3)당시 한 달에 베 한필이라 했으니 최하 극빈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덕분에 악공들은 음악에 대한 자긍심이 없고 그 당시 투잡을 해야하는 생활로 인해 고충을 겪으며 왕에게도 여러번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그리고 오늘날의 음악감독직에 해당하는 장악원의 담당자인 '전악'은 음률과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임명되기도 햇으니 초창기 음악발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차 왕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악을 음악에 밝은 귀를 가진 사람, 즉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물색하며 대체하는 등의 노력과 전악을 중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로 해외출장을 시키기도 하여, 새로운 악기를 도입하기도 하고, 악기제작방법과 악보 편찬사업등의 활발한 장려사업 등으로 인해 점점 더 보다 나은 모습으로 음악이 발전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실력 연마를 위해 테스트를 시행하기도 하고 상벌을 주고 전문 음악담당자를 두어 교수하는 등의 일은 오늘날 음악학교와 크게 차이가 없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책 내용은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 알차게 되어 있으며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하다. 역대 왕들이 음악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어떤 왕이 음악적 소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전문 음악인 양성을 위해 전국에 내노라하는 수재들을 물색하기도 했었다는 사실. 조선의 유명한 10인의 음악인들에 대한 일화, 우리나라 악기들이 단순한 악기가 아닌 우주의 근본 이치인 천지인(하늘,땅.사람)을 품고있다는 것.전쟁중에 선조들이 악기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등...정말로 알찬 내용들이 어느 추리소설 못지 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조선왕조 500년동안 외세의 많은 일탈침략으로 인해, 많은 문화재를 소실하고 계승되지 못한 안타까움을 구구절절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멀지않은 1900년대 조선왕조 후기에는 일제강점기로 인해 왕실의 음악이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책들을 참고하여 남아있던 궁실의 하녀들에 의해서 간신히 몇몇 곡들과 의복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점점 더 원곡과 그 당시 음악을 재현해 내기 어려워지는 현실.그리고 악기제조법이라든지.악보라든지..단절되어 가는 우리 국악에 대한 아쉬움과 빈자리를 크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이 책이 팝과 클래식에만 열광하는 현 세대에게 많이 읽히게 되어 잊혀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국악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게 하고 앞으로 끊이지 않고 계승되며 발전하게 되는 바램을 가져본다. |
|
학창시절 특별활동으로 가야금을 배운 적이 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2주에 한 번 뿐인 시간이라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매우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국악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아쉬운 것은 졸업과 함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클래식 음악도 그렇지만 국악은 특히나 일반인들이 다가가기엔 멀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방과후 활동으로 단소와 같은 국악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일상에서 국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르치고 배우는 곳은 있지만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국악에 대한 이런저런 아쉬움과 관심이 이 책을 읽게 한 것 같다. <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라는 거창한 제목 속에는 조선 시대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있다. 장악원이라는 조선의 궁중음악을 담당하던 기관을 중심으로 조선의 궁중음악과 음악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 역사적 문헌을 근거했기에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읽어갈수록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장악원은 조선 시대 왕실의 행사인 각종 의례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곳이었고 실제 음악을 연주하는 소속 전문 음악인은 요즘말로 비정규직이었다. 간혹 이들 중에 음악 감독격인 관직이 있었지만 예나지금이나 예술가의 길은 험한 것 같다. 조선 시대의 궁중 음악은 자유로운 감성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예를 중시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여겨졌다. 어찌보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인데 실제로 이를 담당하는 이들의 대우는 너무도 초라했던 것 같다. 배고픔을 겨우 면할 정도의 녹봉을 받아가며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해야 했고 궁중에서 열리는 온갖 행사로 바빴을 그들을 상상하니 안타깝다. 그나마 예술을 사랑하는 임금의 시대에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암흑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음악이 없는 시대는 상상하기 싫다. 궁중 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보면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는 여러 번의 전란으로 국가적 위기가 있었다. 음악뿐 아니라 예술도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악기 제작의 어려움, 악기를 연주하는 전문 음악인의 부족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꿋꿋하게 음악을 지켜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책에서 소개한 조선의 대표 음악가 10인이 그들이다 - 맹사성, 박연, 성현, 임흥, 정렴, 허억봉, 허의, 한립, 이연덕, 김용겸. 그 중 임흥이란 인물은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는데 평생 신선처럼 풍류를 즐기던 그가 나이 오십이 넘어 장악원 말단 관리로 들어간 것은 참으로 멋진 결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안다는 건 임흥처럼 음악과 함께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뜻할 것이다. 그를 보면서 부럽고도 존경스러웠다. 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이는 드물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즐기며 살았던 모든 음악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조선의 궁중 음악 이야기 중 인상적인 부분은 " '예'가 무너진 사회, '악'으로 일으켜라!" 이다. 임진왜란 이후 어지러워진 향촌 사회의 질서를 회복과 백성의 교화를 위해서 향음주례를 시행하려 했던 것처럼 음악은 예(禮)인 동시에 예(藝)인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도 조선의 궁중 음악과 같은 예와 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악은 단순한 음악의 장르를 넘어선 우리의 민족 정신이다. 새삼 국악의 소중함을 깨닫는 좋은 기회였다. |
![]()
