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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아기부처를 읽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근래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늘 그렇듯 벗어날 수 없는 절망과 고통, 혹은 무료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장편 한편과 소설집을 한 권 읽으면서 그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기 시작했다. 작품이 마음에 쏙들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정신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번 산문집은 나오자 마자 구입했다. 처음 책을 마주했을 때는 너무 작고 얇고 종이질도 투박한 듯해서 왠지 마음에 갈증이 일었다. 하지만 한 인디언 여인과의 만남을 묘사한 첫 꼭지를 읽고 나는 이 책인 단박에 좋아졌다. 그녀 자신도 글을 쓰던 당시의 자기모습에 지금은 놀라울 뿐이라고 실토하고 있지만 난 이글에 실린 그녀의 모습에 흠뻑 매료되었다.그리고 그녀가 그려가는 사람들의 모습... 따뜻한 시선이어서 더욱 좋다. 20대에 밝고 담담하고 단순하고 낙관적이었던 자신을 작가는 다른 사람처럼 낯설어한다. 하지만 언제나 가늘게 실눈을 그리며 웃고 있는 모습을 책에 싣는 그녀의 현재 모습이 지난 20대와 다르지 않을 것을 나는 느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좋다. [인상깊은구절] "버스에 오르면 내 옆에 앉을 건가?" "왜요?" "네가 마음에 들어서. 인상쓰고 정면만 바라보고 말 한 마디 건네려 하지 않는 인간들은 질색이야. 인생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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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한강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도 구입했다(내가 가진 건 1판 1쇄다. 이 책이 출간되지마자 바로 구입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받은 후 오프 매장에서 책을 직접 본 다음에 구입 여부를 판단할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사이즈는 딱 시집만 하다. 종이질은 외국 페이퍼백 같다. 글씨도 무지 크고 줄간격도 넓다. 그리고 한 페이지 전체가 글이 전혀 없는 장들도 꽤 많다. 만약에 나라면 자기 홈페이지에 올려서 나를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무시로 드나들면서 읽을 수 있도록 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글 자체의 수준을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책으로 내기에는 분량이 너무나 짧았다는 이야기다. 아니면... 좀더 내용을 보완해서 책을 출판했을 것 같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우리 나라 소설가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하면 거절을 잘 못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소설이 이 책에도 실리고 저 책에도 실리기도 한다. 물론 이걸 가지고 소설가의 자질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가들이 자기 페이스대로 글을 쓸 수 없는 문화적 토양, 사회적 토양이 부실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런 책은... 정말이지... 아쉬움이 많다. 한동안 2%부족할 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이건... 98% 부족한 책인 것 같다. 물론 그녀의 문학성 자체를 비판하는 건 결코 아니니 그녀의 팬들은 돌을 던지지 마시길!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문학가라도 다이어리에 자기 생각을 그때그때 적은 것을 그냥 책으로 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시집이 소설보다 양이 적다고 시집이 소설보다 가치가 낮은 거냐? 책을 어떻게 양으로 평가하냐? 하고 말이다. 그런 분들은 직접 사서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시집만한 사이즈에 거친 종이질에 글자 크기 10포인트에 줄간격 160으로 작성하면 A4로 몇 장 분량이나 될까 의문이 되는 책을 굳이 구입할 의향이 없으신 분이라면, 그냥 시내 서점에 나가셨을 때 선 자리에서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다 읽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아, 이렇게 말하니 책이 정말 형편 없는 것 같은데... 내용은 나름대로 좋다. 그녀의 생각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나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간간이 들어 있는 사진들도... 흑백이라서 그 이미지를 오롯이 느낄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글과 어우러져 볼 만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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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처럼 하얘진다'는 표현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종종, 솔직히 말하면 자주 쓰게 된다.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쥐어짜며 이 말을 했었다. 이렇듯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진부하다고 놀리면서도 '백지처럼 하얗다'는 말을 자주 쓰는 것과는 달리, 독서 과정에서는 가끔, 아주 가끔은 맘에 쏙 드는 작가를 우연처럼 만날 때가 있다. 진부하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게 느껴질만큼 세련된, 일상에서 흔하디 흔한 말인데도 전혀 새로운 말을 쓰는 그런 작가를 만나면 괜히 긴 손편지라도 써야할 것만 같다. '한강'은 내게 그런 작가 중 한사람이다. 가볍고 일상적인 글들이 낙엽처럼 깊게 쌓이면 나도 그녀처럼 오래된 토담벽처럼 허물없이 자연스러운 글줄이나 쓸 수 있으려니 하는 헛된 꿈을 심어 준 작가도 그녀였으니 따지고 보면 나는 그녀의 팬이라고 자처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말이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그리고 <노랑무늬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줄곧 소설쓰기에만 매달렸었다. 마치 그녀에게 소설은 그녀의 삶이자, 생명인 것처럼. 이 책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그녀가 쓴 두번째 산문집이다. 그녀가 쓴 첫번째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와 그에 얽힌 추억들을 다룬,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하여 음반으로 만들기까지 한, 어찌 보면 소설가의 취미생활과 같은 책인 반면에 이 책은 그녀가 아이오와 대학이 주최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함으로써 만나게 된 사람들의 스케치이다. 즉 미국 아이오와시티에서 체류했던 석 달 반 동안 그녀가 만났던 세계 각국의(주로 제3세계의) 작가들과 그녀가 겪었던 경험들을 다룬 일종의 소품과 같은 책이다.
