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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인기 칼럼 '조용헌 살롱'을 1권 인사편, 2권 천문편으로 나누어 동양학 사전처럼 세밀하게 재구성한 책 중의 2권 천문편이다. 그런데 1편의 서평에도 말했다시피 그의 칼럼을 찾아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 책이 그의 칼럼을 모아 낸 책일 거라 알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차라리 책 제목은 그대로 두고, 부제라도 '조용헌 살롱' 칼럼이라고 표기라도 해놨다면 조금은 접근성이 용이했을 것이다. 서문에도 나왔듯이 아예 제목을 현학적인 '동양학 강의'라고 하지 말고 강호에서 배운 이야기란 의미에서 '강호동양학'으로 했다면 체계적인 학문의 깊이를 기대하고 읽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개인이 강호에서 배운 여러 가지 이야기와 학문적으로 배운 동양 사상의 깊이 있는 내공이 두루 섞인 쉽고도 깊은 이야기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줘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분은 너무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것만 같은 겉표지와 제목에 놀라 보려들지 않을까 봐. 혹은 궁금하다. 칼럼 제목과도 동일한 제목의 책도 나와있던데, 그 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하는 것들이. 하지만 이제 처음 접하는 조용헌 저자의 깊은 내공을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
2권 천문편은 자연, 천문, 종교, 운명 이렇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의 자연 부분은 말 그대로 산, 바다, 동물, 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천문 부분은 날짜, 주역, 풍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종교 부분은 종교랑 유뷸선에 대해 잡담을 하고, 마지막 운명 부분은 예언, 생사, 사주, 관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이 천문편이니 아무래도 천문이 많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운명 부분이 가장 분량이 많다. 보통 사람들도 운명 부분에 관심이 더 많지 않을까. 그래서 책의 이런 구성은 사람들의 관심도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학문으로서의 주역에 호기심을 느끼긴 했지만 읽기에는 사주나 관상 부분이 훨씬 더 쉬웠으니 말이다.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옛적부터 사주나 팔자를 보고 관상을 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솔직히 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사주가 나쁘다고 나오면 썩 기분이 좋지 않을 게 아닌가. 반대로 사주가 좋게 나와서 내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내 손해가 아닌가. 그러니 풍수, 사주나 팔자 같은 것은 신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이해해두면 좋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이 세상에 나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사군자라 이름 하는 매(매화), 난(난초), 국(국화), 죽(대나무) 중에서 난초를 빼내어 매, 연(연꽃), 국, 죽으로 불러도 군자를 의미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하면서 설명해준다. 매화는 이른 봄에 추운 눈을 이기며 꽃을 피우는 점이 군자 같고,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워도 더러움이 물들지 않으며, 국화는 서리를 맞아도 꿋꿋하게 꽃 피워있는 점이 군자와 비슷하고, 대나무는 겨울의 흰 눈 속에서도 청청함으로 군자로 이름한다. 난초는 왜 빠졌는가. 그가 군자의 상징으로써 특별히 모자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연꽃이 여름에 날 뿐. 그래서 난초의 성품도 찬양한다. 난은 향기가 멀리 가고, 멀리서 맡으나 가까이서 맡으나 향의 농도가 일정한 점이 군자의 성품과 같다고 본다. 또한 뿌리가 90%이상이 썩어가도 그 잎은 멀쩡하게 유지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자기 어려움을 표현하지 않는 군자와 같다고 하고, 빗물과 깨끗한 이슬만 먹는 것도 군자가 닮아야 할 성품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연도 좋고 난도 좋다고, 너도 좋고 나도 좋다고 그렇게 다짐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돼지나 오동나무, 방어, 민어, 새, 매화, 참나무, 작약, 백도화 같은 동식물이나 금강산, 월출산, 지리산, 화왕산, 영산강, 관음포, 해운대, 태안 앞바다 등 산수를 한꺼번에 알고 이해할 수 있어서 자연 부분이 제일 제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외에는 별로 좋아하는 부분이 아니여서 그런지 그리 쉽게 읽히진 않는다. 인간의 육체가 지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명당이나 산수, 관상, 사주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짓는 것처럼 보여서 그다지 운명 부분에 대해선 반갑지 않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어쨌든 좋은 재담꾼을 하나 만나서 오랜 만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강호유람은 하지 못하지만 내 대신 강호를 유람하고 좋은 이야기만 선별해서 들려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것도 복이로구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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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인문편이 강호고수의 걸출한‘구라빨’이었다면 2권인 천문편은 주역(周易)을 중심으로 풍수와 사주, 관상이 어울려 사람답게 사는 법, 자연과 화친하는 법등 우주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여야 할까. 해서 산과 강, 자연이 있고, 천지의 질서인 태양과 달을 말하며, 유약한 인간이 섬기는 신의 세계인 종교가 있고, 우주 질서 속의 미물인 인간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보약 세 첩 먹는 것보다 등산이 좋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등산 예찬을 하면서, 40~50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3대 종주코스를 완등(完登)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면서 고단백 에너지 코스로 바위의 화기(火氣)와 계곡물의 수기(水氣)가 이상적으로 버무려져 있는 백담사에서 봉정암 올라가는 길이 최고라고 적절한 중용의 길을 안내한다. 산을 오르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통즉등산 通則登山, 궁즉입산 窮則入山”이라고 즐거워서, 또는 삶의 궁지에 몰려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든 묶었던 노폐물이 걸러지는 상쾌함과 다 올랐을 때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이면 삶이 평화로워지는 것처럼 입산이건 등산이건 한 번 날 잡아 떠나야 할 터이다. 