드라마 '동이'를 보면서 잘 만들어진 사극 한 편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참 크다는 생각을 한다. 초반부를 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드라마 시작 당시 '장악원'을 재현하겠다는 제작진의 포부가 밝혀져 기대를 한껏 모았다가 어느 순간 부터 장악원 이야기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는 통에 말들이 많더라. 더구나 앞서 방송된 장악원의 풍경에서 지적되었던 오류나 무성의한 부분에 대해 만회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상태라서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쨌거나 '동이' 덕분에 <최숙빈>을 읽었고, 같은 이유로 이번 책을 선택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는 제목 그대로 장악원에 관한 내용을 담은 역사서이자 궁중음악에 대한 책이다. 우선 장악원이란 조선시대 궁중에서 행해지던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을 말한다. 조선은 문치주의, 유교주의 국가로 공자의 '예악禮樂사상'을 이념으로 정치를 펼쳤던 나라다. '예'와 '음악'이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완전하다고 생각했기에 궁중의 제례를 비롯한 각종 의식에는 반드시 격식과 음악이 함께 준비되어야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음악이 가장 발달했던 시기는 세종시대와 영,정조 시대이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는 것이 세종대왕의 시대는 조선을 통틀어 모든 분야에 기틀을 다진 시기다. 우선은 나라가 안정이 되어야 예도 찾고 음악도 있는 법, 시기적으로 부흥했던 때에 예악 정치의 꽃을 피웠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또한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정통했던 임금이 다스렸던 시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세종대왕과 영, 정조의 경우는 궁중음악이 연주될 때, 연주가 어떻고 음이 맞는지 혹은 악기의 상태까지 알아차릴 정도로 음악적인 조예가 뛰어났다고 전한다.
궁중음악이 유지, 계승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끊이지 않는 전란이 원인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연주가를 구할 수 없거나 악기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사실상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무형문화재의 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내야할 전통 궁중음악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겐 어렵고 지루한 음악일 뿐, 이런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세종 때 명나라의 요구로 보냈던 '창가비'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문화교류라 할 수도 있지만 어린 아이들을 기약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당시의 분위기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숙종때는 청나라 사신의 요구로 국상 중에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니 누구를 탓하랴. 그리고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우리의 전통 악기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고 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문화의 집결체이자 조상의 혼이 담긴 소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내 아이만 하더라도 뱃속에서부터 태교에 좋다는 클래식을 듣고 자랐다. 클래식이 무엇인가, 결국은 서양 궁중음악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예술의 한 분야로 전해 내려온 음악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금까지 우리 전통에 음악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관심 했구나 싶다. 내가 우리 것을 챙기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지킬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똑같이 사람사는 세상인데도 동, 서양의 기준과 가치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그 속에 예와 인을 녹여내고자 했던, 선율에 우주를 담아내려 했던 조상들의 넓은 기상에 고개가 숙여진다. |
|
장악원은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동이」의 초반에 많이 등장한 관청이다. 동이의 오빠가 악공이었고, 훗날 쫓기던 동이가 몸을 숨기기 위해 입궁하여 장악원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동이」는 ‘장악원을 무대로 조선의 화려하고 우아한 음악세계를 볼거리로 제공한다’는 기획의도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장악원을 무대로 만들어진 작품이 없었기에 더욱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면서 드라마의 무대는 장악원에서 벗어났고,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에서 오류를 범하는 실수를 반복하면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권위에서 자유로운 군왕의 모습과 천민이지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동이의 모습 덕분에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동이」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와 장악원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심 영역을 발전시키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2010.5.25. 추수밭)》를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읽는 조선 궁중음악 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관청인 장악원의 이모저모와 예악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조선의 궁중의례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1장에서는 음악인의 품계, 악공들의 빈곤한 삶, 악인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 등 장악원의 풍경을 보여준다. 2장에서는 조선 시대 궁중에서 시행하는 국가적 규모의 다섯 가지 의례를 설명하며, 이를 통해 조선 사회가 추구한 예악 사상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3장에서는 조선 시대 대표 음악가 10인을 소개하며, 4장에서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우리나라 악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악기의 일화와 역사를 이야기한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드라마에서 동이가 해금을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해금 설명을 유심히 읽었고, 중국악기로만 알고 있었던 비파가 삼국시대부터 연주되었다는 사실과 조선시대에는 인기 있는 악기였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예악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조선시대의 음악은 ‘음악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의례의 일부로서 음악(p32)’이었다. 그렇기에 음악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효력은 대단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우리 음악이지만 어렵고 따분하게 느껴졌던 궁중음악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을 읽으면 우아하고 멋스러웠던 우리 선조들을 만나게 된다. 우주의 선율을 담아낸 궁중음악의 세계에 흠뻑 취하게 된다.