"그날 저녁 마흐무드와 나는 부슬비를 맞으며 헌책방 순례를 했다. 몇 권의 책을 서로에게 사주었고, '초원의 빛'이라는 이름의 단골 책방 2층에서 옷을 말리며 케이크를 들었다. "사랑이 아니면"하고 마흐무드는 중얼거렸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네 살 때 이스라엘군에게 고향을 잃은 뒤 청년 시절에 두 번 투옥되어 4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그 뒤로 1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덧붙여 말했다.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그 말을 꺼내기까지 마흐무드의 눈앞을 스쳐간 여인들의 얼굴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그녀들과 보냈던 시간, 나누었던 밀어, 무수한 입맞춤과 어루만짐을 모른다. 다만 그가 그 여인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마다 순정을 다했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다시, 마흐무드 中에서)
작가는 자신이 보았던 그들의 몸짓, 표정, 그들의 말과 표정 하나하나를 담담하게 쓰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호들갑스럽거나 유난을 떨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임을 믿는 듯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주장할지라도 작가만큼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사랑은 그만큼 은근한 것'이라며 입술을 깨무는 듯하다. 두꺼운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무음의 세상, 세월이 거둬간 습기만큼 파삭파삭해진 그때의 추억을, 그저 스쳐지나간 사람들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낙엽처럼 부스러지는 그녀의 추억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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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 작가 한강의 이름은 가끔씩 들었다. 작품을 읽은 이들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다.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 '흰'은 그렇게 수집한 작품들이다. 작가 한강의 작품들을 읽어가는 동안 알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인간의 본성에 접근해가는 방식이나 주목하는 내용과 그것을 풀어가는 작가만의 방식에서 따라가기 버거운 감정의 흐름에 잠시 책을 놓곤 했다. 작품이 작가의 감정과 의지를 소설적 장치에 의해 풀어내는 것과 만나는 어색함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무엇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작가가 펴낸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라는 2003년에 발간된 산문집이다.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1998년 미국 이이오와 대학에서 주최한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하여 세계 열여덟 나라에서 온 시인과 소설가들을 만나는 동안 그곳에서 겪었던 사람과 자신의 기억을 담았다. 열일곱 가지의 이야기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감정과 의지가 있다. 그 감정과 의지를 읽어내는 작가의 감정과 의지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작가 한강이 그 시간을 기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사랑을 둘러싼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들이 괴로운 것이지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다고.”하는 사랑에 관한 관점에서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모든 기억들이 단편으로 부서지고, 형태를 잃어간다. 조용히, 시간의 풍화 속에 흩어진다. 나는 흥얼거린다. 나는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잊은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 때까지, 다만 그때까지.”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 속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사랑이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이라면 모든 기억이 다 고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버거운 삶을 살아가더라도 사랑은 그렇지 않음을 믿기에 그 사랑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그 출발은 어디에 있을까? 시간과 공간을 함께했던 그것을 기억하는 일, 바로 여기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여, 시공간을 함께했던 사랑과 그 사랑을 둘러싼 모든 것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는 일은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가꿔가는 중요한 출발점이리라. |
| 겨울이 오면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프루스트의 마들렌 일화처럼 자연스레 환기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때를 낭만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정당화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경계할 만하다. 그 시절 나는, 문자에 대한, 글에 대한, 책에 대한 갈증이 컸다. 시간에 쫒겨, ‘짬밥’의 눈치에 독서는 그리 쉽지 않았고, 읽을 만한 책들이 주위에 충분히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그 때 나는 화장실 한 켠에 비치된 《좋은 생각》이니 《샘터》 류의 잡지라도 읽으며 갈증을 달래야 했다. 군대와 퍽 잘 어울리는 값싼 처방의 감상적인 휴머니즘으로 점철된 그 책들 속에서, 한강의 아이오와 체류기를 접했다. 