양기가 뭉친 명당이라는 지리산 남쪽의 악양(岳陽), 봉우리들이 뾰죽하여 화기가 넘친다는 화체산인 화왕산과 200칸 규모의 고택인 아석헌(我石軒), 속세의 먼지가 없는 절경인 관동팔경과 기쁘게 이야기하는 집이라는 현판이 걸린 선교장, 논산 노성리 윤증고택 등 풍수에 얽힌 재담과 이들에서 맛보는 별미인 무장공자(無腸公子)와 탕중왕(湯中王)이라면서 얼마나 맛있었으면 먹을 때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민어탕에 이르면 역시 저자의 입담을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자연 모두에서 절절한 사연들을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보다보면 궁극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 통하는 거대한 줄기를 발견케 된다. 선탠이 있으면 문탠(moontan)도 있어 매월 보름에 달의 기운을 받으면 오장육부에서 달 월(月)자 들어가는 장(腸)과 부(腑)가 튼튼해지고 감성에너지가 회복되어 화병이나 우울증을 다스리는데 좋다는 해설처럼 건강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죽는 방편의 고수다운 인생지침이기도 하다. 문득 사람이 죽으면 지수화풍의 4대로 흩어지는데, 보이지 않는 바람이라는 미세한 조짐에 대한 감지를 말하는 구절에서“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 中略 ~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하는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이라는 詩구절과 겹쳐, 내 곁을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이 그 누군가일 것 만 같아 조심스러운 긴장이 돌기도 한다. 한편 저자는 강요하거나 훈계하지 않으면서 넌지시 도덕을 야기하고 인물이나 정치사회의 일면을 은근슬쩍 비판하는 세련됨도 선사한다. 명당자리에 묻히면 후손들이 잘 될 거라고 명당을 찾지만, 풍수에도 윤리가 있단다. 도덕적 자격에 미달하는 자에게는 발복(拔福)하지 않는단다. 그러하니 적악자(積惡者)가 제아무리 명당에 묻히더라도 복하고는 인연이 없다니 살아서 공덕을 부지런히 들 쌓아야 할 터이다. 특히 이 저작에서 풍수법 하나를 배웠다면 화기와 수기에 대한 것으로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 소실된 숭례문이 정면에 화기가 넘쳐나는 관악산 때문에 이를 잠재우기 위해 비보(裨補:모자라는 것을 채워줌)용도로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두었었다는 것이다. 금싸라기 땅이고 도로확보 때문에 메워버려 표지판만 남아있다니, 만일 이 연못이 있었다면 역사적 유적이 그렇게 맥없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만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결과론이긴 하나 풍수론도 예사롭지만은 않다. 돌산(돌산-관악산-서울大)은 불이고, 기가 세단다. 그리고 돌 속에 잠재한 광물질로 인해 뇌세포의 활성화를 도와 암석위에 사는 것은 정신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에게 좋다니 어디 돌산위에 지은 집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지반이 온통 돌인 평창동, 구기동이 고급주택가로 뒤바뀐 것을 보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팔자니 관상이니 궁합이 맞느니 그렇지 않느니 하는 것에 사실 아예 관심이 없는 내게는 이 저술 중 예언, 사주, 관상을 말하는 운명의 장은 내키지 않는다. 다만 전, 현직 대통령의 관상을 동물의 유형에 빗대어한 운명 풀이처럼 심심풀이 장도 흥미롭거니와 나이 쉰이 넘으면 얼굴에 격(格)이 천격과 귀격으로 정해진다는 성찰은 나름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탐안(貪顔), 진안(嗔顔), 치안(痴顔)은 아닌지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고, 지안(知顔), 호안(好顔), 낙안(樂顔)이면 잘 산 얼굴 아니겠는가하며 또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즐거움이 어려 있는 얼굴이면 좋겠다. 우리의 수려한 산천과 고택 사찰은 물론 천문의 신비를 주역으로 풀어내어 들려주는 삶의 이치가 저자의 넉넉한 품성만큼 여유롭고 풍요롭게 수록되어 있는 역술 기행이라고 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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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책을 처음 우연히 읽었을 때
이번 글은 그가 한가지 주제로 완성해 낸 책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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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잡다한 지식들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기는 하지만 동양학 강의라고 하기엔 역시 역부족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동양학이라는 것이 다루는 다양한 영역을 (수박 겉핧기 식으로나마) 재미있게 접근하여 보여주니 아예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겠다. 여전히 불만인 것은 이 글들이 조선일보에 실렸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라는 필터를 통하지 않았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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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2편 천문편을 보았다. 1편에서는 아무래도 가족, 인물, 사회, 문화 등 '인간'에게 친숙한 소재가 눈에 띈 반면, 2편의 천문편은 산, 바다, 동물, 식물 등의 자연, 날짜, 주역, 풍수와 같은 천문, 종교, 예언, 생사, 사주, 관상 등의 운명에 대해 적혀있다. 사실, 1편의 주제에 비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별로 없는 주제였다. 주역이나 풍수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역시 '인간'을 알아야 그 이면의 세상도 깨우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눈에 띄는 흥미로운 주제들. 그 중에서 '300억 무재론'에서 말하는 무재 팔자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팔자 중에서 '돈이 없는' 팔자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돈이 없음'은 몇 백억이 있어도 쓰지 않는 사람과, 돈이 계속 쓰기만 해서 없는 상태인 시달리는 사람들도 그 무재팔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구두쇠, 노랑이들도 역시 안쓰면 '무재 팔자'인 것이라는 말이 흥미로웠다. 과연 그럴까? 사주에서는 그렇게 풀을 지언정,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기에 참 아이러니하단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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