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마법은 인간의 영적인 고향이었다. 그러나 전설의 마법사들은 우리 주변을 떠나버렸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상상의 위대한 힘을 일깨운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천지를 창조했던 마법사들을 내쫓은 것은 기독교와 근대과학이었다. 연금술사들은 추방당했고 숲의 마녀들은 화형에 처해졌다. 점점 더 냉혹한 이성으로 무장한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제도에 구멍을 만들어내는 이 상상력을 위험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근대는 조직적으로 그들을 감금하였으며, 의학의 담론은 그들을 광기로 분류하여 치료의 미명 아래 고문했다. 서구열강이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동양을 방문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계몽의 이름으로 신화를 거세하고 이성주의의 이름으로 전설의 세계를 추방한 것이다. 우리들이 점점 더 상상력을 잃어가기 시작한 시대가 근대의 도착과 겹치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에는 일곱 가지 불가사의가 버티고 있다. 우리는 피라미드의 비밀을 알지 못하며, 바빌론의 공중정원(空中庭園)의 문서를 갖고 있으며, 올림피아의 제우스상과 아르테미스 신전, 마우솔로스 능묘, 크로소스 대거상,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콜로세움은 그 건축의 비밀을 숨겨놓고 있으며, 피사의 사탑은 현대의 기하학자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과학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척 위선을 부리지만, 세상은 여전히 마법의 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법은 과학만능주의,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화두이다. 이 낯선 비밀들이 더 이상한 것은 근대 이후에 질문 자체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에 조금이라도 신뢰를 보내고 탐구하려는 사람은 광인으로 분류되고 아웃사이더의 낙인이 찍힌다. 그렇기에 이 책 미스터 크롤리는 하나의 거대한 도박이다. 저자는 매 페이지마다 우리를 속인다. 그는 마법과 종교, 신화와 철학,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상식과 서양마법의 세계가 지닌 낯설음을 서로 다른 손에 쥐고 매번 손을 내밀면서 어느 손에 우리의 해답이 들어있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책속에서 그 대답은 계속 미루어지며, 결국 대답은 주어지지 않은 채 크롤리는 죽고 이 책은 끝나버린다. 마법에 호기심을 느끼고 무언가 대단한 진리를 책에서 발견하기를 원했던 독자들은 책을 집어던지며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해답을 써놓은 문제풀이집이 아니라 삶의 목적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가이드이다. 바로 크롤리가 죽고 책이 끝나는 순간 독자는 책을 덮고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 미스터 크롤리는 마법의 진정한 지혜를 가르쳐준다.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그런 지혜를 스스로의 힘으로 깨우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마치 크롤리가 받은 율법의 서에 담긴 위대한 경구, '그대 뜻하는 바를 행하라' 처럼.... |
| 어떤 여자들은 생리때만 되면 정서가 불안정해져 까닭없이 물건을 훔치는 도벽을 보인다고 한다. 나는 정서가 불안정해지면 그들처럼 물건을 훔치는 대신 지식을 훔친다. 여기서 지식을 훔친다는 말은 돈을 안내고 가져온다는게 아니라 돈을 내기는 내지만 내가 낸 돈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같은 책을 수십 수백번 읽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양서를 발견하기 위해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무차별 쇼핑한다. 그리고 주문한 책들이 배달되면 며칠동안 자폐증 환자처럼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이 책들을 읽는 동안은 핸드폰도 꺼놓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최소한 한달에 한번은 이러지 않으면 이 답답한 세상에서 숨쉬기 힘들어 미쳐버릴 것 같다. 이런 지적 자유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나는 지금까지 셀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황지우의 시집까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서 성경과 불경과 기탄잘리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문제작이나 추천서 목록에 오르는 책들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낯선 "미스터 크롤리"라는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어떤 책과도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어떤 유령이 책속에 산다고 할까? 이 유령은 책의 머리말을 여는 순간부터 당돌하게 내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 책의 유령은 나를 매혹시켰고, 마취시켰고, 독일 민담에 나오는 로렐라이처럼 들리지 않는 노래를 불러 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내 정신을 중독시켰던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기묘한 서양 마법의 세계...