제대 후에 이따금 왜 책으로 묶어져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했는데, 이제야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왜 작가는 4년 여의 시간을 망설였던 것일까. 그는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라고 4년 전의 자신에 대해 적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얼마나 어둡고, 무겁고, 고통스러운 영혼이란 말인가. 그런 영혼의 그림자를 어딘가에 감추고 혹은 드리우고 씌어진 글이라서인지, 그 울림은 이따금 폐부를 건드린다. 그가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창작 프로그램에서 만난 이들이 대체로 제3세계 작가들이란 점도 그러한 공감의 형성에 한 몫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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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보았다. 우리는 좀더 쾌적한 집과 좀더 많은 수입, 좀더 나은 생활을 동경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가 보았다. 정말 귀중한 것은 값나가고 어려운 것들이 아니라, 숨쉬는 공기와도 같았던 것들, 가장 단순하고 값나가지 않는 것들, 평화, 우정, 따뜻함 같은 것들이었나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귓바퀴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리가 어느 날 가장 생생하고 낯선 메시지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 그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지....
본문 중에서.......
그런가 보다... 나이를 먹어서 인지 본문 중에 이 말이 가슴에 꽂히니 말이다.
세계의 작가들이 미국 아이오와에 모여 4~5개월간 대학 기숙사에서 보내며 서로의 문화와 문학 작품들에 대한 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가가 그곳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의 소소한 일상들을 적고 있다.
쉽게 읽을 수 있고 작가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 읽다가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다...
책표지에 나온 작가 사진의 이미지처럼 편안하고 잔잔하고 왠지 차분해지는 책... |
| 이 책을 구입한 후 들어올리는데 그 가벼운 느낌에 흠칫 놀랐다. 요즘엔 별것도 아닌 책도 양장 처리를 해서 무겁기 그지 없는데 갱지같은 가벼운 종이에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책은 참으로 신선했다. 책 자체가 가볍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니 더욱 흐뭇하다. 이 책은 작가 한강이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부여하는 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다른 문화권의 작가들의 이야기다. 낯익은 모국어를 접어두고 영어와 바디랭귀지, 마음의 소통으로 만나는 새로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치 오랜 시간 교유해온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푸근하고 따뜻하다.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고 자폐 성향까지 나타내는 한강의 모습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아 신선했다. 작가의 소명과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고 또, 문학 작품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
| 내가 읽은 한강의 첫 작품이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그녀의 책을 읽고, 그녀의 작품성보다도 그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산문집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사귄 사람들을 한명 한명 대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쓴 것이다. 독자는 책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그녀의 경험을 100%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한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한강의 작품을 읽기 전 아주 좋은 작품을 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이 글자크기도 크고 의외로 사진도 별로 없어서 소장가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
|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씨가 <한국인>이던가, <리더스 다이제스트="">류의 작은 잡지에 썼던 소설을 무척 어린 시절 읽은 기억이 난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여 꽤 원초적인 인간 묘사가 드문드문 떠오르기는 하는데 더 이상은 떠올리기 어렵다. 여하튼 나는 대를 이은 한씨 집안의 글을 읽고 있는 셈. 꽤 무게감 있는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한강 또한 젊은 작가들과는 적절한 선을 그은 듯, 중량감 있는 글을 쓴다. 그런 이유로 후배 한 녀석은 이 한강이라는 작가에게 푸욱 빠져 있었는데 지금도 여전한지는 녀석을 만난지 오래라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건 그렇고 제목 이외에도 책에는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리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1998년 여름 한강이 미국에 있는 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겪은 사람들, 그리고 발생한 일들을 소재로 하여 포착된 순간들을 크로크치럼 짧게 정리한 산문집이다. 그러니까 과거 최승자가 『어떤 나무들은-아이오와 일기』라는 책에서 다룬 바로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작가 한강의 생각 모음집 같은 것이다. 다만 최승자가 깊고 진지한 사색에 늙도록 침잠한 것에 비해 한강의 글은 좀더 간략하지만 젊게 따뜻하다. 