|
|
처음 몇회만을 보고 한동안 안봤던 드라마 동이를 보면 장악원의 풍경이 연출된다. 동이가 장악원 노비가 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잠깐 보니 마침 왕이 대비에게 미움받는 후궁 장씨를 위해 따로 음악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왔다.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과 신하들이 모인 연회자리와 궁궐 한켠에서 장씨에게 선보이는 음악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런데 모두 음이 산만했다. 그리 아는게 별로 없는 내 귀에도 이상했다. 역시나 곧이어 음이 흐트러졌다며 걱정하는 사람들과 당황하는 악동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인상적인것은 마치 음악을 하늘의 계시라도 되는양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는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악보로 보이지 않던, 그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마저 있던 것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보아도 조선시대 음악에 대한 것은 온통 신기하고 모르는것 투성이다. 그런데 장악원에 대한 내용을 담은 이 책 한권으로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당시 음악이라는 것이 갖는 이중적인 의미도 알게되었다. 예절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역사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하게 여긴것이 음악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예와 악은 한곳에 치우칠 수 없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 제사나 행사때는 물론 사신단을 파견할때조차 상황에 맞는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음악은 그저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절처럼 무게와 전통을 가진 갈고 닦는 것이었다. 때문에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지 않는것은 무례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왕과 대비까지 참석한 큰 자리에서 음의 이상을 흉사로 여긴 드라마속의 장면이 이제 납득되었다.
당시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시선을 바꾸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상태로 읽어가니 드라마에서 본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장악원의 모습이 그려졌다. 터무니없이 여겨질만큼 많은 인원수가 장악원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예와 제사를 중히 여긴만큼 나가서 연주를 해야할 일은 많았다. 더욱이 악기도 전공악기와 더불어 두어개의 악기를 더 연주할 수 있도록 배웠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빠듯하다고 보인다. 하지만 악기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까지도 배워야했고 이론시험도 치뤘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것은 어느정도의 재능이 요구되는 부분인데 그러한 인재가 충분하지 않았고 아무리 열심히 해서 승진을 해도 정6품까지가 최고 벼슬이었다. 장악원 생활만으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을만큼 최저수당을 받아 사람들에게 인기조차 없었다. 중요성에 비해 대우는 형편없어 보였다. 먹고 살기 힘들어 자식을 궁에 보내기도 하는 일이 적지않았던 시대에 의외의 면을 보게 되었다.
사회적인 면과 함께 악기에 대한 이야기나 높은 평가를 받은 음악인 소개부분도 재미있게 읽었다. 아는 이름보다는 모르는 이름이 대부분이었지만 별로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글로만 늘어놓은 그들의 업적이나 곡을 조금이라도 실제로 들어보고싶어 갈수록 아쉬움이 쌓여갔다. 만져보고싶고 들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점점 욕구불만의 상태가 되어갈때 우리 악기를 소개하면서 각 악기의 실제 사진이 실려있어 그나마 조금 만족할 수 있었다.
우리 음악이 쉽게 느껴지지 않는것은 사실이다. 임금조차 중히여겨 직접 챙길정도였으니 어렵게 느끼는것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음악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전통악기로 가요나 팝송을 연주한 음반이 넘쳐나는것은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악기에 대한 설명을 녹음하고 귀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악기별 독주음반부터 다양하게 나온다면 좋겠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전통악기 하나쯤은 배워두는게 좋겠다. 해보고 싶은게 또 하나 늘어나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