이 낯선 세계는 도덕과 윤리와 관습을 모두 초월해버린 곳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왔던 고정관념들이 모두 파괴되어 버리는 무서운 자유의 시공간이다. 이 자유가 지배하는 세계의 단 하나의 율법은 자신의 뜻을 실행하는 것, 그것 뿐이다. 마치 악마적인 주문처럼 기록된 이 책의 가슴 벅찬 마지막 결말을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충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쇠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책과도 다르며, 앞으로도 이런 책이 나오기는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책 미스터 크롤리를 통해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서양 마법의 세계는 한국사회의 통념과는 어긋나는 점이 많이 있다. 이 책은 해리 포터가 아닌 것이다. 팬타지가 아닌 실제의 마법은 어둡고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겉보기에 그런 것이고 내면의 심오한 진리로 들어갈 때 우리는 그런 문화적 충격이 단지 사회의 억압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우리 자신의 편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저자 금기진씨는 이 책에서 자신의 문장들을 수술용 메스처럼 날카롭게 갈아 우리의 가슴을 향해 내리꽂는다. 그가 소개하는 마법사 알레이스터 크롤리의 철학 "그대 뜻하는 바를 행하라"는 크롤리의 고향 영국에서 지구를 한바퀴 돌아야 하는 머나먼 이 땅에서 조차도 여전히 성스럽고 위대한 반역인 것이다. 크롤리는 세상의 도덕을 공격하며 종교의 권위를 질문한다. 바로 이런 반항과 도전에 진실된 성스러움이 담겨있다고 주장하는 크롤리를 보며 우리는 마법이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는 주술이 아니며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영적인 철학임을 깨닫고 안이함의 악몽에서 깨어난다. 오지 오스본이 노래하고, 지미 페이지가 공부하고, 비틀즈가 존경했던 이 크롤리 라는 비범한 사내. 이 불가사의한 인물에 대해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책을 성서처럼 경건한 자세로 여러번 읽어야 하리라. 이 책은 정녕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성서이다. |
| 이 책은 심장병이 있는 분, 임산부, 비위 약한 분께는 권해드리고 싶지 않다. 얼마나 기괴하고 엽기적인지 웬만한 호러 소설을 능가하는 책이다. 특히 1장에서 나오는 크롤리의 사원은 엽기 그 자체. 예를들면 제자들이 특정 단어를 실수로 입밖에 낼 때 마다 팔을 면도날로 긋는 "면도날 수련법"이 그러한데,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에서 연예인들 나와서 어떤 말을 실수로 입밖에 내면 벌칙을 받는 것처럼 크롤리는 제자들이 특정 단어를 무심코 말할 때마다 면도날로 팔을 긋게 한다. 그리고 크롤리가 제자인 라울과 함께 고양이 목을 잘라 피를 따라내 마시는 제식도 소름끼친다. 물론 이런 제식 뒤에 숨은 신비주의적인 의미를 작가는 잘 해설하려고 애쓰지만 보통 사람 눈에는 기괴한 것이다. 아무튼 납량특집으로는 적합하지만 잠들기 전이나 식사 전후에는 읽어선 안될 책이다. 그러다가는 자신이 먹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불상사가...!! |
| 책을 읽어가면서 크롤리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나는 크롤리를 마법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마법사라는 의미는 판타지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선의 인물처럼 인간, 신, 삶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악의를 가진 인물들도 있으나 그들 대부분의 의도는 신 혹은 절대적인 능력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아니던가... 그러나 이 책에서 등장하는 크롤리는 전혀 그런인물이 아님은 물론이다, 본인이 그리스도 붓다 모하메드 등 이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을 대신한 차세대 주자로 나타난 '호루스'라니... 호루스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교의 멸망을 고하러 올 것이라는 강대한 짐승 '666 짐승'을 뜻한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책을 덥는 순간 정리 되지 않는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불특정한 대상에 대한 불안 혹은 신경질적 날까로움 같은 거였다. 크롤리의 마법 때문일까?? 하하... 그렇지 않다. 책의 내용이 참으로 불쾌해서이다. 크롤리의 행동들은 마치 점쟁이 들의 행동처럼 느껴진다.눈 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산위에서 까마귀 한 쌍을 놓아줘야 한다는 둥... 속옷을 태워 가루를 물에 섞어 마셔야 한다는 둥 이상한 행동들을 시키는 점쟁이 들과 너무도 비슷하다.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희괴한 짓거리처럼 느껴지면서도 소름끼치는 행위들이었다. 그것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자가 이런 의도를 글을 쓴 것이라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왜 읽었는지 모르겠다. |