많은 사람을 만날 일이 없는 젊은 작가가 프로그램의 일환이나마 전세계의 작가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며 느낀 것들, 그리고 그들의 문학 세계, 삶의 방식, 문화의 양식들이 날 것의 느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즐거운 읽기 작업이 된다. 특히 작가 자신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꽤 흥미롭기까지 하다. 마치 담배 연기 가득한 카페에 들렀다가 멋스럽기 그지없는 옆자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듯도 하고, 판자 하나로 겨우 칸막이 한 여인숙 건넌방 연인들의 대화를 엿듣는 듯도 하다. 예를 들어 한강이 아르헨티나 시인 파비앙과 하는 이런 대화. “아내는 2년 전부터 프랑스에 있어. 파리에 있는 대학에서 불문학 교수로.” “프랑스라구? 지구 반대쪽 아냐. 그럼 1년에 몇 번 만날 수 있는 거지?” “한 번은 아내가 아르헨티나로 오고 한 번은 내가 프랑스로 가니까, 1년에 두 번은 만날 수 있지. 그렇잖아도 이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에 파리로 가서 보름쯤 시간을 보낸 뒤 귀국할 생각이야.” “떨어져 있는 게 고통스럽지 않아?” “우리는 같은 도시에 있을 때부터 다른 집에 살았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각자 살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함께 지냈지. 물론 그전에는 보통의 부부들처럼 늘 함께 있는 생활을 4년간 했어. 하지만 견디기 어려웠어.” 언젠가 친한 친구 한 명이 일년여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제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면서 남편과 일년은 부부로, 다음 일년은 그냥 친구로, 또 다음 일년은 부부로, 이렇게 살 수 없을까, 하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퍼뜩 떠올랐다. 어쩐지 새로운 결혼 패러다임의 일환으로 한 번쯤 도입해봄직한(물론 아이들이 있는 경우라면 그 형식이 좀더 복잡해지겠지만) 형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팔레스타인 소설가 마흐무드와 나눈 이런 대화.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아니지. 그렇지 않아...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롭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이스라엘군에 의해 네 살 때 고향을 잃고, 청년 시절에는 4년간의 옥살이를 해야 했고, 10년간 망명생활을 한 소설가가(떠돌아 다니느라 그랬는지 이 작가의 소설은 단편소설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매우 짧은 것들이라고 한다) 이처럼 관대하고도 깔끔한 사랑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게도 된다. 산문과 소설은 연극과 영화처럼 닮아 있으면서도 매우 다른 장르이리라. 영화에 비해 연극이 지근거리에서 진솔한 거리감으로 대상이 되는 작품이나 배우들을 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문은 소설에 비해 작가의 생각에 대한 겸허한 참견의 여지가 많은(작가의 ‘삶’에 대한 겸허한 참견이 산문으로 만들어지듯) 그런 것, 아닐까...리더스>한국인> |
| 예전에 한 문예지에선가 한강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라보엠에 나오는 아리아의 제목과도 같은 ‘그대의 찬 손’이라는 장편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난 왜 한강이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너무나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렇다. 시적인 사색을 담고 있는 그의 글은 전혀 남성적이지 않음에도, 한강이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떠오르는 새마을 운동적 이름 때문이다. 초록색 이파리 세 개가 중앙에 박혀있는 새마을 모자는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는 단순한 보라나의 머릿속은 본인도 알 수가 없다. ㅎㅎ.. 굵은 글씨가 눈에 편하게 다가와서 좋았지만 사실 별로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특히 제목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흔한듯하여. 그러나 보라나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 책은 작가가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거기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작가들-에 대해 짧막한 추억과 감상을 적은 책이다. 그런데 보라나는 그 작가들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한강의 글을 별반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대한 상처(?)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상처와 호기심에도 사연이 있다. 보라나는 예전부터 김영하의 열혈 팬으로서 그의 책을 읽는 건 물론 그가 진행하는 방송도 즐겨 들었다. 그런데 작년에 SBS에서 김영하의 책하고 놀자를 진행하던 김영하는 돌연 방송을 그만두고 그 문제의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몇 달간 미국에 머무른다고 했었다.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책을 읽는 이유가 무척 단순한 나지만 책을 덮고는 많은 생각을 한다. 한강이 만난 많은 작가들은 내가 그동안 작가의 삶이라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사는 작가들도 많았다.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나 정해진 분량을 써내는 작가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성실함을 가진 작가들이었다. 매일매일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아마 그들의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나의 얘기가 될 수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또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랫동안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